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의 성장
이내옥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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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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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직업은 박물관 큐레이터이다. 우연한 기회로 일하게 된 박물관에서 3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됐지만, 처음엔 아름다움의 가치를 잘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작품을 보는 대선배의 안목과는 다르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선뜻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미적 안목이 전제되지 않으니 박물관은 그저 삭막한 사무실로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정준 디자이너와 더불어 그 주위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아름다움에 대한 식견이 점차 넓힐 수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을 근무하게 되면서 문화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고심하게 되었고, 서양 박물관의 유물 관리 수칙과 규정과 다르게 명확한 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 박물관 상황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하며, 조명의 중요성, 수집가들의 못 말리는 수집 욕구와 기증에 대한 이야기, 동양 문화의 아름다움, 아는 이들만 찾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풀꽃 갤러리 아소에 대한 이야기,  종교와 역사, 정치, 미술, 일본문화, 고향에 대한 이야기 등 새삼 곳곳에 간직되고 있었던 아름다움과 그 가치에 대해 놀라웠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안목의 성장'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처음엔 단순히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이를 올바른 가치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어떠한 노하우나 방법을 얻어가려는 요령으로 읽기 시작했었다. 

  

허나, 사실 이 에세이는 오랫동안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저자의 생활 즉, 삶 그 자체로 스며든 문화 예술 역사 등 자연히 태어났고, 자연히 성장한 저자만의 안목에 대한 이야기이자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고록이었기에, 잘못된 독법으로 접근한 것 같아 아차 싶었다.

  

굳이 안목에 대해 얻은 결론을 정의해보자면, 그저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오래 응시하며 시간의 지혜가 전해주는 대로 자연히 길러지길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마치 여러 분야의 역사 강의를 들은 기분이었다. 특히 동양권 문화에 대해서. 머릿속에 얼핏 인식은 하고 있었으나, 잘 알지 못하였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나라 문화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 책이 아니었다면 영영 몰랐을 풀꽃 갤러리에 대해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소는 자연광이 스며드는 공간이 너무 매력적인 곳이었다. 가만히 바라보는, 응시하는 데서 얻어지는 기쁨도 있을 것만 같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는 사진이나 그림 한 장 정도는 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러 여건들이 전제되어야 했던 것이었지만, 저자의 감상과 다르게 나는 어떻게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여백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뻔한 구성일지 몰라도 어쩌면 아예 무지한 영역에서는 이미지만큼 효과적인 게 또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아쉬움이 남겨졌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느낌과 애정 어린 감탄에 함께 동조하고 싶은데 상상만으로는 부족한 지점이 있어 읽는 도중에 검색을 많이 해봤던 것 같다. 

  

저자에게 많은 영감을 준 듯한 도연명과 화엄경의 거대한 세계에 궁금증이 일었고, 윤두서의 그림을 찾아보고 그 멋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다양한 도시에서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경험했고, 좋은 인연들을 통하여 겪고, 느낄 수 있던 것들에 대한 부러움도 들었다. 하나의 길로 향하지만, 사실 여러 방향으로 그 뿌리가 뻗어져 나가 있는 저자의 삶의 시간들에 대한 경외감도 들었고, 멈춰있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지금이 헛헛하고 쓸쓸하게 느껴졌지만, 아직 갈길이 멀기도 하니까, 구절에 인용된 누군가의 말처럼 삶은 눈부시다고 하니, 이 빛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더욱 발을 굴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안목은 없고 고집만 있는 독자의 부족한 리뷰를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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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름다움을 보는 눈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이란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었다. 진실은 여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우주의 운행에 자신을 맡긴다는 옛 성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봄날 뜰 안의 나무와 풀꽃의 새싹을 보며 우주 생명의 신비를 경외하고, 따뜻한 봄볕에 자신을 맡겨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녹일 뿐이다. 23쪽

  

 

어떤 분석도 끼어들 틈이 없다. 모든 존재에는 완벽한 아름다움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33쪽

  

그런데 안목이란 단순히 유물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물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포괄한다. 이러한 점에서 돌아보건대 내가 안목을 틔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러한 눈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35쪽

  

  

골동에 관한 얘기이지만, 인간사 또한 먼저 자신을 속여야 남을 속일 수 있고, 남을 속이다가 결국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 진리이다. 51쪽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고귀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가치와 품위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를 생각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조선의 아름다운 유풍을 그리워한다. 76쪽

  

모든 관계를 떠나니 무한한 고독과 대면한다. 천 길 낭떠러지에 서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순간에 열리는 새로운 세계이다. 아마 우리 인간의 죽음도 흰 눈에 덮인 겨울의 호수 풍경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82쪽

  


2부 알아본다는 것

  

모란이 상징하는 아름다움은 그것이 너무나 짧고 무상하기에 더욱 아름답고 또한 슬프다.  109쪽



3부 시골에 집을 마련하다

  


(…) 건축은 자연처럼 스스로 존재할 수 잇는 힘을 지닐 때 화려함으로 승화되는데, 그것이 인문적이고 예술적인 힘을 가진다는 것. 그런 집이야말로 ‘삶의 무대이자 피안으로, 삶을 살되 삶을 잊게 하는 집’으로서 우리 삶을 확장시킨다. 188쪽

  

우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니, 우리 생의 본질은 능동적일 수 없으며, 타락적이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가 생명이 다하면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272쪽






(이 리뷰는 민음북클럽의 서평 프로그램 '첫 번째 독자'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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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 : 저주받은 갤러리 기기괴괴
오성대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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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 저주받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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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스릴러 장르를 즐기진 않지만, 긴장감과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가끔 괴담집을 찾아 읽어보긴 했다. 그것도 무더운 한여름 밤이면 이런 오싹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안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더위를 잠시 잊게 할 만큼 소름 돋는 이야기를 찾는데, 너무 자극적이지 않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오성대 작가의 <기기괴괴>가 가장 최적화된 작품이라 추천하고 싶다. 


처음 표지만 봤을 때는 어떤 공포스러운 이야기와 그림이 기다리고 있을까 약간 긴장된 것도 사실이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현재 웹툰으로도 인기리에 연재중이라고 하던데, 단행본으로 읽게 되었지만 실제 컴퓨터 화면으로 마우스 스크롤을 조심조심 내려가며 읽었다면 깜짝 놀랄 만한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기기괴괴>시리즈 단행본은 현재 5권 세트(성형수 + 아프리카에서 생긴 일 + 저주받은 갤러리 + 아내의 기억 + 키베이루의 서재)로 발간된 상태다. 그중 내가 읽게 된 건 『저주받은 갤러리』이다.


