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1 - 현경 순례기 1
정현경 지음 / 열림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한국 교회의 지극히 가부장적인 행태가 싫다. 난 한국 교회의 유교적 잔재가 싫다. 난 한국 교회가 사회적 배출구가 차단된 여자들이 모여 대리로 사회적 성취감을 찾고자 격전의 장으로 변질 된 것이 싫다. 실제 자매 수가 훨씬 더 압도적인 한국 교회에서 남자 장로 들이 허세 부리고 앉아았는 동안 여자 집사님들 예배도 참석 못하고 쭈그리고 앉아 밥하는 꼴 보기도 싫다.

'순종'이라는 미명 하에 내가 가진 천의 얼굴 중에 단 한가지 얼굴만 보이도록하는 그 답답함이 싫다. 왜 모두 나긋나긋 웃으며 찬송과 율동을 잘하는 지극히 여성적인 특질 들에만 믿음 좋은 여자라는 딱지를 붙인단 말인가. 마리아 만이 내 얼굴은 아니란 말이다. 차라리 이교도들이 보았던 그 얼굴, 관세음 보살, 인도의 칼리 또한 아테네 또한 다 내 얼굴들이다.

난 하나님이 인간처럼 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인간은 신이 인간의 언어로 말씀해주기 전엔 결코 신을 이해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남성의 몸으로 성육신 하신 건 단지 시대적인 편의였다고 생각할 뿐이다. 난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여성적인 특질들 때문에 외려 그를 사랑한다. 그가 분노하고, 울 줄 아는 인간의 몸을 입었었고, 그 몸을 찢음으로써 인간을 구원했기에 그를 사랑한다.

신앙의 궁극적인 경지가 정적인 해탈이라고? 난 어차피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에 갇혀진 인간일 뿐이다. 난 고매한(? - 훗.....) 정신을 통해서만 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다. 난 내가 가진 모든 것, 내 몸, 내 언어, 내 죄,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춤을 추며 신의 얼굴을 만진다.

춤이 내가 되고 내가 춤이 되는 순간, 난 베일이 벗겨져 모든 것을 분명히 보듯이 신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고, 내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는 내 하나님 어머니를 보리라, 믿는다.

난 정현경이 추는 춤을 좋아한다. 유혹의 원죄를 걺어지고 유혹한 불결하고 피흘리고 새끼를 낳는 고통으로 찢어지는 여자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중의 살, 뼈중의 뼈...로 창조 받은 여자 속의 신의 이미지를 사랑한다.

남자는 여자를 만들기 위한 질료에 지나지 않았다고 아담과 하와를 해석하는 발칙한 해석이 좋다. 육체를 긍정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긍정하지 않는 자가 어찌 구원에 이를 수 있으랴. 그네들은 모른다. 여자들이 자신들의 몸을 '긍정'한다고 할 때, 담긴 그 의미를. 욕망이 죄라면, 한번이라도 욕망의 주체가 되어봐야 할것 아닌가...나 그때 머리 풀고 고개를 땅에 박고 난 하나님 어머니 앞에 차마 고개들 자격도 없는 여인이라 고백하리라.

예수님은 2000년 동안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고? 예수꼐서 십자가에 달려 인간을 구원한다,는 표현에 쓰이는 히브리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구속하는 시제라고 들었다.

그는 지금, 내 앞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항상. 난 차라리 그 나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핥는 개가 될지언정, 그의 죽음을 관조하고, 멀찍이서 음미하는, '몸뚱아리'가 없는 철학 따윈 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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