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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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텍스트를 읽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어. 감각과 이미지, 감정과 사유가 허술하게 서로서로의 손에 깍지를 낀 채 흔들리는 그 세계를, 결코 신뢰하고 싶지 않았어. - 본문 117쪽

 

 

나를 나보다 잘 설명하는 말을 만나게 되면 멍해진다. 저 문장을 읽고 또 읽고 또 읽다가, 결국 책을 덮고 모니터를 켠 지금처럼.

 

 

아직 117쪽에 있다. 이 책은 자꾸 이렇게 된다. 머물게 한다. 곱씹고 곱씹으며 머뭇거리게 한다.

 

 

단단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어서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걸까, 근 몇 개월에 이르도록 소설을 읽지 못하는 이유가.

 

 

감정보다는 사유를 오히려 택하고 있던 이유를, 줄곧 '요즘은 왜 이런 책들에 자꾸 눈이 가나 몰라 '라고 말해오던 이유를, 여기에서 발견한다. 감각이, 감정이 자극받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오랜 친구가 '오히려 좀 발산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했던 신경질적이고 불친절하고 예민한 기질들을 잠재우고 싶은데,

 

여행길에서 즉흥적으로 골라 잡은 이 책은 정반대여서, 아주 오랫동안 조금조금씩 읽고 쉬고 읽고 쉰다.

 

활자들이 말을 읽은 그녀의 목소리가, 빛을 잃어가는 그의 방안의 푸른 기운이 되서 오래 오래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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