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넘버 포 1 - 로리언에서 온 그와의 운명적 만남 로리언레거시 시리즈 1
피타커스 로어 지음, 이수영 옮김 / 세계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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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고편을 먼저 봤는데 완전 기대되더라구요. 

초능력을 가진 No. 4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일과 자신의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라던가 

블록버스터급의 액션 등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영화도 영화지만 가장 기대되는 것은 역시 원작 소설인 <아이 엠 넘버 포>!! 

하루 빨리 읽어보고 싶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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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매드 픽션 클럽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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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잘못된 길을 알려주고 절정에 올랐을 때 뒷통수를 치는 것이 미치오 슈스케만의 매력.

 

항상 그랬다. 미치오 슈스케는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다. 어디로 가면 되냐는 말에 친절하게 자신을 따라오라며 앞서 걷는다. 친절한 호의에 감사하며 따라 걷다가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에서야 그는 비로소 "아아, 미안. 여기가 아니라 그 옆이다. 다시 가볼까?"라며 제멋대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잘못된 길을 따라가고 있으면서도 그게 전혀 '잘못 된 것인지 눈치채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따라가버리고 만다. 슈스케가 나의 뒷통수를 때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트릭이다."라고 말할 걸 알면서도 나는 어느새 그를 믿고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보란듯이 뒷통수를 가격하는 그를 휑뎅그래 바라보며 '뭐야, 이번에도 그런거였어?'라며 볼을 뚱하니 부풀린다. 알듯 말듯, 보일듯 말듯한 트릭과 복선 속에서 헤엄치며 나는 언젠가 내 뒤통수를 가격해올 미치오 슈스케의 행동개시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 미치오 슈스케는 정말 장난꾸러기 소년과 같은 작가다.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를 읽기 시작한 순간 태풍 소식이 들려왔다. 4호 태풍 뎬무가 우리나라에 완전히 접어들었을 무렵,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동안 뜸만 들여 놓았던 용의 손을 집어들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가 싶더니 곧이어 쏴아아!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제법 굵은 빗줄기가 바람을 타고 앞마당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A와 B의 상황이 한 컷씩 번갈아가며 보여지는 구조로 짜여진 용의 손에 나오는 두 결손가정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책 안에서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음울한 분위기에서 이제 막 서막을 시작한 슈스케의 소설이 태풍을 불러 오기라도 한 것일까? 뭔가 알 수 없는 끕끕한 느낌의 전혀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 온 몸을 휘감았다.

 

나는 렌의 새아버지가 더럽다고 생각했다. 친딸은 아니지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나, 하고 생각하며. 나는 렌-가에데 남매와 다쓰야-게이스케 형제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일에 천천히 녹아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모든 사건이 맞물릴 듯 하면서도 맞물리지 않는 이질적인 구도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 모든것을 믿어나갔다. 부모는 죽고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타인'과 살아가는 두 결손가정 중에서 나는 렌-가에데 남매와 소설 초입부터 결속되었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렌-가에데 남매와 감정이랄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랄지 하는 작고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맞아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렌이 새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순간온수기를 사용한 그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렌이 살인을 계획한 순간부터 난 렌의 곁에서서 그 장면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던 것 같다.

 

