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 창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민 해결 프로젝트
에릭 메이젤 지음, 안종설 옮김 / 심플라이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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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다른 나라, 다른 세대의 예술가들의 현재 고민은,




『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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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을 한창 재밌게 봤던 적이 있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고정 멤버들이 교체되고, 포맷이 변경되어 갈수록 성격이 모호해진 듯 했지만, 놓을 수 없었다. 책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었음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중 어떤 주제에서 이 책을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메모한 목록 중에 있었으니, 누군가가 추천한 책 인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의 저자를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창작자들을 상담, 코칭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창의력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심리치료사. 오리건대학과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등에서 심리학, 문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창의적 글쓰기로 석사학위를,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대단한 이력이다. 앞으로 언급할 내용에도 있을 테지만, 여러 직업을 전전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퍽 부럽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예시가 있었고, 사람 고민하는 것은 매한가지구나, 라는 것만 확실히 알 수 있을 뿐, 우리나라에 창작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창의적인 직업을 선택하거나,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지망생들 중 앞으로가 불안하고 답답해서 어떠한 솔루션을 기대했다면 과감히 덮으라고 말해주고 싶을 만큼, 현실적으로 너무 딴 세상 이야기이기도 하다. 밥벌이의 지겨움과 고된 현실, 창작이 막혔을 때의 고민만이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공통점이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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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창작자들에게는 큰 신뢰와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지, 그들도 확실한 솔루션을 얻기 보단 이 사람에게 상담을 받음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듯, 홀가분한 기분이 느끼는 듯 했다. 

25명의 각기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과 전자우편으로 질문과 답을 주고 받은 것을 그대로 기록한 게 이 책의 전반적인 구성이다. 작가지망생부터 다수의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작가, 화가, 보석디자이너, 가구디자이너, 사진작가, 교사, 카운슬러 등등 그 직업군도 다양하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창작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지만, 그들은 사실 모두 프로라는 사실이다. 아직은 아마추어에 불과한 창작자들, 지망생들이 얻고자 하는 답은 찾을 수가 없다. 으레 그렇듯이 사실 그런 답은 자신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것 뿐. 심지어 지망생으로 나오는 창작자들 역시 완전 초보 창작자가 아닌 프로 직전의 아마추어들이다. 

또한 언뜻 언급되는 연령대만 봐도 40대 후반~60대 전,후반(더 젊은 연령대도 분명히 있었겠지만)으로 대개 중년들인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창작 활동을 하다 보니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 나쁜 습관들이 굳은 살처럼 박히게 되어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물론 생활에 치여 고민이 더해진 것도 사실이다. 

상담 과정은 과거와 현재의 고민, 앞으로의 2개월 뒤 기대하는 것에 대해 우선적으로 묻는다. 답이 오면, 다시 현재의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한 추가 질문이 한 뒤, 앞으로 2주 동안의 계획과 최소 목표, 궁극적 목표 설정들 중 우선순위를 지정해준다. 경과를 지켜보고, 2주 간의 실행 보고서가 오면 이에 따른 필요사항들에 대해 말해준다. 이어 앞으로 3주 동안 작업할 내용에 대해 상의하는 방식이다. 

질문과 답이 서신을 통해 오고 가는 것 뿐, 직접 대면해서 하는 상담이 아니라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 해결할 수 있도록 제안과 방향 제시만 할 뿐인 것이다. 그것 또한 상담을 청한 창작자들이 스스로 세운 계획과 상황 속에 이미 주어진 것들이다. 제 3자의 객관적 시선으로 봐주는 것과 같다. 


말 그대로 저자가 상담을 하며 제안한 것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을 정리해보자면 이러한 것들이 있다.


- 내면 깊숙한 곳에 숨은 "예술적 테마" 끌어내기


- 매일 꾸준히 한 가지에 일에 몰두하기, 물론 창작 활동을 말함.


- 글을 쓰는 건 내 글에 책임을 지는 일과 같은 것


- 준비 작업을 하고, 충분히 예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일단 쓰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


- 모든 걸 포기하고서라도 쓰는 게 즐겁다면 해야 된다는 것


- 유명작가든 지망생이든 언제든 비판 받을 수 있고, 거절 당할 수가 있다


- 창작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인지, 결과로 나온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 창의성이 향하는 목표지점이 어디인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 결국 답은 늘 자신안에 있다는 것(더 나아갈 것인지, 이대로 만족하며 멈출 것인가)


- 조급해 하지 말고 자신감 형성하기, 자신 있게 과감히 결정해버리기


- 스위치를 켰다 끄듯이 새로운 날들로 열어 젖혀야 하는 것, 변화를 주저하지 말 것, 이해하는 것을 넘어 실행에 옮기는 것


- 전통적 치료법이 목표는 통찰력, 실존적 치료법의 목표는 새로운 희망?


