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 개정증보판
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 일조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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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문화인류학 맛보기'이다. 어떤 책의 부제가 '○○학 맛보기'라고 되어 있을 때, 대개 사람들은 그 책의 깊이라든가 내용이라든가가 해당하는 학문의 연구 영역과 성과를 피상적인 수준에서 일별한 정도일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맛보기에 '그친다'.

그런데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또한 '맛보기'이지만, 이것은 감히 맛보기에 '그친다'고 말할 수 없는 책이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지금까지 인류학에 입문하려는 학생들이나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들에게 인류학이 친숙하고 매력적인 학문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개론서가 부족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인류학의 연구 분야와 성과를 조리있게 정리해 놓은 책은 있을지 몰라도, 그런 책들은 대개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 ― 독자들에게 인류학의 '맛'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선 곳』을 읽고서야, 비로소 인류학의 그 끌어당기는 힘을 느낀다. 2001년 여름에 이 책은 언제나 인류학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이 책은 특징은, 인류학 전공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외국에서 발표된 인류학의 민족지관련 논문 20편 가량을 번역하고 편집해서 실은 것이다. 번역된 논문들은 거의가 에세이 형식으로 수월하게 읽을 수 있고, 각 논문은 한 사람의 필자가 쓴 완결된 글이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단편적인 정보에 집착하기보다는 글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문화인류학의 기본적 관점인 문화상대주의를 소개하고 있는「티브족, 셰익스피어를 만나다」는 특히 흥미로웠다. 나이지리아 티브족 사회로 현지조사를 떠난 인류학자 로라 보하난은 어느날 티브족 장로들에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햄릿』에 나오는 많은 말들을 티브족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영미인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생소한 단어를 골라 써야 할 뿐더러, 티브족들은 그 이야기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해석해서 영국이나 미국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비장한 미감을 불러일으키리라 생각했던 『햄릿』이 그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고 보하난은 문화의 '다름'을 실감하게 된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부시맨의 크리스마스」또한 인류학자의 현지조사 경험담으로서, 생계경제에 사는 부시맨들의 소박한 심성과 지혜를 볼 수 있는 글이다. 이렇게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는 전혀 다른 상식의 세계에 들어가 봄으로써, 비로소 내가 어떠한 것들을 자명하다 여기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심에 휩싸인다. 문화상대주의라는 것은 '나'를 만나는 방편이라기보다 문화적 제국주의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약자의 '약함'에 슬퍼해야 한다면, 나는 상대방의 문화를 무시하고 짓밟는 강자의 잔혹함이 아니라 로라 보하난이 해주는 햄릿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티브족의 모습에 슬퍼해야 할 것이다. 강대국의 인류학자는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할 수 있는 반면에, 왜 티브족은 로라 보하난처럼 관대하게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가?

문화상대주의의 관점을 택하는 이유는 그 문화를 이해해야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회를 관통하는 내적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적 논리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논리를 타고 들어가 그 사회를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명징함의 세계는 때로 위험하다. 『낯선 곳...』 덕분에 내가 하게 된 고민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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