빈 틈이 생기지 않게 모든 문을 꼭꼭 닫던 렌의 모습. 쿵쾅대며 컵을 깨끗이 씻어 순간온수기를 가리듯 내려 놓는 모습. 집을 나와 비속에서 불안한 듯 기쁜 듯 집을 올려다보던 모습. 그 모습이 마치 실제로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미치오 슈스케가 그렇게 친절한 남자일 리는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뒤통수를 치고 마니까. 아니, 사실은 뒤통수를 친다, 라고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멍청해서 그가 '재미'로 작정하고 만들어놓은 트릭에 걸려 가짜를 진짜로 믿어버리고 묘한 이질감에 허우적댄 내 잘못일 뿐이다. 보다못한 슈스케가 던져준 떡밥을 전환점으로 삼아 '아~ 그랬던 거였어?!'라며 멍청하게 되물은 내가 잘못이다. 하지만 나는 미치오 슈스케가 던져주는 떡밥도, 그가 나를(독자 모두를) 작정하고 속이기 위해 설치해둔 트릭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용은 재앙이면서도 동시에 희망과도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제 1의 작가이자 롤모델이 온다 리쿠라면, 희열과 동시에 씁쓸함을 안겨주는 제 2의 작가는 역시 미치오 슈스케일테지.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서 보여주었던 치밀한 전개와 희열 넘치는 짜릿함. 9살 소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박력. 그리고 약간 허술하면서도 묻어가는 듯 하면서도 극적으로 끝냈던 결론까지. 그 뒤로 나는 미치오 슈스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뭐가 빨려들어간다,는거야. 뭐가 어느 순간에 정신 차려보니 다 읽고 말았습니다,야?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읽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의 정신력이 어디까지 버티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미치오 슈스케가 던져주는 거짓에 절대 속지 말도록 주의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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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쉬허쉬 허쉬허쉬 시리즈 1
베카 피츠패트릭 지음, 이지수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Hush

동사

1. 자동사[V] [특히 명령문 형태로 쓰여] 쉿, 조용히 해[울지마]

2. 타동사[VN] …을 조용히 시키다[입을 다물게/그만 울게 하다]

명사

[sing.,U] 침묵, 고요(특히, 한참 시끄럽던 뒤에 또는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존재하는 것)



 

 <허쉬허쉬>.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은 나를 흥분시키지 못했다. <트와일라잇>시리즈가 본격적으로 출간되어 얼마 되지 않아 영화는 물론이고 미드계까지 뱀파이어의 시대가 다시 찾아왔다. 새하얀 피부, 붉은 눈, 믿기지 않을 만큼의 파워, 그리고 피에 대한 굶주림, 매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뱀파이어의 시대. <허쉬허쉬>를 읽어내려가기까지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대략 5시간 동안 그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도 나는 주의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말해, 나는 이 책에 완벽하게 몰입할 수 없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린걸까? 책의 내용도, 흐름도, 스토리도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다를 흥분시켜줄 만한 요소. 나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구해주는 그 짜릿함이 이 책에는 결여되어 있었다. 지나치게 캐릭터가 평면적이다. 여자주인공인 노라도, 남자주인공이자 타락천사인 패치도. 그리고 그 주위의 모든 인물들도 캐릭터가 죽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장황하고 커다란 서사에서 살아서 움직인 캐릭터는 없었다. 그럼에도 5시간 내내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엇을까?

 

 정확히 <허쉬허쉬>는 나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독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하는 묘한 트립이 있다. 궁금하지는 않다. 그런데 읽고는 싶다.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데 책장을 넘기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만족스럽지는 못한데 까닭 없는 갈증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결여되어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3일 동안 <허쉬허쉬>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대답을 얻어내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책에 매료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절망의 구>는 남자와 함께 달리고 도망치고, 구를 만져 확인하면서 날 캐릭터와 함께 숨쉬게 만들었다. 100% 책에 몰입해 그 현장감을 느끼고, 구와 함께 싸우고, 인간들의 이질적이고 이기적인 면모를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트와일라잇>은 매력적이진 않았지만 10대들이 항상 꿈꿔오던 하이틴 로맨스로 소녀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허쉬허쉬>는? 한번 쯤 만나보고 싶다. 패치라는 인물이 아닌 '타락천사'라는 종족 자체를. 하지만 나는 어째서 이 책과 공명하지 못했던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목구멍에 뭐가 걸리기라도 한 듯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결말을 다 알아맞춰버릴 정도로 뻔했던 내용이었고, 미스터리가 가지는 긴장감이라던지 흥미진진함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저 기형학적으로 꼬아 놓은 인물관계도와 복선과 사건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데에 급급했던 것 같던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신기한 책. 진정한 <허쉬허쉬>의 매력은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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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남미
이미혜 지음 / 책만드는집 / 2010년 6월
구판절판


