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는 동안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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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의 여왕의 유작소설집?!

 

 

 

 

『빛이 있는 동안』

 

 

 

 

 

 

애거서 크리스티는 100여권이 넘는 장편, 단편집과 희곡 작품을 썼고, 그의 작품은 1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가히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 불릴만 하다. 미스터리 작품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다양한 시리즈를 써냈다. 그 중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인『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가장 흥미롭게 읽기도 했다.

 

신작 도서들 가운데 인기 있는 작품의 리커버 시리즈나 각색된 장르 변화로 이야기에 살을 덧붙여 출간되는 도서도 있었다. 그 가운데 제목과 작가의 이름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결과는 그리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9개의 단편으로 엮인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유작소설집을 완간하려 이 구성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초기의 미숙한 습작소설들은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다. 개중 개작되어 실린 작품의 원석 같은 형태를 취한 것도 있다.

 

그녀의 작품 중 유명한 탐정인 에르퀼 푸아로가 등장하는 단편이 2편 정도 있다.

정말 단편일 뿐이다. 많은 시리즈를 창작해낸 만큼 작품성과 그 특성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랄까,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 읽을 때엔 실망할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이러한 틀을 깨고 싶고, 작가에 대해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고자 하는 모험정신이 있는 독자라면 찾을만 한 것 같다. 덧붙인 해설은 친절히 이 작품은 어디에 실렸고, 어느 시기에 어떠한 방향으로 수정되기도 했는지 안내해준다.

 

독특한 매력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잠깐 동안 그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초기 습작들의 성격은 모호함이 강하고, 구체성이 다소 떨어지긴 하다. 이중 매력적으로 느꼈던 작품은 표제작이다. 모호함이 되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푸아로가 등장하는 소설은 생각보다 재미도, 매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솔직히 기대보다 아쉬움이 많은 작품집이라 할 수 있겠다.

 

 

아쉬운 것 한 가지 덧붙인다면 차례 목록의 본 소설집의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서문에서 간략하게 안내한 작품들을 순서가 아닌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으려고 차례를 보니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건 편집 실수인지, 인쇄 실수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아쉬움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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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다 - 조심하지 않는 바람에 마음이 온통 시로 얼룩졌다
진은영 지음, 손엔 사진 / 예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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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시시함, 詩詩한 일상으로,




시시詩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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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1년에서 2016년에 걸쳐 진은영 시인이 한국일보에 연재한 '아침을 여는 시' 가운데 92편을 골라 엮은 책입니다. 시와 더불어 시인의 자신의 독법으로 간단히 덧붙인 글이 바로 옆면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총 네 가지의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있는데, 매 순간순간들을 모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늘 작가의 사유방식과 사물을 관찰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궁금증이 입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자들이고, 이는 이 세계에서 단독자로 살아가는 자들이 터득한 노하우를 얻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보게 됩니다.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성장을 지나 '사회'에 진입하기까지 생활하는 그 모든 것들은 일종의 상식과 규범 속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받아들이며 지켜가게 살게 됩니다. 그속에서 편견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느끼는 것들이 너무 획일화됐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의문을 품어야 할 순간들도 그러려니 하며 넘기게 되는 것입니다. 더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들도 늘 보는 좁은 시야 속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질 못하고 막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갇혀 있는 듯한 판단 속에서 말이죠.


때문에 가끔 막혀 있는 것들에 틈을 만들어줄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감각이 많이 무뎌졌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어떠한 순간이 견디기 힘들 때 회피해버리는 유형입니다. 충동적이며 해야 할 일을 종종 미루고 힘들어하곤 하죠. 아프지 않고 상처받기 싫어서 자꾸만 쌓았던 방어기제들이 뭉쳐 벽을 이루고 그 견고함이 어느새 자리잡고 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저는 시인들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어떤 시인은 물고기의 눈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어떤 시인은 2차원 속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런 눈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대로 보고 쓴 것들을 통해 나름의 자극을 얻기를 바라고 더불어 무뎌진 감각이 깨어나주길 바라봅니다. 저 또한 저만의 눈으로 보고, 또 읽을 수 있도록 말이죠.


