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카이사르를 권력에 굶주린 독재자, 공화적을 부순 파괴범이라고 평가하는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니다. 카이사르는 멀쩡한 집을 부순 강도가 아니다.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집의 균열을 누구보다 먼저 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원로원은 부패했고 귀족은 자기 곳간을 지키느라 칼을 놓았으며,
시민은 빵과 구경거리에 길들여져 있었다. 모두가 그 균열을 보면서도 모른 척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 틈에 손을 집어넣고 비집고 결국 자신의 영토를 삼아 버렸다.
이 책은 카이사르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책은 결코 아니다.
무너지는 질서 앞에서 어떤 인간이 어떻게 선을 넘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질서가 무너지는 균열을 목격하고도
익숙한 안전지대에 머무는 것을 선택하지, 잃을 것이 두려워 침묵으로 외면하는 행위는
카이사르가 평생을 두고 가장 경멸했던 패배자의 본성이다.
익숙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익숙함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손을 떼지 못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천천히 부서지는 안전한 파멸을 선택한다.
조용하고 점잖고 누구의 비난도 사지 않는 파멸은 가장 흔하고 가장 비참한 종류의 죽음이다.
카이사르가 거부한 것이 바로 이 안전한 파멸이다.
이 책은 전쟁 영웅이 아니라 전쟁과 민심과 언어,
이 세 가지를 한 손에 쥐고 엮어내 기획자로서의 카이사르를 다루고 있다.
진짜 겸손한 사람은 자기 결핍을 알기에 부끄럽지 않게 그것을 인정한다.
반면 위장된 겸손은 결핍을 보려 보지 않기 위해 결핍 자체를 부정한다.
나는 갈증이 없다고 그런 야심이 없다고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되뇐다.
그 되뇜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자기 안에 짐승을 잃어버린다.
짐승을 잃은 인간은 가축이 된다. 가축은 안전하다. 가축은 또한 도살된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섬뜩해졌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이 부족하면 무엇을 더 갈망하는지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봐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을 것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자에게 공통된 습관이 결정을 미루는 것이라는 말에 뜨끔하였다.
세상에 완벽하게 준비가 끝나는 날은 오지 않는다.
시작하는 자만이 시작할 뿐이라는 말이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우유부단함을 신중함이라고 애써 부정해왔던 모습을 반성하면서
머뭇거림은 결정을 회피하기 위한 시간 끌기라는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머뭇거리는 동안 누군가는 결단하고 실행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난다.
머뭇거리는 자가 한 발도 떼지 못한 사이에 그는 이미 다섯 발을 나아가고,
시간이 흐르면 둘의 격차는 만회가 불가능한 거리로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