 지난 13일(화). 뒤늦게 <레알, 남미>가 내게 왔다. 작년 이맘때 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청춘 남미>를 읽은 후 남미에 대한 환상과 열망을 가지게 된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레알, 남미>를 펼쳐들었다. 언젠가, 내 생활이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고, 청춘이 다 가기 전에.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갑자기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꼭 가겠다고 결심한 그곳. 남미. 작은 나라들이 하나의 커다란 여행투어 코스로 자리잡은, 관광지로 손색이 없으면서도 위험하기도 한. 찾거나, 혹은 버리기 위해 과감히 떠날 수 있는 남미. 나는 오늘도 꿈꿔본다. 남미에서 배낭과 손때 묻은 디지털 카메라를 앞으로 단단히 고쳐매고 살을 시커멓게 태우며 사진 찍는 내 자신의 모습을.



쿠바 : 트리니다드 - 산타클라라 - 아바나

페루 : 리마 - 파라카스 바예스타섬 - 와카치나 - 쿠스코 - 마추픽추 - 삭사이와망 - 푸노 - 티티카카 호수

볼리비아 : 코파카바나 - 라파즈 - 데스로드 - 루레나바케 - 우유니

아르헨티나 : 멘도사 - 라 루랄 -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 - 칼라파데 - 페리토 모레노 - 칼라파테

칠레 : 토레스 델 파이네

다시, 아르헨티나 : 우수아이아 - 부에노스아이레스 - 푸에트로 이구아수

브라질 : 포스 도 이구아수





 <레알, 남미>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솔직한 여행 일지'다. 지금까지 여행기가 '어디에 간다면 여기는 꼭 가보길.' 이라던가, 여행을 다니며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면 <레알, 남미>는 여행루트까지도 상세히 나열하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상관 없이 솔직하게 담아냈다.



 <청춘 남미>나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모데라토와 안단테였다면, <레알, 남미>의 박자는 아다지오 또는 아다지시모다. 이미혜 작가의 느린 문체 때문인지, 더위에 지쳐 늘어져버린 내 마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느릿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남미 사람들처럼 그렇게 읽어갔다.



 남미에 속해있는 나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마추픽추와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PERU. 그리고, 우수아이아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자리해있는 ARGENTINA다.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새파란 물빛을 가진 티티카카 호수는 사진을 보는 것 만으로도 "우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인 공중성, 마추픽추는 그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하면 역시 악마의 목구멍을 빼 놓을 수 없지.



 글을 읽고, 사지는 보는 것 만으로도 남미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버린 책. 바로, <레알, 남미>다.


 책을 여는 순간, 나는 어쩌면 이미혜 작가의 오른편 뒤쪽에 서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이라는 타임머신을 이용해 이미혜 작가가 남미로 떠나던 그 순간으로 조용히 스며든 나. 짐도 카메라도, 비자도 없이 붉은 꽃이 커다랗게 프린팅 된 흰색 반팔티에 물빛 반바지를 입은 채로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 책을 읽는 내내 몸은 현실에 두고 영혼은 이미혜 작가가 여행하는 그 순간으로 가서 함께 한 여행은 정말 힘들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녀가 지쳐 땅에 주저앉으면 나 역시도 그 옆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고, 군것질 거리로 감자칩을 사들면 몰래 하나씩 뺏어 맛보기도 하고, 못된 현지인에게 속아 으슥한 길을 올라가던 중에는 위험한 거 아니냐고 속삭여도 보면서 그녀와 함께 돌아다녔다. 나야 영혼뿐이니 출국 심사나 입국 심사를 치룰 필요는 없었지만 나의 여행 가이드인 이미혜 작가를 위해 얌전히 기다려주기도 하면서 남미의 페이스. 아니, 어쩌면 이미혜 작가의 페이스에 맞춰 천천히 읽어내려간 <레알, 남미>. 그 뜨겁도록 열정적이면서도 이성적이었던 나의 가상여행은 우수아이아를 지나 푸에르토 이구아수 국립공원에 있는 악마의 목구멍에서 끝이 났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라, 쿠바. 비비드한 색깔로 건물을 칠한 이 나라는 정말 눈 부시도록 밝고 쾌활하다. 어쩌면 그곳에서 그녀와 함께했던 여행이 가장 여유로우면서도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인정이 넘치고 정감 있는. 여행객들에게 환하게 미소지으며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쿠바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 벽을 거의 헐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커다란 창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사생활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사람들. CSI 마이애미에서 호라시오 반장님 다음으로 매력을 방출해내는 에릭 요원을 닮은 남자아이까지.



