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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 - 90세 과학자의 가슴 뛰는 자연 관찰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마흔에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정교수직을 반납하고
메인주 숲속으로 들어갔다.
이 책은 그가 평생 숲에서 만난 식물, 곤충, 새와 포유동물에 관한
관찰의 결정판으로 90세 과학자의 통찰과 과학탐구가 고스란히 담긴
방대한 자연관찰기였다. 숲에 이렇게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니 놀라웠다.
둥그스름하게 깎인 바위 위에 평행하게 긁힌 자국을 보았을 때
아주 오래 전 이 바위로 빙하가 미끄러져 지나갔다는 사실을 아는 지질학자와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의 마음에 똑같은 시가 떠오를 수 없으며
과학탐구에 발을 들인 적 없는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시를
십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한 영국 생물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말이 절실히 공감되었다
어린 시절 식물과 곤충을 채집한 적이 없는 사람이 오솔길과 산울타리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절반도 해야 할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인정하며,
지금이라도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관찰해서
보이는 세상의 범주를 확장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린 설탕 단풍나무 수피를 깨물어 만들어 놓은 꼭지에서
증발된 시럽을 모으는 아메리카붉은다람쥐를 직접 보며
얼마나 신기하고 귀여울까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었다.
붉은 다람쥐는 상처난 나뭇가지, 딱따구리가 판 구멍,
심지어 스스로 절개한 곳에서 흘러내리는 수액을 먹는다.
녀석들이 어떻게 설탕 단풍나무를 식별하고 먹는지 참 신기했다.
꽃 단풍나무 수액은 설탕 단풍 나무색보다 두 배 정도 묽어서 그런지
다람쥐들은 확실히 설탕 단품을 선호한다고 한다니
동물들의 능력은 대단한 것 같다.
다람쥐에겐 앞니가 있으니 나무 수피의 형성층에 흠집을 내며 액체를
얻을 수 있겠지만, 단풍나무는 수피 안쪽이 아니라 더 안쪽인 목질부에
당분 함유 조직이 있다.
수액을 채취하는 농부들은 나무의 8cm 깊이로 구멍을 뚫는다.
겉보기로는 다람쥐들이 구멍을 얇게 내는 것 같아 따라해 보았더니
조금 벗겨내선 수액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또 수액이 흐르는 시기도 중요한데, 단풍나무 수액의 흐름은 큰 일교차 때문에
발생하거나 유지되기 때문에 겨울과 이른 봄, 그보다 양은 적지만
밤에 서리가 내리고 낮에 기온이 상승하는 가을에 수액이 흐른다.
수액을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요건과 시기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보니
단풍 당을 채취하려면 단순한 요행이 아니라 특수하게 진화된 행동이 필요하다.
즉 다람쥐가 나무에서 베어나는 날 것 그대로의 수액을 무작위로 핥아
갈증을 달래는 것과 단풍나무 수액에서 설탕을 채취해 에너지원으로 삼고
에너지 고갈을 방지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저자가 조사를 더 자세히 해 봤더니 다람쥐들이 만들어 놓은
수액 꼭지 당도를 확인해 보니 4~5 %였다.
날 것 그대로의 수익치곤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이고,
수액은 대다수 꼭지에서 비스듬한 가지나 곧은 몸통을 따라
평균 40cm 길이의 가느다란 줄무늬를 그리며 흘러 내렸는데
나무껍질의 표면장력에 고정돼 나무 껍질이 촛농을 올려보내는 촛불 심지처럼
수액을 넓은 표면으로 퍼뜨려 빠르게 증발시키고 있었다.
시럽이 거의 말라 끈적끈적한 코팅이 생긴 자국을 당도는 거의 균일하게
6%이상이었고 때에 따라서는 기기의 최대치인 55%를 넘기기도 했다고 한다.
다람쥐들은 거의 전적으로 수액이 농축된 자국에서만 배를 채웠다.
이빨과 혀로 설탕과 그 설탕에 달라붙은 나무껍질의 얇은 막을 뜯어냈고
묽은 수액 방울이 흘러내리는 곳은 외면하는 것도 관찰되었다.
요행에 따라 운 좋게 설탕이 있는 나무의 상처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직접 나무의 상처를 냈고 그게 수액 꼭지 역할을 한 것이다.
얼핏 보면 무심한 듯해도 체계적인 방법으로 수액 꼭지를 만들었고
항상 나무 껍질을 깨문 후 즉각적인 보상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이동했다
몇 시간이나 며칠 후에 만들어둔 꼭지를 다시 찾아서 당을 먹었다.
꽃단풍나무와 설탕 단풍나무를 구분하는 것은 생태학 강의에 등록한 대학생도
어려워하는 과제인데 다람쥐는 너무나 잘 구분해서 수액을 섭취한다.
메이플 시럽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어떻게 수액을 먹을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었는데, 어쩌면 붉은 다람쥐가 우리에게 알려준 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정을 가지고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자연에 대해 알아갈수록 신비롭고 겸손해짐을 느낄 수 있는
노과학자의 가슴 뛰는 자연관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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