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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가한 주말 오전, 라디오 DJ가 책 한 권을 소개했다. 그것이 ‘바로 달려라, 아비’였다. 그때 처음으로 김애란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처녀작인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김애란님의 팬이 되어버렸다. 단편들로 이루어진 책인데, 짤막한 내용에 비해 여운은 굵고 길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말이다.
젊은 작가여서 그런지 그녀와 나는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느껴졌다. 내용들은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하지 않다. 색에 비유하면 짙은 파랑에 가깝다. 어느 정도의 상처와 불행, 그리고 우울함이 깔려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울함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단편 중에서도 ‘종이 물고기’ 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글쓰기를 통해 자존감을 느끼는 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꿈을 이루고자 서울로 올라왔지만, 쉽게 꿈에 다가가지 못한다. 그 청년은 스치는 문구, 생각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작은 메모지에 적어 놓았다. 수많은 생각, 문구는 결국 그 청년을 나타내는 매개체이다. 하나 두개씩 벽면에 메모지를 붙이다 보니, 더 이상 공간이 충분하지 않는다. 결국에는 그 위에 덧붙인다. 노란 메모지들은 바람이 불때마다 스륵 스륵 소리를 내며 펄럭인다. 책을 읽는 내내 그 노란 메모지들이 빼곡히 붙은 방이 자꾸 떠올랐다. 스륵 스륵, 청년은 꿈의 바다에 헤엄치는 노란 물고기이다. 하지만 눈을 뜨면 작은 방에 누워 있는 현실로 돌아온다. 결국 그 작은 방은 무너져버리지만 여전히 노란 비닐의 물고기는 바다를 향해 꿈틀거린다.
‘종이 물고기’를 보면서 매우 씁쓸함을 느꼈다. 청년이 살았던 작은 방은 우리가 숨쉬고 있는 현실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노란 메모지는 자신, 곧 꿈이다. 우리의 꿈과 가능성은 무한한데 그 꿈을 이뤄야 하는 곳은 한정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김애란님과 같이 느끼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모습입니다.’라고 말이다. 현실을 직시한 그런 묘사에서 씁쓸했지만, 그 주인공이 노란 메모지 위에 메모를 덧붙이는 행위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졌고, 자존감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이였다.
마지막으로 무너져버린 벽면에서 펄럭이는 메모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꿈의 바다로 향해 헤엄치는 물고기, 우리들이라고 느껴졌다. 짙은 파란색의 바다 깊은 곳에서 노란 물고기 한 마리가 헤엄치는 모습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