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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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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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이제 일본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 스물일곱 분밖에 생존해 계시지 않는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생존자 분들이 원하는 게 그토록 거창한 것이었나. 짐승 만도 아니, 버러지 못한 짓에 대해 인간이라면, 피와 살과 뼈가 있는 인간이라면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침통한 심정에 가슴만 먹먹하고 한없이 답답해진다. 


(※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국가기념일로, 매년 8월 14일이다. 2017년 12월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전까지 민간에서 진행돼 오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됐다.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부끄럽고 한심하지만 내가 자랑스럽게 여긴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멀리 했었다. 선조들이 피로 이룬 역사와 터전 위에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아픈 역사 앞에서는 그처럼 무심했던 것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감히 짐작하지도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 아픈 과거의 현실을 생각하면 절망스럽고 막막하기만 했다. 


위안부 문제는 특히 더 그러했다. 꽃다운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겪은, 참혹한 진실을 마주하기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생존자 할머니들을 위한 일이라는 기부 등을 하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는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부끄러운 태도로, 어떻게 전 세계에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릴 수 있을 거라 믿을 수 있겠나. 아플수록 더 알아야 하고, 알수록  더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김 숨 작가의  『흐르는 편지』는 당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분들의 증언을 토대로, 열 다섯 소녀 금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다. 작품 속 시간의 순서라면  『한 명』보다 먼저 나왔어야 했지만, 전작을 쓰지 않았다면 이 작품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았을 거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써야만 했고, 꼭 나와야 할 작품인 것이다. 이렇듯 작품을 접하며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알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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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열다섯 살, 글자를 배우지 못해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지만, 흔들리는 물결에 전하지 못한 편지를 써본다. 늘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해 배가 고프고,  얼어붙은 강물에 손을 담궈 삿쿠(일제강점기 군용 콘돔)를 씻는다. 자신의 나이도 정확히 모르고 나물 캐는 대신 공장에 돈 벌러 왔다는 소녀들. 속아서 왔고, 무작위로 끌려서 왔고, 팔려서도 왔다.  일부러 밉게 보이려 하고, 굶주림에 상상하는 찬거리들은 호사스러운 것도 아니고, 당장 오늘이 며칠인 지 알길 없어도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지옥 같은 날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성병이 걸리지 않았나 치욕적인 검진을 받아야 하며, 606호 주사라는 불같은 주사도 맞아야 했다. 붉은 소독약은 매우 독하지만, 물에 희석헤서 씻어야만 병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에 쓸 수밖에 없다. 어린 소녀는 늘 소독물로 가득 찬 놋대야가 비어져 있을 때면 좁고 꽉 막힌 방 구석구석 물건 하나 둘 챙기며 짐을 챙겨 떠날 준비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허기는 채울 길 없고, 밤낮없이 일본 군인들을 받아야만 할 때면 송장놀이를 하는 것이다. 


타들어 갈 듯 쓰려오는 사타구니. 일본 군인들이 주고 가는 군표를 위안소를 운영하는 오지상(할아버지)에게 내야만 한다.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것들을 쥐어 주고선 빚이라 속이며, 철망 건너편으로는 감히 도망도 생각치 못한다. 오갈 데 없는, 중국 마을은 피신할 데도 없고, 도망친 소녀들은 하나같이 폭력으로 제압했기 때문이다.


병이라도 옮을까 소독하고 이미 쓴 삿쿠를 다시 씻어 말리면서, 수치심에 몸부림치면서도 바뀌지 않을 내일에 다시 절망하고, 고통을 잊기 위해 아편도 하게 되고, 끊임없이 허기에 시달리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구름 한 점마저 모두 고향의 그리운 음식으로 보이게 한다. 

 

에이코, 연순, 점순, 악순, 울숙, 끝순, 해금, 금실, 은실, 요시에. 죽은 이름 뒤에 새로 그 이름을 쓰게 되는 소녀들. 요시에게 죽고 새로 온 요시에가 되고. 본래의 이름도 언어도, 몸도 마음도 모두 빼앗아가는 것이다. 영혼까지 점령하려 들다니, 종국에는 일본말만 쓰게 해 조선말을 잊게 하다니. 다음 장을 넘기기가 두려운, 믿지 못할 진실들이 계속 이어지는 게 고통스럽기만 하다.  