책 속에 담긴 시들은 한국시인들의 시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시인들의 시도 같이 실려 있습니다. 익숙한 이름들 사이로 낯선 이름들이 보이니 또다른 궁금증이 생깁니다. 짧은 생을 마칠 때 시를 남겨두고 떠난 젊은 시인의 비명과도 같은 시도 있고, 한없이 낙관적인 시선이 보이는 시도 있습니다. 낯선 이름들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시인은 기유빅이라는 시인이네요. 아픈 사정을 가지고 자라와서일까요. 왠지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인이 각 시들에 대해 덧붙인 글은 시를 분석하고 그 의미망을 찾는 글이 아닙니다. 어쩌면 사견에 가까운 글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와 더불어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도 있고, 그 시인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때론 철학을 공부한 시인이라서 그런지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자주 말이죠.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까요. 시인은 자신의 독법이 아닌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독법이 있길 바랍니다. 시인이 읽어내었다고 해서 정답이 아닌 것처럼. 시는 각자 읽고 느끼는 방식대로 전혀 다르게 볼 수도 있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여백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잉여의 부분은 읽는 이가 채워가면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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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2장 나만의 인생 이 부분입니다. 1장의 이별의 순간에서 재밌는 부분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별이라고 하면 떠올릴 주된 테마인 사랑말고도 자신과의 이별, 하루가 넘어감으로써의 순간의 이별, 끝난 우정에 대한 이별...다양한 이별의 순간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얘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면 이상하게 이별이 떠올랐기 때문에 저는 이 부분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단지 같은 반이고 같은 과였기 때문에 친구라는 명목으로 묶어지는 관계들에서 어긋난 순간이 올 때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믿음이 깨진 듯하게 느껴지고 배신당한 기분마저 듭니다. 실제로 내가 선택하여 맺어진 관계도, 그러한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 드문데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알아왔기에 우리 우정은 깊고 소중하다 착각했었죠. 그런 우정이 진짜라고 믿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실상을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알고 지낸 시간이 짧아도 누구보다 날 잘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과는 앞으로도 소중한 우정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물론 이건 저의 성향에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돌고 돌았지만, 제가 주목했던 '나만의 인생'이란 파트에는 유독 한국 시인들의 시가 많이 배치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단순히 성공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삶을 살아가려해서일까요. 물론 이것도 행복해지기 위해서지만요. 살아가는데 의문이 드는 순간이 참 많은데 이것마저 묵살되는 현실이 너무 서글퍼집니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어느 순간 도무지 일어설 힘이 없을 만큼 사는게 지치고 고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학이 무슨 소용이냐는 사람들도 많고 사치품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습니다. 당장의 아픔을 해소해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나를 들여볼 때, 나에 대해 아직도 너무 궁금한 것들이 많을 때 맨처음 말했듯이 다른 눈이 필요할 때, 순간의 숨통이 트이길 바랄 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핸디북처럼 작은 책 속에 다양한 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매일 어느 순간이고 펼쳐볼 수도 있지요. 시인의 취향으로 선정된 시들이겠지만 그것 또한 고심하여 고르고 골라 실린 시들이겠지요. 순간을 담은 사진들도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앞서 읽고 밑줄 그었던 부분이 다음 페이지 한 구절 인용되어 사진과 함께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보는 눈이 같아서였을까요.


'감성'에 어느새 '오글거린다'는 말이 덧붙여진 요즘이지요. 말 한마디, 어조 하나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감성을 사치라 여기지 말고, 오글거리다는 평으로 밟아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이 표현하고 해소하기도 하기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이런 생각 또한 문득 들었습니다....






