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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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모든 퍼즐이 맞춰졌을 때의 희열이란!




『화이트 래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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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황당하게도 자칭 유괴 전문 프로 우사기타 다카노리의 인질 농성 사건 한 달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시작한다. 그렇다.  우사기타 디카노리는 수상한  유괴전문 벤처기업에서 인질 매입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파트너인 이노다 마사루와 무사히 일을 마치고 사랑하는 아내 와타코를 떠올리던 그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오게 된다. 


바로 "네 아내를 유괴했다"는 전화. 우사기타가 다니는 벤처기업의 젊은 대표 이나바는 공감능력 상실에 타고난 재능을 기이한 폭력성으로 환산하여 돈을 버는 작자로 악질 중의 악질로 등장한다. 여기서 문제란 우사기타의 파트너 이노다가 잠깐 언급했듯이 컨설턴트 '오리오오리오'라는 작자가 회사의 경리 직원에게 접근해 회사 돈을 가로 챘다는 것이었다. 당장 내일 거래를 위한 송금을 위해선 컨설턴트라는 자를 찾아 돈을 되찾아야 하지만, 본디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뛰는 건 대표의 본질이 맞지 않으니, 절실함을 빌미로 직원인 우시가타를 지목, 그의 소중한 약점이 된 와타코를 유괴해 오리오의 행방을 찾기에 이른다.



주식을 대량으로 구입한다. 법안을 통과시킨다. 법률을 위반한다. 법률을 엄수한다. 수술을 하지 않는다. 수술을 한다. 사고를 일으킨다. 물건을 훔친다. 예술가를 후원한다. 예술가의 명예를 실추시킨다.  

인질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그런 일을 부탁한다. 15쪽 


이에 우시기타는 다급히 오리오오리오 가방에 넣어둔 GPS로 위치를 확인한 후, 그가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센다이시의 어느 단독주택으로 침입한다. 평범한 가정집으로 보이는 이 집엔 젊은 청년과 그의 어머니가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무언가를 감추듯 한 수상한 분위기와 2층에 숨어 있어 잡히게 된 아버지라는 사람을 낯설어 하는 이들에게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 그리고 인질교환, 교섭을 위한 달려온 경찰들에게 방송을 통해 오리오오리오를 찾아내라며 농성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 잠깐 생뚱맞게 등장하는 빈집털이 삼인방이 등장하는데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구로사와, 갖가지 제복을 수집하는 나카무라, 그의 부하 많이 엉뚱한 이마무라가 있다. 이들의 범행 수칙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 대화법이 진짜 독특했다.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핑퐁처럼 톡톡 튀는 대화 방식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우사기타는 아내를 탈환하기 위한 농성을 벌이게 되지만 일은 이미 그가 오리오오리오의 GPS를 따라 한 가정집에 침입한 순간부터 모든 게 꼬이게 된다. 그래서 일은 무사히 해결되냐,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맞다. 다행히 권선징악의 법칙은 무사히 수행되고, 일이 해결되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관계가 속속들이 드러나게 된다. 


한편으로는 짐작한 것들이 하나씩 맞아 떨어질 때의 재미도 있었지만, 저 사람 대체 왜 저런 걸까, 했던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에서는 정말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름이 돋았다. 쌓였던 피로가 한순간 날아가는 듯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서문에 스스로를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정의하며, 깜짝 놀랄만한 작품을 쓰고 싶다는 목표에는 아주 성공적으로 도달한 듯 싶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초반에는 진입 장벽이 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서사가 진행되며 서술하는 방식이 낯설게도 작가가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작가의 개입을,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점차 이야기를 풀어갈수록 중요한 순간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 있기도 했다. 마치 그 극 속에 우리를 끌어들여 놓고는 나머지는 알아서 해결해 보시죠, 하고... 유인할 땐 언제고 유유히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지만, 너무 헤매지는 말라는 듯 사건 개요에 대해 친절하게 이것 저것 떡밥과 배경 설명을 해줬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소설 초반을 읽어나가는 독자는 이리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놈의 오리온자리, 지긋지긋한 오리온자리, 레 미제라블 같으니, 하고.

그래서 흰 토끼 사건이란 뭔데? 하고.

(우사기타의 이름에써 따온 건지 알 수 없지만, 오리온자리와 토끼 이야기는 또다른 유머포인트일까?! 흰 토끼 사건이라 불리는 데의 배경은 이야기 속의 깜짝 포인트처럼 등장한다.)


중간중간 샛길로 새는 구성 방식이 조금 산만하게 느껴져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이후의 전개에서 하나씩 차근히 밝혀지는 진실이, 그저 짐작하고 예상한 것들이 맞아 떨어지기도, 또는 완전히 다른 진실로 드러나게 되니 말이다. 

하나의 매듭이 풀리기 시작하면, 모든 사건이 하나씩 착착 해결되어간다. 초반에 열심히 꼬아놓고, 반복하며 설명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사건 해결은 물론 이 사건을 통해 변화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교섭을 하는 경찰 중에는 사고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모두 잃고 빈 껍데기로 살아가는 나쓰노메 수사과장이 있다. 이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철저히 주변 인물을 이용하는데, 바로 그의 직속 부하인 가스카베의 시선으로 그를 설명하는 점이 그러했다. 그가 어떤 이면으로 살아가고 있건, 일단은 정의로운 경찰이었기에 그리고 빈 껍데기로 살아 기고 있었기에 일이 잘 풀리기도 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괜찮은 척 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었기에 의심을 하였고, 의심을 해결하기에 이르렀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 해소되지 못한 자신 안의 매듭을 살짝 풀어내고 다시 삶을 살아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나쓰노메 과장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게 아닐까.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그와 관련해서 좋은 문장과 표현들로 인해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쓰노메 과장의 내면은 그때 공백으로 변했다. 내가 상상하기에는 그렇다.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심정과 감정을 전부 버린 것 아닐까. 최악의 사태로 떡칠이 된 마음이라는 캔버스를 깎아 내어 억지로 흰색 바탕으로 되돌렸다. 