'나'는 나이 열 셋에 비단 공장에 돈을 벌기 위해 떠나왔다. 불러도 부를 이름이 없는 '나'의 어머니는 어린 딸이 돈을 벌겠다 떠나는 게 안쓰럽지만 말리지는 못한다. 머슴살이 하는 아버지와 잔일을 하는 어머니가 얻어오는 것들로는 식구들의 끼니를 해결하기 퍽 버겁기 때문에. 잠시 '나'를 말리지 않은 어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하나, 모두 '나'의 선택이었으니 자신의 잘못이라 말한다. 소녀들 모두 조선삐라 불리는 치욕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잘못을 묻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런 와중에 어린 소녀가 아기를 갖게 되다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죽은 아기를 낳는 소녀도, 약으로 떨쳐내는 소녀도, 낳아 버리는 소녀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기집을 들어내게 됐던 소녀까지도. 배가 불러가는 소녀에게 달려드는 군인들, 


산속에 있는 군부대에서 죽음을 목도하게 되는 소녀에게, 총탄이 날아드는 위기일발의 상황에서조차 욕구를 채우고자 달라붙는 게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 살고 싶다 외쳤다. 죽어가는 군인들 사이로 소녀는 외쳤다. 그러나 끝내 죽음이 소녀를 찾아왔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 죽는 게 두려웠던 건 그 고통 속에서도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병에 걸려 생살을 찢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미쳐갔고, 아편에 중독되어 갔고, 자신을 괴롭혔고, 군인들 손에 죽어갔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군인들에 대한 연민이라니, 그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음험한 자기연민이 혐오스럽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들을 짓밟았다. 그리고는 살아 돌아오길 빌어달라 했다. 전쟁의 참상을 견디기 힘들었기에 더 약한 존재에 화풀이를 했단 말인가. 


자신들 때문에 걸린 성병을 옮을까봐 두려워하면서도 그 짓을 하러 오는 작태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인간의 이기심, 탐욕은 또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적으면 열두 살부터 많으면 스무 살 남짓 되는 어린 소녀들을 속이고 얻은 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란 참으로 알 수 없고,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짐승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원치 않는 생명을 가지게 된 소녀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쓰는 편지는 전해지지 못하였고, 배는 점점 불러왔다. 죽기를 바랬지만, 아기가 죽을까 두려워했다. 금자라는 이름 대신 일본 군인이 제멋대로 지어준 후유코로 불리는 소녀. 소녀의 이름은 열 개가 넘는다. 오늘은 몇 명의 군인을 받은 건지 세어 보는 것도, 며칠이 지났는지도 세어 보지 않게 된다. 오지 않았으면 내일은 다시 오기 때문에. 그래서 암흑의 시대가 지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에 소녀들의 삶은 또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안팎으로 손가락질 받고서 상처에 더한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아프고 아프고 또 아프다. 그저 죄스럽고 부끄럽기만 하다. 다음 장을 넘기는 게 두려웠지만 넘겨야만 했다. 중국에 그렇게 많은 위안소가 있었는지 미처 알지 못하였다. 인간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많은 일들이 행해졌었지만, 실상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 무지와 회피가 죄스럽기만 하다. 작고 여린 손을 잡고 모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따뜻한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의 호사가 죄스럽기만 하다.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다음날인 광복절엔 제 1348차 수요집회가 열렸었다. 공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라 하며,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린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대한민국 방문을 앞두고 시작되었고, 이후 정기적인 시위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여성단체, 시민단체, 학생들을 비롯한 여러 시민들이 함께 모여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으로 더욱 널리,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진실한 역사 앞에서. 일본은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이며, 진정한 사과를 해야만 한다. 전쟁의 잔혹함 속에서 행해진,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했던 잘못들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난 정권의 매국, 친일의 결과 일본은 같잖은 보상으로 10억엔 협상안을 받아들였다. 얼마나 부끄러운 행태인가. 그때 그 소녀들의 청춘과 삶의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 심신을 다치게 한 모든 폭력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깟 돈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라니. 다행히 현 정부에서는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는다 하였고, 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것이라 했다. 일본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으니, 앞으로도 더 두고 볼 일이다. 지난 역사를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받기 위한 수요집회는 계속 될 것이다.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이라 믿고 싶다. 그래야만 남은 생존자 분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그날이 오기까지 조금만 더, 

오래 오래 곁에 계셔주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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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변소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다가요. 초승달에 낀 흰 달무리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순두부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벙긋 벌렸어요. 그것을 먹으려고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7쪽



외할아버지는 어째서 딸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을까. 이름을 지울 줄 몰라 지어주지 않은 걸까. 아니면 여자라 이름이 없어도 되어서 지어주지 않은 걸까. 13쪽

 


아기가 들어선 뒤로 나는 눈동자가 아니라 아기집이 내 몸에서 가장 슬픈 곳이라는 걸 알았다. 19쪽

 


나는 죽었는데 내 심장은 뛴다. 23쪽



정말,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을까. 26쪽 (삐, 여자성기)

 


살아서 돌아와 다시 나를 찾아올까봐.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이 다시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뻔했으니까. 살아 돌아온 군인들 대개는 반쯤 미치광이가 되어서 나를 짓뭉개고, 깨물고, 찔렀다. 29쪽

 

 

어머니가 날 좀 데리러 왔으면……주문을 아무리 외워도 어머니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꿈에서조차. 95쪽

 


천황은 어째서 일본 여자애들이 아니라 조선 여자애들을 하사품으로 내려주었을까. 낙원위안소에 일본 여자애는 없다. 세계위안소에도 일본 여자애는 없었다. 전쟁은 일본 군인들이 하는데. 115쪽

 


죽은 개구리를 넣지 않았는데 아래에서 개구리 썩는 냄새가 난다. 