 자존심만 높아 살거면 사고, 싫으면 말라는 식의 쌀쌀맞은 볼리비아에서의 여행과 비교하면 쿠바의 여행이 가장 따뜻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해도 내가 가장 열광하는 나라는 페루다. 내가 어째서 페루에 열광하는지에 대해선 나도 갸웃.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페루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이 있으니까 오르고 좋아하니까 좋듯이 난 페루가 좋다.


 쿠바에는 체 게바라의 구조물이, 볼리비아에는 소금사막이, 아르헨티나에는 악마의 목구멍이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페루엔 마추픽추가 있다. 마추픽추는 이 우르밤바 계곡지대의 해발 2,280m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나이 든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마추픽추. 산자락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공중도시'라고도 불린다고.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과 경관에 놀라워했다면, 페루에 와서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에 놀라워 할 차례다. 그 무거운 돌을 들고 어떻게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와 이런 도시를 만들었을까?



 마추픽추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잉카인들이 스페인 인들의 공격을 피해 산속 깊숙이 세운 것이라고도 하고, 군사를 훈련해서 후일 스페인에 복수하기 위해 건설한 비밀도시라고도 하고, 홍수를 피해 고지대에 만든 피난용 도시라고도 한다. 무엇을 믿던지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지만, 난 역시 첫번째 이야기를 믿고 싶다. 이렇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피비린내나는 복수를 위해 건설된 비밀도시라거나 홍수를 피하기 위한 피난용 도시로 전락한다면 슬플 것 같으니까.


 주객이 전도된 볼리비아 시장에서 그녀와 함께 느꼈던 설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좋은 기억도 많았을텐데 나쁜 기억만 자꾸 떠오르는 것은 대체 무슨 장난인지. 하지만 볼리비아에서도 아름다웠던 시절은 있었다. 바로 우유니에서 보았던 소금사막! 볼리비아 포토시주의 우유니 서쪽 끝에 있는 소금 사막은 지각변동으로 솟아 올랐던 바다가 빙하기를 거쳐 2만 년 전 녹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에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는데, 비가 적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은 모두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아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대로 볼리비아는 바다와 인연이 없는게 아닐까? 그나마 있던 바다도 모두 말라 소금만 남았으니.

 그녀와 나는 건기 때에 가서 소금만 있는 이름 그대로의 소금사막을 보고 왔다. 하지만 우기때 가면 물이 고여 소금호수로 변한다니 그 때 맞춰서 가 보는 것도 좋을 듯. 예전에 바다였다고 하더니, 지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수평선이라고 해야하나?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건기 때는 지평선이고, 우기 때는 수평선인 것을.


 하지만 아무리 나쁜 기억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곳에서는 다 잊게 되어버린다.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국립공원 안에 있는 악마의 목구멍. 보고있는 것 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지고, 지금 당장이라도 폭포수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 것만 같은 악마의 목구멍. 아르헨티나에서 내려다보고, 브라질에서 올려다보며 아찔함과 함께 짜릿함을 동시에 느끼고 만다. 남미에 가면 반드시 들려봐야 할 이구아수 국립공원.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버리게 될까?


