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 수업 천천히 깊게 읽기 - 교과서 대신에 책 한 권을 학생들과 천천히, 그리고 깊게 나누기
유새영 지음 / 지식프레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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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부럽다. 가능하다면 2000년 대생 어린이가 되어 슬로 리딩, 온작품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책 수업을 받고 싶을 정도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과감하게 교과서를 버리고 한 권의 문학을 온전하게 읽을 수 있도록, 문학과 삶이 교차하는 지점을 오롯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문학과 삶이 교차하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내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유도하고 격려해 주는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폭넓은 시선과 태도로 삶과 문학을 다양한 층위에 놓고 탐구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흥미로웠던 부분은 교실이 일종의 카니발적 광장(Carnivalesque Agora)으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카니발화된 교실에서 어린이들은 이데올로기의 억압에서 벗어나 일시적으로 자유를 누리게 되는데, 유새영 선생님은 슬로 리딩, 온작품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통해 한 번, 교육 연극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을 접목한 통합 교육을 통해 또 한 번 교실을 카니발적 광장으로 변화시킨다. 비록 통제권을 지닌 성인-교육자의 재가[허락/승인]로 작게 분할된 카니발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교실을 지배하는 위계 구조는 유지되나, 카니발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교육자도 학습자도 모두 ‘배우’가 되어 나이, 성별, 지위, 계급 등에 따른 위계적 불평등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자유롭고 친숙하게 교류한다는 점에서 카니발화된 아동문학을 활용한 카니발화된 교육은 기존의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수업 모델을 대체할만한 긍정적인 수업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각종 매체로 접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유새영 선생님의 수업은 카니발적(carnivalesque)이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이어서 모두가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라 단언하는 공교육의 틀 안에서 유새영 선생님은 어린이들의 동료 독자이자 조력자, 보호자가 되어 일시적으로 카니발을 재가한다. 카니발을 재가하기 위해 유새영 선생님은 간단한 연극 기법을 적용하여 어린이들보다 먼저 카니발적 인물로 분한다. 교육부 장관이 되어 “‘자율 방과 후 클럽 의무화’ 정책”(93쪽)을 펼치거나 보건당국 책임자가 되어 어린이들을 “보건당국 요원으로 임명”(243쪽) 하고,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제균청소포”를 나누어주며 “교실에 있는 바이러스와 세균을 제거하는 작업”(243쪽)을 진행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간단한 연극적 기법과 함께 어린이들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연출된다. 교실 문을 열고 복도에 잠깐 나갔다가 시간차를 두고 교실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교실로 되돌아온 선생님은 교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간’ 선생님과 동일하지 않다. 재킷이나 안경, 라텍스 장갑과 같은 소품을 이용해 작은 변화를 줌으로써 선생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교육자: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학습자로 양분된 페다고지적 관계가 고착화된 교실의 시공간은 카니발적 시공간으로 변모한다.


카니발이 벌어지는 동안 일상을 지배하던 공식적이고 권위적인 질서와 가치, 규범, 금기는 사라지고, 나이, 성별, 계급, 지위 등에 따른 불평등은 일시적으로 파기된다. 성인/아동, 교육자/학습자로 구분되던 선생님과 어린이들은 카니발화된 교실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공식적인 이름이나 지위가 ‘아닌’ 상대방이 선택 혹은 변장한 인물의 이름이나 별명으로 서로를 호명하며 자유롭고 친밀하게 교류한다. 이는 어린이들이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카니발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93) 알고 있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주어진 카니발이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일시적으로 벌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니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이유는 가면을 쓰고 분장을 했을지언정 가장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몇 차례의 경험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어린이들은 문학 작품 속 인물의 이름과 상황을 빌려 성인이 강요하는 규칙을 지키는 동안 억눌러야 했던 욕망을 표출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지점이다. 유새영 선생님의 ‘맛있는 책 수업’을 듣는 어린이들이 어린이 문학 작품 속 인물을 통해 간접 경험한 카니발을 현실 층위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 어린이 문학에는 마법적인 능력 없이도 성인이 지닌 권력을 전복하는 어린이 인물이 등장한다. 현실의 어린이 독자들은 일시적으로 성인의 권력을 전복하고 일탈과 해방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어린이 인물의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자신이 미처 드러내지 못한 욕망과 성인 규범(adult normativity)에 의해 억압되거나 부정되어 왔던 타자성(otherness)을 발견할 기회를 획득한다. 유새영 선생님이 교실에서 재가한 카니발은 어린이 문학 내부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느슨하게 빠져나오기 시작한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욕망과 타자성을 탐색할 자유, 욕망을 발산하고 타자성을 긍정하거나 보완할 자유, 내면에서 발견한 타자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할 자유를 허락한다. 이토록 다양한 작품과 매체, 예술 갈래를 활용한 통합 교육의 끝에 존재하는 것은 획일화된 교육 과정 때문에 타자성이 억눌린 어린이가 아니라 내면의 타자성을 발견하고 성장의 가능성을 획득한 어린이다.