( 이 리뷰는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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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의 사랑과 학문
로이스 W. 배너 지음, 정병선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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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혼의 동반자였던 두 여성인류학자들의 위대한 전기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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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로이스 W. 배너는 역사 및 젠더학 교수로 재직하는 여성학자이다.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두 여성인류학자들에 대한 꽤나 심도있는 연구를 위해 방대한 자료와 힘겨운 싸움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단한 끈기와 열정과 인내로 이뤄낸 과업인 셈이다. 자신의 노력을 통해 이러한 방대한 양의 전기서가 나왔으니, 그동안의 고통을 토로할 만하다는 생각을,읽어나가는 독자로서는 백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 단순히 두 사람의 저서나 연구에 대해 언급한 것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대해 꽤나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는 1부 1장의 선구자라는 제목부터 짐작해볼 수 있듯이, 저자는 그들의 조상의 삶까지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집안 내력을을 통해 자라온 환경이나, 성장과정 등을 통해 그들이 어떤 인물로 자라게 되었는지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것도 고향을 방문하거나, 연구자들이나 관련된 인물을 만나고, 연구자료를 살피면서.



마거릿과 루스는 1922년, 뉴욕 바너드대에서 개설한 인류학 입문과정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프란츠 보애스라는 교수 밑에서 각각의 학문의 지평을 넓히기 시작하는데, 당시 마거릿은 심리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심을 하던 시기였다. 저자의 표현을 빌어 설득에 꽤나 소질이 있었던 루스의 권유 덕에 문화인류학에 들어서게 된 마거릿은 처음부터 루스에게 강하게 끌리고 있었다. 루스 역시 자신의 우울했던 성질을 감추기 위한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마거릿에게 첫 눈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둘은 평생을 두고 영혼의 동반자로써 친구이자, 학자이자, 연인으로 지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공통된 부분이 있겠지만, 상반되는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자라온 환경이나 교육방식의 차이에서 또 다르게 형성된 특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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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엄하고 독실한 크리스찬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왔다. 타고나기를 예민한 루스는 자주 구토병을 앓았고, 동생에 대한 열등감에 비교되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그러나 타고난 감수성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우울한 성향의 원인이 정서적 아동학대 때문인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올 정도로 바깥에서 보기에는 큰 계기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루스는 어릴 적부터 환상이나 공상에 몰두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종교를 통하여 이런 기질이 다스려지길 바랐고, 나름의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해 늘 생각하며, 정교하고 복잡한 자살을 꿈꾸기도 했다니, 죽은 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관 속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을 때도 그러했다. 그에게 죽음은 낭만화된 경향이 있었던 게 일찍이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고 가는 것이기에, 그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미지를 형상화시키는 데에도 타고난 데가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강연을 하다가도 떠오르는 이미지의 생생함에 자주 멈칫한 적이 있다고도 한다. 루스가 기피했던 이미지의 대표적인 예로는 닭장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그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열한 살 무렵에는 신장이 무려 170cm였다니, 무척이나 건장한 체격을 가졌던 것 같다. 모나리자와 같은 수줍은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 안에 내재된 남성성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고, 특유의 신경질적인 부분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주변인을 대했다고 한다.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그는 특히 자신이 그리는 환상세계에서 남성적 골격을 가진 무녀 시빌의 이미지를 자주 차용했다고 한다. 꽤나 우호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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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은 이와 반대로 일반적인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듯 보였다. 부모님 두분 다 교사아자 학자였고, 어머니는 자유연애사상을 가진 개방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특히 인종차별을 지양하며 하녀나 주변 일꾼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늘 주의를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아버지의 외도와 어머니의 엘리트주의의 틈새로 조숙한 아이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마거릿은 활동적인 낙천주의자였다고 한다. 사랑을 준 동시에 상처를 준 것 역시 부모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마거릿은 자신안의 남성성을 너무나도 두려워했다고 한다. 안정된 결혼생활을 꿈꿨으며,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싶어한 동시에, 아름다운 여성에게 끌리기도 했다. 니체의 사상에 동의한 부분이 있었으며, 자유연애와 양성애적 태도를 지향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웬만한 남성보다 더 정력적인 활동가였던 게 심리학 석사학위 논문을 쓸 당시, 인류학 박사학위 논문을 동시에 진행시켰으며, 시간제 근무까지 했다고 하니 대단한 열정을 가진 인물인 것 같다. 이는 루스와 마거릿 모두 공통된 부분이기도 하다. 둘다 자신이 연구하고 갈고 닦는 학문에서 성공을 하고 싶었고 명예를 얻고 싶어 했다는 점이 공통된 부분이다.

