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맞는 말
김나영 지음 / 별빛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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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의 차이, 문화의 차이에서의 오역이 오히려 사랑의 언어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의 본 뜻을 들여다보게 되는
유쾌한 시트콤 같은 사랑스러운 부부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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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는 던져졌다 - 모든 것을 잃을 각오가 모든 것을 얻게 한다 리더의 서재 1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 프라임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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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흔히 카이사르를 권력에 굶주린 독재자, 공화적을 부순 파괴범이라고 평가하는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니다. 카이사르는 멀쩡한 집을 부순 강도가 아니다.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집의 균열을 누구보다 먼저 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원로원은 부패했고 귀족은 자기 곳간을 지키느라 칼을 놓았으며,

시민은 빵과 구경거리에 길들여져 있었다. 모두가 그 균열을 보면서도 모른 척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 틈에 손을 집어넣고 비집고 결국 자신의 영토를 삼아 버렸다.

이 책은 카이사르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책은 결코 아니다.

무너지는 질서 앞에서 어떤 인간이 어떻게 선을 넘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질서가 무너지는 균열을 목격하고도

익숙한 안전지대에 머무는 것을 선택하지, 잃을 것이 두려워 침묵으로 외면하는 행위는

카이사르가 평생을 두고 가장 경멸했던 패배자의 본성이다.

익숙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익숙함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손을 떼지 못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천천히 부서지는 안전한 파멸을 선택한다.

조용하고 점잖고 누구의 비난도 사지 않는 파멸은 가장 흔하고 가장 비참한 종류의 죽음이다.

카이사르가 거부한 것이 바로 이 안전한 파멸이다.

이 책은 전쟁 영웅이 아니라 전쟁과 민심과 언어,

이 세 가지를 한 손에 쥐고 엮어내 기획자로서의 카이사르를 다루고 있다.

진짜 겸손한 사람은 자기 결핍을 알기에 부끄럽지 않게 그것을 인정한다.

반면 위장된 겸손은 결핍을 보려 보지 않기 위해 결핍 자체를 부정한다.

나는 갈증이 없다고 그런 야심이 없다고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되뇐다.

그 되뇜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자기 안에 짐승을 잃어버린다.

짐승을 잃은 인간은 가축이 된다. 가축은 안전하다. 가축은 또한 도살된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섬뜩해졌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이 부족하면 무엇을 더 갈망하는지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봐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을 것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자에게 공통된 습관이 결정을 미루는 것이라는 말에 뜨끔하였다.

세상에 완벽하게 준비가 끝나는 날은 오지 않는다.

시작하는 자만이 시작할 뿐이라는 말이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우유부단함을 신중함이라고 애써 부정해왔던 모습을 반성하면서

머뭇거림은 결정을 회피하기 위한 시간 끌기라는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머뭇거리는 동안 누군가는 결단하고 실행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난다.

머뭇거리는 자가 한 발도 떼지 못한 사이에 그는 이미 다섯 발을 나아가고,

시간이 흐르면 둘의 격차는 만회가 불가능한 거리로 벌어진다.

무모함은 보지 않고 던지는 것이고 결단은 끝까지 본 다음에 던지는 것이다.

카이사르는 누구보다 오래 보았다. 긴 관찰 끝에 단 하루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결단만을 보고 그의 관찰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를 모방하려는 자들은 매번 실패한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약점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적의 약점은 집요하게 발굴했다.

자기 약점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적의 약점도 보지 못한다.

카이사르가 어떻게 승부사가 되었는지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삶의 주도권을 지게 되는 자세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주사위는던져졌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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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 돌봄을 살아낸 우리에게 쉼이 되는 그림들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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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힘든 날 문득 자신의 마음을 닮은 장면 하나를 발견하고 위안을 받을 터이니,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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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 돌봄을 살아낸 우리에게 쉼이 되는 그림들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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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끌렸던 그림들에 다가가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지금의 자신을 비추는 장면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라 공감이 많이 되었다.

자기 자신을 지키러 미술관에 갔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엄마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몸이 불편한 채로 일상을 꾸리고 가족의 시간을 지탱하는 일은

분명 자신이 선택한 삶이었고 그 안에서 보람도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을 조금씩 닳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는 말은 세상 모든 엄마가 느껴본 감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던 날이면 미술관으로 향했다는 저자는

미술관에서 굳이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경험했다.

미술관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엉킨 매듭이 천천히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저자의 이야기가 더 공감되었다.

엄마는 언제나 당연히 존재하는 배경과도 같다. 너무나 당연히 내 주변에 있는 존재여서

오히려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작스레 뚜렷하게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던 엄마가

너무나 가까운 존재였기에 독립된 인물로 인식되지 않다, 제대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오열하지 않도록 엄마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자기가 그냥 자란 줄 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밥을 하고 돌아서면 또 밥을 해야 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의 노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반복되는 수고를 계속해 나가는 것은

먹는 일을 향한 엄마의 마음과 사랑 때문이다.

엄마의 매일 반복되는 사랑과 수고를 너무 당연시 여기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침묵의 화가라 불리는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작품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거나 나타나더라도 대부분 뒷모습이다.

인기척 없이 고요하고 차분한 빈 공간에 눈길이 간다.

창을 통해 스며든 햇빛은 실내를 은은하게 밝히며 생기를 불어넣기보다는

침묵과 평온을 가득 머금고 있다. 단순하지만 일상적인 섬세한 감각이 깃들어 있다.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경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공간은 오히려 깊은 정서로 채워진다.

