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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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헬로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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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시대배경은 이러하다. 1990년 초반 에너지 고갈에 대한 문제로 인해 미합중국의 붕괴 이후 생긴 인구급증 문제, 식량난을 해결하고자 대규모 기후 제어를 시도하게 되고, 이러한 계기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의 기후는 격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역시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선은 시대적 배경을 배제할 수 없음을 뜻한다. 지금은 다르게 볼 수 있는 측면이지만 이전에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던 요소들에 대하여. 에너지 고갈의 문제점을 논할 때 개발도상국들의 산업화를 특징적으로 거론하는 걸 보면 특히 그러하다. 지금은 그 개념과 보는 관점도 달라졌지만, 이를 원인으로 보고 결과를 분석하는 방식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법이 될 것 같다.)



강대한 산업국의 몰락, 생명력을 잃어버린 듯한 미국이란 나라의 시민들은 안전한 농촌으로, 대서양을 건너 이주하기 이른다. 2030년에 이르자 미국은 완전히 버려진 땅이 되었고, 정부와 국체가 모두 소멸되어 버린다. 



한때는 강력하고 비옥했던 땅이자 찬란하게 빛났으나, 10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엔 허황된 금빛 모래사막의 세계로 변해버린,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떠나는 아폴로호. 선장인 스타이너와 기술자 맥네어, 정치장교 오를롭스키와 원정대의 주목적인 방사능 수치를 조사하기 위해 올라 탄 앤 서머스 교수와 리치 박사, 그리고 출생의 비밀과 친부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밀항한 젊은 청년 웨인까지. 



이렇듯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각 인물의 시선이 다른 인물로 향할 때 시점이 변환되어 스스로 자신의 욕망에 대해 서술하는 처음과 달리 이후에는 주로 웨인의 시점으로 모든 상황이 전개된다. 폐허가 된 도시의 차기 대통령이 되길 원하는, 허무맹랑한 꿈을 진실로 믿고 출생의 자부심을 가지는 청년 웨인의 시선으로.



황량한 모래 사막으로 변해버린 뉴욕 거리와 헛된 환상과 오해들의 민낯 앞에, 이들의 여정의 본격적인 시작은 탐사대가 대사막을 건너가면서부터 비롯된다. 모래밖에 보이지 않는 도시 위에 펼쳐지는 탐사대의 여정의 첫 시작은 다소 산뜻하게(?) 표현되는 듯 했으나, 이내 그 풍경도 치열한 욕망 뒤에 생존 본능이 앞선 정신착란적 세계의 장면 묘사로 이어진다. 



도망간 선원들을 대신해 물 배급등 탐사대의 중요 보급품을 맡게 된 웨인은 마이웨이로 자신의 길을 가는 스타이너 선장과 자주 부딪히게 된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적응해가려 했지만 끝내 낙오된 신세로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까지. 그리고 신기루로 그려지는 여러 양상들. 점점 그 혼란한 세계에서 갈피를 잡기 쉽지 않고, 너무나도 허망한 이야기 전개에 언제 진짜 정체를 드러낼지 인내하고 기다리며 책장을 넘기게 한다.  


관료, 우주비행사, 갱단, 게이, 이혼자 등 인디언 부족으로 지칭되는 공동체들이 등장하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친부로 보이는 과학자 플레밍 박사도 등장하고, 찰스 맨슨이 대통령으로서 군림하는 세계로의 진입에도 거침이 없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가 1981년임을 감안한다면 작가가 상상한 미래 세계와 현재와 어떤 점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좋을지, 이것 또한 훌륭한 독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는 지독히도 인물을 한계까지 밀어붙이지만, 끝까지 중심은 잃지 않도록 한다는 점이 다. 미치광이의 머릿속을 들여본 듯한 느낌마저 준다. 



허상의 세계이지만, 그 상상력이 가진 힘이 강력하고 꽤나 현실적이기도 하면서도 핀트가 어긋나는 측면도 있다. 마치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서사의 힘에 하나씩 이야기의 벽을 무너뜨리며 돌진하기에 무심코 따라가게 되지만, 그리하여 눈앞에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실이 무엇인가, 하고 질문만 덩그러니 남겨진다. 



웨인의 꿈처럼, 희대의 살인마가 대통령으로서 묘사되는 세상에서 미치광이를 물리치고 차기 대통령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내 새로운 현실 속 꿈을 그린다. 과연, 허황된 세계 속 환상일지라도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의지와 힘이 있다면 이는 곧 진실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이토록 치열한 욕망의 실현을 말이다. 마치 이기적이고 정복하고자 하는 지배자적 욕구를 실현함에 있어서 필요충분 조건같은. 



