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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나누고 싶은 온기와 같은 소설집,
『쇼코의 미소』
올 여름에 출간된 소설인데 겨울이 되어서야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난 후의 최종감상은 따뜻한 온기를 가진 좋은 소설이라는 느낌, 올 겨울 마음이 헛헛해질 때마다 펼쳐보면 참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기교나 수식어 없이도 무던한 문체와 덤덤하게 표현된 문장들이 이어지는 데 오히려 전달력을 높여 주었다. 표제작인『쇼코의 미소』를 비롯한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설을 완독한 후, 뒤편에 실린 두 개의 글에서 더 끌린 건 역시 작가의 말이다. 솔직한 고백이 더 진실되게 와닿았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림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고백했듯이, 자신을 사랑하는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부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더욱이 멀리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었고, 가까이 공감할 수 있었다.
『쇼코의 미소』
일본문화 개방시기에 각 국의 문화교류로 인해 교환학생처럼 일본인 학생들이 화자가 다니는 A시 고등학교에 견학을 온다. 그 중 언어가 조금 되는 친구들의 집에서 홈스테이 하듯 잠시간 생활하며 머무르게 되는데, 쇼코는 화자인 '나'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늘 변화를 싫어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가족들이, 낯선 손님의 방문으로 활력을 찾고 행동하는 모습을 낯설게 본 나와 문화 차이 속에서 소통이 잠시 엇갈리기도 했던 나와 쇼코.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일본어인 할아버지는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과 전혀 다르게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하며 쇼코와 대화를 나눈다.
쇼코가 일본으로 돌아가고 난 후엔, 나와 할아버지 각각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 한 대상을 두고 두 명이 동시에 펜팔을 하고 있는 것.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을 가진 쇼코는 나와는 다르게 냉소적이고 성숙한 소녀였고, 각자 자기 가족구성원인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가 보인 미소는 한 수 내려다보는 시선과 같았다. 쇼코는 더 먼 곳으로 여행을 꿈꿨고, 나는 한 번도 살던 도시를 떠날 생각따윈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갔고, 교환학생으로 캐나다를 다녀왔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찍었다. 나는 영화감독의 꿈을 꾸고 있었다.
대학 졸업할 즈음에 쇼코를 보러 일본에 간 나는 고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쇼코의 모습을 보게 된다. 노인의 고독한 모습을 한 나약한 모습의 쇼코의 미소. 그 손을 뿌리치며 나선 나는 꿈을 꾸면서 현실에 안주한 다른 이들을 얕잡아 보기도, 시기하기도 하고, 재능의 유무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무심했고 멀기만 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내가 가진 부채감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일나가던 엄마를 대신에 자신을 키워주셨다는 것과 알고 보니 유일한 관객이자 지지자였다는 것이었다. 병에 잠식된 아픈 몸을 이끌고 온 할아버지께 제대로 된 우산 하나 드리지 못해 우는 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다시 주고 받게 된 쇼코와의 편지, 만남. 쇼코는 도쿄에 가지 못했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고, 우울증을 극복했으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나는 다소 냉소적인 시선과 반복된 좌절로 절망에 무뎌져 이제 꿈을 종결시키려 한다.
긴 여운이 남긴 소설이었다. 교차되고 서로 뜻하던 바와 다르게 반대로 흘러갔던 나와 쇼코의 삶. 그 시절의 우정과 꿈,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우정은 이상하게도 소유욕에 가까웠고, 지나고 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기도 하다. 그리고 정말 이것을 하게 될 줄 몰랐어, 여기만은 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 일들을 실제로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삶은 내 예상과는 늘 반대로 비껴나 흘러가기 때문에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멈춰진 것이라 할 수 없고, 꿈을 향해 달린다고 해서 늘 활기찬 것도 아니다. 안정적인 선택이 형편없는 것이고 비겁한 마음이라는 것도 오만한 생각이 아닌가. 결국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던 것 같다. 새삼 여러 삶 속에서 죽음에 대한 갈망과 의지에 대한 것들이 많은 얼굴로써 살아가는 구나 싶은 소설이었다.