죽은 쥐를 넣지 않았는데 아래에서 구더기가 끓는다.

감자를 넣지 않았는데 보라색 싹이 자라 아래를 찌른다.

보라색 싹이 덩굴 숲처럼 우거져 내 아래를 뒤덮어버렸으면……. 

123쪽

 


몸이 내 것이 아닌데 나는 어째서 몸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새장 속 새처럼 몸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걸까. 몸이 죽어야 몸에서 놓여날 수 있으려나. 심장이 멎고 숨이 끊어져야. 하지만 몸이 죽으면 나는 있을 데가 없다. 숨을 데가 없다.

군인들이 들끓는 낙원위안소에서 내가 숨을 데라고는 몸뿐이다.

125쪽

 


 

세계위안소에도, 낙원위안소에도 구장이나 반장의 딸은 없었다. 일본 순사들과 친하게 지내는 집 딸들은. 열세 살이면 다 컸다던 공 씨의 말이 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몰랐다.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151쪽



“버려지겠지……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면 산 채로, 지면 죽은 채로……. 두 살 먹어서는 엄마에게 버려지고, 아홉 살 먹어서는 큰어머니에게 버려지고, 시집가서는 문둥이 남편에게 버려지고…… 가는 데마다 버려지다 보니 버리는 걸 배워서 나도 아기를 버렸어.” 

157쪽

 


죽어가는 새가 내 사타구니에 부리를 박고 있는 것 같다. 신음을 토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몸을 일으킨다. 다리를 벌리고 매스꺼운 냄새를 풍기는 사타구니를 내려다본다.

새다……. 까마귀가 내 사타구니에 부리를 박고 있다.  170쪽

 


어머니, 오늘 밤 나는 아기를 낳을지도 몰라요.

닭띠 아기를요.


어머니, 그런데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먼 데까지 끌려와 조센삐가 되었을까요. 

291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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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 한국사 수업 - 최태성 한국사 강의가 책에서 들린다
최태성 지음, 신동민 그림 / 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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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를 잇다 _ 쉽게 접하는 한국사 이야기



『최태성 한국사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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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나기를 문과체질인지라, 수학과 과학보다는 국어와 국사과목을 더 좋아했었다. 그때 수업방식은 물론 내 미련한 공부방법 또한 암기 위주였지만 중학교 때 국사수업을 들을 당시 선생님께서 참 열정적이셨다.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을 정말 사랑하고,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자부심도 있으셔서 그런지 매 수업 때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역사와 접목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알 수 없지만, 당시 우리 반 친구들은 딱히 국사에 관심이 많지 않았고, 난 극히 내성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놓칠세라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필기하기 바빴던 것 같다. 그렇게 집중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셨는지 선생님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려고 하셨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국사과목이 좋아졌다. 한때는 사학자를 꿈꾸었을 정도로.


 지금은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TV도 당시에는 즐겨보는 매체가 아니었는데, 역사드라마만큼은 열심히 챙겨봤었다. 이마저도 부모님의 뜻에 따라 가게 된 이과로의 전향으로 인해 국사 과목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멀어져 갔지만. 그렇게 달달 외웠던 시대 속 많은 인물들에 대한 것도 점차 기억에서 사라져 갔고, 역사에 관한 어떤 논란이나 고증의 시시비비를 접하게 될 때에도 무식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돌아볼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그래서 주요 사건과 인물에 대한 상식과 지식 등을 몰랐다는 이유로 비판받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뜨끔하기도 했고,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정말 많이 창피했다.


대학진학과 직결된 주요 과목에서조차 그 자리가 밀려나 외면받기도 했었던,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아끼고 보존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 너무 무심했던, 당장의 앞날을 위해 우리의 선조들이 지켜내신 것들의 소중함을 너무 당연하게도 잊고 지낸 것이 아닌지, 다시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 역사의 대한 관심이나 대중화가 마냥 반갑다. 그중에서도 최태성 선생님은 강의는 물론 여러 매체를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를 점차 좁혀가며 컨텐츠의 폭을 넓혀가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존재하는 사실들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더 깊게 들어가 당시의 살던 사람이라면 이러한 선택은 필수적인 게 아니었을지, 이해관계를 따져보기도 하고, 당시 한 나라의 수장의 국익을 위한 선택과 고민을 엿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건 새롭게 다가와서 더욱 좋았다. 

 

이 책은 기존의『키워드 365한국사』의 업그레이드 버젼이라고 한다. 시대순으로 핵심키워드들이 나열되어 있고, 부가로 덧붙인 설명은 이야기처럼 구성되어 있다. 