어지러운 소용돌이 틈에서 빠져나와 현실에 발을 내딛고자 하니 현기증이 난다.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의 구현을 이처럼 실존했던 인물을 호명하고, 가상인물과 함께 한 공간에서 존재하게 하며 세밀한 세계를 구축한 작가의 필력이 가히 대단하다. 그만큼 서사가 가진 힘도 강력하다. 이에 독자는 중심을 잘 잡고 읽어야 할 것 같다. 난 당시 미국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무지했고, 그저 이야기로만 읽으려고 하니 한계가 빨리 왔던 것 같다. 다 부족한 독자 탓이다.



편견이란 이렇게 무서운 게, SF에 대한 알레르기 같은 거부반응으로 몇 번이나 책장을 열었다가 덮었건만, 어느 순간 술술 읽히더니 과연 내가 읽고 있는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긴 했으나 결국 손안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어 허망하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은 활기있고 발랄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니...도통 영문을 모르겠다. 



신비하지만 그로스테스크하고 파괴적면서도 새로이 재탄생되는 이 세계 속에서 해체된 문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과연 무엇인가.


20세기 후반에 근원을 둔 미국 신화의 탐사 여정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던가.


그리하여 넷플렉스 영화화를 앞둔 이 작품이 영상매체로써 구현되어 화면을 통해 접하게 된다면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는 이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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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케이블이 상당수 끊어진 채 녹청으로 뒤덮여 은은한 구릿빛을 머금은 거대한 건조물은 마치 무심한 바다를 향해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그대로 자리에 몸을 누인 하프처럼 보였다. 

10쪽



언제나 평원의 주민이나 우주비행사의 혈통이 아니라는 사실에 남몰래 좌절하며 살아온, 피닉스와 패서디나의 내과 의사들의 후손인 자신의 힘으로, 이제 자신의 나라로 돌아왔으니 다시 말을 몰 때가 되었다. 한쪽 발은 대지의 등자를 딛고, 다른 한쪽 발은 우주를 향한 운에 맡긴 채로.   47쪽



라스베이거스에서 들어온 마지막 보고에 따르면 세계 도박의 수도였던 도시는 폭풍우가 만든 호수에 반쯤 잠겨 버렸으며, 룰렛은 모두 멎었고, 호텔의 꺼져 가는 불빛이 물에 잠긴 사막의 초록빛 수면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미국의 실패와 수치를 모두 담아내는 가혹한 거울처럼. 75쪽



웨인도 이내 깨닫게 되었다. 미 대륙 횡단 계획을 세운다는 핑계를 대며, 그들은 제각기 자기네 두개골을 한 바퀴 두르는 훨씬 긴 사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115쪽



이번 탐사의 진짜 목적에 대해 리치와 대화를 나누려 시도해 봤다. 우리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특별한 '아메리카'를 찾아내기 위한 시도였다. 맥네어가 죽기 몇 주 전에 아폴로호의 갑판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을 말이다.  148쪽




웨인은 자신감 있게 페달을 밟으면서 청명한 하늘 속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가볍지만 배는 더 불붙기 휘운 아세테이트 날개를 단 열성적인 이카로스처럼. 자신의 차림새를 차분히 살핀 다음-어쨌든 이제 조금만 날아가면 미합중국 대통령의 거처에 도착하는 셈이었으니까-그는 동체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한때 데저트인 컨트리클럽의 골프 코스였던 호수를 향해 하강했다. 252-253쪽



"알다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질병이니 말이다. 그 질병은 '타인'이라는 이름이지. 머지않아 이곳에 도달할 게야. 지금까지보다 훨씬 큰 원정대를 이루고, 이 땅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고 열의에 가득차서……"  

281쪽



하지만 왜 이런 식으로 무력으로 대응하는 걸까? 대통령이 법과 도덕의 이름으로 권위를 세우고 싶다면, 또한 새로운 아메리카의 최고 통치권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면 괴짜 군벌처럼 구는 것은 완벽하게 잘못된 대처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289쪽




맨슨과 미키 마우스와 메릴린 먼로는 모두 과거의 아메리카에,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증발해 버릴 예정인 고대 도박꾼들의 도시에 속한 존재일 뿐이다. 새로운 꿈을, 진짜 미래에 어울리는 꿈을 꿀 때가 되었다. 선라이트 플라이어 편대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꿈을.   364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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