또한 여성스럽고 화려한 옷을 즐겨 입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끼는, 이른바 연출자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겪었던 차별을 통해 이미 소수자의 세계를 경험해봐야 했고, 이에 굴하지 않고 인기를 얻어내기 위한 노력을 한 것 또한 놀랍고 대단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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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닮은 부분만큼이나 상반된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두고 '시빌'의 이미지에 대한 대비되는 의견을 나눌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각자 자신만의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이는 저서를 쓸 때 가장 긍정적으로 작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인류학과 여성학에서 두루 영향을 미칠 굵직한 연구와 저서를 남겼다.

루스 같은 경우 특유의 감수성을 토대로 인간의 사상, 행동의 의미를 심리학적으로 파악하려 했었고, 문화와 퍼스낼리티 연구나 국민성 연구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주요저서로는『문화의 유형』,『민족-과학과 정치성』,『국화와 칼』등이 있다.

마거릿 같은 경우 실제로 뉴기니, 발리섬 등의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관찰하였다. 청소년기에 있어서 문제와 성 행동에 대한 이론을 발표하였고, 미국 문화인류학에 심리학적 방법을 도입하고 발전시켰다. 주요저서로는『사모아의 성년』,『마누스족 생태 연구』,세 미개사회의 성과 기질』,『남성과 여성』,『권위에 대한 소비에트인의 태도』등이 있다.

마거릿 역시 국민성에 관한 비교연구에서도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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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부분들이 군데군데 자연스럽게 잘 녹여져 있는데, 이들의 성장과정과 관계성, 인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 저서를 쓰게 된 배경, 연구를 진행시키는 데에 따른 노력 등은 물론, 당시의 체제 이를 테면 가장의 윤리주의라든지, 결혼을 하면서 완성될 것으로 생각되었다는 여성성이라든지 현대의 사고방식과 비견해 주목할 부분들이 많았다.

동성간의 스매시, 크러쉬 열풍이라든지, 레즈비언 문학을 창시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 성경의 룻기 구절이라든지, 같은 인류학을 공부하면서도 여성학자들을 견제했던 남성학자들의 태도라든지 정말 사소한 것 하나부터 거대한 세계나 이론에 대해 언급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대단한 책이다. 그들의 조상의 삶을 훑으면서 가정환경, 성장배경을 고증을 통해 상세히 서술한 것도 그렇지만, 그들의 학창시절 교우관계, 연애이야기, 대학시절 영향을 미친 주변인들이다 유명인사에 대한 부분, 당시의 젠더문화나 연구에 대해서도 관련된 부분은 모두 언급하고 지나간다. 그래서 각주를 제외하고도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정말이지 엄청난 분량이다. 

고로 두 사람의 관계성에 대해 어떠하다고 결정내리기 보다 그들의 저서를 더불어 같이 펼쳐놓고 부분 부분 음미해가며 읽어야만 완독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난 제대로 된 완독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일단 너무 무지했었기 때문에)

인류학에 무지했고, 여성학에 무지했고, 두 사람 이름을 완전히 처음 접한 사람은 멘붕에 빠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가 그러했다. 차라리 두 사람의 저서를 읽고서 시작했다면 더 잘 읽어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자꾸만 남는다. 내가 예상하고 목표했던 지점과 이 책의 본래 목적이 약간은 비껴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약간의 오류일 뿐이다. 내 스스로가 가졌던 잘못된.