그나마 얻은 것은 이러한 창작활동을 하며 자신이 즐거워하는 지점이 어떤 것이며, 다른 모든 것들 배제하고서라도 가장 먼저 택하고 싶은 것 인지를 고민해야 하며, 매일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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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자기계발 분야 서적으로 분류되어 있는지 이 리뷰를 쓰며 알았다.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은 게 한창 방황하고 힘들 때 닥치는 대로 읽었던 자기계발서들은 하나같이 성공담과 더불어 '답은 네 안에 있는 거란다'라는 결론만 내었을 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돈벌이로 택한 일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건강한, 동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청춘이라고 불리는 시기에는 자주 피로함을 느끼곤 했던 수많은 어제의 '나'와 또 어제가 떠오른다. 너무 많은 좌절과 낮은 눈높이로도 오갈 데 없어 절망하고 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으니까 괜찮다는 세상과 앞선 세대의 시선 속에서 고개만 수그리게 되는, 그런 피로한 시대에 속한 자로서...


꿈꾸는 사람들이 행복한 오늘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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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지음 / 새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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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김선우 시인의 산문을 처음 접한 건 최근 출간된『부상당한 천사에게』를 통해서였다. 

이전에 시를 맨 처음 접했을 때, 나의 감상을 비롯하여 어떠한 닫힌 생각 속에서 바라봤기에, 주목하지 못한 작가이기도 했다. 


어떤 책을 만나는 데에는 뚜렷한 목적도 있겠지만, 많은 긴장 속에서 느슨한 여유가 필요할 때, 알고 있었으나 잊고 있었던 이름으로 인해 꺼내 들기도 한다. 내겐 김선우 시인이 그러했다. 곧 다른 산문 역시 더 읽어 싶어져 찾게 된 책이다. 2007년도에 나왔으니, 올해로 나온지 10년이나 된 책이다. 그래도 이제라도 만나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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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세 장으로 나눠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꿈의 학교라는 제목으로, 부산에 있는 '인디고 서원'에 방문하여 그곳의 아이들과 토론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서점은 청소년을 위한 서점이라고 한다. 시인은 아픈 몸을 이끌고, 아파도 절대 잘 안 챙겨 먹던 약까지 먹으면서까지 이곳을 방문한다. 여기서 시인은 맑은 눈을 가진 아이들과 꿈, 삶,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첫 번재는 아이들이 가지는 꿈에 대한 태도였다. 장래희망이나 목표, 또는 이상향과 상상력과 합심한 꿈까지, 다양한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두 번째는 그곳의 선생님으로 계신 어떤 질문자가 던진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며 얻게 된 시선은 자신 안에 내재된 또다른 여성성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과거에서의 모습이 아닌 지금보다 훨씬 더 시간이 지난 뒤의 중년, 노년의 여성으로서의 태도나 시선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이미 그 속에 내재된 모습이었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마치 계절이 바뀔 때마나 그때 그때 옷을 꺼내 입듯이, 이미 내 속에 있는 수많은, 늙은 여성의 모습들을 그때 그때 꺼내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질투가 아닌 안타까워하며 포용의 자세로 너른 품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 개천가에서 오줌을 눌 때 그곳에서 함께 오줌 누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그러면 안된다며 혼이 났다고 했다.
여자는 조신해야 하기에 바깥으로 뛰어놀기 보다 좀더 얌전한 태도를 가져야 하며, 남자는 강해야 하고 일생에 딱 몇 번만 울어야 한다는, 이상한 강요점들은 여전히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것들이다.

생리현상에 성은 구별 지을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인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을 남성보다 강한 여성이 활약하는 여성성의 시대로 보는 게 아니라,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주의가 발생시키는 억압과 부자연스러움, 착취의 문제에 물음표를 던지는 게 작가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인 것이다. 이는 모두가 더불어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던지는 물음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대다수의 수컷 동물들이 보이는 힘을 통한 서열 정하기, 강자를 중심으로 서열이 정해지며 경쟁하는 건 인간 사회 속 남성의 힘의 논리와 가깝다고 말한다. 평화가 필요하기에 여성성에 대한 화두가 던져진 것이고, 생명을 잉태하고 보살펴 온 몸의 기억들, 친밀성, 공명하는 힘, 사랑하고 연민하는 힘이 구원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모두가 공생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원적 능력이라고 생각하기에, 여성성이라고 통칭되는 것들을 드러내서 적극적으로 발현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장은 천 개의 뜨거운 심장이 뿜어내는 신호음이라는 제목으로,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과 시사주간지에 실었던 글을 모아놨다. 사회를 바라보는시인의 날선 시선들이 담겨 있는데, 이는 최근에 나온 산문집에서의 글들과 그 성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시인이 쓴 산문 속 그가 가진 일관된 태도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횡포에 부끄러워하며, 죄스러운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다. 인간에게는 그러할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순되지만 인간의 법규와 절차에 따라 그 생태계가 무참히 무너지고 있는게 현 세태의 부정적인 모습 중 하나이다.

피를 먹고 자란다는 민주주의 '민주'의 행방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시대가 퇴보되는 것과 같이 동일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잘못된 실수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타락상, 노조라고 다르지 않음을, 약자로 향할 때 더 슬프기만 한, 보살핌 노동은 관습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어 온 일들이었으며, 여성과 노동의 가치가 폄훼되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공동체의 비극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자연 속의 생명력을 귀하게 여기며, 조심히 그 세계 속에서 고요히 한 생 거쳐갈 뿐인 인간들이 산과 물과 바람의 길을 막아 재해를 일으키고, 이를 막기 위한 해결 방안 역시 인간의 편의로만 판단하기에, 생태계는 점점 오염되고 있다고 한다. 