책을 펼치면 보이는 편지글은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일종의 당부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무조건 암기를 하려고 한다면 그 긴 역사에 대해 외울 게 좀 많겠나, 금방 질릴 것이고, 다시는 거들떠도 보기 싫고,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부담만 남게 될 것이다. 때문에 그런 접근 방식보단 좀더 흥미롭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역사가 마냥 먼 과거의 사실로써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과 또 살아가는 태도와도 큰 연관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지나온 시간동안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바뀌고 변화해왔을 지라도 결국 다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뤄지고, 또 이어져 온 것일테니 말이다.


책의 구성과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돌멩이를 손에 쥔 사람들의 수다가 시작되다_선사 

2. 한강 타이틀 매치가 시작되다_ 고대 

3. 코리아, 다시 하나가 되다 _ 고려 

4. 우리는 한글 보유국이다_ 조선 전기 

5.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어_ 조선 후기 

6. 조선, 자본주의 바다에 발을 담그다_ 개항기 

7. 만세에 ‘민국’이 태어나다_ 일제 강점기 

8. 대한민국 이라 쓰고, 기적이라 부른다_ 현대









학창시절 공부할 때도 일제시대보다는 기원전이나, 삼국시대가 더 흥미로웠었다. 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라 백성들의 삶도 많이 바뀌었겠지만, 무엇보다 타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모든 걸 빼앗긴 채 살아야 했던 당시의 사람들만 생각하면 너무 고통스럽기만 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핵심어 사전 같은 구성에 위트있는 그림이 함께 곁들여 지니 접근성도 좋다. 차례대로 읽어나가는 방법도 있지만, 한 번 전체적으로 훑어본 뒤 흥미가는 부분 위주로 읽어나가도 좋을 것 같은 구성이다. 게다가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만 나열된 것이 아니라, 근거 있는 추론 위에 그 당시의 살았던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까 싶은 인간적인 고민이라든지, 사람 사는 이야기가 맞물려 있기에 그 재미를 한층 더한다고 볼 수 있다. 반달 돌칼과 빗살무늬 토기를 보는 순간 중학교 때 국사 교과서 떠올라 더욱 반가웠다.




기원전 시대의 도구 사용에 대한 것부터 현대에 이르러 남북간 공동 성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성과 시민의 이야기까지. 우리나라 역사는 신기하게도 평범한 사람들이 이뤄낸 게 참 많다. 어떤 책에서 보았던 글처럼 나라로부터 그 어떤 혜택을 받지도 못했으면서 큰 일이 닥칠 때마다 들고 일어서는 특이한 민족성을 가졌다는. 그 민족성에 별반 기여한 것도 없으면서 뿌듯함에 괜히 우쭐하기도 한다.



중간 중간 잡학상식에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았다. 최근 방영한 드라마와 연관하여 광종에 대한 것도 그러하고, 연산이야 뭐 이젠 안 나오면 서운할 정도로 영상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 나라는 다스리지 않고 유희에만 빠졌다는, 일명 '삼천궁녀'를 거느렸다는 오해를 사게 된 의자왕의 이야기도 그러하고,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잘못된 오류를 정정해주는 것도 많았다. 흔히 남겨진 기록들은 역사에서 승리한 자들의 이야기로 후세에 들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성된 부분도 있을 테지만. 몰랐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부분에 대해 되짚어줘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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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것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의 기준에서 함부로 판단하여서도 안 될 것이고, 전해 내려오며 생긴 오류도 분명 있을테니, 앞으로 역사의 어떤 부분을 접하든 그 시대 속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역사 드라마 중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됐던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광해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관련 책을 찾아본 적이 있다. 드라마에서 봤던 광해군과 여러 책에서 말하는 광해군은 참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각각 광해군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순진하게도 드라마지만 분명한 고증을 거쳤을 테고, 창작자들 간의 시선이 그리 엇갈릴 수 있는 건지 알지 못했기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떤 게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기록의 산물이고, 큰별 선생님의 말씀대로 삶, 즉 사람이 사는 이야기와 직결되었기 때문에 남겨진 사료에 덧붙여진 살은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해석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다. 이처럼 매체의 창작물을 접할 때도 사료는 물론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또한 그게 바로 역사의 묘미이자 큰 매력이 아닐까. 나 또한 공부하면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이 있었고, 그런 훌륭한 위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때문에 다시금 역사를 찾아보고 좋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 길고 긴 사설은 모두 다 이 한 마디를 위해서였다는 걸 고백해본다.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는 단정한 판서와 더불어 나긋나긋하면서도 친절한 톤으로 설명하시는 데서 이미 큰 특장점을 느끼고 있었던 바였다. 꾸준한 태도로 한쪽으로 편중된 시선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자세 또한 존경스러웠다. 


더불어 '역사를 통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역사를 배우는 진정한 이유'이며, '역사 속 사람들의 꿈이 낳은 결과물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의 산물을 역사의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한국사를 공부해야 할 것을 다짐해본다.


