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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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드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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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가리고 책읽는당



출판업계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신박한 마케팅을 보았다. 분명히 새로운데,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아이디어였다.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제목과 디자인을 하고 있는지 많은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선물포장하여 ‘나에게 주는 선물’로 등장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비의 ‘눈가리고 책읽는당’을 알게 되었는데 너무 반갑게 느껴졌다. 책에 대한 단서가 될 키워드 몇 가지만 알려주고 출간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재밌는 홍보방법이라 생각됐다. 왠지 모를 반가운 마음이 신청했는데, 당첨이 되어 읽어본 소설은 정말 출간되기 전까지 아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눈치 챈 분들은 다른 SNS 속 힌트를 통해 알았다고 하는데, 정말 순수하게 작품만 읽고 알아본 분들도 분명 있을 것 같다. 대단한 독서가들은 알았을 수도 있지만, 그런 의미로 난 게을러 빠져서 아무런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리하고 이번 ‘눈가리고 책읽는당’의 작품의 정체는 바로, 구병모 작가님의 신작소설 『버드 스트라이크』였다.


힌트가 될만한 키워드는 #새인간 #작은날개 #영어덜트소설



공개되고 보니, 그래 한 번 읽어본 문체였어,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그저 뒷북일 뿐.


구병모 작가님의 작품은 여러 매체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아가미』, 그리고『한 스푼의 시간』를 읽은 적이 있다.



작가님의 문체를 뭐라 잘 표현하고 정의할 순 없지만, 10대 소년, 소녀의 섬세하고 예민하면서도 맑은 감성을 작품 속에 잘 묻어내는 강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마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만월의 여름밤 속을 걷는 기분이 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을 아릿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서 여운이 남긴다. 위태로움과 에너지, 다양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휴머니즘으로 표현되는 인간다운 것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처음 프롤로그 장면처럼 보이는 작품의 시작은 낯선 명칭과 인물묘사에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지고 선뜻 잘 흡수되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는 순간 몰입을 더하여, 책장을 넘기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날개를 가지고 태어난‘익인(翼人)’들과 도시 사람들 간의 갈등 속, 태어난 환경 때문에 무리 안에서도 겉도는 듯한 주인공들이 앞으로 닥칠 위기 앞에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익인과 벽안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비오가 청사에 붙잡혀 심문을 당하는 부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고원 지대의 익인들이 도시까지 날아와 시 청사 건물을 습격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작은 날개로 태어나 비행 능력이 부족한 비오는 습격 직후 도시인에게 붙잡혀 청사에 갇히고 만다. 그런 비오에게 루라는 이름의 도시 아이가 찾아오고, 비오는 루를 인질로 삼아 청사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해 루와 함께 고원 지대로 돌아가게 된다.



배다른 형제이기에 늘 휴고와 탄과는 다르게 괄시와 무시를 받던 루는 베풀고 나누는 게 생활인 익인들의 생활터전에서 편견과 차별 없는 평화로운 일상과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미성숙한 소녀이지만, 누구보다 대범하고 세심하며 옳다고 여기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줄 아는 루. 그로 인해 익인들의 사회에게 태생이 다르다는 이유로 은근히 배척되었던 비오는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한 발 나아가는 의식을 무사히 치러낸다. 운명처럼 엮인 두 사람 앞에는 또 다른 위기와 시련이 닥쳐오지만, 다시 발돋움하여 힘찬 날개를 펼치며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게 된다.



본래 외조부와 같이 살며 평범한 일상을 살던 루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출생의 여파로 인해 도시를 관할하는 시 청사에서 갇혀 살게 된다. 자신과 다른 종족이기에 호기심의 눈으로만 바라봤던 루는 비오를 만나며 편견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직접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소극적이고 불안했던 과거와는 달리 당차고 긍정적인 기질을 맘껏 펼치게 된다.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비오의 다른 형제 가하와 지요, 그의 어머니 시와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루를 그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비슷한 상처를 가진 루와 비오는 그렇게 가까워진다.



자연과 조화된 삶을 추구하며, 주어진 그대로의 생활과 규율로써 살아가는 익인들과 달리 무기 제조, 인공정원 등 발달된 기술력을 토대로 착취와 폭력을 반복하는 도시인들과의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착취도 모자라 그들의 가족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비오의 아버지는 도시에서 실종된 채 발견되지 못한 것처럼. 위기의 씨앗의 전조는 빗나가지 않았고, 가하와 비오를 구해내고자 하는 루의 혈투는 가히 눈물겹다.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고자 했던 마이는 방위산업체 무화의 연구소장이지만, 익인을 생포해 실험체로 삼는 무자비한 모습까지 보인다. 불행히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일은 결국 발생되고, 이후의 루와 비오는 각자 선택했던 길을 떠나게 되었지만 결국은 만나게 되고 말 것이란 걸 안다.