『저주받은 갤러리』는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표제작인 저주받은 갤러리, 괴모수, 당첨번호, 살의, 불면증에 부록 장르파괴괴까지. 다 읽고 난 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라는 독자를 향한 배려로 병맛코드 부록 만화는 따로 모아 또 한 권의 책으로 나와도 될 정도로 재밌었다. 본래 작가님이 이런 유머를 갖춘 분이신 것 같다는 생각.


만화를 읽어나갈수록 단순히 괴담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현 사회의 일면을 담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포’라는 시점 또한 어떤 면에서 바라볼 때 또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지가 보여 색다른 느낌이었다. 다섯 편의 괴담을 간략히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저주받은 갤러리 


이 이야기는 학교 괴담의 일종으로 저주하고 싶은 상대를 향한 미움, 살의, 복수 등을 담고 있다. 재윤은 예전에는 친했지만 지금은 박정열 패거리의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외면하다 같이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참을 수 없던 재윤은 학교에서 떠도는 괴담처럼 저주받은 갤러리를 찾기에 이른다. 죽이고자 하는 상대의 사진을 머리 밑에 베고 자면 꿈속에서 사진 액자로 나타나는데 그걸 들고 걷다보면 ‘저주받은 갤러리’라는 곳를 찾게 되고, 그 문을 열기 쉽지 않지만 우선 열게 되면 갤러리 내부 벽에 그 액자를 걸고 꿈에서 깬 후 사진을 찢으면 실제 인물을 죽일 수 있다는 괴담이었다. 재윤은 처음엔 떠도는 소문이라 호기심으로 관심을 가졌었지만, 괴롭힘이 더해갈수록 진심으로 살의를 품으며 저주를 실행하게 된다. 한 명씩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갖고, 이제는 끊을 수 없이 중독된 재윤의 저주는 자신을 옭아매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사진이 걸린 걸 발견한 이후부터였다. 떼어내도 자꾸만 걸려 있던 자신의 사진에 대한 물음을 재윤은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 괴모수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얻은 탈모치료제. 그저 주스에 지나지 않다며 벌컥벌컥 마시던 후배는 깜짝 놀랄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 당첨번호


남자는 어느 날 꿈속에서 매일 여자친구 몸에 복권 당첨번호를 하나씩 새겨 놓겠다는 이상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시험을 준비하며 만났던 여자친구와의 사이가 소원해지던 찰나 남자는 매일같이 복권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여자친구에게 점점 더 집착을 하게 되고, 결국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모든 걸 잃게 된 남자에게 또다시 닥칠 일을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 살의


어느 중학교의 한 학급에서 권동현이라는 학생이 실종된다. 실종 당시 인상착의에 대한 기억도 가지각색이고, 수사의 난항을 겪던 찰나 눈속에서 발견된 아이는 옷이 모두 탈의된 상태였다. 그 후 반 아이들은 한 명씩 의문의 사고사를 당하게 되고,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 불면증


잠을 잘 못자고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불면증은 ‘악마가 붙어서 잠을 못 자게 하는 거’라며 ‘생명력을 갉아먹고 결국은 사람을 없애버린다’고 말한다. 나는 친구의 말에 쉬어야 겠다며 친구를 보내려 하자, 수면제를 뺏고 집을 나서는 친구는 약에 의존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급히 문을 열고 친구를 부르는데, 복도에 남아 있는 건 친구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한 존재가 서 있는 걸 보게 된다.


# 부록 장르파괴괴


각 이야기마다 갈등과 긴장감을 초래했던 장면들을 전환하여 병맛 코드식 유머로 재탄생시켰다. 이건 확실히 타고난 유머가 틀림없다. 나중엔 이런 병맛 코드로도 작품 기획을 하셔도 잘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싹한 상태가 아니라, 소소하게 웃으며 책장을 덮을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다.



웹툰을 잘 찾아보지 않았는데, 이 기회에 <기기괴괴> 다른 작품도 궁금하여 읽고 싶어졌다. 그저 공포심을 자극하는 재미로 소비되는 것뿐 아니라, 괴담 속에 담긴 진짜 공포는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진실로 미워하고 해하고자 했던 미움의 상태, 욕망과 욕심에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공포란 그런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음 속 어느 한쪽에 어둠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장마에 꿉꿉한 기분을 털어낼 수 있는 괴담 속으로 한 번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의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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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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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남겨진 자들에 대한 이야기




『영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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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과 같다지만, 흔히 일상 속에서 죽음을 떠올리진 않는다. 모두가 앞날에 대한 많은 걱정을 하지만, 아직 닥쳐오지 않을 법한 먼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매일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 틈새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데는 소중한 사람의 빈 자리 혹은 그 사람의 본질적 성향에 기인한 게 아닐까 싶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일면식도 없지만 존경하거나 동경하던 사람의 죽음까지. 결만 다를 뿐 비슷하지 않을까. 천희란 작가님은 왜 첫 소설집을 온통 '죽음'으로 채운 것일까 궁금하여 인터뷰를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셨었다. 


  “죽음에 관해 쓴다고 말할 순 있지만 죽음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할 순 없으니, 죽음 주변을 배회하면서 삶에 관해 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경향신문 인터뷰 중) 


내가 생각하기로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삶을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배회하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건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남겨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떠한 계기가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나 역시 처음 좋아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생각과 판단을 하려 했을 때,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목도한 후 였다. 처음으로 타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의 삶을 생각해보게 됐다. 주체적은 삶, 선택,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게 됐다. 물론 정답을 잘 찾진 못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실존이랄까,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으니, 나의 삶의 큰 영향을 미친 것만은 확실하다. 그 전에는 그야말로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기에. 문학의 역할에 대해 말하기엔 나는 아주 많이 서툴고 부족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문학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킴으로써, 삶을 되짚어보게 하는 것. 그로 인해 다양한 감정들과 생각들을 빗대어 겪어보기도 하며, 더 잘 살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매개체 혹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같다. 다소 상투적인 표현이었지만. 


아직도 인정할 수 없는 죽음이 너무나도 많기에. 하루의 한 순간은 꼭 죽음을 떠올려본 적이 있기에. 긴장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영의 기원』을 펼쳐보는 일은 그런 용기가 필요했다. 위로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되돌리고 싶은 시간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때문에 다시금 무기력이 찾아오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잘 먹고 잘 살기도 한다. 