 나와 이작가과 함께 한 길고 긴 여행이 끝이났다. 이제는 이작가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와야 할 때. 이작가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나는 악마의 목구멍을 통해 현실로. 29의 막바지에서 100일간의 여행을 마친 이작가의 여행을 3일을 투자해 지나왔다는게 미안하기도 하면서 뿌듯하기도 하다. 정말 그녀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걸었던 길. 트래킹을 즐겼던 장소에서 함께 웃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면서 남미의 또 다른 모습을 가슴에 새긴다.



 지금쯤 서른이 되어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이작가. <레알, 남미>를 펼치는 순간 그녀의 페이스인 아다지오를 끝까지 지키며 돌아다녔던 남미. 이젠 내 차례다. 언제가 될지, 얼마 동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기필코, 꼭! 가봐야지.


이미혜 작가의 솔직하면서도 느릿한 남미 이야기가 읽고 싶다면, 지금 당장 <레알, 남미>로의 여행을 떠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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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 오라나 고갱 - 소설로 만나는 폴 고갱
더글러스 리스 지음, 송희경 옮김 / 파란자전거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타히티 섬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토테파와 고갱의 만남, <이아오라나 고갱>

 





                                              - 타히티의 토테파가 있던 지역에서 그린,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

 

 

“나는 내 낡은 삶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이제부터는 돈에 대해서도,

파리에서의 명성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런것들은 이 나무를 베어낼 때 함께 베어버렸습니다.”

 

폴 아저씨가 말했다.

 

“이제 뭐든지 할 준비가 됐어.”   P. 223

 

 

언젠가 말한 기억이 있지만, 나는 화가들 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가 그려낸 세계가 불안정하기 때문인 것도 있으며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열정 때문이기도 했다. 몇몇은 그를 미치광이라 부르고, 몇몇은 그를 불운한 천재 화가라고도 부르지만 나는 그를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화가'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나는 고흐의 친구, 고갱을 만나보았다. 원래는 고흐의 일생을 다룬 소설을 보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학교 도서관엔 고흐의 삶을 옮겨 적은 문학이 없어 그와 노란색 아틀리에에서 함께 지냈던 폴 고갱에 대해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아 오라나.

 

1891년, 고갱이 타히티에 들어와 체류했을 때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다. 책 제목에 적힌 '이아 오라나'는 타히티 말로 "안녕하세요."를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인삿말─이아 오라나, 고갱─처럼 따뜻한 내용을 품은 소설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갱과 남자의 첫 만남은 그 누구보다 괴팍했으며 난폭했으니 말이다.

 

책 제목만 봐도 알수 있겠지만 이 책의 화자는 '고갱'이 아닌 다른 누군가이며 주인공 역시 고갱이 아니다. 솔직히 내가 이런류의 책을(아니면, 이런 내용의 책을) 원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걸 원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이 책 속에 나온 고갱과 그가 사랑한 야생인, 토테파와 함께 호흡하며 생활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소설식으로 풀어져 나가는 내용 때문인지, 내가 고흐에 관심이 많다보니 그의 친구였다는 고갱에게 조금이라도 그 관심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주위의 풍경과 소음에도 영향 받지 않고 집중해서 책을 읽어본 것은 정말 오랫만인 것 같다.

 

비록 고흐에 대한 이야기는 딱 한 번, 고갱이 토테파에게 타히티에 오기 이전의 일과 오게된 이유를 설명할 때 나온 반페이지 내용이 고작이었지만 그 당시의 고갱이 고흐와의 아틀리에 생활을 청산한 뒤에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직설적이고 주장이 강한 말이었다. 그렇다해서 고갱에게, 이 책에 실망한 것은 아니다. 고흐에 대한 별달은 이야기는 없었찌만 오히려 고갱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 말이다.

