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일종의 입문

   1장. 어떤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가
  2장. 특성없는 남자의 집과 건물  



 

도시, 행인, 응시자  

 

1918년 8월 빈. 
 

제국의 수도이자 황궁이 자리잡은 중간적인 도시의 평년기온의 여름.

도시의 속도는 자동차와 보행자의 자취가 그리는 구름 같은 실타래의 박동으로,

도시의 소음은 수백 가지 소리들이 서로 얽힌 강철의 소음 속 파편들로 측정된다.

“도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는 법이다.”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은 유목민이 아닌 도시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다.

여느 대도시처럼 이 도시는 ‘불규칙성, 변화, 앞으로 미끄러지기, 보조의 어긋남, 사물과 사건의 충돌, 그 사이로 고요의 밑바닥 없는 지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통로와 통로 없음’으로, ‘커다란 율동적 박동과 모든 율동의 상호 적대적인 불화와 전이’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적 전승으로 이루어진 그릇 속에서 들끓는 증류관’과 비슷한 도시의 도로를 두 사람이 걸어간다.

 

자신이 누구이며 황궁이 있는 수도에 그들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특권층의 이 부부는 한 남자가 트럭에 치이는 사고 장면을 목격한다. 두 사람 중 부인은 명치끝에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끼지만, 곧 이 느낌은, 이 끔찍한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말로 정리가 되어 더 이상 직접적으로 그녀와 관계없는 기술적인 문제가 되자, 곧 사라진다. “사회적 장치들은 경탄할 만한 것이다.”  
 


이 불행한 사건이 벌어진 도로는 17세기에서 18세기, 그리고 19세기의 특징이 ‘서로 겹쳐 찍힌 사람처럼 약간 불안하게’ 섞여 있는 작은 성이 근교로 이어진다. 이 성은 특성 없는 남자의 집이다. 특성 없는 남자는 창문 뒤에 서서 집 앞 도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시계를 들고 자동차, 전차, 행인들의 얼굴을 세고 있다. 그는 속도, 각도, 흐름에 밀려 움직이는 군중들을 눈으로 측량해보고자 했다. 영혼의 흔들림, 한 인간이 도로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완수해야만 하는 모든 노력들을 측정할 수 있을까?  
 


 

 
                                                                                      Josef  Koudelka, Prague, 1968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한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작업을 이미 완수하고 있는가?  

 

  

 특성 없는 남자도 지금 이 순간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하루 종일 여유 있게 길을 걸어가는 어떤 시민의 근육활동은 하루에 한번 엄청난 무게를 들어올리는 육상선수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크다.”  

"따라서, 일상적인 작은 활동의 운동량도 사회적 합계를 위한 개인적인 노력의 측면에서 보자면, 영웅적 행위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세상에 내보내고 있는 셈이다."

“영웅적 업적이라는 것도 따져보면 마치 엄청난 환상을 가지고 산 위에 올려진 한 톨의 낟알과 같은 것이다.”

특성없는 남자, 울리히는 자문한다.  

영웅주의를 태동한 것은 어쩌면 결국 그 소시민이 아닐까?  

 

하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이 앞으로 갔고 무엇이 뒤로 갔는지 구별하지 못한 채 달리는 시간 위에 있는 개인은  

그저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라고 중얼거리며 걸어갈 수 있을 뿐이다.  

 

도시의 속도와 소음에 섞여들어  그 파동과 파편을 이루는 하나의 분자로서 소요되지 않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응시하는 자는 이윽고 포기하는 법을 배운 사람처럼 몸을 돌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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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기압, 동온선과 등서선, 공기의 온도, 천문학의 달력, 수증기의 표면 장력 등의 물리적, 지리적, 지정학적 정위에서부터 시작하여 한 도시의 속도와 소음을 궤선과 열선으로 개괄하고, 거리를 걷고 있는 행인들로 점차 줌인해가는 서두의 묘사는, 신의 시선에서 출발하여 특성없는 남자라는 한 소시민의 시선으로 서술 시점을 급강하시키며, 그 낙차에서 오는 현기증과 쾌락을 조율한다.


서사란 본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한 긴 여담(탈선)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면,  '어떤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가'라는 1장의 소제목은 그 자체로 이 소설의 서사가 어떤 성격의 서사인지를 단적으로 요약한다 하겠다.

1장에서는 한 행인이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러나 도시의 사회적 장치와 언어는 경탄스러운 솜씨를 발휘해 이내 이 사건을 기술적인 오차로 인한 잠시 멈춤으로, 각 개인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아무 일도 아닌 일로 처리한다. 행인들은 잠시 느꼈던 마음 속 불편함을 뒤로 한 채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도시의 거리를 우리의 주인공인 '특성 없는 남자'는 창문 뒤에서 응시하며, 시계를 가지고 측정한다. 자신의 초시대, 초시간의 성에서(그의 성은 17세기에 지어졌으나, 정원과 1층은 18세기에 개조되었으며, 건물의 겉면의 19세기에 개축되었다). 그의 응시와 측정 속에서, 각 개인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투는 영웅적 행위보다도 많은 에너지를 세상에 내보낸다. 현대 도시에는 영웅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회적 합계를 위한 개인들의 행위들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도시에는 서사시가 아닌 소설이 가능하다. 

        
미래주의자들이 20세기 초 대도시의 에너지와 욕망을 날카로운 선과 궤적, 그리고 파편화된 단어들의 조합으로 그려냈다면, 17세기부터 이어져온 소설의 서사는 이 괴물같이 들끓는 증류관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17,18,19세기의 성에 살고 있는 특성 없는 남자는 과연 어떻게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측정해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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