그 후로 나쓰노메 과장에게 감정이란 하얀 캔버스에 물로 그리는 그림과 다를 바 없다. 과장은 언제나 척을 한다. 즐거운 척, 슬픈 척, 살아 있는 척, 옛날의 자신인 척을. 60쪽 


그 순간 나는 주변의 주택이 싹 사라지고 온통 풀로 뒤덮인 구릉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듯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하늘이 너무나 넓고 검어서 거대한 눈동자가 이쪽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작은 별을 손가락으로 이어 나가는 데 푹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저 별들을 연결해서 사냥꾼 오리온이라고 하자. 그럼 이게 오리온의 목숨을 빼앗은 전갈이다. 그런 말을 주고받는 순간, 새카만 하늘에 선으로만 그린 그림이 입체감을 지닌 실체가 되어 떠오른다.  181쪽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이런저런 일이 있다. 그 말마따나 나쓰노메는 날마다 크고 작은 다양한 사건과 크고 작은 다양한 잡일에 힘쓰며, 지금은 이렇게 딸과 함께 걷고 있다. 우주를 기준으로 보면 찰나에 불과할 시간을 슬로모션처럼 늘려서 자신들의 인생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건 그것대로 득을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쓰노메 아이카는 얼마 안 되나마 주어진 '찰나'의 시간조차 제대로 다 사용하지 못하고 죽었다.  186쪽


"일은" 하고 나쓰노메 과장은 독백하듯이 말을 흘렸다. "인생의 대부분을 먹어 치우는 괴물 같아." 

"일이 없으면 인생을 계속 영위할 수 없겠죠." 

"괴물 덕분에 살아갈 수 있는 셈인가." 208쪽 


나쓰노메는 뭉게뭉게 퍼져 나가는 붉은 연기에 감싸이며 내면의 불결함이 빨려 나가는 듯한, 부스럼 딱지 같은 정신의 갑옷이 벗겨지는 듯한 감각을 맛보았다. 

 마치 발치에서 꽃이 피어오르고, 천장에는 딸처럼 생긴 별자리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302쪽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탐정'이고, 이 탐정의 역할을 한 '구로사와' 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가 던진 한 마디로 인해 한 가정이, 고통 받던 시간들을 끝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움츠리고 피하기만 했던 현실의 벽에 거세게 부딪힌 결과가 희망적이라 다행스러웠다. 


"정상이 아니야. 그딴 집에 살면 하루하루가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기분일걸. 한없이 이어지는 좁고 어두운 터널 말이야. 인생이 끝날 때나 돼서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겠지. 그럴 바에는 좀 난폭하게 터널 벽을 뚫고 밖으로 나오는 편이 나아. 오본과 설날을 계기로."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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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삼 느끼게 된 건 역시 '이사카 고타로'의 여러 정체성 중에 작가 스스로 주장하듯 미스터리 소설 작가가 맞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발칙하게도 뻔뻔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되돌아보니 그의 작품은 몇 편 읽어 본 기억이 있고, 그것도 꽤 좋아했었다는 게 떠올랐다. 접한 작품들도 하나 같이 독특했고, 참신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웃기게도 도둑 주제에 낭만적 연설을 늘어놓는 '명랑한 갱' 시리즈도 그렇고, '사신 치바'도 그러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을 창조해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것도 같다. 유해한 존재들이 무해하게 느껴지다니. 굉장한 장점이다.



드라마의 화면 전환하는 구성 방식, 편집점을 만들어 놓은 듯 뚝뚝 끊어 전개했기 때문에 이건 영상화로 만들어내기도 좋은 작품이다. 언젠가는 TV화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그 정도로 생생한 묘사가 한 몫 든든히 했으니, 작가가 읽은 어느 작품의 소개처럼.

'누워서 읽다가 어느 부분에 다다르면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킨다.'를 경험해보고픈 독자들은 기꺼이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을 집어 들기를!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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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꾼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1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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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코지 미스터리계의 웰메이드 작품!




『잔소리꾼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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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의 열 한 번째 작품이 출간됐다. 전편 『아도니스의 죽음』에서는 해미시의 인생의 또 한번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었다. 바라지 않았건만 얻었던 자리인 경사에서 순경으로 좌천되었고, 비공식적이지만 로흐두 마을 내 공식적인 약혼자 프리실라와도 파혼을 하게 되었다. 일과 사랑을 동시에 잃었다고 해야 하나, 원점으로 되돌아갔다고 해야 하나.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그에겐 휴식이 정말 필요했다. 

침울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눈초리에 더 불편한 해미시. 자신도 마음을 다친 건 매한가지인데, 애초에 넘볼 자리를 잘못 보고 덤볐다는 듯이 애정을 가지고 살폈던 마을 사람들 하나같이 해미시의 행동과 잘못에 대해 탓하기만 한다. 

해미시는 자신이 원하던 여행지는 아니지만, 우연히 보게 된 신문기사의 민박집 '프랜들리 하우스'의 광고를 보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전 작품에서도 활약했듯이 사기꾼으로 보이는 점쟁이 앵거스의 구설수 예언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채로. 그러나  이게 우연히 들어맞은 건지, 아님 정말 용한 점쟁이의 점괘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해미시는 휴가지에서 결코 평온한 휴식을 얻지 못한다. 불쌍한 해미시.



그는 썰물을 한가로이 바라보았다. 하늘은 진줏빛이었고, 아름답고 조용한 늦은 오후였다. 고요한 공기 중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머리 위를 갈매기들이 느릿느릿하게 선회했다. 81쪽 

그렇게 해미시의 영혼의 동반자와도 같은 타우저와 함께 휴가지로 떠났건만, 과장광고임에 틀림없는 프랜들리 하우스는 초라한 티타임과 부실하고 위생불량한 식사, 그냥저냥 쓸만한 숙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끊임없이 잔소리와 구박을 일삼는 밥 해리스와 부인 도리스 해리스. 단골손님 같은 화목한 가족 더모트 브렛과 아내 준 브랫 그들의 딸 해더 브랫, 일탈을 꿈꾸는 것처럼 보이는 트레이시 핑크와 셰릴 겜블, 젠틀하지만 도리스 해리스와의 정분이 날 듯한, 불화를 싫어하는 해미시의 걱정을 더해주려 듯한 퇴역군인 앤드루 버거, 전직 교사이자 해미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여인 펠리시티 거너리, 양심불량 민박집 부부 핼리 로저스와 리즈 로저스가 등장한다. 

