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씨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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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찾게 된다는 건, 




『마녀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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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재구성한 극의 한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주인공 필릭스는 연극이 곧 삶과 같은 사람이다. 모든 열정이 쏟아붓는 그에게 소중한 가족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큰 시련까지 겪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결혼 후 일찍이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하게 된 필릭스는 어린 딸마저 일 때문에 잘 돌보지 못하고, 죄책감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쳐오게 되는데, 바로 자신이 열과 성을 다한 연극 무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극을 무대 위에 올리기까지 온갖 잡다한 과정들, 형식적인 인간관계와 행사 등을 대신 해온 토니가 반란을 일으키고 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아내를 잃고,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앞으로 살아갈 날을 그렸던 필릭스는 소중했던 딸 마저 잃고 난 후, 이런 지옥 같은 현실을 회피하려 <템페스트>에 몰두한다수많은 명작들 속 딸들이 다시 회생 했듯이 극 속에서 미란다를 다시 살려내고자 했다마치 환생의 마법을 부리듯.


<템페스트> 속 프로스페로가 동생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내 쫓겼지만그의 곁엔 수호 천사와 같은 딸 미란다가 있었던 것처럼. 그의 곁엔 사랑스럽운 딸 미란다가 있는 게 당연했다.


필릭스는 애초에 잃어버린 적이 없었던 것처럼 오로지 템페스트에만 몰두한다캐스팅부터 소품 하나 하나까지더 극적이고 최상의 예술로 다시 태어날모든 한계를 넘어선 듯한 연출을그가 만들어내는 이 마법 같은 연극은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자사랑하는 딸 미란다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처럼 믿었고그건 곧 더한 좌절과 절망으로 맞이하게 된다.

 

 

미란다는 잃어버린 적이 없는 딸이 될 것이다물이 새는 배를 타고 검은 바다를 표류할 때추방당한 아버지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수호천사인 딸죽지 않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자라난 딸그가 실제 삶에서는 가질 수 없었으나 그의 예술을 통해서는 여전히 찾아낼 수 있는 존재곁눈질로 언뜻 볼 수 있는 것.    32

 

 

모든 걸 잃게 된 필릭스는 정처 없이 운전한 끝에 다다른 곳기본적인 것만 갖춰진 아주 오래돼 보이는 집을 발견하게 되고그동안 전전했던 임대 아파트의 짐을 정리한 뒤낡은 판잣집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듀크라는 새로운 가명으로 생활을 시작하며연극에 관한 소식을 듣지 않으려 했으나뜻대로 잘 되지 않았고지역 신문을 비롯한 사서 리뷰까지 찾아보게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고전을 읽기 시작했으나온갖 삶의 형태가 모두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것이 보기 힘들었던 그는곧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나는 동화책을 읽기 시작한다이러한 독서도 곧 침묵의 고독 속에 침잠하게 되고, 홀로 운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생의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고곧 삶의 목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모든 것을 받쳤지만 중단되어 버린 <템페스트>를 되찾기로 하자곧 자신에게서 연극을 빼앗아버린 토니나 샐에게 복수를 꿈꾸게 된다.

 

처음에는 복수에 대한 열망이 강해 토니의 대한 소식을 모조리 찾아보게 된다. 어려울 것 없이, 검색 몇 번 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의 행보를 알 수 있는 세상 속에서 말아다. 토니의 행보 중 가장 가증스러운 건 필릭스의 아이템을 통해 여러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었다그러던 와중에도 필릭스는 잃어버린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가 살아있다는 착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9년이란 오랜 운둔생활로 인해 정신적으로 이상해져 가는 것을 느낀 필릭스는 곧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가 찾게 된 일은 인근 플레처 교도소의 문학독해 수업 고교 과정 임시 교사직이었다. <호밀밭 파수꾼>과 같이 기존의 교육 과정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를 선택하여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데처음에 부딪혔던 여러 애로 사항들도 점차 해소되어 갔고나중엔 지원자가 늘 정도로 인기 있는 수업이 되었다.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곧 수감자들이었으므로직접적인 연극 무대를 만드는 것엔 한계가 있었지만극의 각 장을 영상으로 촬영하여 편집하고 이를 최종적으로 상영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으므로 여러 면에서 호평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일한 지 4년 차가 되어갈 즈음그의 명성을 듣고 샐과 토니를 비롯한 인사들이 그의 수업을 보러 방문하게 되며필릭스는 잠시 내려놓았던 복수의 대한 열망을 다시금 불태우게 된다.