물론 “어떤 책을 어린이들 손에 건네주어야 할”(308) 지 고민하는 건 교사, 강사, 보호자 등을 모두 포함한 양육자의 몫이다. 이전에도 지금도 대부분의 양육자들이 스스로 책을 읽으며 동시대성과 문학성, 유희성을 골고루 지닌 작품을 큐레이션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양육자들이 “직접 읽어보”(311)며 어린이들과 함께 읽을 책을 추려냈으면 좋겠다. 양육자로서가 아닌 동료 시민이자 동료 독자로서. 교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학 안에서만이라도 자유롭게 뛰어놀며 위로를 받고 자기-자신을 탐구할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슬로 리딩, 온작품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시작하려는 교사들뿐만 아니라 몇 차례 진행한 바 있는 수업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싶은 모든 교사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여기에서 교사들이 행하는 교육을 엿보고 확신을 얻고 싶은 모든 양육자들에게도 미약하게나마 신뢰와 희망, 도움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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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책 수업 천천히 깊게 읽기 - 교과서 대신에 책 한 권을 학생들과 천천히, 그리고 깊게 나누기
유새영 지음 / 지식프레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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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슬로 리딩, 온작품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시작하려는 교사들뿐만 아니라 몇 차례 진행한 바 있는 수업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싶은 모든 교사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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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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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게 빠져들었다. 가제본을 펼친 순간 주변의 소음이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펼쳐지는 김초엽의 세계가 너무도 촘촘하고 아름다워서. 그 세계 속에서 부유하는 질문이 서늘해서.



김초엽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가제본으로 먼저 만나 보았다. 2019서울국제도서전(이하 2019SIBF) <여름, 첫 책> 일정에 맞춰 출간 준비 중에 있는 이 책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은 가까운 미래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사실감 있게 담아낸 SF소설집이다. 「관내분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동시에 수상한 뒤 1년 여 만에 소설집으로 묶인 셈이니 이례적이라면 이례적인 속도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김초엽'이기에 가능한 쾌거가 아닐까.



김초엽은 SF 소설가 중에서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세계관을 정교하게 구축하는 작가다. 어디 그것 뿐인가. 섬세하고 탁월한 감각으로 삶의 다양한 문제를 그려내고, 지금-여기에서 잊혀지고 지워지는 소수자를 다양한 형태로 등장시켜 소설의 중심에 자리하게 한다. 경계와 비경계, 정상과 비정상, 단절과 비단절, 수용과 배제, 회피와 도전처럼 이분법적인 항을 끊임없이 대립시키며 독자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지금-여기에서 답하길 미뤄둔 문제에 대해 진득하게 생각해 볼 것을 요청한다.



마을에서는 의미를 갖지 못했던 특성이 지구에서는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이유가 되고(「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한낱 연구 대상에 지나지 않았던 외계 지성체를 자신과 같은 영혼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찾아오고(「스펙트럼」), 인간성의 가장 큰 특성인 이타성이 사실은 고등 외계 생물과의 공생으로 학습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내세우고(「공생 가설」), 우주의 극히 일부만을 공유하게 되었음에도 우주를 지배한 것처럼 구는 욕망 때문에 무엇이 희생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인간이 감정을 통제하는 존재라고 보는지, 통제 받는 존재라고 보는지 질문을 던지고(「감정의 물성」), 도서관에서 분실된 마인드를 찾는 과정에서 모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관내분실」), 특정 부류에게만 가혹해지는 평가의 잣대와 한 사람의 실패가 집단 전체의 실패로 간주되는 상황을 보여주는(「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 낯선 세계를 빌려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지워지고 잊혀지는 존재를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구석이 있는데 그건 아마 질문의 이면에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도 인류는 지금과 같은 과오를 반복 할 것'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선택해야 할 차례다. 시초지에서 난생 처음 선택의 순간에 선 순례자들처럼,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선택을 스스로 해야 할 때다.



