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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
전대호 지음 / 해나무 / 2025년 12월
평점 :



이 글은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 저자는 번역가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지금까지 그가 번역한 텍스트를 읽어왔을 뿐, 그의 생각이 온전히 담긴 글은 처음이다. 제목을 보면 과학과 인간이라는 단어가 교차한다. 이처럼 그는 과학과 철학이라는 경계를 허무는 융합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저자의 배경부터 이것의 출발점이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독일 퀼른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다. 그리고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하기까지 한다. 그는 과학적 엄밀함과 철학의 깊이, 시의 은유를 모두 갖춘 인물이러고 말할 수 있다. 그의 글에서도 이러한 뜻밖의 만남을 발견할 수 있다. "젊어지려면 아주 긴 세월이 필요하다"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를 과학철학자 장하석의 개념과 연결시킨다. "예측 불가능한 유연성과 탐구 자체를 즐기는 젊음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적 성숙"이라는 아름다운 과학자의 말이다. 젊음을 향한 성숙을 다루기 위해 에술부터 과학까지 자유자재로 종횡무진한다. 이것은 시류에 맞게 급조된 컨셉이 아니다. 모든 주제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자연스럽게 직조한다. 일생 동안 얼마나 이러한 관점을 사유해왔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2. 과학은 우리와 같이 실수하고 고뇌하며 살아왔던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결정체이다. 우리는 주로 차가운 공식의 집합으로 과학을 접하게 된다. 그 이면에는 뜨거운 삶이 역동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는 뉴턴의 신화를 해체하고자 한다. 뉴턴이 1666년 고향에 내려가 한 해에 만유인력, 미적분, 광학 이론을 모두 완성했다는 유명한 일화. 진실이기에는 너무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고향에 내려가기 전 그의 개념은 대략적으로 완성되어 있었다고 하며, 그 이후에도 계속 발전을 거듭했다고 한다. 페스트를 피해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고향이기 때문에 몹시 막막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뉴턴의 업적은 오랜 기간에 걸친 미완의 과정이었다. 2020년 펜데믹을 겪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지 않았나. 기적도 없고, 영웅도 없었지만 우리 모두의 역동적인 삶이 강인함을 만들어냈다.
3. 수많은 과학, 철학 서적을 번역한 내공 덕분인지 글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아름답다.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을 매우 명료하게 풀어내는 솜씨가 엿보인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전문 용어보다는 일상적인 언어를 우선시하는 모습에 그동안 번역에도 얼마나 세심한 노력이 들어갔는지 전해진다. "정답이라는 허튼 관념"이나 "예측 불가능한 유연성을 향한 성숙"이란 표현처럼 철학적 개념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다들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한 맛이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중세 수학자 피보나치를 빌 게이츠에 비유하는 등 신선한 관점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자신도 나이가 들어 수식이 부담스러워졌다는 고백은 친근감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솔직하고 인간적인 서사가 풍부하게 담겨져 있어서 다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4. 그는 하나씩 화두를 던지고 다양한 시대와 분야의 이야기를 엮어낸다. 앎이란 무엇인가. 제임스웹 망원경이 보내온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우주가 아니다. 우리의 정교한 데이터 가공과 해석이 들어간 결과물이다. 여기서 그의 시선은 칸트의 인식론으로 옮겨간다. 이성은 오로지 이성 자신이 자신의 설계에 따라 산출한 것만 통찰한다는 칸트의 명제. 여기서 우리는 제임스웹 망원경의 철학적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과학적 앎이란 인간의 주체적 활동과 자연의 응답이 결합된 결과물인 것이다. 이처럼 책을 덮고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철학적인 구성이 단숨에 나를 사로잡는다. 아마도 과학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있는 분들도 흥미롭게 몰입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저자의 경험이 노련하게 녹아있는 독보적인 에세이이다. 그의 탁월한 비유와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한번도 만나지 못한 세계에 도달한다. 그곳은 과학과 철학이 맛있게 버무러진 대담한 아이디어의 허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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