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1 - 엔더 위긴 시리즈 3 엔더 위긴 시리즈 3
올슨 스콧 카드 지음, 장미란 옮김 / 시공사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과연 차이를 차별화 할 수 밖에 없는게 인간이 가진 인지 구조의 한계일까. 순수하게 너는 나와 다르다는 중립적 가치를 수용할 수는 없을까. 너와 나는 달라서 네가 혹은 내가 더 우월하다....로 밖에 세상을 분류하는게 인간의 생존을 위한 유전자 전략인가... <엔더의 게임>이 가장 재미는 있었지만, 생각해 볼 메세지를 가장 많이 던져 준 것은 이책 이었다.

물론 이 책의 한계는 저자의 백인 중심적, 기독교 중심적 시각의 한계이고, 동양 사상을 어설프게 백인 중심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어설프게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인간이 가져다주는 기술에 흥분하며, 동요하면 멱따기 5분전 돼지마냥 뛰어다니는 피기들은 결국 백인 문명을 받아들여 변화할수 밖에 없었던 유색인종들이 다름아니지 않는가.

가장 서글픈거....피기들은 인간들의 표현과 정의로 자신들을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다.....바렐스가 아니라 라멘으로 정의되기 위해 기를 쓰고, 데스콜라다를 기독교의 성령 개념으로 끼워맞추고......자신들의 존재 및 존재 양식을 타 종족이 정의한 언어로 할 수 밖에 없는 그 참을 수 없이 굴욕적인 자기 발견. 굴욕적인 자기 정체성.

무엇이 다른가....나...제3세계 여성으로 태어난 나를 구성하는 부분 중 정말 한국적 내지는 동양적인 부분은 밑바닥에 흐르는 기본적인 정서 외에 또 무엇이 있는가. 서구의 동화를 읽고 자라고, 서구의 학문을 공부하고 자라고, 서구의 종교로 진작에 개종한 집안에서 자라서 말이다. 서구식 학문체제에, 서구식 의복에, 서구식 국가 체제, 서구식 민주주의....등등등....순수하게 한국적인게 과연 얼마나 있는가.

그런데도 말이다.....서구 여성의 인권운동과 내 의식 수준을 동일시 하던 내가 막상 그네들의 세계에서 맞딱드린건, 자신들의 여권 운동 역사를 내 정신적 뿌리로 삼지 말라며....나를, 내 민족의 여성들을 3인칭으로 밀어내던 그네들에게....나는, 내 정체성은 - 아무리 서구화되었고, 사구식 틀이외엔 네 정제성을 담을 그릇이 없어도 말이다 - 울타리밖의 피기일 뿐이란말이다.

중립적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건 이 소설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피기들이 변하는 건 불가피하다.....데스콜라다가 그네들을 변화시켰듯, 인간역시 변화시키는 거다....변화만이 불변의 진리이다...그러나 일단 변화된 이후....데스콜라다로 존재 양식이 바뀐이후, 과연 피기답다는 것은 무엇이 되는가...라콜라다로 변화한 이후 과연 무엇이 피기 답다는 것인가. 데스 콜라다를 제거하고 데스콜라다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어찌 피기가 가장 피기다워 질수 있냔말이다....

아무리 서구화 되어도 결코 그들과 차이없는 정체성을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씁쓸함을 과연 올슨 스콧이 이해나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라멘이든 바렐스이든 이 무션 정의는 여전히 차별화를 조장할 뿐이다....

그리고, 난 엔더와 같이 위대한 영혼이 인간중에 있다고 믿지 않는다. 엔더가 결국 마지막에 그리도 초라해져 버린것도 작가의 이에 대한 무션 깨달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난 나를 나만의 언어로 정의 할 수 없다.그들이 나와의 차이점을 열거해 자리매김을 할때에나 나는 내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다..내가 누군인지 결코 이해 할수 없으나, 나를 사랑하는....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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