김초엽을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SF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여성사'에 있다. 등장인물의 대다수가 여성인 것도 놀라운데, 그중 몇몇의 단편에는 중년 여성과 노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중년 여성 혹은 노년 여성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건 그리 놀라워 할만한 일이 아닌데도 놀라게 되는 이유는 여지껏 읽었던 대다수의 SF소설 중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물은 젊은 남성이거나 중년 남성인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그도 아니면 어리숙한 모습의 청소년 여성이나 이제 막 어른이 된 젊은 여성이거나.



터널의 발견으로 가족이 정착한 행성에 갈 방법이 요원해진 상황에서도 언제 올지 모르는 우주선을 기다리는 과학자의 이야기(「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나 다섯 개의 인공위성이 뜨는 행성에서 조우한 외계인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과학자의 이야기(「스펙트럼」) 속 주인공은 ‘할머니 과학자’다. 노년-여성-과학자가 바라보는 우주 저편에 대한 사유를 개인사와 인류사, 우주사를 한데 엮어 풀어냈는데 그 속에 담긴 내용과 깊이가 알차고 깊어 경이로울 지경이다.



현실 여성들이 겪는 부조리한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판단을 달리 내리는 이중잣대를 소설에 녹여내며 소녀들의 롤모델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소설(「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도 있다. 발군의 실력으로 정식적린 절차와 시험을 통과해 자격을 획득했음에도 기혼 유자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격없음을 주장하는 키보드워리어 군단의 등장 및 여론몰이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심지어 성공의 역사를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집단 전체가 실패자 취급을 받는 것도 지금-여기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초엽은 소설을 통해 소녀에게 필요한 건 성공한 영웅이 아니라 도전한 여성이라는 것, 남성으로 가득한 롤모델 시장에 어떤 형태로든 여성 역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그와 동시에 한 인간으로 존중 받아 마땅한 어머니의 이름과 모성애에 대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도서관에서 분실된 어머니의 마인드를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존중하려 하지 않았던 인간-여성으로서의 어머니를 직면하고 이해하는 이야기(「관내분실」)는 자녀를 낳은 직후 자연스럽게 취득되는 어머니라는 이름에 대해, 그들에게 요구되는 모성애에 대해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김초엽은 자신이 지닌 탁월한 감각을 통해 먼 미래를 가까운 미래로 옮겨온 것도 모자라 우리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문제의 그 시대의 문제로 만들어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그 덕에 독자들은 온 마음을 다해 그 세계를, 그곳에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물들을, (감히) 같거나 비슷하거나 어쩌면 열등할 거라며 대상화를 서슴치 않았던 외계 지성체를, 그 시대의 방식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경계의 벽을 낮추려는 유무형의 존재들을 응원하고 사랑하고 수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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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똥 쪼물이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저학년 부문 우수상 수상작 신나는 책읽기 51
조규영 지음, 안경미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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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 시간이 끝나고 공책을 돌려 받으면 아이들은 한숨을 폭폭 내쉰다. 받아쓰기 공책에 하나, 일기장에 하나. 더 노력하라며 펑펑 우는 모양새의 '울보 도장'이 쾅! 찍힌 날이면 아이들의 숨이 턱! 하고 막힌다. 울보 도장을 받기 싫어 잘 하려 노력한 건데 선생님은 그 마음도 몰라주고 쾅쾅 울보 도장을 찍어댄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펼쳐내는 상상력에 큰 관심이 없다. 용이 불음 뿜고, 날개 달린 요정이 날아다니고, 로봇이 움직이는 유치한 그림 말고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타고 있는 확실한 그림을 독후화로 요구할 만큼 강압적이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울보 도장을 받기 싫어 "낙서 아니예요!"라고 대거리 하는 대신 "고, 고칠게요."라고 답하며 그림을 허겁지겁 지운다.