다른 익인과는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기에, 작은 날개를 가졌기에 모든 게 불리하다고만 여겼던 비오는 루를 향한 진심어린 마음으로 온힘을 다해 그녀를 치유한다. 그의 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감싸 안으며.



비오의 가족들과 대비되는 루의 가족들. 전 시행의 수석 비서로 어머니이지만 자신과 딸을 지키기 위해 냉정하고 사무적일 수밖에 없었던 아마라, 전 시행의 자리를 채우고자 그 압박감에 배다른 동생인 루를 더 괄시하는 시선으로 보았을 휴고와 다정하지만 가진 힘이 없었던 탄까지. 각 인물들이 가진 개성이 탁월하여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또 한 번의 폭발과 상처는 너무나도 커서 읽어나가는 게 힘겹게 느껴졌지만.



판타지적 요소와 현실적인 측면을 고루 담긴 이 작품은 여러 색채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여 이야기의 특성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며, 성장과 포용, 그리고 조화로운 삶과 새로운 도약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아직도 세상에는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고 있고 자신의 입장에서 행하는 이기심은 끝이 없다. 루와 비오가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 느낀 건 이를 가여워할 수 있는, 너른 품을 가진 작가님의 포용력이었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새와 비행기가 충돌하는 걸 말한다. 관심을 두지 않아서 몰랐었다. 자신의 영역에서 날아올랐을 뿐인데 죽음에 가까워지고 만다. 이와 반대로 인간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나아가게 되었지만, 결국 서로가 부딪히는 순간 각각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비극이 발생되는 것이다.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기술력을 더욱 발전시켜 파장이나, 신호를 통해 새가 피할 수 있게 할 것인가. 보통 이륙이나 착륙할 때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된다고 하니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는 조화를 어떻게 얻어야 할까, 어려운 문제이다.



그리하여 루와 비오의 비행의 어느 극점에서 다시 재회하게 될 것인가. 함께하고 싶었지만 함께 할 수 없었던 마지막 순간 이후, 지요와 주고 받은 편지에서 두 사람의 힘찬 날갯짓을 통해 결국 만나게 될 것이라는 실마리를 남겨준 듯 하여 다행스러웠다. 혼란스러운 현실에 매일 분노만 쌓여가지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된 건 참으로 기쁜 일이다. 평소 운과는 담 쌓은 삶을 살아왔는데,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이런 당첨운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안아줄 수 있는 이 작품을 많은 이들이 읽어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 리뷰는 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땅에 내려앉아 숨을 고르자 책에서 본 대로 익인의 날개는 천천히 접히는 듯 하다 그것이 견갑골 어디로 들어가는지 살필 새도 없이 눈 한 번 깜박이는 동안 사라졌다. 지금껏 그 어떤 연구자도 캐내지 못한, 익인들 스스로도 원리를 규명하지 못하는 비밀. 태어날 때부터 초원조의 축복을 입고 저마다 새의 영혼이 깃든다는 종족이 눈앞에 있었다. - P50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채운 건 우려가 아니었다. 커다란 공포와 먼저 떠난 이들의 영혼은 우리가 항상 함께 있는데, 그들의 자리를 파헤친 모욕을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 P96

빼앗길 것이 남아 있는 한, 도시가 존재하는 한 완전한 평화란 익인들에게 꿈만 같은 이야기. - P117

"그러니 그 작은 날개로 어디까지 날겠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이제는 날 수 없는 몸으로 초원조의 부름을 기다리는 옛사람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나." - P122

그것은 개인의 욕망을 다스리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것으로, 그 전까지의 어떤 이야기보다 길고 자세하다. 쾌락에 충실하되 그 어떤 황홀한 경지라도 순간의 섬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침묵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으며 동의와 거부를 섬세히 구별하여 상대의 상태와 의사를 파악하고 그 무엇도 강제하거나 훼손하지 말 것. 합의 없는 임신은 없도록 할 것. - P159

아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기다리지 말고 원하는 어디든 날아가라. 내가 따라가면 되니까. 너무 너무 높이 날아간 까닭에 이 세상을 벗어났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격만큼 내가 쫓아갈 것이다. - P299

어서 더 멀리 날아가. 네가 원하는 만큼, 어디까지든.
지금, 내가 가.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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