『씬짜오, 씬짜오』
어느 방향에 따라 우리는 피해자가 될 수도, 또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지의 잘못보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화자의 가족이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웃 베트남인 가족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호 아저씨의 따뜻한 정이 담긴 요리와 응웬 아줌마의 애정 어린 관심, 그리고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자녀 투이까지. 서로를 경멸하는 부부 사이 외롭게 고립되어 가던 '나'는 그들 가족과 어울리며 소통이라는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화목한 분위기에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늘 그렇듯 행복은 깨지기 마련이다. 그 시작이 나라면 더욱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언급한 베트남전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무지한 시선, 그와 별반 다를 것 없던 '나'의 무지는 이미 존재한 틈을 갈라버릴 계기로 적용되고 만다. 유일한 우정을 상실한 엄마의 좌절. 그리고 그 아래 텅 빈 공허와 같이 포기만 남게 된 '나'는 그저 안녕이란 말로 이별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전쟁은 당하는 사람에겐 무참한 학살일 뿐, 이를 겪어보지 못한 바깥의 시선이 무엇을 알겠는가. 베트남 한 지역엔 한국군 증오비가 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분노했던 우리가 누군가에겐 가해자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우리가 고통받았던 피해만큼 무지했던 진실도 절대 잊혀서는 안될 것이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먼 친척이었던 순애 언니는 열한 살 엄마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작은 몸집의 소녀였다. 가족을 잃은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다정했던 언니를 사랑한 엄마. 이들의 관계의 변화를 그린 이야기다.
결혼을 하여 수줍은 소녀에서 여인이 되었던 순애 언니는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싶었으나, 당시 시대적 상황과 나라에 의해 처참히 부서지고 만다. 불통이 튈까 알면서도 모른 척 쉬쉬했던 시절, 무고한 일반 시민을 정치사범으로 몰아 죽이던 그야말로 권력의 일방적 통치로 암울한 시대였다. 어쩔 줄 모르던 순애 언니와 달리 엄마는 피해자의 모임에 참여하며, 그 목소리를 더 높였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하면 알아줄거라 생각했을 정도로 순진한 시절이 지나가고, 사법살인이 진행됐고, 사형은 피해갔으나 온갖 모진 고문에 뼈가 훤히 드러나 살거죽만 겨우 남은 채 돌아온 형부, 그리고 순애 언니의 척박한 삶.
엄마가 직장에서 같은 편인 아빠를 만나고 가정을 꾸리고 생활이 안정해질수록 순애 언니와의 사이는 더욱 소원해진다. 더는 다치지 않기 위해,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서로를 배려했던 게 서로를 멀어지게 한 것이다. 늘그막에 다리 수술 후, 누워 있는 엄마에게 열여섯 소녀의 모습으로 와 인사를 건넨 순애 언니, 그녀의 딸이 건네준 그녀 사진을 보며 그 이름을 불러본다.
애정에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상황이 더해지면 부담이 되고, 부끄러움에 마주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슬프다. 과거 잘못된 권력 행사가 현재까지도 자행되고 있다는 게 사실, 더 슬픈 일 같기도 하다.
『한지와 영주』
2차 세계대전 속 어느 젊은 수사가 프랑스 한 황폐한 마을에 지었다는 수도원에서 장기 체류하게 된 '나'와 봉사할 겸 머물게 된 '한지'의 이야기.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올 수 있고, 기도하고 노동하고 싶은 이들은 얼마든지 머무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프랑스 여행 중 일주일만 머물기로 했던 게 일곱 달이 돼버렸다. 대학원을 휴학한 스물일곱 살. 가장 치열해야 할 이십 대에 멈추어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가족인 언니는 비난했고, 자신을 만나주어 그동안 고마웠단 남자친구는 이별을 고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마지막 나이트 가드 일을 하며 '나'와 한지는 대화를 나누며 점차 가까워진다. 나는 지질학을 연구했고 한지는 나이로비에서 수의사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전 남자친구와 같이 나 역시 사랑 받는 것에 익숙지 않고, 받아야 할 이유도 모르는 사람이다. 한지에게는 몸이 불편한, 평생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여동생 레아가 있다.