늘 그렇듯이 우리의 주인공이 가는 길은 피곤하게도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주인공의 활약할 무대가 주어져야지만 활력을 띠는 게 미스터리 소설의 법칙과도 같기에 당연한 수순이지만.

물론 해미시는 어떠한 사건에도 끼어들 의도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사건의 전조로 보이는 두 남녀의 눈맞춤이라든지, 끝없이 세상 모든 불평을 아내에게 퍼붓다 못해 폭행까지 휘두르는 밥 해리스 덕에 해미시는 결국 사건에 휘말리고야 만다. 

한밤 중에 소란을 일으키는 민페객에게 한방 시원하게 날렸다가, 조사받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 당시 밥 해리스에게 폭력과 좋지 못한 언행을 그만 두라는 해미시만의 위협적 발언을 투숙객 모두가 듣고야 말았는데, 나중엔 이 잔소리꾼이 정말 죽은 채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초 발견자가 해미시 본인이라는 게 더 문제였다. 그러나 해미시는 늘 인명을 우선시하는 경찰이기에 열심히 인공호흡도 해보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인 이 사람. 밥 해리스와 오해를 풀기 위해선 영락없이 범인을 추적해야만 하는 해미시.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짖궂지만 다정한 모습도 여실히 보여주며 사건 해결에 힘쓴다.


폐소 공포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는 가려고 일어섰다. "차 한잔 마시고 가요." 그녀가 말했다. 벌겨벗겨진 외로움이 그녀의 눈에서 황급히 튀어나왔다. 외롭지 않을 리가 없지, 해미시는 생각했다. 고약하고 성가신 늙은이. 하지만 그는 다시 앉았다. 언젠가는 그도 늙고 고약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차를 마시고 그녀의 스콘이 세계 최고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그녀가 쏟아 내는 불만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108-109쪽 


"이보세요, 로저스 씨. 정도껏 하셔아죠. 이 똥 같은 거 치우고 먹을 만한 걸 내오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관광청과 보건당국에 신고할 테니까요." 125쪽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다행히 꽉 막힌 전개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의 활약을 듣게 된 담당 경찰 샌디 디컨 경감은 추후 해미시의 사건 해결능력에 의존하며, 실리의 표본을 보여준다. 그 곁엔 여자여서 차별받는 것에 대한 불만을 여자여서 할 수 있는 행동으로 기회를 얻으려는 매기 도널드가 등장한다. 우직한 여성 캐릭터가 없다는 게 한숨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해미시의 미남계는 여전히 잘 통하는 듯하고, 의도치 않았다해도... 러브 라인이 생기려나 했지만, 금방 무산되고 만다.  

그 사이 갖가지 오해가 생겼다 풀리기도 하고, 또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사건은 아무래도 타우저의 죽음이었다. 세월의 흔적이야 비켜나갈 수 없다고는 하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앞에 해미시는 모든 것을 상실한 듯  상심할 수밖에 없다. 그의 가족이었자, 친구였다. 일상은 물론 경찰로서 일할 때조차 항상 옆에 있어주었던 존재이기에, 이 모든 게 갑작스럽기만 하고 혼란스럽게만 느껴진다. 




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서, 이 녀석아, 다 큰 녀석이." 해미시가 타우저에게 다가갔다. 그는 타우저의 거친 털에 손을 얹었다가 이내 꼼짝도 하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그는 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흔들던 손을 문득 거두었다. 크나큰 고통의 검은 파도가 그를 에워샀다.   
 타우저가 죽었다. 135쪽 


매기는 디컨 경감의 지시로 해미시가 로흐두로 돌아가 타우저를 묻어주기 위해 되돌아가는 길을 동행하게 된다. 

그들 앞에 첩첩산중이 펼쳐져 있었다. 산 위의 구름이 빛줄기로 갈라져 있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천사들이 사다리로 썼을 법한 모양이었다. 딱히 감성적이지 않은 매기마저 전율이 이는 것을 억눌러야 했다. 마치 어떤 기이한 야만의 땅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140쪽

그를 외면하며 상처를 줬던 로흐두 마을 사람들은 해미시의 사정을 알게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타우저를 보내는 엄숙한 장례식을 함께 치른다. 그것도 복장도 신경써 갖춰 입고서 온 마음으로 상실과 애도를 표한다. 다시 한번 마을의 정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는 듯 했다. 미우나 고우나 정다운 이웃이라는 것일까. 

이따금씩 타우저의 흔적과 빈 자리를 떠올리면서 수사에 집중하게 되는 해미시.  알리바이를 추적하고, 기자 친척인 로리의 정보통과 널리 퍼져 있는 해미시가 사람들과의 연락으로 차근차근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찾게 된다. 그와중에 밝혀지는 곁다리 사연이랄까, 불법 식품 유통과 불륜, 그리고 시한부, 새로운 시작 등 인물간의 관계성도 묘하게 맞물려가고, 또 다시 해체되기도 한다.

워낙 여러 사연들이 등장하고, 여러 인물들이 얽혀 있기에 스피드한 전개라기보다 짜임새가 촘촘한 스토리 라인에 지루해할 틈 없이 재밌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해미시 특유의 비꼬는 듯한 익살스러운 유머가 있기에 재밌긴 했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더 읽을 거리가 많아 즐거웠다.

