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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MacGregor Paxton_The Yellow Jacket
"따라서 소설이나 다른 작품의 내용 속으로 들어간 사회적 유의미성은,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격리된 채,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회적 범주에 놓인 채, 사회 현실과의 새로운 관계라는 보상을 받는다. 소설 내용의 요소라는 반영되고 격리된 실재 때문에, 소설이 갖는 이러한 사회적 현실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소설의 현실성, 소설과 현실의 접촉, 소설이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것, 이는 소설이 자신의 내용에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만 귀착되지는 않는다. 아니, 소설은 소설로서 사회생활의 일부가 되고 그 힘을 발휘하며, 때로는 내용에 반영된 사회 현상 못지않게, 그 자체로 사회 현실에서 매우 큰 지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문학에 그저 반영되었을 뿐인 또 하나의 현실로 인해 문학의 내재적 현실에서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두려움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처럼 예술작품에 다른 현실이 실재한다는 점을 부정하거나 유럽의 형식주의처럼 현실이 예술작품에서 행하는 구성적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이 두가지는 예술 외적인(상대적으로 외적인) 일반 방법론적 관심과 사회학적 관심의 시각에서뿐 아니라 예술 자체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매우 유해하다. 왜냐하면 이 두 유파는 예술의 구조적 요소에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 가운데 하나를 과소평가함으로써 예술의 구조 전체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기한 모든 문제에 대해 올바른 일반 철학적 방향과 방법론적 정확성을 제시하는 것은 오직 마르크스주의뿐이다. 오직 마르크스주의만이 문학의 특수한 현실과 문학의 내용에 반영된 이데올로기적 시야, 즉 다른 이데올로기들을 모순 없이 완벽하게 조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오직 마르크스주의만이 모든 이데올로기적 창조를 완전히 관통하는 사회경제적 합법칙성을 토대로 이 두 가지를 사회생활의 통일체 속에 일치시킬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토대 위에서 모든 이데올로기적 현상ㅡ순수한 예술적 디테일과 뉘앙스를 지닌 시적 구조를 포함해ㅡ의 전면적인 사회학적 특성을 전제한다면,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처럼 작품을 물신화하여 그것을 의미 없는 사물로 탈바꿈시킨다든지, 예술적 지각을 이 사물에 대한 노골적인 쾌락적 '감지'로 탈바꿈시킬 위험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위험, 즉 문학을 단지 다른 이데올로기의 시녀로 탈바꿈시키고 문학 작품의 예술적 특수성을 제거할 위험도 사라질 것이다. "
- 미하일 바흐찐, '문예학의 형식적 방법ㅡ사회학적 시학을 위한 비판적 서설' (1928)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