그와중에 이득을 취하는 구조 역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고 있으며, 가진 자의 이득을 위해 건설되는 것들이 못 가진 자들의 터전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 그 피해는 오로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이라는 것도 슬픈 현실이었다. 

문화, 해외파병, 한미FTA , 위안부, 교육, 이민 등등 그 시절의 뜨거웠던 주제에 대한 시인의 태도는 새로운 시각을 하나 더 열어주기도 했고, 같이 분노하며 슬퍼하게도 했다.


다양한 화두에 대해 시원스럽게 말하는 시인이 참 좋았다. 내면 속으로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또 그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이 참 반가웠던 것 같다. 이렇듯 시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그 언어에 잘 담겨 있으니 단어도 문장도 모두 생명력이 넘쳐 읽는 독자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장은 손가락이여 심장들이여, 어떻게 이 고양이를 살리죠? 라는 제목으로 시인과 비평가의 관계성에 대해 주목했다. 시인은 시를 쓴 운명적 계기를 앞서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시를 분석하는 시 비평에 대한 시인의 솔직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시인은 비평가와 더불어 공생할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좋은 비평이 나와야 함을, 때문에 원로 작가든, 신인 작가든 상관없이 비평 그 자체로서 문학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또 다른 세계로써 그 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그러한 이성적인 관계성을 가지기를 기대한 것이다.

시 비평이란 무엇일까, 이전에는 일반 독자들에게 좋은 시들을 소개하는, 그리하여 자신이 비평하는 대상 시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 주로 언급된 인물로는 김현이 있다. 김선우 시인은 시인과 평론가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획득하여 더불어 문학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의 일종의 선언들이 시인들이 만들어나가는 시 세계에 대한 자기검열의 압박이나 권력적인 용어 선택으로 인해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일례로 나는 읽으면서 소위 2000년대 이후 등장한 '미래파' 시인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정작 그 용어로 묶인 시인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시적 발화 자체가 자기 부정의 일환인데, 문학은 역시 어느 것을 통해서든 인간을 바라보는 것인데, 이를 '주체의 자기동일성'이라든지, '탈주체'라든지, '자연의 매트릭스'라든지, 이러한 선을 긋고 일방적으로 나눠버리는 게 문제인 것이다.


소통을 거부함으로써 다른 매개체를 통해 소통을 하려는 노력이나, 주체가 대상에 빙의해 발화하는 샤먼적 언어에 대한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또한 그러한 용어 사용으로 인해 카테고리 안에 갇혀진 시인들과 그 밖의 시인들이 스스로 가하는 자기검열과 소외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비평의 권위적 용어에 갇히게 되고, 억압 받게 되는 것에 강렬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나 담론으로 엮인 시인들은 어떠한지, 혹은 그 시대를 살았으나 다른 미적 가치를 추구하여 또다른 세계관을 구축해가는 시인은 어디에 엮으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들기도 하다. 


물론 시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로 바라보는 좋은 평론가도 분명 존재한다. 앞서간 과거의 인물이 계속 소환되지 않도록, 더 좋은 평론가도 만나볼 수 있음 좋지 않을까. 실제로 이젠 비평의 장벽도 너무 높게 느껴진다. 지성을 강조하고 문제적 주제 선점을 위한 선언은 단언하건대 자중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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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는 그의 몸을 자유자재로 통과하며, 혀와 잇속을 지나는 바람소리, 굴리는 발음에서 오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특유의 관찰력으로 전달해준다. 각 구절 별 문장 속에서, 그 문장 속 단어 하나하나에서 읽으면 읽을수록, 시인은 우리 언어에 특화되어 있음을 실감한다. 시를 통해서도 그렇지만 산문 또한 이토록 매력적이라니, 그렇게 알차고 리듬감 있게 전개되는 방식이 더욱 좋다. 한데 뒤섞여 씹히는 말이 아닌, 각각의 방향으로 한껏 뻗어나가는 자태가 참 부럽기도 하다. 


시인의 산문을 읽고 난 후, 시를 읽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풍경과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성의 변주로만 읽었던 것들에서 천진한 인간성으로 더 폭넓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인의 다양한 시각과 관점들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색다른 관점도 있었지만, 어떤 부분은 한쪽으로 쏠려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당에 대한 시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일치하여 신기하기도 했다. 


다음은 시인의 신작 시집과 더불어 또 다른 에세이도 찾아보려 한다.




우리가 문명의 힘으로 가하고 있는 무수한 폭력들, 강자인 인간으로서 약자인 인간 이외의 생물종들에 대해 보이는 오만과 폭력, 강자의 논리로 약자를 집어삼키려는 무수한 전쟁의 역사, 힘의 논리 속에 폭력적으로 착취되어온 계급과 인종의 성의 역사...도처에 끊임없는 전쟁들을 보세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구요? 정말 그래요?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언제나 이 비교격이 문제예요. 우리 모두는 사람 하나 꽃 하나가 다 귀한 존재들이거든요. 공생하고 연대하고 보살피고 껴안고 가야 할 많은 것들에 대해 우리는 종종 너무나 오만해요. 이 오만한 폭력의 기원에 슬프게도 손의 자유가 있어요. 손이 자유를 얻어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참 아름다운 것들이 있지요.(...)그런데 지금 우리의 손은, 우리가 안아준 것보다 더 많은 악행을 함께 저질러 오고 있잖아요. (...)이것이 인간의 손을 바라볼 때 거의 언제나 어떤 복합적인 슬픔을 느끼게 되는 이유일 거예요. 직립의 슬픔이기도 하겠구요.