두고두고 새겨넣을 마지막 페이지 속 문장처럼,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진짜 이유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메가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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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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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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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제38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수상작이자 표제작.


새로이 떠나고, 다시금 돌아오는 곳, 공항. 공항은 이름만 들어도 괜히 아득해지는 설렘을 지닌 공간 같다. 더불어 혼란한 풍경들.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지고 지나치는 사람들은 사소한 계기로 엇갈리거나, 스치는 인연이 되기도 한다. 


이릴드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이다. 사회인 자원봉사자에 지원하여 스키 강사로 일하기 위해, 낯선 나라 일본에 도착하게 된다. 세무사 일을 하고 있는 겐지는 몇 달 전 이혼을 통보한 아내의 휴가차 떠난 시애틀 여행에서 돌아올 딸과 아내를 마중나간다. 되돌리고 싶은 관계를 위한 노력으로 딸이 아끼는 인형을 가지러 가기까지 한다. 스미코는 영국남자와 결혼한 딸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타국을 향하게 됐다. 쌍둥이 손녀 조안나와 에이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보게 된 차분한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를 통해 손녀들과의 여행을 상상해본다. 가온은 공항의 풍경 속에서 한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이상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상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소년과 그의 소란스러운 가족을. 이릴드는 가온의 엄마, 즉 겐지의 아내에게 가온의 언니냐고 묻는 실수를 하고, 스미코는 서툰 영어로 이릴드에게 수줍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속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듯한 소란스러운 한 가족으로 인해 시선이 한데 묶였다, 또 다시 엉키다 풀어지곤 한다. 스치는 풍경 속에 각기 다른 사정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공항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며,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것 같다. 지나친 활기 가득한 공간 속에 속해 있다, 곧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데서 오는 왠지 모를 공허함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가온의 말과 달리 세상에는 말로만 어른들이 천지이고, 이를 다 세어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항은 이러한 결이 다른 개인의 고독이 잘 숨겨지기도 때론, 너무나도 잘 드러나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파묻혀 숨어버리기도, 한껏 그 존재감을 드러내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각자의 몫으로 지닌 고독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늬만 어른들은 대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 세상에는 어른이 너무 많다. 온통 어른투성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 많은 어른들을 전부 숫자에 넣었다가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20쪽


<침실>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아내와 달리 열다섯 살이나 어린 매력적인 애인 리에에게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후미히코. 늘 좋은 말만 해주었고, 서로의 존재와 관계성이 점차 당연스럽게 여겨졌다. 아내와 이혼을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 리에는 슬프지도, 화내지도 않는 태도로 말한다. 리에의 헤어짐은 덤덤한 듯 했고, 후미히코의 속은 한없이 요동쳤다. '곤란한 사람'이란 무슨 의미일까. 집으로 들어와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침실의 풍경과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후미히코. 헤어짐을 통해 문득 자신의 옆에 존재하는 사람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떤 향기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언젠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딱히 정의할 수도 없는, 그런. 마치 무언가를 잃고 나서 본래 자신의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듯이 말이다. 


나와는 상성이 잘 맞지 않는 것인지, 당연하게 등장하는 불륜 이야기에 사실상 반감마저 느낀다. 아름다운, 특유의 감성과 감각적인 문장이 함께 한다 하더라도. 내겐 잘 와닿지 않는다. 그 나라의 일부 당연한 정서, 일반적인 풍토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호였다. 누구에게나 취향이라는 건 존재할 테니. 이를 흥미롭게 읽어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저 나의 취향이 아니었을 뿐..



<늦여름 해 질 녘>


늘 고독의 품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나는 이타루라는 남자에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흠뻑 빠지게 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여행을 떠났고, 순간의 욕망과 끌림은 다소 과격하게 그를 먹어 치우고 싶다는 격한 표현으로 내뱉게 되고, 이에 자신의 살갗을 도려내어 전해주는 사람이라니. 한편으로는 너무 잘 맞는 두 사람이 아닌가. 시나는 그동안의 연애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그가 곁에 없는 순간에도 그를 느껴야만 직성이 풀릴 정도이다. 우연히 지나쳐 가는 한 여자아이를 보며 문득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고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소녀와 여인의 경계를 허물듯이.


