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안녕 - 도시의 힘없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위로!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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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단어에 대한 기억이 하나쯤은 있을 테다. 서울에 살았든 살지 않았든, 가보았든 그러지 않았든. 누구나 ‘서울’에 대해서, 감정 섞인 기억들이 마음에 남아있다.


 그것은 욕망이란 이름의 기억일 수 있다. 아름답고, 자부심이 넘치며, 문화적이고, 럭셔리한 공간. 어쩌면 TV 광고에 나오는 환상적이고 자연적인 하나의 성(城)과 다를 바 없는 아파트의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언젠간 가야할 공간이거나, 앞으로 영영 갈 수 없는 공간이거나, 이미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욕망의 끝에 놓인 공간이라는 점에선 똑같다.


 또한 서울은 ‘가난한 과거’란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점을 찍어야 하는 단어는 ‘과거’다. 세상이 팍팍할수록,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는 폭풍 리트윗 당한 것처럼 퍼져나가고, 그들은 언제나 ‘가난했던 과거’였던 ‘서울 살이’를 이야기하곤 한다. 미국에 아메리카드림이 있다면, 한국에는 서울드림이 있다. 서울드림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조미료는 ‘가난했던 과거 서울 살이’다. 참고, 참고, ‘가난한 시절’을 참으라. 그리하면 진정한 ‘서울 사람’이 될 수 있으리니. ‘성과 같은 이름을 지니며, 성처럼 높고, 성처럼 화려한 곳에서 사는 사람’ 말이다.


 이제 서울은 가난하지 않고, 가난한 것은 ‘과거’에 불과해졌다. 혹시 당신이 가난하다면, 당신은 ‘서울 사람’이 아니다. 언젠가 ‘성공’해서 서울 사람으로 입성하던가, 아니면 ‘도태’해서 서울에서 쫓겨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서울은 ‘가난’을 품지 않고 ‘과거’로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것은 구질구질한 것이고, 구질구질한 것이 서울 안에 있는 걸, ‘서울 사람’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뜨겁게 안녕』에서 김현진이 기억하는 서울은, 위의 기억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서문에서 “나는 기억하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썼다. 그녀가 기억하려고 하는 것, 그건, 21세기 서울이 지우려고 하는 기억이다. 선진화의 첨병(尖兵)인 서울에 어울리지 않는 구질구질하고, 품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 


 언젠가부터 서울은 그 구차한 기억들을 지우려고 애를 썼다. 뉴타운과 재개발이란 이름하에, 기억을 ‘정화’(淨化)하는 일은 빈번히 일어났다. 자신들을 지우려는 서울의 ‘단호하며, 진보적이고, 선진적인’ 태도 속에서 버림받은 기억들은 끊임없이 어딘가로 쫓겨났다. 김현진 또한 버림받은 기억들 중 하나였으니, 그녀도 언제나 밀려나고 또 밀려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녀는, 밀려나고, 쫓겨나고, 버림받은 기억들을 낱낱이 담을 수 있었다.


 가난은 아름답지 않다. 더더욱 그것이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 놓인 가난이라면, ‘절대로’ 아름다울 수 없다. 차라리 그건, 구질구질하고, 구차하며, 강퍅하고, 황당하고, 억울하며, 무서우며, 한스럽다. 김현진도 이를 모르진 않는다. “그때 내가 그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더 걸었더라도, 그녀의 인생에서 달라지는 거라곤 없었겠지. 이곳은, 이웃을 생각하기엔 참 고독하고도 난해한 도시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기묘하게도, 신비하게도. 그녀가 책 속에 풀어낸 기억들은 ‘구질구질’이라는 한마디로 매도할 수 없다. 그녀는, 서울에게 버림받은 기억들 중 하나인 그녀는, 가난한 기억들 하나하나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는 그 기억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직업이 뭐건 나이가 몇 살이건 어떻게 생겼건 온몸에서 풀풀 풍기는 ‘살겠다, 살고야 말겠다’하는 에너지야 말로 아름다움의 정수였던 거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녀의 글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위로가 된다. ‘찬란한 욕망’도 아니고, ‘지나간 극복기’도 아닌, 희망이 메마른 곳에서도 끝끝내 버텨내는 ‘의지’와 같은 위로를. 


 오늘도 서울의 어느 뒷골목에선, 가난한 기억들은 밀려나고, 쫓겨나며, 깔끔하게 지워지고 있다. 김현진의 『뜨겁게 안녕』은 그들을 위한 진혼곡(鎭魂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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