/63 -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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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봄날의 소품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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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쓰메 소세키의 세계에 관하여, 비하인드 스토리,





『긴 봄날의 소품』





중단편 2편과 신문에 게재된 수필들을 모아서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년 기념으로 출간된 책.




나쓰메 소세키의 유명한 여러 대표작 중에 내가 가장 먼저 접한 책은 『도련님』이다. 무심코 집어 들었다가 손을 놓지 못하고,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 중 하나이다. 생각보다 재밌었고, 다음이 궁금해서 계속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입심이 담긴 문장이 탄탄했고, 담백했고,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과정이 유쾌했다. 


작가는 늦은 나이에 작가로 데뷔하여 짧은 창작 기간 동안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그중 또 찾아보고픈 책은『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그 후』이다. 사실 여유가 주어진다면 한 편씩 다 읽어보고 싶다.


이번에 읽게 된『긴 봄날의 소품』은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거쳐가야 할 길과 같은 책인 듯 하다. 작품 세계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중·단편을 대작들에 도달하기 위한 통로로 사용했다고 하니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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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십일>은 친구와 티격태격하며 궂은 날씨에 아소산을 오르기 위한 과정을 그렸다. 점심을 우동으로 먹는 것에서부터 아웅다웅 하기도 하고, 그 시대 특유의 유머를 보여주는 듯한 반숙 이야기와 더불어 사사로운 내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위험에 처했을 때 서로의 안전을 위해 간절히 돕기 바쁜, 로쿠씨와 게이씨의 우정이 담긴 이야기는 소세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쓰인 중편소설이다. 친한 사이라서 아무말대잔치가 열린 듯한 느낌도 있었다. 시대와 상관없이 허울 없는 사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열흘 밤의 꿈>은 1908년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소설이다. 정말 꿈 이야기를 옮겨 적은 듯한 기괴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각각의 꿈속,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시작되는데 이는 정말 꿈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꿈에서는 개연성이 존재치 않는다. 갑자기 어디론가 이동하기도 하고, 쫓기기도 하고 누굴 기다리거나 만나기도 한다. 열 가지 꿈 속엔 죽음을 기다리기도 하고, '무'에 대한 깨달음이나 죄의 무거움을 은유하기도 하며, 원망과 후회, 생과 사가 오가기도 한다. 슬프거나 엉뚱하거나 맥락이 없거나, 어느 불상을 만드는 장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정말 이러저러한 해괴한 꿈을 꾼 것을 바탕으로 한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제목과 딱 맞는 꿈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을 수 가 있었다.


<긴 봄날의 소품>은 1909년도에 아사히 신문에 게재된 수필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말 그대로 나른한 봄날의 일상, 그 소소함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런던 유학시절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도둑이 든 이야기, 고양이 묘표를 세우고 나서야 바뀐 가족들의 태도라든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나 셰익스피어 연구자 윌리엄 크레이그에 대한 에피소드라든지, 우연히 작가와 만나 차 한잔 두고 담소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주는 수필들이었다. 그만큼 나른하고 소소하다. 담백한 어조는 수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실린 <유리문 안에서>는 1915년에 아사히 신문에 게재된 수필을 한데 묶은 것이다. 이때 작가는 건강이 나빠져서 칩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들 다루고 있다. 읽다 보면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는 주변에 사람이 늘 끊이지 않았겠구나, 사람을 참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듯한 이 파트가 참 좋았던 것 같다. 


아직 작가의 작품을 고작 한 편 읽은 게 다라서,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떠하다,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다. 일말의 힌트만 얻어가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겐 수필보단 역시 작품 쪽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글 속의 나쓰메 소세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달라서, 문화가 달라서 그래서 아직 잘 보이지 않은 것들도 시간이 더 쌓이면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 이 리뷰는 현암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해줄 조언은 아무래도 이 삶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해야 할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살아갈까 하는 좁은 구역 안에서만 나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다른 인류의 한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삶 속에서 활동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또 그 삶 속에서 호흡하는 타인을 인정하는 이사, 서로의 근본 의의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추하더라도 이 삶 위에 놓인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당연할 테니까. / 226-227쪽

지금의 나는 바보여서 사람들에게 속거나 아니면 의심이 많아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이 두 가지밖에 없을 것 같다. 불안하고 불투명하고 불쾌감으로 가득 차 있다. 만약 그것이 평생 계속된다면 인간이란 얼마나 불행한 존재일까. /274쪽

집도 마음도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가운데 나는 유리문을 활짝 열고 조용한 봄 햇살에 싸여 넋을 잃은 채 이 원고를 끝낸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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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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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의 한 단면들을 모아 모아, 

골라 읽는 재미가 있지요.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하늘색 바탕의 초록색 산, 흰 구름과 회색 건물, 그 산을 오르고 있는 한 사람과 바람, 새인지 바람개비인지 알 수 없는 어떤 무엇. 뭔가 산뜻한 느낌이 드는 듯한 표지 그림에 끌려서 집어 들게 되었다.


짧은 에피소드나 티타임을 나누며 간단히 수다로 나눌법한 분량의 소설 40편이 하나로 묶인 책.