여튼 이 책은 인류학에 관심을 두고 있고, 루스와 마거릿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공부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도움을 될 책임은 분명하다. 그만큼 대단한 업을 이뤄내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다루고 그 사람의 연구과제를 다루기만 해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데 무려 두 사람의 삶을 동시에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두 사람의 관계성을 염두해두면서 말이다. 저자 역시 페미니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이니 더할 나위 없다. 좋은 연구서적인 동시에 참고서적이 되어줄 것이다(입문서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 


(당연한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누군가 대신 이렇게 연구해줘서 감사한 마음마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 이 리뷰는 현암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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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윌리엄 맥스웰 지음, 최용준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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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허공에서" 찾아낸 것은, 가족이란 그 무엇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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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늘 뜻밖에 찾아오는 것이고, 위로로써 건네지는 말들이 때론 무자비한 폭력과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란 관계 자체가 참 오묘하다고 느껴질 때가 더러 있는데요. 

분명 매일같이 생활하는, 나와 피를 나눈 관계의 사람들인데도 어느 순간 너무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는 거죠. 가족의 관계성에 면밀히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죠. 가끔은 서로 너무 안맞아 지치다가도, 어느 순간 그 곁에서 안식을 얻기도 합니다. 이처럼 '가족'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무언가를 내포한 관계인 것 같습니다.



윌리엄 맥스웰의 장편소설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에서는 각 세 사람의 관점에서 어머니이자, 아내인 엘리자베스와의 관계를 그려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이 여인은 죽음의 문턱까지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죠. 마치 남은 가족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려는 것처럼 말이죠.



소설은 버니와 로버트 제임스 시점으로 전개가 됩니다. 같은 현실을 다른 눈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공간에서의 심리를 단순히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 속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는 이가 달라질 뿐입니다. 즉,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자는 척 하는 아이 버니, 유행성 독감에 걸린 버니 곁에 가지 못하도록 어머니를 지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다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로버트, 첫 만남에서부터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이끌려 그녀의 방식대로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부자 관계에 너무 서툴기만 한, 아직도 옆자리의 누군가를 느끼는 제임스. 휘청거리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 인물군상들. 아이린, 소피, 카를 등 주변 인물 또한 허투루 지나치지 않습니다. 

 

 각 인물들이 하는 행동이나 가치관 등에 관한 묘사는 모두 층위가 다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그런지 그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라서가 아니라, 인물을 그리는 방식이 장인의 기술처럼 견고하고 섬세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그들의 이야기가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보통 우리의 삶과 같은, 보통의 가족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다만 그려지는 인물들이 조금더 다른 특성을 가졌을 뿐입니다. 세상에 대해 좀더 예민하다고나 할까요. 번역 특유의 문체가 거슬리거나 하는 문제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그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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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맥스웰은 앨리스 먼로가 특히나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니 부록으로 실린 그녀의 감탄으로 점철된 글도 함께 읽어보면 그 매력을 한층 더 깊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맥스웰의 작품을 전반적으로 훑어가면서 언급하는 부분이 꽤 정성스럽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말미, 엘리자베스의 장례식에서 제임스가 로버트에게 하는 말은 생의 의지를 다지는 선언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든 인물이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별이 있고, 상실에 고통스럽고 결코 잊을 수 없을지라도, 남은 자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니까요.