여전히 직관적인 추리력으로 사건을 무사히 해결해가는 해미시, 이번에는 무사히 증거도 찾았건만 범인의 사정과 마지막 결정이 너무 안타깝고, 역시 인간이란 욕망의 동물인가 싶어서 씁쓸해졌다. 그렇게 모든 걸 걸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안타깝기만 했다.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싶고, 사람은 모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의 기준에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다. 사랑이 전부였기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대신 이뤄주고 싶었던 소박한 바람이 어쨌거나 한 생명을 앗아가게 됐고, 그게 공공의 적이자 인류의 해충같은 존재일지라도 그것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는 타자에게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해미시의 휴가는 결국 물거품이 된 셈이다. 승진과 공로에 별 욕심없는 해미시와 블레어 경감만큼의 욕심을 가졌지만 그보다는 인정(?)이 있는 디컨 경감과 해미시의 티키타카. 모두가 윈윈하는 결말이 됐다.



"잊었습니다. '경감님'. 제가 어쩌다 보니 휴가중이어야 하는데, 라는 미친 생각을 하고 있었지 뭡니까."
"뭐, 휴가가 아니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잊자고. 자네는 겉보기와 다르게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이라고 정평이 나있더군. 이 사건이 자네 관할 구역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세. 자네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182쪽


 디컨은 다시 앉아 책상 서랍을 열고 봉투를 하나 꺼냈다. 
"내 밑에서 일하느라 휴가를 망쳤으니, 여기 동봉한 게 보상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
 해미시는 봉투를 열었다. 안에 450파운드가 들어 있었다. 감히 경찰에게 뇌물을 주다니, 하는 게 처음 든 생각이었다. 뒤이어 상관이 부하에게 주는 뇌물은 뇌물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실용적인 생각이 따랐다……그렇지 않은가?
 그는 봉투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저는 그럼 가보겠습니다, 경감님." 
 디컨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311쪽

이번 편에서는 프리실라의 등장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름을 언급한 것은 빼고서. 그래서 다음 편에서의 둘의 관계성을 다시 어떻게 풀어낼 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해미시의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은 치유받지 못했으며, 가족같은 타우저마저 잃었다. 온전히 혼자의 삶이 돼버린 그가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나갈 것인지. 좋은 쪽으로 풀리기를 바랄 뿐이다. 로흐두 덕후 해미시는 다시 마을 속으로 틀어박히게 된다. 해미시에게는 '이불 밖은 위험해'가 아니라,'로흐두 밖은 위험해'인 셈이다. 주로 경찰서 일로 인해 이동하여 근무하거나, 근처 마을을 돌았었는데 이번엔 휴가지라 더 색다른 스토리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다음 사건이 벌어질 공간은 어디일지, 어떤 괴짜들이 등장할 것인지도 기대된다. 


 웬 인생의 낭비인가, 그것도 모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후 세계가 있었으면 좋겠네, 사나워진 심정으로 해미시는 생각했다. 거너리 양, 그래서 당신이 이 모든 걸 보고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책상 서랍에서 위스키를 꺼내 잔에 따랐다. 올해는 그도 어디가 됐든 휴가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로흐두에 눌러앉아서 낚시나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로흐두 밖 세상은 사악했다. 319쪽


**


이번 작품의 서두에는 작가님의 친서와 같은 인사말이 담겨 있다.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건 작가님의 로흐두 마을의 배경이 된 서덜랜드에 대한 충만한 애정이 듬뿍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해미시 시리즈를 읽다 보면 주변 풍경과 사람에 대한 묘사에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훌륭한 필력과 다채로운 스토리가 구성되어 함께 어우러지니 재밌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코지 미스터리의 '코지'는 편안함이나 안락함 등을 뜻한다고 한다. 즉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 장르인 것이다. 또한 코지 미스터리는 생각보다 오래된 장르로써, 등장 인물들 사이의 관계성이나 가십 등이 중심이 되는 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범인을 추적해나가는데 주요 실마리가 된다. 


코지 미스터리를 알게 되고 접한 뒤에 가장 많이 추천받고 읽게 되는 것은 조앤 플루크의 컵케이크 살인사건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컵케이크, 쿠키 등이 들어가는 살인사건이라니, 심지어 주인공은 쿠기가게의 주인이다. 물론 로맨스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삼각관계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이 시리즈는 맛있는 디저트들의 잦은 등장으로 허기짐의 고통을 더해준다면,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는 정말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로흐두 마을을 관광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때론 그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상상마저 하게 된다. 


모든 걸 잃게 된 주인공의 휴가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보자니, 하나씩 쌓아 왔던 작가의 내공이 순간 폭발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미시 맥베스는 코지 미스터리계의 웰메이드 작품이다라는 생각을 감히 해보았다. 이는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며, 언제든 믿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국에서 사랑받는 작가라는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요즘과 같은 오락가락한 날씨와 미세먼지의 답답한 공기 속에서 멜랑꼴리한 기분을 해소시켜줄 훌륭한 시리즈이다.


해미시, 또 언제 만나볼 수 있는 걸까요. 다음 편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독자단 3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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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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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라는 그림자 속에 가려진 차별에 대하여



 

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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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로 대표적인 작품으로도 손꼽히는 '오셀로'는 베니스 공국의 흑인 장군 오셀로가 명망 높은 집안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시기와 야망에 눈이 먼 부하의 꾐에 속아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한 끝에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 프로젝트를 통해이 작품을 선택한 작가는 진주 귀고리 소녀』작품으로 유명한 트레이시 슈발리에이다.