어쨌든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새로운 작품을 읽어볼 수 있는 것이다.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 모두 다양한 죽음이 등장한다. 대개 남겨질 자들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선택하는 죽음이 다수 등장했던 것 같다. 여러 죽음의 형태와 위치에 나를 대입해보며 읽어나갔다. 사실 처음부터 읽기 버거운 느낌이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막연히 떠오르는 죽음과 관련된 생각들과 기억 때문에 순간 울컥하는 심정이 되어버렸기에. 제자리걸음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한 이야기 속에 갇힌 기분이 드는 상황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역시 표제작인 <영의 기원>이 제일 인상 깊고 좋았다. 익숙한 이름과 연관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삶의 끝에 서 있던 '영'이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을 때, '나'의 자리에서 '영'을 안아주며 공감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그 죽음에 관해 계속해서 던지는 '나'의 질문들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처음 천희란 작가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게 '2017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이었는데, 그때도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편지를 주고 받으며 전개되는 작품 형식 속 서사가 탄탄하게 진행되면서도, 서로 맞물려가며 밝혀지는 이면의 진실이 흥미로웠다. 여기 실린 작품 중에 가장 가독성이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라 대체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환상성과 종교적인 색채 혹은 모호한 분위기가 감도는 게 손에 잘 잡히지 않았고, 안개처럼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느낌마저 들었지만. 이 묵직한 작품을 부족한 소양으로 다 헤아리지 못하는게 아쉬울 정도로 생각해볼 거리가 참 많았다.이건 좀더 시간날 때 다시 한번 들여다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다짐한 작품들이 많지만, 이번 여름 휴가때는 반드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겠다는 다짐을 또다시 남겨놔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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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무영의 정원>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면서, 나는 동시에 나의 이름을 곱씹는다. 아마 모두가 그럴 것이다. 서로에게 각인할 자신의 이름을 발설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은 자의 이름 앞에서 산 자의 이름이 무용해진다. 10쪽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경련의 흔적조차 남지 않는 침대는 그녀의 절박함을 반증했다. 절대로 살아남지 않겠다는 완강한 결의가 육체가 지닌 삶의 의지를 이긴 것이다. 

18쪽 


원인도 모를 갑작스러운 죽음이 곳곳이 스며들 때. 나는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며 자살한 여동생의 휴대전화에서 의문스러운 모임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이상한 죽음이 창궐한 뒤에 만들어진 이 모임은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곳이었고, 동생에게 최근까지 메시지를 보낸 B는 JJ라는 닉네임으로 두 차례 자살 예고를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동생의 가족임을 밝히지 않고 이 자살자들의 모임에 참가하게 된다. 이름 대신 이니셜로 서로를 호칭하고, 각자가 준비한 방식으로 죽음을 결정하는 여행. 일행 모두가 자신의 방식대로 떠났지만, 나는 우연히도 다시 살아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곁에 남아 있던 C마저도 잠이 들고, 나는 수상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태양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린다.  


장면 장면이 현재를 그리면서도 중간중간 과거의 서사가 밀려들어 오고, 나중엔 경계 없이 한데 뒤섞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B의 시체를 옮기는 장면으로 등장하니, 무슨 스릴러인가 싶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간혹 이런 죽음을 바라곤 했었다. 아무런 고통없이 어느날 갑자기 조용히 잠드는... 원인 모를 죽음. 그렇게 흔적없이 사라져버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이야기로 등장하니 이걸 반갑다고 해야 할지. 


결국 홀로 남겨지게 된 '나'는 휴식이 필요하다 했지만, 그건 생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죽음을 바라지만 죽는 게 두렵기도 한 인간적이면서도 솔직한 태도. 피곤한 와중에도 '나'의 손엔 총이 쥐어져 있고, 누구에게 발견되면 오해받을까 걱정하는데서 그렇게 느껴졌다. 그 총으로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될 일이다.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그러한 선택들의 비밀스러운 모임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나'는 우연히도 살아 남았다. 그리고 완전히 종결될 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지 않을까. 평범함 사람의 위력을 발휘하면서. 


<예언가들> 


(…), 그가 원할 때면 언제든 창을 열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는 현실 그 자체이다. 그것이 한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였으므로, 그는 이제 아무런 구속도 없이 주어진 드넓은 영토에서도 더는 새로운 자유의 감각을 획득하지 못한다. 

38쪽 


사라진 E 음계를 상상한다. 그것이 그녀에게 연약하고 구슬프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E 음계가 사라지기 전에 그녀가 단 한 번이라도 독립적인 E 음계의 인상을 그토록 구체적인 언어로 떠올린 적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금 그것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곳에서만 더 깊고 애잔하게 울려 퍼진다. 40쪽 


여자는 음악을 구원이라 여겼다. 여자에게 연주는 인류의 역사를 기리는 행위였고, 동시에 안식과 평화에 다다르는 길이었다. (…) 모든 것이 불가능해지자,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 없는 헌신을 순교자적인 것으로 여겼고, 음악은 예정된 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리라 믿었다. 42쪽 



종말의 시대, 공표된 날짜는 생각보다 너무 멀리 있고, 종말에 관한 다양한 계층의 예측과 전언. 결국 희망과 다짐보다 기다리는 일에 더 익숙해져야만 하는 사람들. 사형당했지만 기적처럼 다시 부활한 남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시체안치소 직원에 의해 종말을 앞두고 일어난 기적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원치 않는 부활이었고 기적이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마지막에 간절히 남기려 했던 말은 무엇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하였지만, 정말 기적이 존재한다면 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일까. 

음악을 구원이라 믿는 여자. 끊어진 현이 도착하길 바라며,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여자. 특별히 뛰어난 연주능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음악을 구원의 양식으로 믿으며, 도착하지 않은 네 번째 현을 기다리고 있다. 린치, 낯선 이들의 만남, 고요한 세계, 들리지 않는 음악. 자전거를 타고 온 사내. 사내가 전해준 작은 상자. 마치 희곡의 한 장면처럼 마무리되는 이 이야기 속 남자의 죄는 무엇이며, 자전거 탄 사내가 전해준 작은 상자 안에 든 것은 과연 무엇인가.  


<영의 기원> 


시계는 계속해서 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런데 왜 0일까. 마치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간의 측량이 불가능해지는 순간이 오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81쪽 


영이 나를 찾아온 것이니 묻지 않아도 언젠가는 입을 열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영과 함께 침묵했다. 아니,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83쪽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한 장의 잎도 떨구지 않지만 서서히 빛깔을 잃어버린다. 꽃의 사라진 빛깔은 어디에 보존되는 것일까. 시들지 않는 꽃은 아름다운가. 잎을 떨구지 않는 꽃은 저주인가. 영은 꽃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았고, 꽃은 여전히 단 한 장의 꽃잎도 떨구지 않는다. 88쪽 


죽을 용기로 살았어야 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니까 죽을 용기와 살 용기, 그것은 과연 같은 종류의 용기일까. 나는 맑스와 마르크스, 그리스인과 희랍인, 자정과 0시, 두 번의 침묵, 분명 같은데 서로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 영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이제는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한 답을 결코 알 수 없다. (…) 빈 편지지와 잉크가 가득 찬 볼펜은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라는 것. 영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는 것. 그렇다. 그것 뿐이다. 97쪽 


희랍의 시인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고 이미 태어났다면 될 수 있는 한 하루라도 빨리 죽어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지. 그러니까 꼭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건 남은 사람들의 몫에 불과할지도 몰라.  (…) 때로 자살은 자신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었다고 해. 그러니까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영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의견을 묻는 거라면, 나는 그게 사고가 아니었을 것 같구나. 98-99쪽 


영을 생각하면, 영이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때때로,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109쪽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 술에 취한 영이 말도 없이 나를 찾아온다. 얼어붙은 그 손엔 편의점 비닐 봉투가 걸려 있었고, 그속엔 텅빈 편지지와 볼펜이 들어있었다. 영이 주고간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빛깔만 사그라들 뿐, 시들지 않는 꽃이다. 다음날 영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고, 장례식장을 찾은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과 더불어 영에 대한 기억을 회상한다. 언젠가부터 반복되는 꿈, 밝고 맑고 투명함을 뜻하는 이름의 '영'. 영이 다가오는 것 같다. 만질 수 없는, 투명한 영, 씁쓸한 미소 짓는 영을 그려본다.  