 

 

고갱의 '고유한 야생인', 토테파

 

책의 제목이 설명해주고 있듯 고갱은 이 글의 화자도 아니고 주인공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명에 불과할 뿐이다. 단지 주인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나의 미련한 주인공이 변할 수 있도록 조력해 준 것만 빼면 그의 역할은 미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 과연 주인공은 누구일까? 고갱의 작품 중 <마타무아>라는 작품을 비롯해 1891년. 즉, 고갱이 타히티에 처음 거주하던 시절에 그려낸 여러점의 작품에 등장하는 '토테파'라는 이름의 남자가 이 글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글의 토테파가 '진짜 토테파' 일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약간의 사실을 가지고 그려진 픽션이니만큼 적당히 즐기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만 염두해둔다면 <이아 오라나, 고갱>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토테파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며 행동한다. 아주 철저하게 '토테파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와 고갱이 만났던, 1891년 타히티를 배경으로.

 

나는 토테파의 눈과 마음을 통해 타히티 섬과 테하네와 고갱을 바라보았고, 토테파의 몸을 통해 그것들의 온기를 느끼고 감각을 느꼈으며 그들과 함께 호흡을 나누었다. 고갱에게 주먹으로 세 차례 맞은 볼이 얼얼하기도 했으며 처음으로 밝게 웃어보이던 고갱에게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였으며, 로베르의 여자가 되었어야 했던 테하네를 사랑하기도 했다. 또한, 스모킹 미러가 나타났다고 느껴질 때는 토테파와 함께 두려워하고 초조해 하였으며, 늑대를 보았을 때는 토테파 못지 않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내리 눌러야만 했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의 나는 토테파가 되어있었고, 고갱과 함께였으며 테하네와 함께였다.

 

 





                                     - 고갱의 친구이자 고유한 야생인, 토테파가 등장하는 MATAMOE(마타무아) 공작새와 수탉이 등장하는 그림

 

 

“그는 나를 죽인다. 낡은, 죽은 나. 알겠나, 토테파? 자네는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죽은 나무를 쪼개고 있는 거야.

불길은 죽은 나무를 새로운 형태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거고. 무언가가 파괴될 때는 반드시 다른 무언가가 대신 태어나게 되기 마련이야.”  P.231

 

 

스모킹 미러

 



 

토테파는 그 무엇보다도 스모킹 미러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너무 오랫 동안 한결 같은 사람들을 골탕먹여 변화를 일으킨다는 스모킹 미러가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악마라고 믿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러나 토테파는 고갱과 함께 하면서 조금씩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토테파의 말처럼 스모킹 미러는 불운을 가져오는 것 같기도 했지만 결국은 토테파를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살을 한 셈이다. 물론, 고갱의 몸을 빌려서.

 

책 속의 고갱이 말하기를 <마티무아> 속의 토테파(즉, 자신이 사랑하는 아미고, 토테파)는 죽어버린 나무를 쪼개어 모닥불에 짚어 넣음으로써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자신을 살아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했다. 고갱에게 있어서 토테파가 그러한 것 처럼 토테파에게 있어서 고갱 역시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나무를 베러 고갱과 산에 올랐을 때, 토테파는 그곳에서 새롭게 태어난 고갱을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테파는 스모킹 미러를 이겨냈다. 그렇다면 낡은 토테파를 베어 죽이는 것은, 자신을 불행해 빠트리기 위해 가끔 찾아온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스모킹 미러가 아니었을까?

 

전반적으로 나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토테파와 함께 생활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지 모를 당신에게 미리 내용을 알려주는 것은 어쩌면 김이 빠질 정도로 안타깝고 잔인한 일이 될지도 모르며 흥미진진한 일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은 토테파도 아니고 고갱도 아닌, 현대의 스모킹 미러에 맞서는 우리 스스로가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책을 구할 수만 있다면 폴 고갱이 직접 쓴 <노아 노아>를 읽어보고 싶다. 토테파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고갱의 일기라고 하니 반드시 읽어 보고 싶다. 혹시 모르지. 폴 고갱이 기록한 메모와 같은 <노아 노아> 속에 잠시 동안 아틀리에에서 함께 생활했던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 있을지.

 

 

비바 엘 아르티스타 그란데! 비바 고갱!

비바 토테파! 비바 타히티! 비바! 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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