<우리에겐 일 년 누군가에겐 칠 년>, <아아아아>, <좀 쉬면 안 될까요?> 같이 세 가지의 타이틀 관련 분류된 이야기들 각각 열 편 이상으로 나눠져 있다. 


첫 소설부터 묘한 실소를 터트리게 하며 시작했다. 시작은 가뿐하게. 그러나 읽어 나갈수록 그냥 가벼이 웃을 수 없는, 그저 지나치기만은 할 수 없는 그런 글들이 차례로 이어졌다. 마냥 낯선 다른 세계 이야기들이 아니였고, 우리의 생활 속에 각자의 사연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라디오 사연으로 나올 법한 웃픈(웃긴데 슬픈)이야기부터, 어이없이 실소가 터지는 이야기, 짠하고 뭉클한 이야기, 슬픈 여운이 남는 이야기, 안타까운 공감이 이는 이야기 그리고 사회의 치부를 들춰내는 듯한 송곳 같은 이야기까지. 각양각색 많이도 모여 있다. 


이렇게 일상의 한 단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촘촘히 직조해 놓은 이야기들을 창작해내는 일도 여간 힘든 게 아닐 텐데 역시 이기호 작가는 재주가 좋은 작가 같다. 너무나도 훌륭히 잘 해내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 힘이 빠진 듯한...어색한 대화로 주를 이룬 소설도 있지만. 이를 소설로 불러야 할지 그냥 에피소드 모음이라 해야 할지 좀 낯선 구성 형식이긴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뤄지면 좋을 것 같다. 


오히려 별 것 아닌 부분인 것 같은 것도, 그것마저 너무 익숙해진 현실을 자조하며 반성할 만한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산뜻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든 알맹이는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다. 우린 지금을 자꾸 질문해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저 익숙해지기만 하면 계속 당하고 퇴보하는 길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이지, 슬픈 농담 같기도 한 것이다.


"어쩐지 자신이 원고지가 아닌 

삶 속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기분이었다네."

작가의 말 앞장 짤막한 말처럼.


제목 옆에 여러가지 색깔이 점이 찍어져 있는데 이게 무슨 코드 역할을 하는 것인지, 그래서 그렇게 분류해서 읽는 맛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보기도 했다. 일례로 분홍색 점은 실소를 터뜨리는 웃긴 이야기, 노란색은 짠한 웃픈 이야기와 같은...


난 첫 소설부터 터졌는데 일단 그러한 출발이 좋았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험담은 참을 수 없고, 그러한 애정에 관해 나이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말하는 이야기로 처음 이 소설집의 문을 활기차게 열어준다. 읽으면서 무심코 웃어버렸는데, 이어「타인 바이러스」는 메르스 관련 에피소드였는데 역시 나도 모르게 터졌다. 소리 내서 웃게 한 소설은 처음이었는데, 묘하게 있을 법하면서 공감이 갔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도 있고, 이기심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가족의 탄생을 말하는 따뜻한 기운의 이야기도 있다. 또 아프게 공감 가는 이야기도 있었다. 수많은 좌절 속에 다시 일어서기 어려워진. 시작이 그 무엇보다 두려워진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작은 기회 하나라도 시작한다면 그로 인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도 하기 때문에...



잠들기 전, 하루를 마무리할 때 베개 맡에 두고 읽기에도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최 형사는 무연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예전부터 태연 양에 대해서 험담을 많이 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 같은 곳에서도…… 그래서 제가 참을 수 없어서……."
(…)
"아니죠. 그러면 누굴 사랑하는 게 아니죠. 사랑이 어디 합의할 수 있는 거던가요?"

/「벚꽃 흩날리는 이유」중에서

어머니는 계속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사람한텐 일 년이 강아지한텐 칠 년이라고 하더라. 봉순이는 칠 년도 넘게 아픈 몸으로 내 옆을 지켜준 거야. 내 양말을 제 몸으로 데워주면서."
나는 묵묵히 계속 삽질만 했다. 내가 파고 있는 어두운 구덩이가 어쩐지 꼭 내 마음만 같았다.

/ 「우리에겐 일 년 누군가에겐 칠 년」중에서

"앞으로 저희 집 배달은 여기 엘리베이터 앞으로 오시면 됩니다."
(…)
나는 왠지 조금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가게로 돌아가려고 몇 걸음 떼던 나는 그때까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이게 왜 …… 이런 일들이 생긴 거죠?"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남자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글쎄요. 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 「아파트먼트 셰르파」 중에서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아이에게 속엣말을 했다 고통 다음에야 비로소 가족이 이름을 부여받는 거야. 아아아아. 그래서 가족이란 단어는 들으면 눈물부터 나오는 거란다. 그는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되새겼다. 아아아아. 그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꾹 참고, 아이를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소리를 내질렀다. 아아아아.