무엇이 선행되었는가? 본질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나는 매일 동전을 던지고 있다. 앞면과 뒷면. 0과 1. 그리고 영은 왜 죽은 것일까, 왜 나를 찾아온 것일까. 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한다. 빈 편지지에 남기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시들지 않는 꽃처럼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한 영의 이미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빛깔을 바랠지라도, '영'은 영원히 살아있게 되는 거라 믿고 싶다. 나의 마음 속에 그렇게 '영'을 담아두고 싶다. 

한 편의 시같은 소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곧 결혼을 앞둔 '나(효주)'는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자, 나의 후견인이 되어준 선생님에게 드디어 엄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에 묻는 편지를 보낸다. 그렇게 한 편씩 주고 받으며, 점차 더해가는 이야기 속엔 한 사람의 씁쓸하면서도 진솔한 마음과 애증이 드러나게 된다. 예술가이자 성소수자였던 선생님의 마음,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진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대신 죄책감과 미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또다른 애정 속에서 길러냈던 효주. 그렇게 그리움의 편지를 쓴다. 새하얀 설원 위에 떠오로는 이미지가 아름다운 소설이다.

잔잔하면서도 시린 도입으로부터 차근차근 서사가 쌓여나갈수록 그 정교함과 세밀한 묘사 덕분에 더 잘 그려지는 것 같다.


<신앙의 계보> 


믿음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갱신하지 않으면 강바닥의 흙처럼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유실되었다. 계속해서 흙을 퍼 나르고 땅을 다지는 것이 사제의 일이었다. 

156쪽 


P는 도쿄에 있는 한인 성당의 주임신부이다. 천주교 박해와 원폭 피해의 상흔이 남아 있는 나가사키의 우라카미(신의 속마음)성당을 방문하며, 어머니 덕에 자연스럽게 생긴 신앙, 자신이 품고 있던 신의 뜻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한다. 그런 P앞에 우연히 나타난 마른 체구의 소년은 연신 기도하면 천국을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아이를 보며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던 P. 불면증을 앓고 있던 그가 깊은 잠을 빠져들었다 깨어보니 아이와 함께 사라진 수면제 약병에 불안해하면서도, 스스로 비열하다 느낄만한 선택을 하고, 다시 찾은 아이의 눈 앞에 자신의 신앙을 파괴됐음을 깨닫는다.  



<경멸> 


그렇게 보입니까. 꺼져가는 촛불도, 시들어가는 꽃도, 앙상한 해골이나 화려한 보석 같은 것이 없어도, 당신이 그리는 그림은 어쩔 수 없이 모두 일종의 바니타스화가 아니겠습니까. 삶이 헛되다는 것을, 가까이 가면 볼 수 없고, 멀리에서는 실감할 수 없는 그 허망함을 당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209쪽 


그에게 예술은 짧았고 인생은 무한에 가까웠다. 그가 만든 무엇도 그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터. 그는 언제나 현재에 속했고, 그의 작품들은 늘 과거에 남겨졌다.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에 사라진 것으로서. 209쪽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로 서술해가는 형식이 독특한 소설이다. 미술기자인 ‘당신’이 겪은 화가 ‘그’는 자신이 불멸의 인간이라고 주장하며 기자의 눈앞에서 자살을 해 보인다. 그런 화가를 두고 '당신'은 황급히 현장에서 도망을 치지만 기자의 눈앞에 정말로 화가가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된다. 그로테스크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는 현실인가, 아님 '당신'의 상상이나 망상인가.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과 '그'를 지칭한다. 당신이라고 지칭되는 인물의 자리에 읽는 이로 하여금, 독자가 그 위치에 서서 이야기 속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놓은 장치로 느껴진다.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 


상상이 현실을 능가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형인은 믿는다. 우리가 아는 현실이란 지극히 선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고통스럽고 추악한 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고개를 들 때, 상상은 전복된다. 상상이 전복되고 나타나는 현실은 우리의 것이 아닐 것이다.  227쪽 


설령 다르지 않다 해도, 그것이 형인의 실패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 형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형인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서는 날을 기다려온 것이다. (…) 공포 속에서 인간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눈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형인의 계획이었다. 255쪽 


이 무시무시한 지루함에서 벗어나야 해요. 아니 이 지루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달아야 해요. 집으로 돌아가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요. 257쪽 


사이렌이 울리면 누구라도 거대한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사이렌이 곧 사건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결코 이해하지 않는다. 258쪽 


유학 전문 업체에서 일하는 ‘형인’은 미국 명문대 입시를 준비하는 특별 관리 학생인 ‘수진’의 입학시험 접수에서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이로 인해 사장과 ‘수진’의 부모로부터 부당한 요구에 시달린다. 모멸감을 느끼며 공항으로 ‘수진’을 마중 나가게 된 ‘형인’은 안개주의보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사방으로 깊어지는 농무를 헤치며 공항으로 향하고, 수진을 만나게 된다. 형인의 예상과 달리 수진은 진솔한 아이였고, 부모님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형인을 언니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해는 수진과 달리 형인은 자신이 당한 모욕을 되갚을 때만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안전한 위험'이란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일까. 