한지에 대한 호감과 애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한지는 엇갈리고 만다. 어느새 '나'를 피하고 있는 한지. 그런 한지에게 짐이 되기 싫은 '나'는 사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서툰 사람일 뿐이다.
동생에 비해 자유로운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는 한지는 일정에 맞춰 떠났고, '나'는 침묵했다.
그렇게 영주(나)는 자신의 마음을 매일 기록한 일기를 차가운 얼음 대륙에 묻는다.
우리가 딛고 선 땅의 기원을 연구하는 영주와 그 땅을 딛고 선 생물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한지.
한지는 왜 영주를 피했던 걸까.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동생에 대한 책임감으로 더는 자신의 행복을 견딜 수 없었을까, 아니면 자신과 함께 한다면 영주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먼 곳에서 온 노래』
같은 노래패 동아라 선후배인 미진과 소은. 엄격한 선후배 문화, 남학생 중심의 집행부, 상명하복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던 미진은 이제 막 스물이 지난 어린 여자애였다. 그녀 덕분에 시간이 흘러 학번 차가 난 후배인 소은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미진과 함께 자유로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러시아 유학을 떠났던 미진은 논문 심사를 앞두고, 서른 두 해를 넘기기 못하고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소은은 사랑 받는 것에 익숙지 않던 아이, 그러나 그런 소은의 보이기 싫은 나약하고 추악하다 여긴 모습들을 미진은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었다. 소은은 많이 아팠고, 미진 덕에 많이 괜찮아 졌으나, 미진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미진의 룸메이트 율랴와의 만남은 미진을 추억하기 위한 그들만의 추모식이 아니었을까.
소은과는 조금 다르지만, 율랴 역시 어릴 적 아버지의 말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며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 하지만 율랴 역시 특별한 사람이라고 미진은 말해주었다.
세 사람의 관계성이 묘하게도 연결이 된다. 모두 자신의 내부 속 말의 힘에 세뇌 당해 살아왔던 사람들. 미진은 그걸 깨부수기 위해 애를 썼고, 소은은 끙끙 앓았으며, 율랴는 그 말에 갇혀 있었다. 마음 아프게도 이 역시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미카엘라』
모든 것에 감사한 여자와 그를 못마땅해 하는 딸.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해, 그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여자. 그녀의 딸은 약골이면서 노동 운동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무능한 아빠를 대신해 가사와 경제 활동 전반을 힘들게 해왔던 엄마를 못마땅해 한다. 자신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귀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엄마에게 한없이 무뚝뚝한 딸이다. 가정을 책임지지 못하면서 헛된 꿈만 꾸는 아빠를 지지해주는 엄마의 고생이 보기 힘든 것이다.
여자는 미사가 끝난 후 딸네 집에서 잔다고 하였지만 쉬이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주말이라 모텔비가 배로 올랐고, 할 수 없이 작은 찜찔방으로 향하게 된다. 찜찔방 탈의실 구석에서 만난 노인이 그의 친구가 손녀를 잃었는데, 자식을 잃은 이유를 알기 위해 나선 딸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노인의 친구를 찾기 위해 같이 움직이게 된다. 겨우 겨우 이름을 확인하려고 보니 노인의 친구 손녀딸 세례명 또한 자신의 딸처럼 미카엘라, 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 땜에 고생스러울 적에 딸 아이가 존재함으로 인해 빛을 얻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상실의 고통에 제대로 된 진상 규명도 이뤄지지 않는 세월호 유족들이 모인 거리에서 여자는 딸과 재회하게 된다. 아픈 눈물이 흐르던 여자의 마음 속으로 그 이름을 부르던 순간이었다. 빛이 다시 그녀의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이처럼 억울한 일이 또 어딨을까, 생때같은 어린 아이들이, 아직 꽃도 채 피우기 전에 아스러진 그 아이들을 잃은 부모 앞에 아직도 변하지 못한 현실에 화만 치민다. 누구는 지겹다고 그만 이야기 하라며 피로 섞인 아무말이나 뱉는다. 어이가 없다. 자신의 일이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유족들에게는 끝난 일이 아니다. 늘 가슴 앓이하며 살아가야 할 일인데, 감히 헤아리지도 못할 것인데, 분통터질 일이다.