시나는 홀연히 이해했다. 자신이 지금도 고독하다는 것을.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친구라고 생각했다. 저 아이는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겠지만 우리는 친구다, 라고.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시간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73쪽



<피크닉>


큰 계기 없이, 소개로 조금씩 친해졌고, 어느새 연애를 하며 결혼까지 하게 됐다. 잔잔하고 소소한 어느 부부의 일상, 그리고 피크닉. 왜 이런 풍경이 낯설게 느껴져야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바깥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고, 그에 따라 집에서 싸온 음식으로 피크닉을 하게 된 것인데. 이런 시간과 행위가 전혀 뜻밖의 것이고, 놀림과 부러움이 대상이 된다는 게 어쩌면 더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다정한 듯 무심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건 편안하고 즐거웠다. 타인과의 결속이 그런 게 아닐까, 어딘지 모를 흔적 같지만, 어느새 내 삶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어쩌면 피크닉은 이 두 사람이 갖는 또 하나의 충전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쿄코 본인이 가장 놀랐을 테지만, 나란 존재가 그녀에게는 불쾌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이물질이다. 이렇게 바깥으로 끌어내어 볕을 쬐이고 바람을 쏘여 조금이나마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89쪽


내게도 쿄코는 이물질이다. 짙은 갈색 깃털을 지닌 작은 새 한 마리와, 관목수풀 사이를 가로질러 간 검은 고양이와, 세발저전거를 탄 아이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이물질이다. 90쪽



<유가오>


에쿠니 가오리의 시대소설이라니, 퍽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보면 작가 고유의 개성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건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다. 이름 없는 풀꽃, 유가오. 그 청초한 아름다움에 대해. 모두에게 사랑 받는, 미워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남자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라고 해두면 될까, 겐지 이야기에 대해 무지하여 그 배경을 잘 모르겠지만,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가 이어진다. 그 당시의 정서도 알고 읽어낼 수 있다면 더 잘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알렌테주>


마누엘과 루이스의 여행기. 누구에게나 다정한 마누엘과 이를 불안해하는 루이스. 묵게 될 숙소에서 만난 가출상습범 소녀 엘레나와 그녀의 어머니인 아름다운 플라비아. 다른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두 사람을 보면 친구 사이로 보일지라도, 틀림없는 연인 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애써 의미를 부여한 화해 여행에서 또다시 싸움을 하면서도, 평생의 단짝처럼 너무나도 잘 맞는 두 사람.  어느 관계에서든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강요할 수도 없고, 변화를 기대하는 게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벽에 기대선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하는 두 사람은 결국 현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할 수도, 아님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처럼 결국 한 조각처럼 잘 맞는 두 사람이기에 지금을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진실은 언제나 나를 무너뜨린다. 141쪽



**



시대가 달랐고, 사는 곳이 달랐고, 관계성 또한 각기 달랐다. 잔잔하게 이는 물결처럼, 고독과 쓸쓸함의 자리가 커져버린 순간을 그려 보여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익숙한 것들도 낯설게 만들었으며, 자신의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기도 했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는 이별을 겪기도 했고, 평온하면서도 나른한 행복의 순간도 있었다. 단편소설을 쓰는 것을 여행에 빗대어 표현한 작가의 말처럼, 이번 작품집은 각각 이야기 속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었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았고, 무거운 듯 무겁지 않았다. 붕-하고 들뜬 기분과 한없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교차했다. 사람은 자신만의 가진 고독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존재함으로서 얻어진 당연한 굴레와 같이. 그러나 이야기 속 모든 인물들이 결국 둘이서 하나였듯이. 둘이였다 하나 되는 과정도 있었지만. 당연한 말로 함께하기에 기댈 수 있는 것이다. 쓸쓸하고 고독에 파묻힌 삶의 이야기라도.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의 '꼼꼼평가단7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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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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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우아함, 러시아 혁명 그 이후




『모스크바의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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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각기 다른 환경이라는 게 주어진다. 이 환경에 어떻게 순응하여 조화롭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 또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그저 핑계로만 말한다면 이 환경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불만과 포기밖에 남지 않을까. 환경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테니. 


여기 두 번의 혁명 이후, 1920년대 러시아,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한 순간 뒤바뀌게 된 사람이 있다. 바로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 경마 클럽 회원, 사냥의 명인인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다. 혼란한 시대 파리로 여행을 떠났다가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다시 돌아오게 된다. 프롤레타리아의 시대. 곳곳에서 혁명 이후 바뀐 현상들이 뒤섞인 가운데 사라져야 할 지위지만, 과거 자신의 쓴 시가 혁명에 동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명목 하에 평소 머물고 있던 메트로폴 호텔 '종신 연금형'을 선고 받게 된다. 


붉은 양탄자가 안내하는 스위트룸에서 하인용 다락방으로 옮기고 모든 특혜와 재산을 국가로부터 몰수 당하게 되었지만, 빼앗긴 자유와는 달리 백작의 세련되고 기품 있는 취향에 따라 피난처로써 좋은 터전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는 백작의 훌륭한 품성이 바탕이 되어 마주하는 사람들 또한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결코 나쁘게 보지 않는, 상대를 다른 시기심 없이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을 대해도 변함없을 것 같기도 하다. 


