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 강의
류동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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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수한 미래의 꿈나무 중 하나였던 나는, 드디어 청춘의 장(場)에 들어가게 되었다. 푸를 청(靑)! 그리고 봄 춘(春)! 청춘(靑春)이라는 말에는 이처럼 뭔가 샤방샤방하고 상큼할 것 같은 이미지가 담겨있다. 그리하여, 나는 기꺼이 청춘의 장으로 들어서는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과연, 샤방샤방과 상큼함을 넘어, 블링블링한 모습이 풍경으로 펼쳐졌으니! 이 시대의 청춘들은 각자 저마다의 칵테일을 한 잔 식 손에 들고는, 끝내주는 ‘스펙’ 상품의 옷을 걸치고 있었더랬다. 오, 역시 청춘은 ‘파티’란 말인가?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블링블링한 모습의 청춘들은 열심히, 죽도록, 자신이 ‘가장 끝내주는 청춘’임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건, 간택되기를 기다리는 무엇 같았다. 또한 그건, 팔리기를 기원하는 무엇 같았다. 어쩌면 그건, 떨이가 되는 걸 두려워하는 무엇 같기도 했다. 결국 여긴, 파티장이 아니라, 경연장(競演場)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긍정적이고, 도전적이며, 가끔 아파하기도 하는(그러나 언젠간 다 나을 것이 분명했다!) 이 시대의 모범 청춘임에 분명했다. 왜냐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낼 정도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청춘이 아닌 이들’은, 항상 자신들이 청춘을 그렇게 (긍정적이고, 도전적이며, 아파하면서!) 보냈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블링블링함에 정신이 아득해지다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내 꼴을 보니,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내 손은 칵테일이 아니라 냉수 한 잔을 들고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스펙’제가 아닌 후줄그레뎅뎅했다. 과연, 나는 블링블링은커녕, 어둠컴컴하지도 못한, 무색무취의 유령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그 오묘한 파티장, 아니 경연장에서는 ‘너 같은 것은 청춘도 아니야!’라는 무언의 후려침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나는, 예선 탈락이었다. 뭔가, 죄송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작 그것밖에 못해서 예선탈락이냐!’ 라는 질책의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예선 탈락한 청춘이라 죄송합니다, 라고 어딘가에 사죄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블링블링 청춘들은 자신들의 블링블링함을 쉬크함을, 간지를, 똘똘함을, 하여간 뭐든지 간에 비싸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힘껏 뽐내고 있었다. 나는 멍청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털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찾아와서 냅다 말을 건넸다.


 “자네 뻘쭘한가?”


 이상한 코스프레를 한 듯한(마르크스 코스프레라 했다. 근데, 마르크스가 누구야?) 아저씨는 내게 주절주절 말을 꺼냈다. 아저씨는 내 상태가 ‘소외’라고 말했다. (요즘에는 그걸 ‘루저’라고 부르죠.) 그리고 저 블링블링한 청춘들도 실은, ‘소외’된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루저가 아닌데요?) 아무리 ‘혼자서’ 블링블링 한다고 한들, 소외되는 것은 똑같다고 했다. 내가 냉수 한잔이 아니라 칵테일을 들고, 후줄그레댕댕 옷이 아니라 삐까뿌르리리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무색무취의 유령이 되거나, 블링블링한 상품이 되는 것 말고, 청춘의 장(場)에서 재밌게 사는 법을 쑥덕쑥덕 일러주었다. 그건, 이곳을 경연장(競演場)에서 파티장으로 바꿔버리는 마법 같은 이야기였다. 


 괴상쩍은 코스프레 아저씨의 말을 그대로 믿기엔, 수상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뻘쭘하게 있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과연, 저기 또 한 명의 냉수 한 잔을 들고 있는 이가 보였다. 나는 다가가서 말을 건네기로 했다. 파티는, 말을 건네는 것부터 시작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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