/ 「아아아아」 중에서

나는 그저 무언가를 다시 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그는 괜스레 케이블TV 속 셰프가 원망스러웠다. 누구에겐 초간단 요리가 또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음을…… 아무도 그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초간단 또띠아 토스트 레시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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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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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온기와 같은 소설집,






『쇼코의 미소』







올 여름에 출간된 소설인데 겨울이 되어서야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난 후의 최종감상은 따뜻한 온기를 가진 좋은 소설이라는 느낌, 올 겨울 마음이 헛헛해질 때마다 펼쳐보면 참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기교나 수식어 없이도 무던한 문체와 덤덤하게 표현된 문장들이 이어지는 데 오히려 전달력을 높여 주었다. 표제작인『쇼코의 미소』를 비롯한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설을 완독한 후, 뒤편에 실린 두 개의 글에서 더 끌린 건 역시 작가의 말이다. 솔직한 고백이 더 진실되게 와닿았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림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고백했듯이, 자신을 사랑하는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부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더욱이 멀리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었고, 가까이 공감할 수 있었다. 




『쇼코의 미소』



일본문화 개방시기에 각 국의 문화교류로 인해 교환학생처럼 일본인 학생들이 화자가 다니는 A시 고등학교에 견학을 온다. 그 중 언어가 조금 되는 친구들의 집에서 홈스테이 하듯 잠시간 생활하며 머무르게 되는데, 쇼코는 화자인 '나'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늘 변화를 싫어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가족들이, 낯선 손님의 방문으로 활력을 찾고 행동하는 모습을 낯설게 본 나와 문화 차이 속에서 소통이 잠시 엇갈리기도 했던 나와 쇼코.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일본어인 할아버지는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과 전혀 다르게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하며 쇼코와 대화를 나눈다. 


쇼코가 일본으로 돌아가고 난 후엔, 나와 할아버지 각각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 한 대상을 두고 두 명이 동시에 펜팔을 하고 있는 것.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을 가진 쇼코는 나와는 다르게 냉소적이고 성숙한 소녀였고, 각자 자기 가족구성원인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가 보인 미소는 한 수 내려다보는 시선과 같았다. 쇼코는 더 먼 곳으로 여행을 꿈꿨고, 나는 한 번도 살던 도시를 떠날 생각따윈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갔고, 교환학생으로 캐나다를 다녀왔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찍었다. 나는 영화감독의 꿈을 꾸고 있었다.


대학 졸업할 즈음에 쇼코를 보러 일본에 간 나는 고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쇼코의 모습을 보게 된다. 노인의 고독한 모습을 한 나약한 모습의 쇼코의 미소. 그 손을 뿌리치며 나선 나는 꿈을 꾸면서 현실에 안주한 다른 이들을 얕잡아 보기도, 시기하기도 하고, 재능의 유무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무심했고 멀기만 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내가 가진 부채감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일나가던 엄마를 대신에 자신을 키워주셨다는 것과 알고 보니 유일한 관객이자 지지자였다는 것이었다. 병에 잠식된 아픈 몸을 이끌고 온 할아버지께 제대로 된 우산 하나 드리지 못해 우는 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다시 주고 받게 된 쇼코와의 편지, 만남. 쇼코는 도쿄에 가지 못했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고, 우울증을 극복했으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나는 다소 냉소적인 시선과 반복된 좌절로 절망에 무뎌져 이제 꿈을 종결시키려 한다. 


긴 여운이 남긴 소설이었다. 교차되고 서로 뜻하던 바와 다르게 반대로 흘러갔던 나와 쇼코의 삶. 그 시절의 우정과 꿈,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우정은 이상하게도 소유욕에 가까웠고, 지나고 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기도 하다. 그리고 정말 이것을 하게 될 줄 몰랐어, 여기만은 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 일들을 실제로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삶은 내 예상과는 늘 반대로 비껴나 흘러가기 때문에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멈춰진 것이라 할 수 없고, 꿈을 향해 달린다고 해서 늘 활기찬 것도 아니다. 안정적인 선택이 형편없는 것이고 비겁한 마음이라는 것도 오만한 생각이 아닌가. 결국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던 것 같다. 새삼 여러 삶 속에서 죽음에 대한 갈망과 의지에 대한 것들이 많은 얼굴로써 살아가는 구나 싶은 소설이었다.



『씬짜오, 씬짜오』



어느 방향에 따라 우리는 피해자가 될 수도, 또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지의 잘못보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화자의 가족이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웃 베트남인 가족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호 아저씨의 따뜻한 정이 담긴 요리와 응웬 아줌마의 애정 어린 관심, 그리고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자녀 투이까지. 서로를 경멸하는 부부 사이 외롭게 고립되어 가던 '나'는 그들 가족과 어울리며 소통이라는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화목한 분위기에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늘 그렇듯 행복은 깨지기 마련이다. 그 시작이 나라면 더욱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언급한 베트남전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무지한 시선, 그와 별반 다를 것 없던 '나'의 무지는 이미 존재한 틈을 갈라버릴 계기로 적용되고 만다. 유일한 우정을 상실한 엄마의 좌절. 그리고 그 아래 텅 빈 공허와 같이 포기만 남게 된 '나'는 그저 안녕이란 말로 이별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전쟁은 당하는 사람에겐 무참한 학살일 뿐, 이를 겪어보지 못한 바깥의 시선이 무엇을 알겠는가. 베트남 한 지역엔 한국군 증오비가 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분노했던 우리가 누군가에겐 가해자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우리가 고통받았던 피해만큼 무지했던 진실도 절대 잊혀서는 안될 것이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먼 친척이었던 순애 언니는 열한 살 엄마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작은 몸집의 소녀였다. 가족을 잃은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다정했던 언니를 사랑한 엄마. 이들의 관계의 변화를 그린 이야기다.