일상의 습관이라는 게 신기하게도 누군가 떠난 후에도 계속 그를 호명하게 되는데요. 이를테면 누군가가 썼던 방이면 그 사람을 잃고 나서도 한동안, 새로 다른 이가 살기 전까진 거기는 그 사람의 방으로 불리게 됩니다. 엘리자베스의 가족도 그러했겠죠. 때문에, 조금씩 예감했고, 서서히 떠나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방의 모든 선과 면은 어머니를 향해 굽어졌기에 깔개 무늬를 볼 때도 버니는 자연스레 어머니의 신발코와 관계 지어 보았다. 어떤 면에서 버니는 어머니의 존재에 나뭇잎이나 꽃보다 훨씬 더 의존했다. 버니의 물건들이 그 물건인 동시에 어떤 경우에는 기사와 십자군으로, 혹은 비행기로, 혹은 행렬하는 코끼리로 변하기도 하는 것은 어머니의 존재 덕분이었다. /23쪽

이윽고 어머니가 말했다. "여자 뒤통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전날 로버트를 아무도 없는 데로 데려가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쓰던 예쁜 유리잔이나 꽃병은 모두 깨뜨리겠다고 약속해달라고 했어. 내가 죽은 뒤에 다른 여자가 내 물건을 쓰는 꼴은 보고 싶지 않거든."
버니는 눈을 번쩍 떴다. 다음 순간, 자신이 자는 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다시 눈을 감았다가 도로 떴다. 이번엔 좀 더 조심스럽게 떴다. 창들이 흔들거렸다. 버니는 녹색 옥수수밭에 있었다. /65쪽

……로버트의 잘린 다리 밑동이 아파오기 시작하자 가족은 전문의에게 장거리 전화를 건다. 전문의가 와 깁스 길이를 재고 나서 밑동이 아픈 증상은 정상이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리라. 무릎이 생기고 있으니 아픈 게 당연한다고, 한 달이면 새 무릎이 생길 거라고 할 것이다.
(……)
이 대목이랑 저 대목은 좀 더 다듬어야겠어. 로버트가 생각했다. 마취에서 깨어나 손으로 이불 위를 더듬어보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정도면 됐다. 최소한 짬을 내 다시 생각해볼 때까지는. /131-132쪽

어머니는 반대쪽 둑에서 로버트를 향해 괜스레 웃어 보였다. 로버트 눈에는 어머니가 하늘과 시내, 그리고 이따금 여남은 장식 한꺼번에 떨어져 둑 아래로 들어갔다가 다시 떠오르는 노란 나뭇잎을 향해서도 웃는 듯이 보였다. /183쪽

제임스는 생각했다. 어떤 가족이든 다 이런 식이야. 영원히 잊히는 건 절대 없지.
/233쪽

제임스는 살아 있었고, 그게 문제였다. 자기 삶에 갇혀 숨 쉬고 있었고 거기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사실을 알았고, 조랑말 마차가 타고 제임스를 따라왔다. 제임스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따라왔다.
제임스는 기뻤다. 엄청나게 흥분했다. 손과 무릎이 떨렸다. 그는 좁은 골목길을 달렸다.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계속 달렸다. 호리호리한 말과 등불 달린 마차가 앞길을 막아설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등불은 그 아래의 남자 얼굴을 비췄다. 끈기 있어 보이는, 뭔가에 열중한 야윈 얼굴이었다. /248-249쪽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는 젊은 가족의 삶, 그리고 그 가족의 삶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피폐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재는 맥스웰의 소설들에 계속해 등장하기에 자전적인 내용으로 보이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완전히 그의 과거와 같지는 않으리라. 각 이야기에는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주변에 새로운 사건이 있다거나 중심부 근처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거나 새로운 각도, 발견들이 있다.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 우리가 그러하듯 자라고 변화하지만 절대 사라져버리지 않는 이야기들과 똑같이 말이다. /부록_맥스웰-앨리스 먼로,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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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접시의 시 - 나희덕의 현대시 강의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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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 전수받는 시 읽기의 노하우

 

 

 

 

