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만한 나날』











**



민음북클럽 "손 끝으로 문장읽기" 를 통해 알게 된 김세희 작가님의 작품 『가만한 나날』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략적인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 거야>


진아와 연승은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사이이다. 연승은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둔 것으로, 둘 사이 관계성도 묘한 기류가 흐르게 된다. 연승의 부탁으로 그가 동경하던 대학 선배 소중한을 만나러 가는 길, 진아도 함께 동행하게 된다. 젊고 자신만만했던 청춘의 시절을 지나 앞날이 두려워진 지금, 과거의 빛났던 시절을 떠올려보게 된다.



<현기증>


원희와 상률은 보증금과 월세를 각각 부담하며 동거 중인 연인 사이이다. 상률은 오랜 원룸 생활을 청산하고자 이사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집과 가전을 보러 다니지만, 원희는 갑작스러운 변화와 결정된 앞날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신혼부부인 척 했던 원희, 고물 가전으로 채워질 새로운 터전 앞에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혼란스럽기만 하고, '딸'의 모든 일에 걱정과 부정적인 일만 생각하는 엄마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고자 애를 쓴다. 



<가만한 나날>


경진은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어느 블로그 마케팅 회사에 입사하게 되고, 동기들 중 가장 유능하다는 평을 받으며 경력이란 걸 쌓게 된다. 그곳에서 하는 일이란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사실감 있게 블로그를 운영하며 계약 업체들의 홍보글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전 포스팅 글과 관련하여 남겨진 쪽지함에는 자신이 쓴 가짜 상품평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제품으로 인한 피해는 없는지에 대해 걱정과 염려가 담긴 한 아이 엄마의 쪽지가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열심히만 했던 일과 그 일에 따른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게 된 경진은 존중하던 상사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실망하게 된다. 



<드림팀>


선화는 과거 첫 직장에서 자신의 사수였던 임은정의 전화를 받고 고민 끝에 약속 장소로 나간다. 그녀로부터 사회생활과 직장인이 행하는 처세술 같은 걸 배웠지만, 이와 동시에 선화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태도에 상처를 받았던 지난 날을 떠올리게 된다. 퇴사 후 새출발을 하기 위해 사과하러 왔다는 그녀의 말에 선화는 아물지 않은 상처로 인해 뒤돌아서서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


나와 루미는 신혼부부에게 제공되는 대출을 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먼저 한 채 동거 중이다.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전적이 있지만, 지금은 '물나들이'라는 고향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아버지에게 드릴 전기장판을 사들고 간 나와 루미.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불안한 예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닌 대출을 받기 위해서 한 혼인신고가 아닌지, 늙고 병들게 되면 버려지는 게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을.



<얕은 잠>


오래 만나온 미려와 정운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떠난 여행지에서 정운이 권한 서핑에 도전하게 된다. 수영을 못하는 미려는 고민했지만, 정운이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에게 맞추어 애써 서핑 보드에 올라타려는 연습을 하게 된다. 서툴게 올라탔던 미려는 물살에 휩쓸려 낯선 곳에 이르게 되고, 겨우 정운을 찾아 돌아온 서핑샵에서는 정운이 남겨놓은 호텔 주소 쪽지만 남겨져 있다. 낯선 타지에서 두려움을 느끼던 도전에 무사히 해냈던 미려는 익숙한 누군가의 곁보다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감정 연습>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상미는 김정일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평범한 일상 속 비일상적인 농담과 비가 새는 사무실을 치우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늦은 새벽 잠들려고 하던 찰나, 상미가 사는 빌라에서 구조 신고가 발생되고, 이에 단순한 화재가 아님을 짐작하게 된 상미는 어느 순간 무심하다 못해 기계처럼 무감각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말과 키스>


나는 좋아하는 상대 H로부터 그가 관심있게 보는 웹툰 작가 고현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업계 모임에서 만난 고현진을 보며 H가 보일 태도를 상상하며 혼자서 그녀의 이미지를 그려보게 된다. 당황스럽게도 질투가 아닌 강렬한 이끌림으로 현진에게 연락하게 된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한 달에 한 번, 낯선 장소에서의 시간. 어느날 자신의 집을 잠시 대여해주겠다던 사람의 집에서 현진과 함께 머무르게 되었을 때 묘한 긴장감이 흘렀던 두 사람은 결국, 정해진 결말처럼 작별 인사를 하게 된다. 