결혼을 하여 수줍은 소녀에서 여인이 되었던 순애 언니는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싶었으나, 당시 시대적 상황과 나라에 의해 처참히 부서지고 만다. 불통이 튈까 알면서도 모른 척 쉬쉬했던 시절, 무고한 일반 시민을 정치사범으로 몰아 죽이던 그야말로 권력의 일방적 통치로 암울한 시대였다. 어쩔 줄 모르던 순애 언니와 달리 엄마는 피해자의 모임에 참여하며, 그 목소리를 더 높였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하면 알아줄거라 생각했을 정도로 순진한 시절이 지나가고, 사법살인이 진행됐고, 사형은 피해갔으나 온갖 모진 고문에 뼈가 훤히 드러나 살거죽만 겨우 남은 채 돌아온 형부, 그리고 순애 언니의 척박한 삶. 


엄마가 직장에서 같은 편인 아빠를 만나고 가정을 꾸리고 생활이 안정해질수록 순애 언니와의 사이는 더욱 소원해진다. 더는 다치지 않기 위해,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서로를 배려했던 게 서로를 멀어지게 한 것이다. 늘그막에 다리 수술 후, 누워 있는 엄마에게 열여섯 소녀의 모습으로 와 인사를 건넨 순애 언니, 그녀의 딸이 건네준 그녀 사진을 보며 그 이름을 불러본다.



애정에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상황이 더해지면 부담이 되고, 부끄러움에 마주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슬프다. 과거 잘못된 권력 행사가 현재까지도 자행되고 있다는 게 사실, 더 슬픈 일 같기도 하다.




『한지와 영주』



2차 세계대전 속 어느 젊은 수사가 프랑스 한 황폐한 마을에 지었다는 수도원에서 장기 체류하게 된 '나'와 봉사할 겸 머물게 된 '한지'의 이야기.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올 수 있고, 기도하고 노동하고 싶은 이들은 얼마든지 머무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프랑스 여행 중 일주일만 머물기로 했던 게 일곱 달이 돼버렸다. 대학원을 휴학한 스물일곱 살. 가장 치열해야 할 이십 대에 멈추어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가족인 언니는 비난했고, 자신을 만나주어 그동안 고마웠단 남자친구는 이별을 고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마지막 나이트 가드 일을 하며 '나'와 한지는 대화를 나누며 점차 가까워진다. 나는 지질학을 연구했고 한지는 나이로비에서 수의사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전 남자친구와 같이 나 역시 사랑 받는 것에 익숙지 않고, 받아야 할 이유도 모르는 사람이다. 한지에게는 몸이 불편한, 평생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여동생 레아가 있다. 


한지에 대한 호감과 애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한지는 엇갈리고 만다. 어느새 '나'를 피하고 있는 한지. 그런 한지에게 짐이 되기 싫은 '나'는 사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서툰 사람일 뿐이다.

동생에 비해 자유로운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는 한지는 일정에 맞춰 떠났고, '나'는 침묵했다. 


그렇게 영주(나)는 자신의 마음을 매일 기록한 일기를 차가운 얼음 대륙에 묻는다. 


우리가 딛고 선 땅의 기원을 연구하는 영주와 그 땅을 딛고 선 생물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한지. 

한지는 왜 영주를 피했던 걸까.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동생에 대한 책임감으로 더는 자신의 행복을 견딜 수 없었을까, 아니면 자신과 함께 한다면 영주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먼 곳에서 온 노래』



같은 노래패 동아라 선후배인 미진과 소은. 엄격한 선후배 문화, 남학생 중심의 집행부, 상명하복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던 미진은 이제 막 스물이 지난 어린 여자애였다. 그녀 덕분에 시간이 흘러 학번 차가 난 후배인 소은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미진과 함께 자유로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러시아 유학을 떠났던 미진은 논문 심사를 앞두고, 서른 두 해를 넘기기 못하고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소은은 사랑 받는 것에 익숙지 않던 아이, 그러나 그런 소은의 보이기 싫은 나약하고 추악하다 여긴 모습들을 미진은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었다. 소은은 많이 아팠고, 미진 덕에 많이 괜찮아 졌으나, 미진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미진의 룸메이트 율랴와의 만남은 미진을 추억하기 위한 그들만의 추모식이 아니었을까.

소은과는 조금 다르지만, 율랴 역시 어릴 적 아버지의 말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며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 하지만 율랴 역시 특별한 사람이라고 미진은 말해주었다. 


세 사람의 관계성이 묘하게도 연결이 된다. 모두 자신의 내부 속 말의 힘에 세뇌 당해 살아왔던 사람들. 미진은 그걸 깨부수기 위해 애를 썼고, 소은은 끙끙 앓았으며, 율랴는 그 말에 갇혀 있었다. 마음 아프게도 이 역시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미카엘라』



모든 것에 감사한 여자와 그를 못마땅해 하는 딸.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해, 그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여자. 그녀의 딸은 약골이면서 노동 운동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무능한 아빠를 대신해 가사와 경제 활동 전반을 힘들게 해왔던 엄마를 못마땅해 한다. 자신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귀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엄마에게 한없이 무뚝뚝한 딸이다. 가정을 책임지지 못하면서 헛된 꿈만 꾸는 아빠를 지지해주는 엄마의 고생이 보기 힘든 것이다. 


