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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 - 두 번째 까미노, 포르투갈 길을 걷다
이윤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이 64세, 3년 전 왼쪽 발목 골절, 5년 전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
왼쪽 발뒤꿈치 아킬레스건염, 왼쪽 발가락 2,3지 사이 염증,
골다공증 T-score -3.0 이하, 골절 위험도 뼈 부위에 따라 3~15%,
극심한 위염, 궤양, 십이지장 궤양, 식도염,
혈변이 나오면 위험하니 즉시 귀국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경고.
이런 몸 상태로 순례길을 떠나는 게 정녕 맞나 싶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만 했던 건 '엄마'라고 하니 가슴이 먹먹해왔다.
나이가 들고 죽는 순간에도 간절하게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더니,
꿈에서 엄마를 본지 너무 오래되어 산티아고에 가면 꿈에서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더 늙어서 못 걷기 전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니 말이다.

까칠한 할매의 첫 번째 순례는 16년 전 치매인 엄마를 황망하게 보내고
다리가 부러질 만큼 걸으며 자신에게 벌을 주고 싶어서였다.
길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라도 당하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심정으로 떠난 길이었건만,
매일 퉁퉁 붓는 발목과 부러질 것처럼 아픈 다리를 끌고 걷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고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르겠다는 음험한 희망은 신기루였다.
기진맥진하며 걸은 지 열흘이 훨씬 넘어서야 비로소 기도라는 걸 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30일 넘게 그 긴 길을 홀로 걸으며 이생에서 만난 인연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미안함, 고마움, 그리움, 회한, 누군가에게는 뒤늦은 사과를 하고
누군가에게는 전하지 못할 감사와 축복을 하게 되었단다.
잡동사니로 빽빽이 들어차있는 창고 한가운데 텅 비어 있는 공간 같은 곳에서
비로소 숨통이 트였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명징하게 들어보다 볼 수 있었던
첫 번째 순례의 기억이 십 년이 지나 그리웠지만 다시 갈 수 없는 길이 되었다.
순례 후에 훈장처럼 얻은 아킬레스건염을 치료하던 의사가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다음에는 발을 아예 못 쓸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았기에 꿈꾸기를 털어내곤 했단다.
그랬던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실한 체력으로
게다가 십 년이나 더 늙어서 그 무모한 도전을 2번째 순례길을 떠난 이유가
엄마가 보고 싶어져서였다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순례길 내내 엄마를 그리며 걷다 보면 세월 속에서 점차 흐려지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꿈에서라도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갖고
더 늙어서 못 걷기 전에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례일지 모를 2번째 까미노를 시작했다니 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예전 같지 않고 관광화되면서 본질을 잃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지라, 10년 동안 너무 변한 순례길 환경에
까칠한 할매가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출발한 지 이틀 만에 상그리아 한 잔에 취기가 올라 숙소로 들어오다
발이 걸려 그대로 푹 고꾸라졌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빨이 부러진 것 같아 겁이 나서 만져볼 수도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니,
골밀도도 낮은데 어쩌나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다행히도 이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이야기만 들어도 놀랐는데, 본인은 얼마나 황당하고 걱정스러웠을까 싶었다.
사람의 인연은 묘한 것이어서 타인과 말을 섞어보면 금방 안다니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목소리, 표정, 대화하면서 느껴지는 숨결까지,
상대방의 말속에 단편적으로 실려 나오는 삶의 조각에서
그의 인생과 인격, 성정, 생각까지 읽힌다니 나의 말투와 몸가짐을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아무리 순례길이라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며
마음이 쉽게 건너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이 감동스럽긴 해도 짧은 순간에 진한 정이 드는 경우는 드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김새가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른 사람들이
다른 곳, 다른 인생에 놓여 있어도 예사롭지 않은 인연으로
감정이 몸통으로 기대 쏟아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니
역시 순례길에서 결국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까칠한 할매는 생전에 엄마한테 했던 투정 부리는 막내 버릇을
가장 가까이 있는 언니한테 지금도 한다고 한다.
자신에게 돌아갈 고향에 남아 있다면 유일한 사람이 언니라고 한다.
함부로 말하고 여과 없이 감정을 토해내도 평생 자신을 엄마처럼 품어주는 언니를
섬겨야 할 때도 되었지만 여전히 투정 부리는 동생이라고 하니,
나이가 들어도 가족의 관계는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두 분의 노년이 건강하고 평화롭길 나 또한 기도드리면서
나 또한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게 지금 내 곁에 있네 소중한 엄마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소중한 사람에게 감히 다른 사람에겐 할 수 없는
비수와 같은 말을 내뱉고 상처를 주는 정말 철없는 딸임을 반성하게 되었다.
엄마랑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자고 했는데 그 약속을 아직 지키지도 못했는데
항상 건강하고 씩씩할 줄 알았던 엄마가 갑자기 허리 통증으로 무너지는 걸 보고
덜컥 겁이 나서 까칠한 할매의 순례길이 남일 같지 않았다.
우리 엄마도 인간이기에 내 곁에 평생 잊지 못한다는 것을 왜 자꾸 잊고 살아가는지,
나의 무지와 철없음을 다시 자각하며 더 늦기 전에 엄마가 걸을 수 있을 때,
가까운 성지순례라도 함께 하며 엄마와 나의 순례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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