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돌
아티크 라히미 지음, 임희근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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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다 읽고 덮었는데도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마지막 부분에 너무 놀랐다.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하고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가, 나도 모르게 헉하고 숨이 멈추는 반전을 만났다. 당황스럽고 또 가슴 아프다.


책은 누군가가 연극무대를 설명해주는 것처럼 제 삼자의 시각으로 쓰여 있다. 그래서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무대 위엔 식물인간이 된 남자가 누워있고, 그 남자를 간호하는 아내가 등장한다. 중간 중간 단역처럼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제외하곤, 시종일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힘겨운 현실과 싸워나가고 있는 아내다.



그녀는 어린나이에 남편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결혼을 해서 시댁으로 들어왔다. 3년의 기다림 끝에 남편을 만나지만, 그녀에게 따뜻한 사랑한번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남편 옆에서 숨죽이며 10여년을 살아와야 했다. 어느 때고 톡하고 건드리면 터질 듯 한 화산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그녀는, 마침내 아무런 반응을 못하는 식물인간이 된 남편 앞에서 쌓여있던 화산을 터트린다. 아낌없이 그녀의 모든 것을, 가슴속에 들어있던 아픔을 드러내고 자유로워진다.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이들의 모든 말과 비밀을 빨아들이다가 어느 날인가 산산조각 난다는 인내의 돌, 그 돌이 조각나는 그 순간 이야기한 사람은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방된다는 마법과도 같은 돌을 떠올리며 그녀는 독백을 읽는다. 돌처럼 굳어있던 남편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상상한다. 과연 그녀는 고통과 괴로움에서 자유로워 졌을까.


그녀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며 자꾸만 생각난다. 긴 여운이 남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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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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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그것도 젊고 잘생긴 남자작가의 책이라니 읽기도 전에 흥미가 가득 생겼다.


내용이 알찬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속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읽었다. 단편에 이렇게 깊게 빠져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마치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책속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안타까워했다. 사건의 배경이나 인물들이 내가 자주 접할 수 없는 배경, 주위에서 만날 수 없는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이처럼 동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과 전달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야기의 전개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이에서도 전혀 막힘이 없이 흘러간다. 물위를 흐르듯 같이 흘러가다보면 과거에도 가있고 현재로도 넘어와 있다. 그러니 어찌 책에서 눈을 땔 수가 있었겠는가. 올해 읽은 책 중 최고의 단편소설집이다.


7편중에 처음에 나오는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과 “카르타헤나”는 단연 최고다.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책속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랄까. 어느 순간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면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현실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전엔 나도 베트남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듣고 밤새 소설을 쓰고 있다. 또한 친구를 죽이지 못하는 킬러의 모습으로 집에 숨어 지내고 있다. 책을 펼치면 다른 세상이 생생하게 다가오니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 읽게 된다. 독서의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일어난다. 하지만 여느 책에서 볼 수 있는 작가의 말이나 집필 후기가 없다. 너무 아쉽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에게 고하는 바가 무엇인지, 오직 나 스스로 찾아내고 느낄 수밖에 없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동기가 무엇인지, 지금 또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자꾸만 호기심과 관심이 간다. 아마도 앞으로 독서를 하면서“남 레”라는 작가의 책을 또 만난다면, 그땐 두말없이 그의 책을 반갑게 읽을 것 같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새로운 세상으로 빠져드는 즐거움이 요즘 나의 독서에서 얻는 또 다른 행복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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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독서왕 - 책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비결
김현태 지음, 송진욱 그림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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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위에 어린이들을 보면 책 읽는걸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버릇이 있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책 읽는 거 좋아해?”라고 물으면 “네?? 아뇨 별로 안 좋아해요”라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물어보는 장소가 놀이터라서 그런가. 그러니 도서관 앞에서 만난 아이들은 “네~! 좋아해요~!”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해진 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 내가 가진 책을 빌려준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책을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사는 엄마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어린이라면 누구든 책을 많이 읽고, 그 속에서 지혜를 키우고 꿈을 키우길 바라는 엄마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책이 든든한 친구였고, 책 읽는 즐거움을 누리며 자랐기에 내 아이도, 다른 아이들도 그런 즐거움을 알길 바라는 소망이 있다.