한 접시의 시』





시라는 장르는 참으로 매력적이지요. 물론 어렵다는 편견을 쉽게 지울 수 없는 것이 저 역시 시는 소설과 달리 너무 어려운 장르로만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많은 말들과 사유들이 한 문장 혹은 한 단어 등으로 압축되어 있으니 어렵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이렇게 시가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어교육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시의 요소와 형식은 무엇이며, 구조는 어떠한지, 시적화자는 누구니, 청자는 누구고, 의미망은 물론 리듬은 내재율, 정형률 등등 정해진 답이 있고 그걸 외우다시피 하니 정작 음미해야할 시의 맛은 혀끝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일례로 떠도는 이야기 중 어떤 시인의 자녀가 수업시간에 그 시인의 시를 배우게 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운 그대로 시인에게 전하니, 자신도 모르게 의미가 모두 정의되어 있어 되레 당혹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고들 합니다. 그럼 문학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도 정해진 시스템 속 구축되어진 내용들을 바탕을 하고서라도, 읽는 학생으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주어져도 하는 게 타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걸 오답이라고 칭할 게 아니라 해석의 자유라고 여겨지면 어떨까요. 물론 필수과목의 교과서 중 국어교과서를 가장 좋아하고 읽기를 즐겼던 저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교양과 지식을 쌓는 데 있어서의 올바른 시스템을 통해 배움을 얻게 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괜한 아쉬움에 한 번 적어봤습니다. (이것도 얼추 십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말한 것이니, 지금은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르는 것이구요.)

 

 

해서 소설만큼 시도 많이 사랑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좋은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혼자 중얼거리듯 적는 게 아니라 말하듯이 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시는 교과서에 많이 실리기도 했고, 시 문학상을 모조리 휩쓴 시인이기도 하고, 현재 교육자로서 시를 가르치는 입장에 서 있기도 합니다. 그녀는 실제로 고등학교 교사로서 근무한 경험도 있기도 하니, 어떻게 보면 시인인 동시에 교육자로서의 삶이 거의 몸에 베인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엔 시를 통한 치유의 방식이랄까요, 각박하고 지친 삶 속에서 쉼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데, 또 마냥 쉬기에는 어렵기도 하고, 늘 성과와 달성할 목표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니 보니 쉬는 것도 쉬는 게 아닌 형태가 돼버렸죠. 해서 시 읽기라든지, 치유매체로써 시를 모은 책들이 많이들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중에서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이유는 시를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초보 독자들에게 길잡이 되어줄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물론 시읽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음미하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읽다보면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읽고, 혹은 그 이전에 잘 안 읽혀서 난감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친절하게도 [한 접시의 시]에서는 여섯 갈래로 나누어 시를 만나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시적 언어와 상상력, 화자, 리듬, 이미지, 은유와 상징, 서정과 서사. 대략 이렇게 말이지요.

 

각 갈래별 설명과 덧붙여 예시로 든 시가 부분 부분 발췌되어 있고, 관련된 특성이 잘 드러난 시들을 몇 편씩 덧붙여놔서 시를 읽고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그래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시인의 개별적으로 추가한 해석? 풀이라고 해야 할까요. 덧붙인 설명들이 세세하게 덧붙여 있어, 시인의 시 읽기의 노하우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정독하고 나면 시인이 시를 굉장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훌륭한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것도 굉장히 알찬 수업을 말이죠(교과서 같아 싫으신 분들도 있으시겠지요).

 

 물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껴지는 것은 모두 개인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니, 옳고 그르다 할 수는 없습니다. 입맛에 맞으면 계속 읽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시를 읽은지 오래되어 도무지 모르겠고, 답답하고 왜 이렇게 안 읽히는 것일까 짜증이 치밀 때, 찾아보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느낀 시의 매력이란 다 보여주지 않는데에 있습니다. 즉 시인이 섬세하게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 들어가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시적인 것'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가지기 쉬운 장르이기도 합니다만, 시는 감성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감정과잉이 되면 되레 매력이 사그라지는 법이죠. 단순히 이야기 하자면 슬프다고 대놓고 슬프다고 말하는 것은 시라고 말하기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슬프다고 직접 말하고 드러내는 것보다, 그려볼 수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측면에선 논리가 분명해야 되기도 하는 것이죠. 시적 비약도 분명히 존재하지만요.