참고 인내하는 사람들이 폭발하면 어찌될지 대체로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를 드러내보이는 방식이 더 거칠고 과감하다. 여러 변수에 의해 혹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이성과 주저함으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을지언정, 또다른 적의와 허무, 이내 곧 새로운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자신의 얼굴이 완전히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화성, 스위치, 삭제된 장면들>  


광활한 우주는 한 인간을 그 자신의 심연으로 내동댕이치고, 외롭지 않은 인간조차 외로움의 의미를 알게 되는 그곳에서 마음이 허약한 자는 어둠에 마음을 빼앗인다. 아내에게도 우주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294쪽 


우주선의 깊은 밤에 들려오던 것과 같은 소리들. 그 자신의 맥박과 호흡이 어둠 속에서 진동한다. 외부의 적막이 그의 신체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소음이 공간의 적막을 뒤덮는다. 어둠은 그림자를 삼키지 않고 그림자가 몸을 부풀려 빛을 삼킨다. 297쪽 


모든 이야기에는 언제나 미리 삭제된 몇 개의 장면이 존재하며,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삭제된 바로 그 장면들이다. 나는 영원히 달아나지 못한다. 다만, 이제 불을 끌 시간이다. 303쪽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아이가 이사해 나간 방에서 아내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화성 여행의 시대가 도래한 세상. 화성 여행자들의 겪게 되는 그림자 분실.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게 되고, 고립된 느낌, 공포와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했던 사람들. 아내는 화성을 다녀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하는 '그'와 그런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이 떠났다는 아이. ‘그’는 중간중간 찢겨 나간 일기장의 내용을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채워 넣으면서, 아내의 자살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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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2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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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스팩타클해지는 사건 속 해미시는, 과연?!



『허풍선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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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공 해미시의 본거지답게 로흐두는 더이상 평화롭기만한 마을이 아니다. 미스터리 소설 속 주인공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사건이 발생되어야 하기 때문에, 로흐두는 어떠한 스펙타클함이 전제된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어부 아치나 목청 크신 웰링턴 부인 등 마을 주민들이 익숙하게 느껴져 사이사이 시트콤 같은 케미에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어쨌거나 전 편에서 해미시는 관계의 상실을 비롯하여 소중한 가족 타우저를 잃었으며, 해결한 사건의 결말도 씁쓸하기만 했다. 로흐두 밖은 위험하다는 해미시에게 로흐두가 더 위험한 곳이 되는 건 또 다른 전복이라 흥미롭긴 하지만, 그래서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건 역시 프리실라와의 관계이다. 불편하지만 또 서로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닌, 마치 연인이 되기전 친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의 관계. 그러나 그 둘이 연인이었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그저 약혼을 했다고 말했을 뿐. 친구사이로 애매한 썸의 기류만 흐를 때가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기도. 서로에게 미련이 없는 듯 보이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하는 행동은 상대방을 향한 미련과 새로운 데이트 상대에 대한 질투, 관심이 너무 보인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미시에게는 일종의 조력자같은 인물이 없다. 마을 주민이야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일 뿐이고, 좀더 가까운 일대일 관계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앞서 막히는 구간에서 논의할 수 있는 사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되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애정전선의 상대로 등장하는 프리실라뿐이다. 그러니 사실상 이 두 사람을 완전히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미 여러 편을 걸쳐 그런 관계성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설이 길었던 건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쯤에서 마치고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살펴보자.  

자신을 모험가이자 도전 정신이 투철한 레슬링 선수 출신이라 주장하는 랜디 두건의 별명은 자칭 마초맨이다. 키 18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에 짧은 몸통, 곳곳에 새긴 문신, 좁은 이마와 떡이 진 곱슬머리와 가죽재킷, 가로 줄이 있는 이상한 선글라스를 끼고서 밝은 색 모자까지 쓰고 다닌다는 게 이 마초맨의 외관에 대한 묘사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새로운 인물이 주는 신선함, 화려한 무용담에 적극 호응한다. 시리즈 내내 말해왔던 고지 사람들의 특성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워낙에 느긋한 성향 탓일지도 모르고, 그들 자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짓말쟁이일 뿐 아니라 이야기를 지어내는 실력도 출중한 까닭, 또는 누구의 이야기 속에서도, 특히 그들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도 허점 같은 걸 찾아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까닭이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고지 사람들은 랜디 두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6쪽


그러나 흔히 그렇듯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랜디의 목청만 큰, MSG만 있는 무용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 할 기회가 박탈당하기 시작하자 슬슬 질려하기 시작한다. 안 취한 날이 없을 정도로 그의 강력한 추종자와 같았던 어부 아치 매클래인은 새로운 주민인 조르디 영감이 랜디로부터 망신을 당하자 빈정이 상하게 된다. 때마침 마주친 해미시는 그들에게 청중이 사라져야 좀 사그라들 것이라며 당분간 마을 술집이 아닌 토멜성 호텔 바를 이용하라고 하고, 이로 인해 해미시와 마주치기 불편해하던 프리실라는 결국 그와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금 마을 주민들이 단골술집으로 모여들게끔 했지만, 그건 랜디 두건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의 허풍을 지적하는 조르디에게 폭력을 쓰려 했던 랜디를 저지하자, 그 상대가 되어버린 해미시는 얼결에 결투신청을 하게 되고, 곧 자신의 무모함을 후회하며 자책하게 된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관중은 늘어나고, 비웃음과 조롱만 앞두고 있던 해미시에게 전해져온 소식은 다름 아닌 결투의 날 사망한 채로 발견된 마초맨의 소식이었다.  


여기서 다시금 되짚어 보자. 해미시는 야망은 없지만 정의감은 있는 인물이다. 정이 많고, 심술궂지만 다정하기도 하다. 의도된 건지 모르겠지만 미남계가 썩 잘 먹혀들기에 일말의 바람기마저 의심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직자답지 않게 규정은 밥 말아먹듯 어기지만,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해미시는 마초맨의 죽음에 한 편으론 안도하면서 한 편으론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한 순간의 호기로 인한 결투신청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조롱과 비웃음은 안 당해도 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터전 로흐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의 불행을 간절히 바라는 블레어 경감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지만, 해미시에게는 사교계에 영향력 있는 프리실라가 있으며, 해미시 역시 뛰어난 거짓말쟁이로 결투가 아닌 경고를 하려 했을 것뿐이라는 해명을 하고 일단 해고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공식적으로는 수사에서 제외된 해미시지만,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씩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또다른 이주민인 로맨스 소설 작가 로지 드랄리였고, 그녀와 일종의 삼각관계였던 것으로 보이는 어부 아치과 산림 인부 앤디를 통해 로지가 랜디로부터 모욕을 받았다는 상황을 전해듣게 된다. 직접 로지와 마주하게 된 해미시는 그녀의 경계심은 일단 해소시켰지만,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알아내진 못한다. 


헤미시는 블레어 경감 부하 앤더슨으로부터 능숙하게 수사 경과를 전해듣는 중에 블레어에게 시달리고 있는 가여운 여인 애니 퍼거슨을 도와달라는 웰링턴 목사 부인의 청을 듣게 된다. 이미 전해들은 수사에 대한 내용으로 마을 내 독실한 신자인 애니 퍼거슨이 랜디와 내연관계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은 터였다. 애니를 만나 얘기를 듣고 마을 사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해미시.  


