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사막에 심은 희망의 씨앗, 아쿠와스
김정완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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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흥미롭게도) 고국에서 탈출해 망명하려던 아랍 에미레이트 왕족의 여성들, 공주들 이야기로 시작한다. 라티파 공주, 샴사 공주 - 둘 다 탈출을 시도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샴샤 공주는 다시 잡혀간 후 약물에 (강제로) 취해 살고 있는 듯한 내용도 나온다. 하야 왕비만 탈출에 성공한 듯 하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호텔과 수십 층 건물들과 세계 기록을 갈아치우는 여러 구조물들, 아랍에미레이트 국민이라면 살 집과 생활비를 그저 제공하는 엄청난 인프라, 여성 정치인 수를 50%까지 늘리겠다는 두바이 왕세제의 발표, 이 휘황찬란한 그늘 뒤에 부족 사회 문화에 여전히 갇혀서 아비야와 히잡을 입어야 하는 여성들, 취업보다는 히잡을 택하는 여성들 얘기도 같이 나온다.

사실 부르카를 입은 아랍 여성들을 유학 시절에 보기는 했다만, 차마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일단 부르카를 쓴 여러 명 중 누가누구인지 모르면 말을 걸기도 힘들어진다. 같은 여자인데도 그렇다. 물론 영국에서 태어난 자란 이슬람 여성들 (파키스탄 친구들)을 보면, 여자들끼리 모일 때에 스카프는 벗고 온갖 화장을 하고 야한 옷도 입고 파티를 벌이고 그러기는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하고 스카프를 벗어야 하는 직장에는 차라리 취업을 포기한다. -__-ㅋ

히잡을 아랍의 문화적 다양성으로 받아들어야 하고 일부 이슬람 여성들이 자신의 선택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의견이 있다는 것도 안다. 내가 잘 몰라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는 한데, 사실 남자 동행과 함께 길을 걷지 않으면 처벌되는 나라, 히잡을 쓰지 않으면 처벌받거나 사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는 문화에서 그걸 선택이라고 부르는 걸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다른 문화권이 내 나라에서 화장을 하느니 안하느니가 제도적 문화적인 규제가 아닌데도, 하고 안하고의 사회적 기대와 반발에 부응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제도로 규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쓰기를 선택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안가서이다. 외국에 사는 무슬림의 경우, 가족 친족 친구들의 네트워크 전체에서 파문을 당할 각오를 해야하는 일인데, 그게 어떻게 선택인가 싶기도 하다. 그게 없는 상태에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선택인거지.

나처럼 이런 고민들을 해보았으나 아랍 문화에 대해 잘 몰라서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여성들에게 말도 걸 수 없는 남자 필자들과 달리, 아랍 여성들과 지척에서 어울리고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들과 그들의 어머니를 심층 인터뷰까지 했던 저자가 직접 겪고 본 아랍 여성들의 삶,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사회문화정치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한다.

저자인 김정완 씨는 아랍에미레이트와 사우디에서 10년 넘게 거주하며 한국어를 아랍 여성들에게 가르치고, 아랍-한국 여성 소사이어티인 아쿠와스를 만들었다.

아랍 문화에 대해서라면 현경 씨의 책을 오래 전에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책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현경 씨는 그 책에서 여전히 루미의 자손을 만나 (루미 자손만 사실 몇 만명은 족히 될 듯 싶지만) 그들이 아랍어로 이름 붙여주는 이 '특별한 나'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이 분은 대체 여기에서 언제 벗어날까 싶은 그런 부분이 있긴 하다. 뉴욕의 한 대학의 교수로 상류층만을 만나고 극진한 대접과 가장 나이브한 버전의 코란에 대한 설명을 듣고와서 그 우호적이고 아름다운 종교와 문화에 대해 칭송하는 글을 쓴 듯하다.

반면에 이 책에는 아랍에미레이트의 그림자 (제 3세계 노동자들의 삶)과 보여주기 용인 화려한 외관과 여성 정치인, 직업인 수에 가려진 뒤안길 (아직 부족들이 반대해서 취업못하고 공부 못한다는 여성들)을 아웃사이더로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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