"엄마는 모범상 받으라고 난린데. 이러다가 울보상 받겠어. 선생님은 왜 자꾸 울보 도장을 찍어 주는 걸까?"


소심하고 겁 맞는 다빈이는 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정말 왜 그럴까? 왜 어른들은 아이들이 잘 하길 바라면서도 칭찬에 인색할까? 잘 하고 있는 아이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 윽박 지르고, 쉴 틈 없이 빡빡한 일정을 들이대며 숨통을 옥죄고, 사사건건 간섭하며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안달한다. 아이들이 바라는 건 높은 성적도, 완벽한 숙제도 아닌데 그 마음을 몰라주는 어른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런 아이들의 복잡한 마음은 하나의 염원이 되었다. 울보 도장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 엄마에게 혼나고 싶지 않은 마음, 선생님의 날카로운 눈빛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뭐든지 잘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 즐겁고 싶은 마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되어 쪼물이와 친구들의 몸에 깃든다. 아이들은 그림을 지우느라 생겨난 지우개 똥을 돌돌 말아 뭉치고 쪼물쪼물 팔과 다리를 만들어 붙인 다음 숨을 훅 불어 넣어 생명을 깃들게 한다. 그렇게 태어난 쪼물이, 짱구, 딸꾹이, 헐랭이는 사물 세계에서 아이들을 대변하는 아바타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용사가 된다.



긴장감 넘치는 의인 동화 속 어린이들

『지우개 똥 쪼물이』에 등장하는 인간 어린이들(유진, 준서, 다빈, 태우)은 사물 세계에 속한 지우개 똥 사총사(쪼물이, 짱구, 딸꾹이, 헐랭이)와 같은 존재다. 지우개 똥 사총사는 인간 어린이 사총사의 작은 아바타이며, 이들은 인간 어린이들의 염원인 '울보 동장 퇴치'를 위해 힘을 모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우개 똥 사총사에게 힘은 주어지지 않는다. 교실 생태계 내에서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고 있는 이가 담임 선생님이라면 사물 세계에서 담임 선생님과 동일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울보 도장이다. 울보 도장은 체격 면에서도 획득한 권력 면에서도 지우개 똥 사총사와 대비된다. 지우개 똥 사총사는 아무리 힘을 합쳐도 울보 도장을 넘어뜨리지 못한다. 온 몸으로 밀어도 꼼짝하지 않는 울보 도장의 절대적 권위는 "울보 도장 찍는다"는 말로 아이들의 자유를 억압하던 담임선생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이 틀림 없다.


울보 도장에게 부여된 권력이 절대적인 탓에 지우개 똥 사총사의 도전은 거듭 실패한다. 좌절한 사총사 앞에 새로운 적이 등장한다. 바퀴벌레 모습을 한 부하벌레다. 부하벌레는 수학 시험, 영어 시험, 받아쓰기 시험 등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한 과목의 글자를 지워 생겨난 지우개 가루가 뭉쳐저 만들어졌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은 물론 즐겁고 긍정적인 감정에서 파생된 사총사를 갉아 먹는 등 직접적 위협을 끼치는 존재다. 울보 도장이 찍힌 일기장이며 공책이 인간 아이들을 좌절시키듯 부하벌레의 등장에 사총사는 또 한 번 좌절한다. 수적 열세, 힘의 열세를 상쇄시켜 줄 '기적'같은 힘은 이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기댈 수 있는 것은 사총사의 협력에서 나온 아이디어 뿐이다. 그들은 클립이나 고무줄, 샤프심 같은 문구용품을 이용해 부하벌레와 울보 도장에 맞서 싸운다.


사총사의 권력 전복 시도는 딱 한 번 성공한다. 고무총 원리를 이용해 발사된 짱구가 울보 도장을 밀어 넘어뜨림으로서 어른에게 주어졌던 권력은 어린이인 사총사에게 옮겨오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전복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부하벌레들이 울보 도장을 일으켜 세움으로서 이들의 기쁨은 다시 좌절되고, 권력 전복도 무산된다. 거듭된 좌절과 패배 앞에 희망은 없어 보인다.