 

그는 남들이 의문을 갖는 <템페스트>를 진행 시키면서미란다 캐스팅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하지만 한결같은 생각으로 자신이 원래 캐스팅 했던 무용수 출신 앤마리를 캐스팅 하고자 한다모험과 가까웠지만그녀도 <템페스트>가 무산된 이후별다른 이력을 쌓지 못하고 있었기에 다시 함께 해낼 수 있었다그녀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재소자들은 각종 욕설을 내뱉으며 반응하는데이 또한 필릭스 수업의 특징인 셰익스피어식 욕설이라는 게 재밌는 부분이다.

 

극을 진행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필릭스를 보면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겪게 될 모든 난관을, 가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을만한 힘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저 귀찮고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피하고 싶은 일은 토니에게 떠맡겼을 뿐인 것이다


미란다의 캐스팅 문제를 해결한 후프로스페로의 부하 격인 요정 아리엘을 캐스팅 해야 할 때그들에게 아리엘에 대한 편견이나 이미지를 완전 다른 방식으로 그려낼 수 있도록결국엔 모두가 지원하고 싶어하는 역할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마치 프로스페로 현신이 되어 마법을 부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필릭스의 복수가 차근히 진행되어 간다고 믿을수록, 그가 혼자 남겨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어느 누가 감히 그에게 정신 이상자와 다를 바 없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 소중했던 이를 잃게 된 사람이면,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상의 말을 믿을 수 없고, 믿기지 않는다.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한 해가 지날수록 자신과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딸의 모습을 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보같으니그는 혼잣말을 한다그 애는 여기 없어한 번도 여기 있었던 적 없었어네 상상과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 낸 생각일 뿐그저 그 뿐이었지이젠 받아들여.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159



필릭스는 연극을 만들어가는 그 자체가 삶인 사람이다. 때문에 템페스트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성공적으로 해내면, 자신의 복수는 물론 곁에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라던 딸 미란다에 대해, 직면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본 게 아니었을까.


섬은 마법일까필릭스는 자문한다섬은 많은 것이지만그 속에 그가 언급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섬은 극장이다프로스페로는 연출자이다그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그 속에 또 다른 연극이 있다그의 마법이 계속되고 연극이 성공한다면 그는 마음으로부터 바라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하지만 실패한다면…  171


무사히 캐스팅을 마치고, 각 역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작업과 더불어 각각 필요한 소품 등 구체적인 복수의 과정을 진행해갈 때 혹여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닌지, 괜히 함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잘 들어라그들이 울부짖는다그는 생각한다잘 들어라그들이 울부짖는다저들이 쫓기게 하여라이제 나의 모든 원수들이 내 자비 하에 들어왔다. 192


그러나 진짜 삶은 눈이 부시도록 다채롭다고 그의 머릿속 한구석에서 말한다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포함하여 온갖 빛깔들로 이루어져 있다모든 자연은 불꽃이다모든 것이 형태를 이루고모든 것이 만개하고모든 것이 희미해진다우리는 느린 구름이다. 261


작품 속 절정을 이루는 부분은 극을 실제로 진행되는 부분에서 비롯된다. 복수의 대상들 외엔 미리 찍어둔 영상을 재생시켜 놓고서, 대상자들에겐 관객참여형 연극이라며 속인 채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그대로 본뜬듯한 구체적인 복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플레처 교도소를 방문한 다섯 명의 인사들은, 법무부 장관 샐 오낼리, 샐의 아들이자 연극을 하고 싶어하는 아들 프레디, 문화유산부 장관 토니 프라이스보훈처장 시버트 스탠리고든 스트래터지의 로니 고든이라는 인물들. 이들은 곧 필릭스가 꼼꼼히 설계한 덫에 하나 둘씩 빠져 허우적대기 바쁘다. 서로가 죽었다 오해하게 된 샐 부자, 잠시 정신을 잃은 사람을 자신의 출세 욕망을 위해 없애려 부추기는 토니, 그리고 그런 악한 습성을 담은 영상물은 그대로 필릭스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유리한 증거가 되어준다. 