이 책은 나 같은 소망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정말 고마운 동지다. 이 책 한권이면 책에 흥미가 없던 아이들도 얼마든지 독서 왕으로 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꼼꼼하게 책을 읽는 방법과 독서의 즐거움, 책을 친구로 삼는 방법을 적어 놨다. 주인공 소년이 시간여행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내용이니, 책이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이젠 아파트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해줘야 겠다. 그럼 그 아이들이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혹시 다른 재미있는 책 또 없나요?” 라고 물어올 것 같아서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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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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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 만난 내 마음의 여행 1편을 떠올리며, 2편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에 망설임 없이 선택한 책이다.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책이다. 긴 계절의 끝에서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나에게 찾아와 준 이 책에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한줄한줄에 담긴 삶의 지혜를 배우고, 일상에 지쳐 무너지는 내 자신을 추스르는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는 것 같다.

슬픈 영화도 아니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길게 늘어진 장황한 문구도 아닌데, 짧은 한줄 글귀가 내 가슴을 무너뜨린다. 마음 깊은 곳 어디쯤에서 자라고 있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느낌, 그 손길에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다. 삶에 지쳐 힘들어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더 넓은 곳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토닥여주는 느낌이다.


떠나보내지 못해 안달하던 20대, 안정을 찾아왔지만 답답함을 견뎌야만 하는 30대의 일상에서 나는 어느덧 지쳐 있었나 보다. 일상의 무게를 어깨에서 내려놓고 잠시 떠나보라고 책은 권해주고 있다. 화려한 사진이 실린 어느 여행책자보다도 더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낯선 바닷가에서 맞는 아침이 그리워진다. 코끝으로 찡하게 바다냄새가 나는 것 같다. 엉덩이가 자꾸 들썩이는걸 보면, 나도 잠시 짐을 내려놓고 떠날 때가 되었나 보다.


가끔 TV에서 보았던 “내 마음의 여행”은 영상과 음악이 흐르고 한줄 한줄 시같은 글귀가 화면에 떠다니던 것이었는데, 그렇게 TV에서 볼 때와 책으로 읽을 때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오히려 책으로 접할 때 감동이 더 오는 것 같다. 그냥 지나쳐 버렸을 화면 속에 이런 삶의 지혜가, 위로가, 따뜻한 품이 숨어 있을 줄이야.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내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 뿐 아니라 나의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을 돌아본다. 그들이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다시 한 번 깨달으면서 잘해야 겠다고, 힘내서 다시 살아봐야 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자연으로 눈을 돌려본다. 언제나 웅장하게 서있는 저 산과 들과 바다와 강을 떠올려본다. 이제껏 자만으로 가득했던 좁은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책, 치유와 위로와 말로 다 표현 못할 큰 사랑이 있는 책.


따뜻한 차 한 잔과 이 책 한권으로 가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넉넉한 가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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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 권지예 소설
권지예 지음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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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로 접어들면서 그동안의 독서목록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외국소설이다. 구지 외국소설을 선호해서 읽은 것도 아니고 어떤 장르를 편식해서 읽은 것도 아닌데 한국문학은 접한 지가 참 오래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국문학 단편집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엔 덜컥 겁이 났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절망적, 또는 너무 허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나의 생각은 그저 작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단편소설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권지예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앞으로 그녀의 책이라면 두말없이 사서 읽을 것 같다.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책은, 7편 모두가 가슴에 오래 남는 이야기다. 죽음과 삶의 모호한 중간층에서 서성이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결국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때론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들이 죽음보다 더 두려워한 것은 무엇일까. 꿈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일까. 절망 속에서 그들이 찾는 것은 무엇일까.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어려운 질문들을 던져준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역시“퍼즐”이다. 퍼즐속 여인이 느꼈을 공포가 스르르 내 몸에서도 느껴지는 듯 했다. 그녀의 삶에서 채워지지 않은 사라진 퍼즐 한 조각 같은 공허한 공간은 과연 무엇으로 채워져야 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 마치 그녀가 내 자신인 것 처럼 안타깝고 가슴이 시리다.

단편소설 속에 또 다른 단편소설이 들어있는 “여주인공 오영실”도 이야기속에 푹 빠져들어 읽었다. 단편인데도 소설 속으로 당기는 흡입력이 정말 대단하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픔을 느끼면 나도 같이 아프고, 그들이 절망하면 나도 함께 절망한다. 마치 그녀(그)와 내가 동일 인물인 것처럼 같은 감정을 느끼며 책을 읽는다. 참 묘하면서 행복한 느낌이다.


아마도 책속에 너무 몰입했던 탓일까. 가을을 알리는 찬바람이 가슴속 까지 시리게 파고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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