기적과도 같은 최상위 권력자의 등장

허나 여기서 '기적'이 발생한다. 사총사를 짓이기기 위해 앞으로 돌진하던 울보 도장이 부하벌레 한 마리를 짓이김으로써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동료를 잃은 부하벌레들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울보 도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움직임을 봉쇄한다. 바로 그 순간, 기적처럼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최상위 권력자인 깐깐 선생님이다. 점심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교실로 돌아온 깐깐 선생님의 눈에 바퀴벌레에 둘러 싸인 울보 도장의 모습이 목격된다. 선생님은 손에 잡히는 책으로 바퀴벌레를 잡아 죽이고 울보 도장과 함께 쓰레기통에 내다버린다. 이렇게 '울보 도장을 없애주면 좋겠다'는 유진의 소망은 교실 생태계 내 최상위 권력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깐깐 선생님의 손에 의해 해결된다.


허무한 결말이다. 최상위 권력자의 개입은 지금껏 인간 아이들을 대신해 전투를 치뤄 온 지우개 똥 사총사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충분하다. 어째서 작가는 어린이들의 손으로 문제가 해결 되지 못하게 막았을까? 2학년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이 나이대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리라 보았나? 만약 작가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이는 열 살 아이들의 문제해결 가능성을 낮게 본 게 틀림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어른이 개입해 교통정리를 하기도 전에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상황을 종료시킨다. 뒤늦게 참견한 어른에 의해 당시의 상황과 상처가 재개봉 되는 것일 뿐, 아이들은 나름의 문제해결 방식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지우개 똥 쪼물이』 속 아이들은 어땠나?


이 동화에서 아이들은 결코 권력을 쥐지 못한다. 선생님 몰래 그림을 그릴 때에도 들킬까 마음 졸이며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 받으며 웃는다. 상상력은 억압 당하고, 자유는 빼앗겼으며, 자존감은 거듭 깎인다. 선생님을 두려워하고, 울보 도장을 무서워하며, 부모를 원망한다. 어른들이 쉽게 요구하는 '잘 해야 한다'의 '잘'이란 '어른 평균 상식적인 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지 어린이의 특성을 고려한 수준은 아니다. 때문에 선생님은 2학년 아이들에게 '또박또박' 글씨를 쓸 것을 요구하고, 받아쓰기 성적과 일기의 수준으로 2학년 최고의 반이 될 것을 요구하며, 합동 독후화를 그리더라도 공상의 세계가 아닌 책의 주제에 알맞는 상식적인 그림을 그릴 것을 요구한다. 가정에서 요구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는 아이에게 울보 도장이 찍히지 않은 알림장을 요구하고, 모범상을 요구한다. 부모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바는 동일하다. 어른의 요구에 굴종하여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 '작은-인간'이 아닌 '작은-어른'으로서 '어른의 상식'에 맞는 언행으로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와 교사와 어린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우개 똥 쪼물이』가 '좋은 책'이라 여겨지는 이유는 지우개 똥 사총사가 보여준 연대와 호흡에 있다. 사총사는 지우개 똥을 뭉쳐 만든 아이들이지만 유진, 다빈, 준서, 태우를 각각 대변한다는 점에서 '어린이가 직접 행동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비록 시도는 좌절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최상위 권력자의 몫으로 돌아갔지만 사총사의 도전이 아이들의 웃음을 되찾는 데 일조했으므로 완전한 실패라 보기는 힘들다. 또, 지금 이 시대에 어린이들에게 요구되는 말도 안 되는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가 있다. 독자들은 이 어린이들이 쉬는 한숨 소리에 한 번,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에 또 한 번, 참기 위해 애쓰다 터져나오는 딸꾹질 소리에 다시 한 번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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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론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 / 평민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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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한자가 너무 많아서(병기 처리한 것도 아니고) 읽기도 힘들고, 당시 주교재라고 사라고 해서 샀으나 실제 수업은 유인물과 피피티 :> 이것보다 더 잘 정리된 책이 많으니 마일드한 수준의 소설론은 다른 책을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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