여자는 미사가 끝난 후 딸네 집에서 잔다고 하였지만 쉬이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주말이라 모텔비가 배로 올랐고, 할 수 없이 작은 찜찔방으로 향하게 된다. 찜찔방 탈의실 구석에서 만난 노인이 그의 친구가 손녀를 잃었는데, 자식을 잃은 이유를 알기 위해 나선 딸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노인의 친구를 찾기 위해 같이 움직이게 된다. 겨우 겨우 이름을 확인하려고 보니 노인의 친구 손녀딸 세례명 또한 자신의 딸처럼 미카엘라, 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 땜에 고생스러울 적에 딸 아이가 존재함으로 인해 빛을 얻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상실의 고통에 제대로 된 진상 규명도 이뤄지지 않는 세월호 유족들이 모인 거리에서 여자는 딸과 재회하게 된다. 아픈 눈물이 흐르던 여자의 마음 속으로 그 이름을 부르던 순간이었다. 빛이 다시 그녀의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이처럼 억울한 일이 또 어딨을까, 생때같은 어린 아이들이, 아직 꽃도 채 피우기 전에 아스러진 그 아이들을 잃은 부모 앞에 아직도 변하지 못한 현실에 화만 치민다. 누구는 지겹다고 그만 이야기 하라며 피로 섞인 아무말이나 뱉는다. 어이가 없다. 자신의 일이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유족들에게는 끝난 일이 아니다. 늘 가슴 앓이하며 살아가야 할 일인데, 감히 헤아리지도 못할 것인데, 분통터질 일이다. 


시간 끌기, 눈속임, 변명들 모두 치우고 다시 새로 다잡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해결해나가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때까지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일이다. 


  




『비밀』



말자는 칠 년 전 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과 항암 치료 결과가 좋았고, 의사의 처방대로 꾸준히 식단 관리에 힘썼다. 규칙적인 스케줄로 먹고 자고 운동했다. 그리고 오 년 뒤,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암은 다시 재발했다. 이번엔 다른 쪽으로 전이된 터라,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딸 영숙이 맞벌이로 바쁜 터라 손녀딸 지민은 말자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식당 일을 나가야 했던 말자는 영숙에게 못 줬던 애정을 모두 지민에게 쏟게 된다. 곱게 곱게 오냐오냐 하며 키운 지민은 딸 내외가 전해오길 중국 작은 마을에서 선생님 일을 하느라고 바쁘다고 한다. 


말자는 딸 내외가 애써 감추려고 한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는 터였다. 이미 한 번 죽을 목숨, 더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 


가족끼리 서로를 위해 감춘 비밀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족이기에 허울 없이 가까울 때도 있고, 한없이 낯설 때도 있으며, 더없이 무거울 때도 있다. 가족 사이에 비밀이란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




해설에 언급되었듯이 최은영 작가의 문장은 화려한 기교가 없다, 어찌 보면 전통적인 성격을 지닌 소설들이라고 하였다. 이는 좋게 말하면 담백한 것이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미숙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바로 전달 받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의 모티브라고 할까, 전반적인 배경들 모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로 이뤄지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이야기부터 사소하고 일상적인 생활 전반의 이야기까지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인 것 같다.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작가라기엔 너무 능숙하고 자연스럽다. 많은 연습이 이어졌던 걸까, 타고난 이야기꾼인 걸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난 좋은 작가 한 명을 더 알아가 더할 나위 없이 기쁘기만 하다. 


이야기 속 인물들 모두 내가 가진 성질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어서 더욱더 공감이 갔다. 그래서 위로가 되기도 했다. 특히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와『한지와 영주』이 여운이 길었고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소중한 작품이 되었다. 『미카엘라』와 『먼 곳에서 온 노래』역시 가슴 아릿하게 좋았다. 


소중한 이에게 꼭 선물해주고픈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가 보여줄 다음 세상도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감사하다.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9쪽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 14쪽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24쪽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34쪽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57쪽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90쪽

세상은 사람에 대한 사람의 사랑을, 제 목숨을 몇 번이고 팔아서라도 사람을 살려내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을 도리어 비웃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너 너희 힘없는 인간들은 언제나 조심하고 사는 것이 좋을 거라고, 그 평범한 인간 여덟 명의 목숨 따위가 뭐가 대수냐고, 우리가 법이라고 하면 법이고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인 거라고, 꿇으라면 꿇으라고, 사람 같은 거 명분만 달아놓으면 쉽게 죽일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러니 입 다물고 말이나 잘 들으라고.
그들은 나라에 의해 살해되었다. 108-109쪽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를 바라왔다고.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나라는 것이 없었으면 했다고. 그게 삶을 겪어내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141-142쪽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164쪽

노래는 끝났고, 우리에게는 선배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간이 남아 있었다. 210쪽

아이는 저만의 숨으로, 빛으로 여자를 지켰다. 이 세상의 어둠이 그녀에게 속삭이지 못하도록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의 삶을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 천사들을 부모의 품으로부터 가로채갈 수는 없다. 누구도.
(…) 그리고 그이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너무 멀고 힘들지 않기를 바랐다. 다친 마음을 마음껏 짓밟고도 태연한 이 세상에서 그이들이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원했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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