시간 끌기, 눈속임, 변명들 모두 치우고 다시 새로 다잡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해결해나가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때까지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일이다.
『비밀』
말자는 칠 년 전 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과 항암 치료 결과가 좋았고, 의사의 처방대로 꾸준히 식단 관리에 힘썼다. 규칙적인 스케줄로 먹고 자고 운동했다. 그리고 오 년 뒤,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암은 다시 재발했다. 이번엔 다른 쪽으로 전이된 터라,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딸 영숙이 맞벌이로 바쁜 터라 손녀딸 지민은 말자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식당 일을 나가야 했던 말자는 영숙에게 못 줬던 애정을 모두 지민에게 쏟게 된다. 곱게 곱게 오냐오냐 하며 키운 지민은 딸 내외가 전해오길 중국 작은 마을에서 선생님 일을 하느라고 바쁘다고 한다.
말자는 딸 내외가 애써 감추려고 한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는 터였다. 이미 한 번 죽을 목숨, 더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
가족끼리 서로를 위해 감춘 비밀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족이기에 허울 없이 가까울 때도 있고, 한없이 낯설 때도 있으며, 더없이 무거울 때도 있다. 가족 사이에 비밀이란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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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에 언급되었듯이 최은영 작가의 문장은 화려한 기교가 없다, 어찌 보면 전통적인 성격을 지닌 소설들이라고 하였다. 이는 좋게 말하면 담백한 것이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미숙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바로 전달 받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의 모티브라고 할까, 전반적인 배경들 모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로 이뤄지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이야기부터 사소하고 일상적인 생활 전반의 이야기까지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인 것 같다.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작가라기엔 너무 능숙하고 자연스럽다. 많은 연습이 이어졌던 걸까, 타고난 이야기꾼인 걸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난 좋은 작가 한 명을 더 알아가 더할 나위 없이 기쁘기만 하다.
이야기 속 인물들 모두 내가 가진 성질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어서 더욱더 공감이 갔다. 그래서 위로가 되기도 했다. 특히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와『한지와 영주』이 여운이 길었고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소중한 작품이 되었다. 『미카엘라』와 『먼 곳에서 온 노래』역시 가슴 아릿하게 좋았다.
소중한 이에게 꼭 선물해주고픈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가 보여줄 다음 세상도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감사하다.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9쪽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 14쪽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24쪽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34쪽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57쪽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90쪽
세상은 사람에 대한 사람의 사랑을, 제 목숨을 몇 번이고 팔아서라도 사람을 살려내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을 도리어 비웃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너 너희 힘없는 인간들은 언제나 조심하고 사는 것이 좋을 거라고, 그 평범한 인간 여덟 명의 목숨 따위가 뭐가 대수냐고, 우리가 법이라고 하면 법이고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인 거라고, 꿇으라면 꿇으라고, 사람 같은 거 명분만 달아놓으면 쉽게 죽일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러니 입 다물고 말이나 잘 들으라고. 그들은 나라에 의해 살해되었다. 108-109쪽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를 바라왔다고.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나라는 것이 없었으면 했다고. 그게 삶을 겪어내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141-142쪽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164쪽
노래는 끝났고, 우리에게는 선배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간이 남아 있었다. 210쪽
아이는 저만의 숨으로, 빛으로 여자를 지켰다. 이 세상의 어둠이 그녀에게 속삭이지 못하도록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의 삶을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 천사들을 부모의 품으로부터 가로채갈 수는 없다. 누구도. (…) 그리고 그이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너무 멀고 힘들지 않기를 바랐다. 다친 마음을 마음껏 짓밟고도 태연한 이 세상에서 그이들이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원했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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