그들과 함께 긴장하며 이 복수가 무사히 마치기를 간절히 빌었다. 

비록 그 끝에 왠지 모를 허무만 남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혼잣말을 한다. “어쨌든 해냈어적어도 실패하지는 않았어어째서 이렇게 허탈한 기분이 들까?"

더 희귀한 행동은/복수보다는 미덕에 있네그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말이다.

미란다다그녀가 그에게 대사를 불러 주고 있다. 349



그렇게 그들의 수업은 향후 몇 년 간은 안정적인 지원을 받고 진행될 것이며, 필릭스 역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단순히 그들의 수업을 지킴으로써 끝이 난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그들이 맡았던 역할의 극 이후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보는 작업 또한 굉장히 흥미로웠다. 기발하고도 독창적인 생각들이 많았다. 대체로 긍정적이었고, 그 인물의 성향에 맞게 그려진 미래였다. 그러나 악한 자의 음습하고 비관적인 미래에 모두 동의하기 어려워했고, 필릭스는 그 부분에서 유연하게 대처했다. 본래 그런 게 아닐까. 삶 자체가 고통이자 인내인데, 앞으로 살아갈 날 마저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될 테니까.


사람들의 긴장이 풀어진다희망의 문이 열렸다그들은 희망의 문을 좋아한다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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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를 하기로 결정한 이후 자세히 서술된 필릭스의 수업 방식은 독특하면서도 진중하다. 그를 따라가 생각하고, 상상하다 보면 그 인물에 대해 푹 빠질 것만 같다주요 공간이 되는 에 대해 각 인물 별로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보는 것 역시 수업을 참여하는 느낌으로 읽게 됐다. 

(사악한 마녀라 불리는 어머니가 자신을 섬에 홀로 낳고 그 곁을 떠나야 했지만칼리반에게 섬은 사랑스러운 공간처럼 느끼는 것으로 설명되는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원작의 각각의 장면들이 군데군데 들어가 있고, 때맞춰 배치된 대사들이 인상적이다. 


이후 뒤풀이까지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뚫린 구멍, 미란다의 자리를 비로소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프로스페로가 복수를 마치고 아리엘에게 자유를 주었듯이, 미란다 역시 자유로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템페스트>가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전에 대해 무지한 게 부끄러운 일이지만,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몇몇 작품들만 가벼이 접했을 뿐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거릿 애티우드의 『마녀의 씨』는 현대식 <템페스트>로 재탄생 되었지만, 이는 곧 셰익스피어를 읽어나가는 작업과도 같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제목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마녀의 씨로 지칭되는 것은 괴물로 괄시 받는 칼리반이다. <템페스트> 속 프로스페로가 어쩌면 자신의 딸의 행복을 위해 복수의 기회의 끈을 잡았고, 오로지 홀로 되었을 때, 곁에 남게 된 칼리반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했듯이. 누구나 괴물과 같은 어둠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 것일까. 여전히 부족한 독해력으로 인해 헤매고 있다. 이건 원작을 다시 한번 접한 뒤, 생각해 볼 거리 같다. 


고전의 재탄생, 재해석된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부담감이 들었다. 미천한 독서의 바닥을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기도 했고, 여러 방면에서 언급되는 작가의 작품이면 내가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소심한 염려와 다르게 『마녀의 씨』는 몰입감이 아주 좋은 작품이다. 분량이 꽤 되면서도 주인공을 비롯한 극 속 인물의 대한 이해까지도 치밀하고 섬세한 구성 속에 잘 녹아들어 그저 따라가기만 해도 큰 즐거움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유난히 길고도 험난했으며,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에서 좋은 작품을 접하고 두고두고 곁에 둘 수 있는 게 큰 선물 같고, 참 감사한 일이다. 넓게 펼쳐진 이야기 속 세계에서 쉬어갈 수 있어 다행스럽기도 하고. 아직 이겨내지 못했지만, 필릭스가 그랬듯이 언젠가 나도 직면할 수 있을까...여전히 어렵고 힘든 일이라 생각되지만...당분간은 이렇게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보고 싶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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