길고 긴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기에 분량은 방대하다. 그저 백작의 생활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고, 그 안에 녹아든 당시의 시대상을 아주 적절히 잘 보여주고 있는 게 이 작품의 또다른 강점이다. 러시아 문학에서 흔히 부딪히게 되는 장벽은 일단 어렵고 긴 이름들이다. 긴 이름이 연이어 나오면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메모해가며 읽어나가도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그 중심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어려움은 한결 덜었다. 심지어 번역의 딱딱하고 어색한 곳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재밌고, 가독성 또한 훌륭하다. 


또한, 백작의 신분의 특성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시대상은 물로 문화, 역사, 음식, 인식, 예술적 특징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로도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장면이나 행위를 묘사하는 부분 역시 굉장히 매력적이다. 때문에 낯선 부분들을 재밌게 접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자주 가는 단골 이발소의 이발사의 가위질을 묘사하는 것도 춤 동작에 빗대어 설명해준다. 머릿속에 아주 잘 그려질 수 있도록. 



야로슬라프는 가위 두 개를 동시에 들고 은발의 신사에게 마법 같은 기술을 발휘하고 있었다. 야로슬라프의 손에 들린 가위는 처음에는 무용수가 뛰어올라 두 다리를 공중에서 교차하는 동작인 앙트르샤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이발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손은 점점 더 빨라져서 마침내 가위는 고파크를 추는 카자크 사람처럼 뛰어올라 다리를 내치곤 했다.  61쪽  


호텔 곳곳에 백작의 취향을 존중해주며 잘 대해주는 직원들이 존재하고, 공주가 되고 싶어했던 이상주의자 니나, 백작의 연인이 될 인연이었던 배우 안나, 친구 미시카, 다정한 부녀의 인연 소피야 등 분량 만큼이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백작도 현실을 의연하게 받아 들이며, 잘 적응하는가 싶었지만 참을 수 없는 묘멸감이나 불현듯 찾아오는 공허함은 견디기 힘들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앞에서 다시금 생의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건, 결국엔 기억 속 그리운 고향의 맛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흥미로웠던 점은 답답한 호텔 생활에서 노동을 시작하게 된 백작의 모습이었다. 사색과 독서 등 나름의 규칙과 생활 패턴으로 살아왔지만, 생활 반경이 극히 좁아진 데에서 비롯되어, 이미 사라진 신분 앞에 백작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취향과 기품 있는 태도를 잘 살릴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당연하지만 의외성을 가지고 다가와 신선하게 느껴졌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 옷을 입고 일하는 백작의 모습, 시대의 흐름을 타고 변화하고 흔들리는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 애썼던 백작이 행복한 삶의 마지막을 가져갔으면 한다.


세상살이 팍팍하고 한 주간의 시작만으로 숨이 막히는 지금, 이 작품은 훌륭한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백작이 묘사하는 장면, 음식, 문화 등 흥미로운 부분들이 군데군데 있었고, 너무나도 인간적인 면모에 공감이 가고, 안도하는 한편 존경스러웠다. 무기력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세상은 돌고 도는 거야. 

사실 지구는 지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동시에 태양 주위를 돈다. 은하수도 돈다. 더 큰 바퀴 속의 작은 바퀴인 셈이다. 천체는 돌면서 시계의 작은 망치가 내는 종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자연의 소리를 낸다. 그 천체의 종소리가 울리면 아마 거울은 불현듯 자신의 보다 더 진정한 목적에 맞게 일할 것이다. 즉, 우리 인간에게 자신이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그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65쪽 

  


"원칙적으로 말해서 세 시대는 이전 세대의 구성원들에게 어느 정도 고마움의 빚을 지고 있단다. 우리의 나이 많은 분들이 밭을 경작하고 전쟁에 나가 싸웠어. 그분들이 예술과 과학을 바런시키고, 일반적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한 거야. 그러한 노력을 해왔으니, 설령 그 노력이 변변찮다 할지라도 그분들은 마땅히 우리의 감사와 존경을 받아야 하는 거란다." 

84쪽 



그렇지만 아무리 역사적 근거가 넘친다 하더라도 하나의 충고가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와인과 마찬가지로 이웃한 동네에서 태어난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도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 예로서, 옛날에 살던 집의 폐허 앞에 선 이 여행자는 충격이나 분노나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수풀이 무성한 길을 바라보면서 지었던 것과 똑같은 아쉬움과 평온함이 깃든 미소를 지었다. 옛 모습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라고 예상하고서 과거의 장소를 찾는다면 즐겁게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716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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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성장
이내옥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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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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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직업은 박물관 큐레이터이다. 우연한 기회로 일하게 된 박물관에서 3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됐지만, 처음엔 아름다움의 가치를 잘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작품을 보는 대선배의 안목과는 다르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선뜻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미적 안목이 전제되지 않으니 박물관은 그저 삭막한 사무실로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정준 디자이너와 더불어 그 주위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아름다움에 대한 식견이 점차 넓힐 수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을 근무하게 되면서 문화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고심하게 되었고, 서양 박물관의 유물 관리 수칙과 규정과 다르게 명확한 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 박물관 상황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하며, 조명의 중요성, 수집가들의 못 말리는 수집 욕구와 기증에 대한 이야기, 동양 문화의 아름다움, 아는 이들만 찾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풀꽃 갤러리 아소에 대한 이야기,  종교와 역사, 정치, 미술, 일본문화, 고향에 대한 이야기 등 새삼 곳곳에 간직되고 있었던 아름다움과 그 가치에 대해 놀라웠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안목의 성장'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처음엔 단순히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이를 올바른 가치로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어떠한 노하우나 방법을 얻어가려는 요령으로 읽기 시작했었다. 