새로 각색되어 탄생된 현대판 오셀로 뉴 보이는 1970년대 미국 워싱턴의 외곽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전학 온 와 그런 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1974년 워싱턴 교외의 한 초등학교백인 아이들로 가득했던 이곳에 검은 피부를 가진 소년이 전학을 온다가나 출신 소년 오세이 코코테. ‘’ 교내 최고 인기 여학생 이탈리아계 미국인 소녀 다니엘라. ‘


디는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지닌 오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에게 관심을 표현한다. 이는 평상시의 늘 수동적이어야만 했던, 어른들의 눈에 들려 애썼던 것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었다오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누나 시시의 변화에 대해 아직 아물지 않는 상처와 두려움이 있었지만이방인인 자신에게 다가와준 디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이내 자연스럽게 교내 풍경에 녹아들기 시작한 오

이를 불안하고 달갑지 않게 여기지 않은 이도 있었으니바로 운동장의 왕으로 불리는 이언이다교묘하고 저열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시기심의 인물이라기보다 그저 독재자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오는 그런 이언의 꾐에 넘어가고작은 오해와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결국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뉴 보이』 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의 플롯 그 위에 새로이 덧그려진 설정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또 다른 비극을 보여준다성인에서 아이로연령도 시대도 각기 다르기에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비교해보는 맛도 있다아이들도 단순히 어린 나이의 순수성 뿐만 아니라 사춘기로 접어드는 과정에서의 성에 대한 관심미묘한 감정과 시기질투 등 그 관계성이 드러나는 게 탁월했다.



원작에서는 비극의 씨앗 같은 소품 손수건이 이 작품에서는 필통으로 대체됐다또한 오는 이방인으로서소외받는 입장에서 서 있을 수밖에 없고, 그가 받게 되는 완고한 벽 같은 편견과 상처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마지막까지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한 언어적인 폭력이 오에게 가해진다.


그렇다면 비극으로 치닫기 위해 그랬을까자신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간단히그리고 직접적으로 한 마디로 물어봤으면이러한 비극적인 결말이 나오지 않았을 텐데안타까운 마음만이 남았다원작의 플롯을 토대로 하는 작품이기에 당연한 결말이었지만서로를 통해 변화하게 되는 오와 디의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에 결말으로 향할수록 그 감정상태가 아쉽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각 인물들이 본연의 설정과 캐릭터를 잃지 않고그대로 연령만 낮아진 느낌이다간악하고 비열한 인물 이야고는 운동장의 왕 이언으로그의 아내였던 인물은 미미라는 섬세한 기질의 소녀로이야고가 오셀로를 꾀어내려 이용한 인물인 캐시오와 그의 연인 비앙카는 학생들의 인기와 평판이 고루 좋은 선한 남자아이 캐스퍼와 발랄한 소녀 블랑카로 재탄생 되었다데스데모나의 완강한 아버지를 대신하여브라반트 선생님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또한 시간성도 한정되어 있다뉴 보이』속 사건과 시간의 흐름은 오가 전학온 날 오전에서부터 오후까지, 딱 하루의 일어난 일들이다하루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디는 차분하며 매력적인 소녀로 등장한다그녀는 엄격한 어머니의 기준 아래반항이란 걸 해본 적도 없었던 걸로 보인다심지어 학교에서조차 브라반트 선생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애정을 받기 위해 얌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모범생 같은 그 아이 옆에 오라는 소년이 서게 되자 디의 세계는 좀더 다양한 색채로 빛나게 되는 것 같다머리스타일 하나 자유롭지 못한 그녀가 길게 풀어헤치거나, 둘만의 세계에 빠져 서로를 만지게 됐을 때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세계에 머물고 싶어 하기도 한다.

 

오는 겉으로 보기엔 차분하지만내면은 혼란스러움을 담고 있는 소년이다자신의 영혼의 단짝 같았던 누나는 흑인에 대한 사상과 본질에 대해 몰두하여 점차 멀어져 갔고집안에서는 이야기할 상대를 찾을 수가 없다부유하지만외교관이라는 아버지의 직업이 무색하게오의 집안은 어디서나 시선을 받게 된다오는 디와의 애정과 관심에 기쁨과 더불어 의기소침했던 마음의 균열은 아주 쉽게 일어났고이는 충동적이지만마음을 다친 오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놀라움과 안도가 디의 몸속에 넘쳐흘렀다오도 디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두 사람은 서로의 안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디는 이제 진짜 연인들이 서로에게 사귀자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다두 사람은 이미 함께였다물어본다는 건 아기 같은 짓애들이나 하는 농담이었다디와 오세이는 이미 그 단계를 훨씬 뛰어넘었다. 99

 

원작 '오셀로'에서의 중점은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더불어 자신이 겪어왔던 불합리함에 몰두하여익숙한 나머지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남자의 비극적 결말과 보지 않아도 될 것을 잘 보는 인물의 저열한 행태의 연쇄작용의 결과로 보여진다결국 오셀로는 자신의 사랑에 자신이 빠져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는 오도 마찬가지이다하지만 더 크게 다가온다오가 겪었을 차별의 상처들이 채 가시기 전에 스스로 자초한 일들로 인해 더 큰 상처로 뒤덮이게 된다많은 시간이 지났어도이에 대해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여전히 곳곳에 차별은 존재한다선생님들 마저도 오를 구역질 난다 표현했을 때읽는 나에게도 왠지 모를 상처가 되었다.

 

디가 사라지자 세계는 납작하고 어두워졌다디가 있어서 오의 아침은 참을 만했다더 나아가디는 그 아침에 색을 입혔다이제 디가 사라지자 사물은 다시 흑백으로 바뀌었다. 128

 

다시 찾아온 흑백은 오가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하지만 오 역시 상처에 무디지 못한 아이일 뿐이다그리고 그런 상처는 더 겪지 않아도 될 것들이었다.

 

오래전 어머니가 머리카락을 직접 자르고 보통 정도의 아프로 머리를 하고 다녔을 때는가끔 줄에 서 있으면 뒤에 선 여자애들이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경탄하거니 다음 순간 손가락을 치마에 닦곤 했다. 137


"왜인지 아시잖습니까." 브라반트 선생은 음침하게 대답했다. " 이 학교는 흑인 학생을 받을 준비가 안 된 겁니다."

"안 된 것 같네요."

"그리고 하루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어요이런 말 아시죠말썽은 늘 셋씩 무리 지어 온다." 198


오세이는 생각했다누나는 이 백인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알 터였다. "검은 것이 아름답다." 오세이는 중얼거렸다이보다 더 믿고 싶었던 말은 없었다. 241

 

오의 순간의 어리석음과 자조가 안타깝기만 하다.