애니가 문을 열어주었을 때, 그는 놀랍고 경이로운 심정으로 그녀를 찬찬히 바라봤다. 누군가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사람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참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코르셋으로 몸을 단단히 여미고 잿빛 머리를 뽀글거리게 파마한 애니 퍼거슨이 두건처럼 거친 사람에게 격정적인 감정을 꼈다고 하면 대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98쪽 


한편 프리실라는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일단 데이트 중이던 존 글로버라는 글래스고 은행장에게 베티라는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해미시 역시 질투에 눈이 멀어 베티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지, 각자 마음이 있는 상대를 두고 일부러 다른 데에 눈을 돌리다니. 이런 관계의 엇갈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 사이의 큰 오해의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해미시는 부검 결과 수면제를 먹고 잠든 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통해 범인은 랜디보다 힘이 약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추리를 해본다. 마음에 걸리는 궁금증이 있으면 반드시 해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해미시는 자신의 작전에 꼭 프리실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럴 만한 인물 (대범하면서도 센스있는)이 프리실라 뿐이기도 하지만.  


애니 퍼거슨의 집을 탐색한 결과 그녀는 결코 명예를 훼손당한 게 아니고 랜디와의 관계도 자발적인 동시에 적극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뭔가 수상한 로맨스 작가 로지의 집을 탐색해보려 꾀를 쓰는 해미시와 그에게 동조한 프리실라는 또다른 살인사건의 목격자이자 증인이 되고만다. 


뜻밖의 위기로 인해 일명 동지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된 프리실라는 살인사건을 목격한 마음을 추스리며, 해미시에게 아침을 가져다 주러 간 그의 숙소에서 그와 나란히 누워있는 베티를 목격하게 된다. 그것도 해미시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웰링턴 부인과 커리 자매와 함께 말이다. 해미시는 피곤함을 핑계로 잠든 자신을 탓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오해를 풀고 싶지만, 해명하는 일도 짜증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성인이고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지만, 부도덕한 행실을 보인 것으로 마을은 금방 해미시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이 상황을 잊기 위해 더욱더 수사에 몰두하는 해미시. 


뛰어난 직관력과 집념, 그리고 뻔뻔하고도 자연스러운 거짓말쟁이 해미시는 로지 드랄리 살인사건에 범인을 훌륭히 밝혀내지만(이로 인해 그의 과오는 모두 잊혀진 듯 했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 앞에서 알 수 없는 찝찝함에 마을 사람들에게 랜디 사건의 범인은 또 따로 있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해미시의 얼굴에서 평소의 게으른 표정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제가 스트래스베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마을의 사소한 범죄에는 설렁설렁 넘어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살인 사건은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어야만 하는 범죄예요. 그리고 정의는 편리하게 자백을 해 버리는 사람에겐 절대 찾아가지 않는 법입니다. 전 계속해서 사건을 파헤칠 겁니다. 어르신, 진범을 찾을 때까지요. 진범은 누구라도 될 수 있어요." 225-226쪽


 서로를 의심하며 힘들어했던 부부 윌리와 루차 뿐 아니라, 여러 인물들에게 아직 범인은 따로 있다고 말하는 해미시는 부족한 수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노선에서 열리는 언덕 달리기에 참여해 1천 파운드의 상금을 얻기 위한 도전을 한다. 로흐두 사람들은 또 이런 구경거리에는 빠질 수 없기에 유력 우승후보와 해미시를 두고 내기를 한다. 창피를 당할까봐 걱정이었던 해미시는 뜻밖에도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총알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런 절박함으로 목표를 달성했지만, 증거도 범인도 찾지 못한 채 강제휴가를 받고 글래스고로 향한다.  


해미시는 로지 드랄리의 전남편을 만나고 난 후 일이 더 꼬이기 시작하는데, 무심코 기자인 그 사람에게 사건을 대하는 자신의 현재 심경을 그대로 이야기 해버렸기 때문이다. 해미시가 살해위협을 받았던 사건을 무시했던 블레어 경감은 일간지에 실린 기사 때문에 현재 심리중인 사건에 대해 알려지는 것에 대해 당황한 데이비엇 총경의 명대로 해미시를 긴급수배하기에 이른다. 실종상태가 된 해미시. 경찰에 잡히기 전에 꼭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변장을 하고, 대담하게 경찰서 내부로 들어가 자료를 살펴보기까지 하며 결국 진실에 다다르게 된다. 


한편 전혀 뜻밖의 방식으로 진범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된 프리실라는 곧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를 감지한 해미시는 다급하게 프리실라를 구하기 위해 내달리고, 마침내 그 위기에서 무사히 그녀를 구출해낸다. 하지만 여러 사건을 같이 겪었다해도 실제로 목숨이 위협박은 적이 처음이었던 프리실라는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지만, 해미시를 보고 안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건 해미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건은 해결하고 프리실라도 무사히 구해냈지만,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이었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지친 발걸음으로 프리실라를 만나고, 둘은 같은 위험을 겪어냄으로써 다시금 애정을 느끼는 듯 했다.


그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이쪽으로 걸어오면서 경찰이 나한테 아예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급도 원치 않고 여행도 싫어하는 걸 보면 난 어디가 굉장히 잘못된 사람이 아닐까요?" 

 프리실라는 갑작스럽게 애정이 밀려드는 것을 느끼며 그를 바라봤다. "아, 해미시, 지금까지 난 당신이 제발 빈둥거리지 말고 자기 인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뭐라도 해 보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 왔어요!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우리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뭔가를 가졌는지도 몰라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자라고 말했던 사람이 누구였죠?"  331쪽 


그리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로흐두 마을 풍경 묘사


또 하루가 밝은 태양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서리가 살짝 끼어 있는 맑은 날이었다. 산등성이의 고사리는 황금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고, 마가목은 주홍색 열매로 무거웠다. 마을에는 집집마다 문 앞에 마가목이 한 그루씩 서 있었다. 귀신을 쫓아 준다고 알려진 나무였는데, 다들 귀신 같은 건 안 믿는다고 큰 소리를 펑펑 쳐 댔지만, 속으로는 혹시 모르니 만약에 대비해서 집 밖에 마가목 한 그루가 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337-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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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여기까지, 마을 사람들의 애정인듯 애정아닌 관심 덕분에 해고의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또 다시 엇갈린 타이밍으로 두 사람은 어긋나버린다. 이건 꼭 작가님의 농간 같다. 반드시 두 사람이 이루어질 것처럼, 특별한 관계성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이어주지 않는. 한 편 한 편 지날수록 사건은 점차 커져가고 긴장감이 한층 더해지는 것 같아 미스터리 작품으로서의 기능은 아주 충실히 해내는 것 같아 정말 이건 꼭 소장하여 두고두고 읽을 시리즈라고 단언하고 싶다. 특히 프리실라가 범인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을 때, 해미시가 그녀를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은 영상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잘 그려졌기 때문이다.  