**




SNS에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만들었던 계정은 누군가의 잘난 삶과 비교되어 초라한 처지에 좌절하고, 괴로워하며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는 바로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주변 사람들만 해도 그렇다. 모두가 나보다는 나은, 훌륭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루한 나는 과연, 계속해서 삶을 연명하는 게 옳은 건가 싶어 하루 빨리 종결해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결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 의외라면 의외인 현실이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유행될 정도로 삭막한 현실을 보라. 숨막히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도 허무하게 문턱 앞에서 좌절하게 되고, 고학력, 다수의 스펙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직장이라면, 일단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라면 참고 또 참아야 되는 현실에서 이제 '행복'이란 너무나도 아득한 신기루 같은 것이다. 작은 것 하나 마저 만족스러운 게 없다면 피폐해져 가는 멘탈을 바로 잡기 힘들기 때문에, 그만큼의 틈을 통해 위안을 얻기 위해 소소하게나마 행복해지려 하는 것이다. 



이제 인생의 결실은 결혼과 가족을 형성하는 게 아니고 연장된 수명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감내해야 할 시간과 노후에 대한 염려로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위한 몸부림만 남았을 뿐이다. 물론 이 모든 건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지만.



이렇듯 어느 구석이든 피로가 쌓이지 않는 데가 없다. 열정을 찾는 기성세대('꼰대'라 지칭되는)에게는 한없이 나약해보일 것이고, 선택할 여지 없이 그나마 나은 걸 고르려다 보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김세희 작가님의 『가만한 나날』을 읽으며 공감이 많이 갔다. 사회생활과 연인사이 관계성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 이기적인 마음, 굴복해버린 태도 모두 현대인을 투영한 작품 같다. 



각 업계의 상식이라는 듯 계속 일하고 싶으면 참아야 하는 것들이 많기도 하다. 얽히고설킨 관계망에서 엄한 소리 나돌까 잘못된 일들을 바로 잡지도  못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다. 신뢰와 불신은 한끗 차이처럼 누군가는 어긋나기도 또 인정받기도 하고, 그저 일이라서 열심히 했던 것에 대한 무책임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유없이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그런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 하기도 한다. 



가족구성원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해 짐이 된 것 같고, 사회에 나와보니 자존감 도둑들이 판을 친다. 꿈을 동경하여 일을 그만두면서도 불안함을 지울 수 없고, 어느새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것처럼 무심해지고 냉담해신 자신을 보게 된다. 그렇게 무심코 당장 내일 출근할 걸 더 걱정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다를까. 이용만 당하다 버림받고 홀로 남겨질까 두렵기도 하며, 싫어하는 모습을 안 보이기 위해 애써 참아도 보고, 자신도 모르는 모호한 감정에 휩싸여 휘둘려지기도 하고, 낯선 이끌림에 당황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상황에 대해 담백하고 섬세한 문체로 보여주고 있다. 장황하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이는 방식으로. 그렇게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여운을 남긴다. 때론 요즘 통하는 유머같은 말들로, 때론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로 어제 내가 겪었던 지옥같은 직장생활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오늘 나에게 친구가 털어놓은 연애 고민이 될 수도 있는. 친숙하면서도 현 세태가 잘 드러나는 이야기들의 구성이다. 술술 읽히다가 갑자기 턱턱 목이 막혀오는 건 고구마같은 현실에 사이다 같은 한 방이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이전에 '처음'이란 말에는 설렘과 긴장이 함께 공존했다면, 지금의 '처음'에는 두려움의 무게가 더 커지지 않았나 싶다. 무얼해도 나아지지 않은 현실의 벽 앞에서 절망과 실패의 기억만 남게 되진 않았을까. 어른이 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어느 정도 먹고 살 줄 알았는데, 여전히 버겁기만 한다면 더욱이 말이다. 세상은 분명 나아지고 발전하고 있는데 왜 여전히 힘든 날들은 계속 되는 것일까. 




김세희 작가님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이 앞으로 더 기대된다. 믿고 읽는 최은영 작가님과 또 다른 이유로 믿고 읽게 될 것 같다. 우중충한 이야기들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뒷맛이 아주 씁쓸한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어쨌든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 세상엔 참으로 많아서 읽고 나눌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것인지. 나를 위한 위안으로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해본다. 손 안에 쏘옥 들어오는 작은 책자 속에 담긴 세상은 크고, 찰떡 같이 딱 맞아 떨어지는 표지 디자인도 한몫 하고 있으니. 겉과 속이 알차게 가득 찬, 이 선물같은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무겁고 깊은 세계만을 추구한다는 편견으로 한국소설에 벽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