 

정글의 왕미미는 생각했다하지만 가엾은 왕이야.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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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호흡이 끊기지 않고 한 번에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았다왜 연령 설정을 굳이 중학생에 올라가기 직전의 아이들로 했을까이는 원작의 플롯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다무대를 조금 옮겨왔지만여전히 비극으로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는 원작 못지 않게 이성간의 긴장감을 묘하게 잘 살렸기 때문이다. 또한 본래의 이야기를 훼손하지 않고 또다른 비극으로 재탄생되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작품의 각색이라니말만 들어도 부담일 것 같은데...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은 모두 각각의 특성과 매력이 있었다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굉장히 매혹적인 시리즈 같다원작과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보며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또 새삼 역시 셰익스피어는 대천재구나,싶기도 하다.


본래 타고난 것에 대해 어느 누구든 차별할 권리는 없다차별이란 무엇인가자신을 상대보다 우위를 두기에 나오는 저급한 사고와 행동들이다인간은 누구나 평등한 위치에서 바라봐야 하는 게 아닐까단순히 시기심과 질투가 아닌 묵직하고 꼭 생각해봐야 할 필수적인 질문들에 답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주는 작품인 것 같다조금씩 변화해나가는 것이다아주 긍정적으로관심을 가지고 반문하고 끊임없이 소리내야 한다조화롭게평화롭게.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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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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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만약'이라는 가정 속에서,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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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이 좋지 않지만, 좋은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지독히도 빠져들게 된다. 그날은 그렇게 빠져든 상태로 흘려보내야 한다. 이 작품이 그러했다. 피하고픈 슬픔이 찾아들어 곤욕스러웠다.

    

여기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소중한 존재들 모두. 그에게 남은 거라곤 그 뒤를 따르겠다는 허망한 죽음에의 의지뿐. 텅 빈 가슴으로 겨우 숨을 내쉬던 그에게 쪽지 속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뒤집어버렸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진실을 향한 갈망은 짙어졌다.

  

  

우진은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는 지켜주고 싶은 아내와 별을 사랑하는 딸이 있다. 지독한 운명의 굴레인지,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난 후, 과실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차를 분해하기 시작했고, 아무 생각 없이 몰두할 수 있는 그 일이 잘 맞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어느 날, 우진의 시끄러운 정비소에 날카로운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유독 그의 귀를 잡아끄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불안감이 일렁였고, 외면하고 싶어졌다. 그 예감을 비웃듯 우진의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우진에게 또 다른 불행과 상실을 암시했다. 

  

아내는 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는가, 자신에게 이러면 안됐다는 아내의 말에 우진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우진의 서사가 진행될수록 그가 어떤 상실을 겪었는지, 어떻게 가족을 떠나보내게 됐는지 아픈 상처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혼자 남겨진 우진이 선택이란 결국 그 뒤를 따르는 게 최선인 듯 했으나, ‘진범’이라는 단어 하나로 딸의 죽음 속 감춰진 진실을 찾기 위해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이다.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묘사로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와 그들의 사정이라는 것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별을 사랑하고 드넓은 하늘을 향한 꿈을 키웠던 수진, 모든 걸 다 가진 듯 보이는 가정 속에서, 부모의 이기심으로 인해 따뜻한 애정을 갈구하지도 받아보지도 못한 세영과 수진의 죽음을 미성년이라는 이름 아래, 가벼이 넘기려 했던 세 아이들. 아슬한 관계성에서 피어난 악랄함과 또 다른 피해자. 가해자와 피해자. 한 끗 차이가 된 셈이다. 그러나 그 무게를 감히 비교하지도 가늠할 수도 없겠다. 특히나 그 이유라는 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심이라 하더라도. 그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건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처절한 추적이다. 우진은 딸과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했다. 도대체, 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 사랑스러운 딸, 수진이어야 했나, 왜 하필, 그 많은 병원 중에서도 그 병원이어야 했나,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편이 또 다른 악연으로 이어지고, 어떻게 서로 엇갈리게 되었는가. 자식을 잃은 슬픔이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또한 지독히 현실적인 상황에 맞물려야 할 때, 그 치욕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왜, 운명은 유독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사는 게 더 고통인 삶속에서 우진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다. 유능한 검사에서 변호사로. 재혁이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행했던 것들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게 되었는가. 왜 가진 자들의 행패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가. 다소 상투적인 구조와 진행방식일 수도 있다. 미성년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법을 저지른 인간들이 아무런 반성도 없이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유사사례들을, 그보다 더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고, 그래서 더욱더 거침없는 청소년 범죄를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징벌을 가할 것인가. 너무나도 어렵고 안타깝고 한탄스러운 일이다. 

  

가족을 잃은 한 사람의 끈질기고, 처절한 복수극에 대한 서사는 다수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작품이 더 와 닿았던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내게 전달됐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믿기 어려운 죽음에 대하여, 그 상실과 허무에 대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외면과 회피를 일삼으며 비루한 하루를 더 연명해나가는 지금. 그래서 더 아픈 작품이었고,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수많은 가정들 속에서 괴로웠다. '만약'이라는 수많은 가정들. 

'만약' 그날 끝까지 연락을 했더라면, '만약' 그날 자신을 대신하지 않게 했다면, '만약' 자신이 나서서 무언가 행동했다면, '만약' 알게 된 진실 앞에 간절했어도 다른 병원을 찾아 갔더라면, '만약' 고통스러움 속에서 더욱더 그 곁에 있었다면...

  

사회파 미스터리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미야베 미유키였다. 단순히 다루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심리와 사회구조와 현상에 대해 끝없이 파고드는 그 힘과 끈기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국내 미스터리를 비롯한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잘 찾아보지 않았다. 특유의 정서와 담긴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잘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도 미지했다. 