올해 해미시 맥베스의 출간예정인 작품 수는 두 편이 더 남아 있다니 너무 설레고 기쁜 마음이다. 다음 편은 아마 '치과의사의 죽음'이 될까, 이건 또 로흐두마을에서일까, 아님 해미시의 독단적이고, 야망은 없지만 사건 해결의 의지는 강력한 능력을 깊이 산 다른 지역으로의 발령에서 비롯될까. 상상하는 기다림도 좋다. 하지만 이제 좀 한 사람한테만 잘하면 좋겠다는 소소한 기대를 해본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해미시 맥베스 순경 독자단 3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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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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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죽은 자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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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의 새로운 '핀' 시리즈는 해당 출판사 문예잡지의 기획으로부터 시작된 듯 하다. 시와 소설 분야 모두 라인업이 워낙 짱짱하니 이건 작가이름만 보고도 당연히 읽어봐야 할 것으로 정의해도 무방하다. (※ 다음 이미지 출처 : 현대문학 블로그 )





그리하여 핀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 작품의 주인공은 편혜영 작가이다. 예전에 선배로부터 여러 책을 물려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편혜영 작가의 『아오이 가든』도 함께 있었다. 좋은 선배를 두었지만, 게으른 후배인지라 관심 있는 시집은 다 읽었지만 소설은 잘 찾지 않았다. 이제야 인연이 닿아 편혜영 작가님의 소설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너무 늦게 안 게 한탄스러울 정도로 좋았다. 핀 시리즈의 판형도 한 손에 잡히는 사이즈라 좋다. 무엇보다 새 책, 그 종이의 냄새가 너무 좋았다. 그게 묘하게도 이번 작품의 성질과도 잘 어울리는 듯 했다. 뭐든 안 어울릴까 싶지만, 그렇게 의미부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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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불미스런 일로 인해 이인시 선도병원으로 내려오게 된다.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비슷한 업무를 해온 이석은 병원 내 평판이 좋은 편이지만, 뒷말이 많은 직원이다. 무주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전임자인 이름으로 부르는 송에게 무시당하는 듯해 기분이 상하지만(물론 송이 예의 없는 방식으로 무주를 대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진다), 이석의 여러가지 도움 덕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된다. 


조선업의 발달로 성장해나가던 이인시는 조선업의 몰락과 함께 점점 황량한 도시로 변해가고, 이에 병원은 존폐 위기에 닥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고자 프로젝트 팀을 꾸리게 되고, 이석의 추천 등으로 새 팀에 투입된 무주는 생각지 못한 데서 이석의 비리를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이석에게는  아픈 아이가 있고, 기계에 의존하여 겨우 생명을 연장하는 아이를 위해 애쓰고 있는 이석을 보며 무주는 갈등하게 된다. 



무주는 완벽하게 좌우대칭이 맞는 세계, 균형이 잡힌 세계란 없다고 생각해왔다. 모든 것은 비뚤어져 있고 기울어져 있기 마련이라고. 그런 점에서 세계는 애초 구球나 정육면체처럼 정확하고 완벽한 형상이 아니라 트램펄린 같은 것이었다. 똑바로 서면 균형을 잃는 곳, 균형을 유지하려면 비틀거리거나 한쪽 발을 구부리고 팔을 뻗어야 하는 곳, 뒤뚱거려야만 가까스로 설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런 세계이므로 균형을 잃은 태도를 오히려 균형 잡힌 태도로 여겼다. 40-41쪽

  

아이는 엄마와 함께 규칙적이고 힘차게 박동하고 있었다. 파도나 바람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전적인 생의 의지로 뛰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꽤나 믿음직한 속도와 간격이었다. 뭉클했다. 가냘프지만 끈질기게 아내와 더불어 숨 쉬는 아기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랬다. 50쪽

  

아이를 둘러싼 불안정한 물결의 흔들림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미래에 아이가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면 이석의 일을 모른 체했을 것이다. 이석의 아이를 떠올리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57쪽

  

장부를 보자마자 무주는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거로부터 온 목소리였다. 무주는 그 소리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였고,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리라 쉽게 단정했다. 짐작이 맞았을 때는 자못 통쾌했다. 거의 모든 구매 건에서 리베이트를 찾아내어 몹시 흥분했다. 잘못된 것을 적시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자신만 비리를 저지른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84-85쪽

  

그러나 이내 이석의 비리가 아이가 아프기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과, 무주에게도 기적처럼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 앞에 결심하게 된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무주는 '정의'라는 선택으로, 내부고발을 하게 된다.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반응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여길 때쯤, 죄책감에 시달리는 무주에게 더 큰 시련이 다가오게 된다. 


갑작스럽게 그만 둔 이석은, 전날 원장과 큰 다툼을 했으며, 무엇보다 무주가 작성했던 이석에 대한 글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석의 뒤에서 좋지 않은 말을 내뱉던 직원들은 어느새 그 화살을 무주에게 돌리며, 이석의 갑작스러운 사직의 이유를 무주의 배신으로 비롯된 것이라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한다.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게 된 무주는 자신이 맡았던 일에서도 밀려나게 되고, 복잡한 심경으로 힘들어하는 무주에게 차마 유산 소식을 알리지 못한 아내 역시 무주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무주는 그 모든 가능성을 지닌 아이를 잃었다. 질서와 명분을 잃었다. 선하고 바르려는 의지를 잃었다. 이석도 아이를 잃었다. 삶을 다 바쳐 살리려던 아이를 잃었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병원은 차라리 거대한 장례식장이었다. 가족을 잃게 되리라는 소식을 듣는 곳이었다. 사무장 말이 맞았다. 병원에서는 누군가 죽기 마련이었다. 93쪽


그때쯤 병원에는 의문의 의료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때마침 이석의 아이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과 함께 무주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거세지자, 무주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터뜨리면 모두가 위험해진다는 경고를 하며, 점점 더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고립되어 간다.  



몸은 힘들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무주보다 상황이 나쁜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유령 같은 도시를 배회하느니 아픈 사람이 가득 들어찬 병원 창구에 앉아 있는 게 나았다. 적어도 병원은 바깥 거리처럼 황량하거나 적막하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보다 가책을 느끼거나 외로운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책은 아무리 심해도 육체적 통증을 가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그라지기도 했다. 117-118쪽


무주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알아서 나가라는 병원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야간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이석에게 향했던 감정 또한 처음엔 당혹스러움, 그다음엔 미안함과 죄책감이었으나, 이내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자 이석의 비리를 알고 있다면 자신을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이석의 아이를 생각하면 여전히 자신의 선택이 고통스러웠지만, 이석의 사직 이후, 무주에게 벌어진 일들로 인해 원망만 쌓이게 된다.  


