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일종의 입문 

  3. 특성없는 남자의 특성 있는 아버지 
  4. 현실성감각이 있다면 가능성감각 또한 있어야 한다 
 

 

 

  

특성있는 아버지 

아버지는 성을 사들인 아들이 “가정적 생활과 자기만의 질서에 대한 필요”를 알게 된 것을 환영하는 한편, 어쨌든 ‘성’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건물을 산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주제넘은 짓”이라 생각하여 불안해했다.

귀족가문의 가정교사로 출발하여 변호사와 교수, 상원의원까지 오르는 자수성가에 성공한 그의 아버지에게서는 “더 잘되고자 노력하는 시민계급의 정신 이외의 무엇인가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주장하였듯이 “본질적인 변화 없이” 가정교사로부터 상원 의원으로 출세한 것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의 '성'은 "법으로 다루어지기에는 미흡하지만 그런 만큼 더 조심스럽게 지킬 필요가 있는 한계의 침범처럼 보였다."    

 

 

  

  

 

현실태와 가능태  

 

   

특성 있는 아버지의 원칙은 현실성의 감각이 요구하는 바와 같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올 생각이 있다면,  문에는 단단한 '틀', 즉 엄연한 현실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자는,

 이렇게 현실성감각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명명백백하다면, 가능성 감각이라 부를 수 있는 그 무언가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가능성에 대한 감각은, 현실태와 비슷하게 존재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에 차등을 두지 않는 능력이다. 즉, 안개와 상상, 몽상과 접속법의 그물 속에서 사는 것이다. 어른들은 이런 경향이 아이들에게 보일 가능성을 애써 추방하며, 이런 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기인, 몽상가, 약골, 꼴값, 또는 까다로운 친구'라고 흉본다.  

 

가능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하느님의 의도이기도 하고, 그 안에 정말 신과 같은 무엇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지구는 전혀 오래 된 것이 아니며, 겉보기에 한 번도 제대로 축복 받은 상황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을 일깨우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현실성이다.  

현실태가 머리 속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올 때까지 가능성은 반복된다.  

그는 현실성의 감각과 가능성에 대한 감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가능태는 곧 아직 태어나지 않은 현실이며, 현실은 가능한 현실에 대한 하나의 의미이다. 

 

이런 그는 보통 사람들이 가능성에 대해 상정하는 것보다 훨씬 느리게 가능성의 목표에 이르고,  

 나무가 아닌 숲을 원하며, 아주 한가롭게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비실용적인' 인간이다.    

 이는 그의 약점인 동시에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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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비교적 간단한 요약이 가능한데, 4장을 끝맺는 마지막 문장은, 원문 자체가 모호한 것인지, 아니면 번역 퇴고가 미흡한 탓인지, 이해를 위해서는 문장 분석이 더 필요하다. (원문을 찾아보고 싶은 문장이다)   

   



 “그리고 특성의 소유가 현실에 대한 일종의 기쁨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자기 자신에게 어떤 현실성감각도 더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한테 불쑥 닥칠 수 있는바 자신이 어느 날 특성 없는 남자로 생각되는 것에 대한 전망을 그것은 허락한다.”


 이 문장의 논리를 내 나름대로 분리해서 이해하면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해볼 수 있다.

첫번째 해석,   

 

1. 특성의 소유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기쁨을 전제로 한다.

2. 자기 자신에게 어떤 현실성감각도 더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  

= 위에서 얘기한 ‘현실성의 감각과 가능성의 감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 ? : 현실성 감각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더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니까. 이 부분은 '특성 없는 남자'에 대한 정의와 직결되기에 확실히 확인하고 넘어갈 부분이다.

 3.  2의 사람, 즉 현실성의 감각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 -> ‘현실에 대한 일종의 기쁨’이 없다?  

4. 따라서 “내가 그동안 특성 없는 남자였구나” 하는 전망(자각?)이 불현듯 찾아온다.

 

이 해석에 맞게 좀더 쉽게 문장을 고쳐보면, 대충 다음과 같이 될 것 같다. 

“특성의 소유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기쁨을 전제로 하는데, 어떤 현실성감각도 자신에게 더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기쁨 또한 느끼지 못하기에, 어느 날 문득 그에게는 특성 없는 남자로서의 자각이 불쑥 찾아올 수 있다.” 
 

 

두번째 해석, 

 

1. 특성의 소유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기쁨을 전제로 한다.  

 

2. 자기자신에게 현실성에 대한 감각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 

 

3, 그런 사람에게도 현실에 대한 일종의 기쁨이 '불쑥' 찾아올 수 있다.  

 

4. 그때, 그는 "아 지금까지(현실에 대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에 현실성을 더 감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던 시기) 나는 특성 없는 남자로 살아왔구나"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 "아, 나는 지금까지 특성 없는 남자로 생각되었겠구나"하는 전망이 허용된다.  

 

=>  "특성의 소유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기쁨을 전제로 하는데, 어떤 현실성감각도 자신에게 더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현실에 대한 일종의 기쁨이 불쑥 닥칠 수 있는바, [그 기쁨을 느끼게 된] 어느날, 그에게는 자신이 특성없는 남자였다는 자각이 허용된다."    

 

  
나로서는 첫 번째 해석 쪽이 더 논리에 맞다고 생각되는데,    

번역문의 표현이나 문장구석 선택[왜 굳이 무리해서 저런 어색한 문장을?]을 감안하면 두 번째 해석 쪽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이는 원문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두 가지 가능태로서의 이해에 불과하니, 나는 원문, 즉 작자의 본래 의도를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몽상과 접속법의 한가로운 그물을 드리우고 강태공이나 하고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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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빠른비숍 2010-08-0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이 작품의 영문판이 소장되어 있다는 걸 방금 확인했다. 아무래도 조만간 대출해서, 원문은 아니지만 참고해 가며 읽어야겠다.

발빠른비숍 2010-08-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판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And since the possession of qualities assumes a certain pleasure in their reality, we can see how a man who cannot summon up a sense of reality even in relation to himself may suddenly, one day, come to see himself as a man without qualities." -> "그리고 특성의 소유는 그 현실성에 대한 일종의 기쁨을 상정하는 바, 우리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현실에조차도 현실성 감각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한 남자가, 어떻게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특성없는 사람임을 깨닫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 문장은 간단하지만, 중의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번역된 영어판만 봐서는, 나의 두 가지 해석 중 어느 쪽이 맞는지 여전히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역시 이 문장의 해석 키워드가 "현실에 대한 기쁨", "특성없는 남자의 자각" 사이의 인과관계(왜 'sinse'인가?)에 있음은 영어판의 [의도적인?] 중의적 번역으로 인해 더욱 분명해졌다. 이 부분은 책을 계속 읽어나가면서 어느 정도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독일어 원문에도 애매하게 처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박준하 2011-07-1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너무 늦은 댓글입니다만...

Und da der Besitz von Eigenschaften eine gewisse Freude an ihrer Wirklichkeit voraussetzt, erlaubt das den Ausblick darauf, wie es jemand, der auch sich selbst gegenüber keinen Wirklichkeitssinn aufbringt, unversehens widerfahren kann, daß er sich eines Tages als ein Mann ohne Eigenschaften vorkommt.

출처: http://nicoosi.blogspot.com/2010/11/wenn-es-wirklichkeitssinn-gibt-mu-es.html
좋은 하루되셔요♧

박종대 2012-02-23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독일어 번역가입니다. 검색중에 우연히 들렀다가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 몇 자 남깁니다.

특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 현실에 대한 일정한 기쁨을 전제로 하기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현실성감각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어떻게 자신을 특성 없는 남자로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한 전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