  

여기 서미애 작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믿고 보는 작가리스트에 추가할 수 있겠다. 치유되지 않은 상실에 대하여. 감히 권할 수는 없으나, 여기 나와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문득 문득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올 때에도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하고 마는, 아직도 어리석은 회피가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있기에, 살아가고자 하기에...언젠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이 리뷰는 엘릭시르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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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스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0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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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모의 청년 그저 소모됐을 뿐, 



『아도니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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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등장인물' 속 프리실라가 해미시의 약혼녀로 소개되었다. 늘상 이 둘의 관계는 사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사이도 아닌, 그런 애매모호한 긴장감을 즐기는 건가 싶은 사이였다. 이제는 서로의 마음을 속이지도 않고, 다른데 눈 돌리지도 않고, 훈훈한 비주얼 뽐내며 앞날엔 핑크빛 오오라만 풍길 줄 알았더니... 첫 페이지를 넘기기가 무섭게 두 사람 사이가 삐걱거리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얼마나 허망한 기대였는지. 해미시의 애정가득한 마을 풍경을 묘사한 직후, 그의 평화로운 의식을 깨트린 건 다름아닌 프리실라의 숙소 개조 소음이였다. 


그렇다. 비공식적이지만 이 둘은 약혼한 사이가 되었고, 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눈들이 참 많다. 어쩌면 당연한 갈등이었고, 이에 대한 조짐은 예정된 불행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시의 생활을 기대하는 프리실라와 평온한 시골마을의 생활에 만족하는 해미시. 성공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고 싶은, 해미시는 그럴만한 인재가 맞다는 자기 확신으로 은근히 밀어 붙이는 프리실라와 성공을 결벽적으로 기피하는(자신의 공을 그토록 혐오하는 블레어 경감에게 돌리기도 했다), 전혀 이 마을과 낡은 숙소에서 떠날 생각이 없는 해미시. 


이 둘의 관계를 이렇게 횡설수설 길게도 늘어놓게 된 건 일말의 아쉬움이 남아서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순 없지만, 어쩌면 이런 관계성이 반복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갈등을 보여주기 이전에 살짝의 달콤함을 던져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이 소설은 코지 미스터리이다. 로맨스는 부가적인 요소일 뿐, 미스터리물에 가미된 약간의 조미료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작가 스스로의 역량이 한껏 발휘되는 분야이기도 하고, 이 번 에피소드에서는 사건보다 이 둘의 관계성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본격적인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 해미시는 수개월 동안 지나치게 평화로운 로흐두 마을에 좀이 쑤셔오던 와중에,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 감정만 상하게 되고, 로흐두와 마찬가지로 해미시의 담당인 마을 '드림'에 매력적인 인물 피터 하인드가 등장하게 된다. 잉글랜드 출신 상류층 인물이 '검은 산으로 둘러싸인 검은 협만 끝에 자리한 음울하고 고요한 마을 드림'에 정착하고자 한 것이다. 해미시는 왠지 모르게 사건의 냄새를 맡은 것인지 이 인물을 탐색하기 위해 '드림'을 방문한다. 로흐두와 달리 '드림'은 정말이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마을이기에 경찰의 등장에 긴장해버린다. 해미시의 묘사만 봐도 마을 간 분위기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해미시 맥베스는 침실 창문을 열고 게으르게 가슴팍을 긁어 대며 바깥 호수를 바라봤다. 표백이라도 된 듯한 날이었다. 태양 아래 높이 떠 흘러가는, 우유처럼 새하얀 구름이 주변 산등성이와 호수에서 색을 빨아들여 로흐두는 마치 예술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처럼 흑백으로 변해 가는 듯 보였다.  5쪽



드림은 높이 솟은 검은 산으로 둘러싸인 검고 가느다란 협만 끝에 있는 평지로, 좀 독특한 장소였다. 자갈과 검은 돌덩이로 뒤덮은 해안에는 잘 자라지 못한 덤불 외에는 아무것도 뿌리 내리지 못했다. 동쪽에서 언덕을 넘어가는 좁은 1차선 도로만이 드림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물론 바다를 통해 들어가겠다고 무모하게 덤비지 않는 한. 마을에는 교회와 마을회관, 잡화점이 하나씩 있었고, 그 주위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경찰서는 없었다. (…) 드림에는 범죄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 심지어 주정꾼 하나도 없었다. 술집도 없거니와 술도 팔지 않기 때문이다. 16쪽


로흐두와 드림에 대한 묘사만 봐도 얼마나 대조적인지, 드림은 그야말로 고요하다 못해 따분한 마을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이런 생기 없는 마을에 미청년의 등장했으니, 작은 설렘과 소동은 물론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피터 하인드는 외관만 멀쩡한 쓰레기였으므로, 그 미모 가지고 가만히 있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그러만 이야기 진행이 안되고, 사건은 일어나지 않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피터 하인드는 키가 175센티미터쯤 돼 보였다. 얼굴과 몸은 황금빛으로 보기 좋게 그을려 있었다. 늘씬한 근육질 몸매에, 금빛 머리칼은 모자처럼 머리 위로 돌돌 말려 있었고, 그 아래로 높이 솟은 광대뼈에, 황금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 주위를 둘러싼 속눈썹이 짙었으며, 단호해 보이는 입술은 그린 듯이 모양이 멋졌다. 목선은 고대 조각가들이 꿈꿀 만한 모양이었다. 19쪽


"아니요." 해미시를 비롯한 고지 사람들은 싫어하는 사람의, 혹은 피터의 경우라면 '싫어진 사람'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56쪽



피터는 허영심 넘치는 속물이다 못해 다른 사람을 특히, 이성을 조종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였고, 이리저리 추파 안 던진데가 없었고, 이에 웃기고도 슬픈 사실은 피터의 눈길을 받고자 외관을 치장하는데 힘쓰는 부인들 덕에 마을에 활기가 돌게 되었던 것이다. 남편들의 분노는 덤으로 말이다. 하지만 과연 이게 아무런 낙 없이 사는 중년 여성들의 잘못만 있는 것일까. 서로에게 실망한 채로, 인내를 강요당하며 살아왔던 게 문제 아니였을까. 이번 에피소드 역시 아픈 구석 하나를 꼬집고 가게 된다. 주요 화두는 결혼이다.


