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긴 잠이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독한 탐정, 사와자키를 만나보자

 

 

『안녕, 긴 잠이여』

 

 

 

 

하라 료의 작품 중에서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내가 죽인 소녀』와 같은 전작이 아닌 세 번째 작품인 『안녕, 긴 잠이여』을 제일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요근래 탐정소설을 주로 탐독하고 있는 모양이 됐지만 새로운 탐정을 만나는 설레는 일이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리뷰 글에서 호평과 호평에 이은 글들을 보아하니, 너무 기대가 되었다.

 

사와자키는 40대 후반 남성이자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 와타나베는 사와자키를 탐정의 길로 인도한 파트너이자 탐정사무소의 소장. 그러나 십 여 년전 폭련단 조직 세이와카이의 각성제 거래현장을 잡기 위해 경찰이 준비한 1억엔과 조직이 준비한 3kg의 각성제를 미끼 역할을 맡게 된 와타나베가 들고 잠수를 타버린 것. 그의 행방을 비롯한 노여움은 파트너였던 사와자키에게로 향하게 된다. 와타나베의 거취와 돈의 행방 등을 끊임없이 묻는 경찰 니시고리 경부와 세이와카이의 간부 하시즈메. 후에 둘은 본인들의 목적을 위해 사와자키의 목숨을 기꺼이 살려주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야기는 약 400여일만에 도쿄로 돌아온 사와자키에게 한 달 전부터 기다린 의뢰인이 있었으며, 이를 대신 전해주던 노숙자 마스다 게이조와도 관계가 엮이면서 시작된다. 의뢰인 우오즈미 아키라는 고교 야구생일 당시 승부조작 혐의로 힘든 시기를 보낸 청년으로, 무혐의를 인정받았으나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었던 누나 유키가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주변의 시선으론 누나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답답한 동생으로 그려지지만, 사실은 죽기 전 울면서 전화한 유키가 승부조작을 권했단 사실,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경기에 임했으나 결국 지고 말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라커룸엔 오백만엔이 담긴 가방이 발견되었다는 것 등. 사건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고, 여전히 의문을 지울 수 없던 우오즈미가 습격을 당해 입원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게 된 계기가 되어준다.

 

사와자키는 어떤 인물을 대하든 간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 겁을 먹었던 연민을 느꼈던 간에 이를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무덤덤한 태도를 일관하며 냉정한 시각으로 사건의 증언부터 인물간의 관계가지 모두 파헤치고 다닌다.

 

사건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인물인 아키라의 누나 유키, 그녀는 정말 자살한 게 맞는 것인가, 아니면 타살이었을까. 그녀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가 무엇인가. 사건 뒤에 정말로 감춰진 사실들이 드러날수록 역시 추리소설의 묘미인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다. 진짜 숨겨진 흑막이 누구였는지도.

 

 

소설은 500페이지 이상을 육박한다. 긴 호흡이지만 차근히 읽어나간다면 좋을 것 같다. 허나 전작들을 읽어왔고, 사와자키 탐정과 그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탐색을 모두 끝낸 독자라면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을 테지만, 처음 읽는 독자는 나처럼 초반을 매우 지루해할 수도 있다. 중반까지 지지부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나, 중후반 말미에서부터 긴박한 서사 전개가 가쁜 호흡으로 진행되니 뭔가 몰입력을 확 올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후반은 정말 재미있게 봤다.

 

작가와 역자가 밝혔듯이 하라 료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하드보일드를 쓴다 함은 챈들러의 문체처럼 쓰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이 책의 제목도 챈들러의 작품에서 따와 지었을 정도. 이에 역자는 하라 료의 작품을 즐기는 방법으로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을 읽은 후, 하라 료이 작품을 읽길 추천하기도 한다. 그럼 더 알찬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이는 다음 기회에 전작들을 읽기 전에 시도해봐야 겠다.

 

사와자키는 나름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러나 그를 소개한 낭만마초라는 수식어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고독한 탐정이란 이미지와는 잘 맞지만...뉘앙스가 그닥. 낭만마초라...역시 별로.

 

 

소설이 쓰인 시대가 90년대 후반이기에 더 흥미로운 구석도 있었다. 전화서비스를 이용하는 부분도 그렇고, 여러모로 낯선 시대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와타나베라는 인물 때문에 경찰과 폭력단으로부터 끊임없이 들들 볶이는 사와자키를 보자니 안쓰럽기만 했는데, 그들의 촉이 맞았다는 걸 후에 드러나자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 의연한 태도에는 역시 구린 구석이 있었던가.

 

그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의 호평일색이었다는 점이 뭔가 재미든 뭐든, 보증된 책이란 인상을 받게 했다. 초반의 묵직한 분위기를 거뜬히 이겨내고 중반까지 나아갈 수 있는 독자들에게 하라 료의 사와자키 탐정을 만나보시길 추천드리고 싶다. 지금 이 계절과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