야간 근무를 서며 가까워진 보안 직원 효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다시금 겪게 되는 무주. 자살 시도한 아들을 병원에 데려올 때 차비를 아끼고자 버스를 타고 온 검소한 노부부부터, 자신의 부모이지만 다 죽어가는 노인을 왜 살려냈냐며 치료비를 낼 수 없다는 자식들 등. 씁쓸하고 아픈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근무 시간대가 바뀌자 아내와의 대화가 더 어려워진 무주는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 채 주저하게 되고, 지친 아내는 친정을 가는 일이 잦아지다, 서울로 직장을 잡고 이사를 하여 무주와는 떨어져 살기 시작한다. 



울음을 삼키려고 말없이 뜨거운 국물을 입에 넣는데 돌연 그런 감정이 자연스러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항상 어리숙하다는 평가를 받고 계속 미안해하고 용서받은 걸 감사해야 하는 관계 말이다. 133쪽

  

“(…) 『마태복음』 8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할 수 없었지. 한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무슨 뜻인데요?”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 140쪽


이때쯤 병원 원장은 비리 등으로 퇴출 당하고, 새로운 원장과 더불어 이석의 복직이 결정된다. 기존의 직책보다 더 높은 위치로. 그러나 다시 돌아온 이석이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한 무주. 병원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처럼, 무주는 야간근무에서 본래 근무시간대로 돌아오게 되지만, 이번엔 미납 병원비 추징의 업무를 맡게 된다.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같이 터뜨리자는 박 앞에서 아무말 할 수 없던 무주는 미납 병원비를 받기 위해 다소 강압적인 태도로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게 된다.


이석 또한 무주에게 알고 있는 것을 알려 달라고 하지만, 무주는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고통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무주는 또다른 진실의 이면을 알게 된다. 이석의 그만두게 된 사유도 자신이 짐작하고 죄책감을 가졌던 일과 전혀 다르다는 것, 그 이면에는 이석과 효와의 관계성과 이석 또한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다는 것과 더불어 다른 직원들을 몰아붙이기 일쑤였던 사무장의 이기적인 속내 또한 알게 된다. 무주는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은 조짐이 보이자, 자신을 언제고 다시 부르겠다는 옛 직장 상사를 만나러 간다. 별 소득 없는 말만 계속 늘어놓다, 전화를 핑계로 뒤돌아서 가는 과장의 뒷모습을 보며 뒤따르던 무주는 이내 우뚝 멈춰선다. 무심결에 발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 만나게 되었지만, 역시나 전하고 싶은 마음은 잘 전하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된다. 


새 프로젝트의 다른 팀원이었던 권에게서 전화가 오고, 병원에는 재차 큰일이 발생됐는데, 문득 자신의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고 무단결근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병원에 닥친 큰일이란, 사무장의 그동안 저질렀던 수많은 비리와 함께 현재 진행중인 요양시설 투자금을 가지고 달아났다는 것과 이석이 이전 무주가 한 내부고발로 인해 횡령 혐의로 고발됐다는 것, 무단 결근한 자신이 같은 한 패로 엮여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주는 되레 이런 상황들이 무언가 완결되었다 느껴졌고, 완전히 빈손이 된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본다. 자신과 아내에게 소중했던 작고 여린 아이를 지키고자 복부에 손을 포개며 조심히 걷던 아내의 모습, 그 모습을 기대어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무주. 이번만큼은 자신의 할 말이 무엇인지, 뭘 전달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다.



무언가 완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아직도 남은 것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같은 일이 반복될 줄 알면서도 다른 사무장이나 인수자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

무주는 자신에게 남은 것을 애써 생각했다. 태내 아이를 보호하려고 두 손을 복부에 포개고 어색하게 걸음을 옮기던 아내가 떠올랐다. 의지가 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기대어 간절히 무슨 말인가 시작하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대학병원에서 있었던 일부터 모두 털어놓을 작정이었다.그런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번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225-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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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고 담백한 문장 속에 많은 사건들과 불편한 진실들이 교차되어 펼쳐진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대개 비슷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에도 처음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치부하다, 결국 그 유혹에 서서히 물들어 가고 익숙해져 간다는 것,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보며 안도한다는 것, 나의 불행보다 더 큰 불행을 보며 위안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은 그렇게 이기적인 동물이다.


큰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되는 것에 반해 소설 속 분위기는 고요하게만 느껴진다. 아마 덤덤한 표현과 문장들로 자연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 것 싶다. 한때는 발전과 부흥을 이뤘으나, 이제는 황폐함과 생의 의지를 잃은 사람들만 남은 도시에서 병원은 마치 장례식장과 같다는 무주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병원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죽는 곳이기도 하다. 죽는 게 별다른 일이 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병원이라는 공간은 늘 일말의 두려움과 불편함이 함께 깃들어 있는 것 같다. 내게 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가야 할 곳이지만, 가기 두려운 곳, 보고 싶지 않은 죽음을 목도해야만 하는 곳. 새하얗고 시린, 시퍼렇고 서늘한 이미지가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무주의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처음 정의를 향한 것이었대도, 결국 또 다른 자신을 찌른 격으로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을 향하게 되는 결과 남기게 된다. 실질적인 죄를 행한 중심인물 즉, 그런 죄를 행한 자들은 번듯이 잘 살아가고 있다. 혼자 끌어안고 가야 할 짐을 떠안은 것은 모두어설픈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그들 역시 이를 통해 얻은 '권력'이라는 힘에 취하기도 했으니, 그 무거움을 아주 무시해버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손으로 돌아간 무주가 아주 실패한 인생이라고만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다시 노력해볼 여지가 있는 관계도 있고 의지도 남아 있다. 차리리 해소되지 못했던 지난 잘못을 털어내고 다시 시작하는 계기와 발판이 되어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무주가 머물렀고, 잠시간의 기쁨과 고통, 힘든 선택과 죄책감,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의 심신을 지치게 했던 이인시는 황폐한 도시의 전형 같았다. 한때는 빛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모든 게 무너지고 남은 게 없는 황량한 공간. 생의 의지를 잃어버린 곳. 이인시는 무주와 이석의 관계성은 물론 여러 인물 군상들 속 내면을 대변해주는 듯한 공간이다. 감추고 싶었으나 드러날 수밖에 없는 치부나 더럽게 여겨지는 욕망, 그러나 진실, 어두움으로 치환되는 내면의 여러 얼굴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가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렇게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무용지물의 존재로 그저 떠도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정말이지 난감하기만 하다. 편혜영 작가님의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그러한 어둡고 도망치고 싶은 내면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는 작품 같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판 첫 작품인 이 소설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만은 않다. 그러나 다음이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낯선 충격이, 묘하게 이는 파동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진실은 아픈 것이지만 아니 볼 수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삶은 진창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므로, 그 무거운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조금만 덜 물러서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가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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