 

아직 시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못해, 떠들어본 것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듯이 말이죠.

 

 

이 책에 실린 많은 시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시 두 편을 남기고 어색한 이 말투와 리뷰 같지 않은 사설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나'와 '너'는 이동 중 part

 

 

먼지처럼 

 

 

                              - 이장욱

 

 

 

 

나는 코끼리의 귀가 되어 펄럭거리고

너는 개의 코가 되어 먼 곳을 향하고

우리는 공기 중을 부드럽게 이동하였다.

 

활명수를 마시고 있는 약국 안의 사내와 함께

머리를 말리고 있는 여자의 거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배경이 되어

무한히 지나갔다.

 

오늘 아침의 세계는 역사와 무관하고

어젯밤의 세계는 다만 어젯밤의 세계,

우리는 어지럽고 아름다웠다.

먼지처럼

음악처럼

 

오늘은 누군가 성수와 뚝섬 사이에서 사라지고

누군가 병든 유태인처럼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누군가 박물관의 입구처럼 조용해지고

아침에는 추리 소설 속의 탐정처럼 깨어났다.

 

노련한 사서들은 언제나 음악의 비유를 경계했지만

우리는 미래의 음표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에

집중해야만 하는 피아니스트와 같이

 

나는 내일도 기린의 목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너는 모레도 하마의 입처럼 무거워졌다.

우리는 삽십 년 후에도 가득한 먼지처럼

천천히 이동하였다.

 

 

           -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 지성사 2006 

 

 

 

 

* 물로 지은 방 part

 

 

눈물 한 방울 

 

 

                              - 김혜순

 

 

 

 그가 핀셋으로 눈물 한 방울을 집어 올린다. 내 방이 들려 올라

간다. 물론 내 얼굴도 들려 올라간다. 가만히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으면 귓구멍 속으로 물이 한참 흘러들던 방을 그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가 방을 대물렌즈 위에 올려놓

는다. 내 방보다 큰 눈이 나를 내려다본다. 대안렌즈로 보면 만화

경 속 같을까. 그가 방을 이리저리 굴려 본다. 훅훅 불어 보기도

한다. 그의 입김이 닿을 때마다 터뜨려지기 쉬운 방이 마구 흔들

린다. 집채보다 큰 눈이 방을 에워싸고 있다. 깜빡이는 하늘이 다

가든 것만 같다. 그가 렌즈의 배수를 올린다. 난파선 같은 방 속

에 얼음처럼 찬 태양이 떠오르려는 것처럼, 한 줄기 빛이 들어온

다. 장롱 밑에 떼 지어 숨겨 놓은 알들을 들킨다. 해초들이 풀어

진다. 눈물 한 방울 속 가득 들어찬, 몸속에서 올라온 플라크톤들

도 들킨다. 그가 잠수부처럼 눈물 한 방울 속을 헤집는다. 마개가

빠진 것처럼 머리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한밤중 일어나

앉아 내가 불러낸 그가 나를 마구 휘젓는다. 물로 지은 방이 드디

어 참치 못하고 터진다. 눈물 한 방울 얼굴을 타고 내려가 번진

다. 내 어깨를 흔드는 파도가 이 어둔 방을 거진 다 갉아먹는다.

저 멀리 먼동이 터오는 창밖에 점처럼 작은 사람이 개를 끌고 지

나간다.

 

 

           - 『불쌍한 사랑 기계』, 문학과 지성사 1997

 

 

 

 

 

 

(소리 내어 읽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읽다보면 입에 걸리는 구절도 있고,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전달해주기도 하기 때문에, 직접 천천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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