잠시 후 씻지도 않고 수염이 덥수룩한 해리가 헐렁한 바지 아래로 멜빵을 축 늘어뜨린 채로 발을 질질 끌며 나타났다. 해미시는 짜증이 확 밀려왔다. 늘 이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면서, 대체 드림 남자들은 아내에게 뭘 기대하는 걸까?  85쪽


프리실라와의 다툼을 피하고자 드림의 분위기를 살피던 해미시와 그를 찾다 엉터리 점성술사로부터 제3자로 인해 헤어지게 될 거란 예언에 불안해하는 프리실라. 같이 살 집을 보러 다니면서 그 집의 문제를 발견하고 파고드는 해미시와 아버지의 반대에 반항하면서도 애써 진실을 외면하는 프리실라. 두 사람 사이에는 피터 말고 소피라는 토멜 성 호텔 접수원도 끼여들게 되는데, 제 3의 인물은 아마 이 인물일 듯 싶다. 엉망진창으로 흘러가나 싶지만, 어느 순간 서로에게 강한 애정을 느끼고 더 나아가는 듯 싶지만, 그럴 운명이 아닌가 싶은게 방해요소가 다시금 등장한다.


드림 마을 어부 해리의 딸 헤더가 찾아와 피터가 죽었다고 말하는데,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갑작스럽게 마을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터와의 관계를 감추지 않았던 해리의 아내 베티는 실족사의 상태로 발견된다. 해미시는 피터의 잠적을 수상하게 여겨 그가 살아있는게 맞는지, 그의 정체를 밝히고자 동분서주한다. 그와중에 훌륭하게 강도도 잡았건만, 과잉방어로 고소당한 해미시와 이러한 일들을 부추긴 블레어 경감이 너무 여전해서 반갑기까지 했다.


피터의 과거사와 그의 가족까지 찾아 그의 생사를 알아보려 하지만 오리무중이고, 드림 마을은 전처럼 고요해졌으나 큰 상처를 입었다. 어린 헤더는 엄마를 잃었고, 피터가 오기 전까지 친한 친구사이였던 낸시, 베티, 에디, 앨리스, 아일사 모두 서로에게 등을 돌린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목사 아내 애니는 부인들에게 팬터마임 공연을 제안한다. 공연을 준비하는 중에 또다시 사건이 하나 발생되고, 이는 금방 해결되었지만, 깔끔하게 해소되는 것 없이 갈피를 못잡는 해미시는 결국 범인을 찾아낸다. 그것도 쉽게 자백도 받아냈지만, 발견한 시체는 다름아닌 픽트족 유골이었다나 뭐라나.



가치관과 신념, 각자가 살아온 세계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해미시는 상류층의 프리실라와의 신분 차이를 적잖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프리실라 역시 그녀에게 그런 삶은 당연한 것이었고, 잘 살고 싶었기에 한 선택들이 그녀를 더 속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잘 묘사한 데에 있어서 작가의 천부적인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각 인물에게 이입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개연성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해미시는 슬프게 그녀의 부드러운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그는 내일 그녀에게, 실제로 약혼을 하기는 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약혼은 이제 끝이라고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둘 사이에 가로놓인,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그 모든 말들을 끌어안은 채 더는 하루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301쪽 


내 삶에 남은 게 뭘까? 그는 생각했다. 다시 말단 순경으로 강등되었고, 프리실라도 없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와 있었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거세게 불고 눈발은 창문에 부딪히며 소곤거렸다. 스토브는 붉게 활활 타올랐고, 팬에서는 스테이크가 지글거렸다. 그때 갑자기 경찰서가 다시 야비한 바깥세상에서 그를 지켜 주는 피난처처럼 보였다. 
"그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을 뿐이야." 그가 타우저에게 말했다. 
337쪽



사실 두 사람이 행복해지기에 주변의 시선들이 너무 많기도 했다. 너무 공공연하게 알려졌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고, 시골마을 속 삶이 곧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누가 누가 뭘 했는지 금방 소문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너무 가깝기 때문에. 

두 사람의 행복한 결실로 이어지기까지 많은 시련과 난관이 펼쳐질 거란 예상은 했지만, 약혼하기 무섭게 헤어질 줄은 몰랐다. 이제는 도무지 앞을 예측할 수도 없다. 전편까지는 나름 사건을 추리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이번엔 나 역시 해미시처럼 헤매기만 했던 것 같다. 그것도 말도 안되는 짐작으로 제발 아니길 했던 범인의 정체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안도해야 했고, 요즘 미스터리물이 얼마나 자극적이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기도 했다. 


헤어짐을 고하는 해미시의 홀가분함이 느껴진데 반해 나에겐 아쉬움만 남았다. 가까운 친구 사이를 갈라놓기를 좋아했던 피터, 이 시리즈의 불문율처럼 죽는 이는 한결같이 못된 인물인지라 그의 죽임이 너무 당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둘 사이를 훌륭하게 방해했던 소피같은 여자가 아닌 각자에게 정말 좋은 상대가 나타나길 바랄뿐이다.




**



끝까지 두 인물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은 건 그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너무 힘들어 모든 것으로부터 회피하고 도망치고 싶을 땐 해미시가 찬양한 로흐두 마을의 풍경을 그려보곤 했다. 해미시가 바라는 삶처럼 성공을 위해 애쓰지 않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유유자적 살아가고픈 생각도 들었다. 당장이라도 로흐두 마을 속으로 들어가 살고플 정도로 고달프고 지친 나날들이었다. 


이야기에 빠져들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으니 좋다. 오직 그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너무나도 재미있고 매력적이라면 그건 바로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를 두고 한 말이라 감히 칭하고 싶다. 다음 편 역시 너무 기다려진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독자단 3기' 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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