  

허나, 사실 이 에세이는 오랫동안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저자의 생활 즉, 삶 그 자체로 스며든 문화 예술 역사 등 자연히 태어났고, 자연히 성장한 저자만의 안목에 대한 이야기이자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고록이었기에, 잘못된 독법으로 접근한 것 같아 아차 싶었다.

  

굳이 안목에 대해 얻은 결론을 정의해보자면, 그저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오래 응시하며 시간의 지혜가 전해주는 대로 자연히 길러지길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마치 여러 분야의 역사 강의를 들은 기분이었다. 특히 동양권 문화에 대해서. 머릿속에 얼핏 인식은 하고 있었으나, 잘 알지 못하였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나라 문화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 책이 아니었다면 영영 몰랐을 풀꽃 갤러리에 대해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소는 자연광이 스며드는 공간이 너무 매력적인 곳이었다. 가만히 바라보는, 응시하는 데서 얻어지는 기쁨도 있을 것만 같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는 사진이나 그림 한 장 정도는 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러 여건들이 전제되어야 했던 것이었지만, 저자의 감상과 다르게 나는 어떻게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여백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뻔한 구성일지 몰라도 어쩌면 아예 무지한 영역에서는 이미지만큼 효과적인 게 또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아쉬움이 남겨졌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느낌과 애정 어린 감탄에 함께 동조하고 싶은데 상상만으로는 부족한 지점이 있어 읽는 도중에 검색을 많이 해봤던 것 같다. 

  

저자에게 많은 영감을 준 듯한 도연명과 화엄경의 거대한 세계에 궁금증이 일었고, 윤두서의 그림을 찾아보고 그 멋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다양한 도시에서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경험했고, 좋은 인연들을 통하여 겪고, 느낄 수 있던 것들에 대한 부러움도 들었다. 하나의 길로 향하지만, 사실 여러 방향으로 그 뿌리가 뻗어져 나가 있는 저자의 삶의 시간들에 대한 경외감도 들었고, 멈춰있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지금이 헛헛하고 쓸쓸하게 느껴졌지만, 아직 갈길이 멀기도 하니까, 구절에 인용된 누군가의 말처럼 삶은 눈부시다고 하니, 이 빛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더욱 발을 굴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안목은 없고 고집만 있는 독자의 부족한 리뷰를 마무리해본다.



  **

  

  

1부 아름다움을 보는 눈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이란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었다. 진실은 여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우주의 운행에 자신을 맡긴다는 옛 성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봄날 뜰 안의 나무와 풀꽃의 새싹을 보며 우주 생명의 신비를 경외하고, 따뜻한 봄볕에 자신을 맡겨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녹일 뿐이다. 23쪽

  

 

어떤 분석도 끼어들 틈이 없다. 모든 존재에는 완벽한 아름다움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33쪽

  

그런데 안목이란 단순히 유물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물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포괄한다. 이러한 점에서 돌아보건대 내가 안목을 틔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러한 눈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35쪽

  

  

골동에 관한 얘기이지만, 인간사 또한 먼저 자신을 속여야 남을 속일 수 있고, 남을 속이다가 결국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 진리이다. 51쪽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고귀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가치와 품위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를 생각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조선의 아름다운 유풍을 그리워한다. 76쪽

  

모든 관계를 떠나니 무한한 고독과 대면한다. 천 길 낭떠러지에 서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순간에 열리는 새로운 세계이다. 아마 우리 인간의 죽음도 흰 눈에 덮인 겨울의 호수 풍경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82쪽

  


2부 알아본다는 것

  

모란이 상징하는 아름다움은 그것이 너무나 짧고 무상하기에 더욱 아름답고 또한 슬프다.  109쪽



3부 시골에 집을 마련하다

  


(…) 건축은 자연처럼 스스로 존재할 수 잇는 힘을 지닐 때 화려함으로 승화되는데, 그것이 인문적이고 예술적인 힘을 가진다는 것. 그런 집이야말로 ‘삶의 무대이자 피안으로, 삶을 살되 삶을 잊게 하는 집’으로서 우리 삶을 확장시킨다. 188쪽

  

우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니, 우리 생의 본질은 능동적일 수 없으며, 타락적이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가 생명이 다하면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272쪽






(이 리뷰는 민음북클럽의 서평 프로그램 '첫 번째 독자'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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