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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평점 :
당신은 평생 이 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을 알지 못할 거야."
『환상통』
덕질을 다루는 문학소설이라니, 그것도 스물다섯의 젊은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환상통은 몸의 한 부위나 장기가 물리적으로 없는 상태임에도 있는 것처럼 느끼는 감각을 말한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M의 시선, 2부는 만옥의 시선, 3부는 만옥을 사랑한 민규의 시선을 담은 이야기다. M과 만옥은 아이돌 N그룹 공개방송을 기다리다 우연히 여러 차례 만나게 되어 말을 나누게 되고, 가까워지게 되었다가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게 된다.
M과 만옥의 언어는 비슷한 듯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중심적으로 보는 것도 각기 다르다. M은 영상이나 이미지 등을 통해 좋아하는 마음을 발전시키며, 만옥은 멀리 앉아 있는 자리에서도 스크린 보다 무대 위의 그들의 흐릿한 모습을 보고자 한다. 이미지와 실재를 비교하는 듯한 전개 양상이 흥미롭다.
M은 통속적으로 아이돌이나 기타 서브 컬쳐를 즐기며 좋아하는 것을 폄하하는 시선들에 대해 대항하듯, 자신의 마음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M의 언어는 좋아하는 대상을 다 씹어 발라버리려는 듯 거칠고 과격하다. 반복되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넘어서고, 부족한 언어를 충족시키고자 여러 연애소설을 탐독하게 된다. 그러나 쉬이 이입하지 못하고 괴리감과 거부감마저 들게 되는데, 흔히 등장하는 남녀 설정이 나이든 남자와 어린 여자였기 때문이고, 자신의 사랑은 짝사랑의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덕질은 그냥 사랑도 아니고 이상한 사랑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M은 언어로 기록을 남기려 할수록 이유 모를 회의감 같은 감정이 일게 된다. 그건 마치 가닿을 수 없었던 무언가가 언어의 모습으로 재탄생될 때 그 진위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에 대한 허무함이 아니었을까. 대상에 대한 감정의 민낯을 보게 되었던 게 아닐까.
M은 그의 사랑이 기다림이라고 정의했다. 공개방송 무대를 기다렸으며, 다른 행사 무대의 스케줄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또 기다렸다. 어느 날, 그런 기다림의 끝에 영화촬영 소품으로 쓰인 눈을 보며 웃던 M은 그의 타오르던 사랑을 접게 된다.
만옥은 만개의 옥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의 여자이다. M과 같이 N그룹의 민규라는 멤버를 좋아하며, 사랑하고 있다. 그녀는 사생처럼 일거수일투족 좋아하는 멤버의 생활을 뒤쫓진 않지만 그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더 알고 싶고 더 이해하고 싶어 사랑을 하는 것이다. 마치 연인 관계처럼 무대 위 누군가 민규에게 조금만 닿아도 격렬하게 분노한다. 분노할 때의 만옥은 몰아일체의 경지의 다다른 듯 욕설을 내뱉곤 한다. 주변을 지치게 하는, 자신을 좀 먹듯이 괴롭히며 사랑하는 만옥은 사랑을 하는 것인지 괴로워하는 것인지, 헛갈리며 포기할 선택지가 없으니 차라리 네가 죽어주길 바라기도 한다는 생각마저 한다.
만옥의 사랑과 M의 사랑은 중복된 내용으로 발화하기 때문에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M은 어느샌가 덕질을 그만두었고, 만옥은 어느샌가 죽음을 맞이했다. 만옥의 죽음은 민규의 언어로 설명되어 있지만,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상한 사랑을 하는 그들 중 더 이상한 사람인 만옥이 위태로운 모습으로만 비춰졌다 하더라도, 그 말로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보상 받기 위해서인 듯 과격하고 외설스럽기까지 한다. 뼈와 살을 발라준다느니, 눈썹 한 올 한 올 핥아 올려주고 싶다는 등. 그들만의 언어로 “씨발, 죽어도 좋아”는 그러한 감정과 욕망의 집합체 같은 표현인 것이다.
마지막 3부는 공교롭게도 앞선 두 사람이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와 이름이 같은 남자의 이야기다. 민규는 만옥을 짝사랑하는 남자이고, 한결같이 외면당하면서도 그 옆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만옥이 죽고 난 후, 그녀를 더 이해하고자 같이 덕질을 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함께한 M을 만나 당시의 만옥이 어땠는지를 듣곤 한다. 그렇게 여러 시도들이 쌓이고 끝내 좋아하는 이 발치에도 다가가치 못한 만옥 대신 민규라는 멤버에게 만옥의 이름으로 사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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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엔 신선하고 날 것 그대로의 비유들이 넘쳐난다.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욕망의 종합적인 표현으로도 보인다.
팬질, 덕질이라 불리우는 사랑이 특수성을 존중받지 못한 데서 오는, 짝사랑에도 속하지 않는 이상한 사랑이라 불리는 그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까발리고 있다. 이와 같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그들의 세계 속 전문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소비하는 방식, 예를 들어 사인회 당첨을 받기 위해 앨범을 몇 십장씩 사는 것과 같이 실제 경험한 사례를 넣어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작가는 휴학생 시절 덕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노라고 고백했다. 덕통사고에 대해서는 소설의 뒷부분 작가 인터뷰에 실려 있다. 다소 과격한 표현들이 난무하지만 통속적인 편견의 시선을 향한 외침들이 왠지 모를 통쾌함을 선사해준다.
작가는 서브컬쳐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이러한 작품도 쓸 수 있었다고 하였다. 나 또한 일명 덕질이라고 하는 서브컬쳐를 맹목적으로 좋아한 적도 있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했었다.
팬이 아닌 일반인을 머글(해리포터에서 마법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머글의 시선에선 팬은 빠순이라고 폄하되며,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경험이 많기 때문에, 나이가 더 먹었기 때문에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현실 속에서 환상을 쫓는 듯 보이는 빠순이들을 한심하게 여긴다. 그러한 가치 판단은 모두 각자의 것이다. 같은 현실 속에서도 모두 각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듯 살아가는 방식 또한 다르다. 그저 하나의 일면인 것이다. 자신의 기준이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기준은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개개인의 기호사항이니까.
덕질이 이상한 사랑으로 치부되는 이유는 관계라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상대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얻어지는 관계성을 여기에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러한 애정을 단순히 이상하게 치부하는 것은 편견이자 관계의 권위를 따지는 것 같이 느껴지기에 되레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굳이 관계를 직면하며 얻어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개개인에게는 일대일의 관계가 아닐까. 그렇게 하나씩 모여 하나의 거대한 팬덤으로 묶이게 되고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특성만으로 든든함과 안정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도 오랜 시간 함께 해나간 사이에서의 견고한 신뢰도 부여된다.
이러한 특수한 관계성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소설이다.
M과 만옥의 기록은 어쩌면 그 누군가의 기록이 아닌 덕질을 하는 이들의 대체적인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고백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덕질하는 거 행복한 덕질이 될 수 있도록, 맘껏 표출시킨 것이다. 뜨거운 열망을 담은 고백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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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는 참신했고, 신선했고 날 것 그대로의 생명력이 살아 있었으며, 과격하나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문단에서는 다뤄진 적 없었기 때문에 더 눈길이 갔을 것 같다. 호기심에 구미가 당기는 소설이지만 그들만의 언어에 거부감이 든다면 그 진입장벽을 넘어야만 하는.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적 없는 것을 까발리는 것만큼 통쾌한 것도 없지 않나 싶다. 이러한 힘을 지니고 있는 젊은 작가가 부러운 동시에 다음 작품 또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