벽면에 길게 드리워진 햇빛과 짙은 그림자에 대비는 이 방의 구조와 시간을 암시하는데,

낮게 드리운 햇살과 긴 그림자가 북유럽의 상대적으로 낮은 태양 구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북유럽은 겨울철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더욱 낮아져 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특징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은 화가가 선택한 색감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이 감지하는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주중에는 일하고 오직 주말에만 그림에 몰입했기에 일요화가로 불리는 앙리 루소에게

일요일은 일상을 견디게 하는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기 때문에 오히려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었던 루소는

여행을 가거나 거주해 본 경험이 없었음에도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풍경을 많이 남겼다.

자연사박물관과 파리 식물원을 오가며 정글의 이미지를 상상했고,

루브르와 클뤼니 미술관에서 대가들의 그림을 익혔다.

독학의 기술적 한계였는지, 미학적 지향이 달랐던 것인지

루소는 중세 후기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평면적 구도와 화면을 빽빽하게 채워 놓는 구성 방식을

고수해서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원근법도 모르는 유치한 그림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오히려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신비로움이 깃든

독특한 작품 세계로 평가받지만 말이다.

단조로운 생업과 빠듯한 형편,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까지 그의 삶은 늘 고단했지만,

그는 하루 일을 마친 후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불행한 가정사와 냉담한 평단, 가난까지 삶의 고난이 끊임없이 에워싸면

대부분의 사람은 쉽게 좌절하거나 극심한 정성적, 정신적 고통에 휘말리지만

루소는 이상하리만큼 단단한 자기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혹평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마침내 인정받는 자리까지 이끌었다.

그가 세상의 입장이나 기술적 기술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자신의 꿈에 닿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삶은 멀리서 보면 단조로워 보일 수 수 있으나 그 안에는 수 없는 파도가 일고 있다.

루소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를 그려냈다.

환상에 빠지지 않았기에 환상을 그릴 수 있었던 루소는 그 누구보다 꾸준히,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었다.

결코 현실을 떠나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자유로운 꿈을 꾸었던 루소의 그림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지치고 힘든 날 문득 자신의 마음을 닮은 장면 하나를 발견하고 위안을 받을 터이니,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에세이 #쉼이되는그림들 #회복의기록 #돌봄을살아낸시간들 #나를지키고싶을때미술관에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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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지음 / 별빛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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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작가 소개에 경력 10년 차 교포어 번역가라고 되어 있어

교포어 번역이 뭔가 싶었는데, 남편이 교포였다.

오탈자에 빨간 밑줄을 긋던 저자가 남편의 오역에 하트를 그리게 된 사랑의 에세이였다.

한번 '맞나줘요' 라는 문법 정신에 어긋난 텍스트를 두고 평소 같았다면 볼 일이 없었을 텐데

운명적이게도 만남이 성사되었고, 보고 싶어서 만나자는 당연한 말에 울림이 있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맞나다를 검색한 결과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는데,

'맞나다'는 마주하다에 '맞'과 나가다의 '나'가 결합한 형태였다.

'맞나다'는 '마주 나다'란 뜻이다.

서로 상대방을 향하여 마주 대하고 안에서 출발하면 바깥의 어느 시점에서 만난다란 행위가 이루어진다.

오늘날의 만나다라는 의미가 마주 나가다의 결과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만나다란 단어의 초기 의미는 마주 나가다란 행위의 시작 부분을 일컫는 것이다.

상대방을 마주 대하고 상대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임을

남편의 만남으로 저자는 알게 되었다.

한번 맞나자는 그 말을 거절했다면 남편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고

자신의 마음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기쁨을 아마 영영 모른 채 살았을 수도 있었다니

정말 인연은 따로 있나 보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언어를 주고받으며 남편이 한국어를 알지만 온전히 알고 있지는 못하고

자신이 영어를 할 때처럼 미묘한 차이를 느끼며 그 틈에서 오는 오역을 좋아한단다.

언어로 사람을 해석해 왔던 자신에게 남편의 오역은

단어와 삶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두 부부의 이야기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교포의 단어 혼동에서 오는 에피소드가 시트콤같이 소소하게 재미있었다.

"갑자기 왜 뾰루지가 됐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뾰로통한 마음이 사라진단다.

얼굴에 난 뾰루지처럼 하루 종일 심란하고 뾰족하게 가시를 세우고 있던 마음이

그 앞에 선 사라진다고 하니 사랑이 전제가 되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긴 하다.


같은 단어도 각자의 상황이나 경험에 의해서 정의가 달라진다.

이 다름은 부부가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하더라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바꾸고 싶지도 않단다.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언어를 주고받고 삶의 궤적을 나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어휘가 다양해진다.

십 년이면 모든 걸 알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놀랄 일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가 모르고 있던 동음이의어들이 얼마나 많을지 그로 인해 자신들의 어휘가 얼마나 다양해질지

기대된다고 하는 부부의 언어가 참 사랑스러웠다.

발음의 차이, 문화의 차이에서의 오역이 오히려 사랑의 언어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의 본 뜻을 들여다보게 되는

유쾌한 시트콤 같은 사랑스러운 부부의 이야기였다.


#에세이 #사랑의언어 #교포어 #관계의문 #거의맞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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