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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파리 - 명화에 담긴 101가지 파리 풍경 ㅣ 화가가 사랑한 시리즈
정우철 지음 / 오후의서재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랑의 도시, 예술의 도시, 파리.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빛과 예술의 도시 파리는
명화 속의 모습을 지금에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세계인의 로망이 된 것 같다.
너무 빨리빨리 변해서 불과 10년 전의 모습도 전혀 간직하지 못한 우리 동네의 모습이
떠오르며 변화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대에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에 120만 원 남짓의 급여를 받으며 주 6일 전시 스태프와 도슨트 일을
병행하며 열심히 살면서도 한 번도 유럽 미술관에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늘 가슴 한 켠을 짓눌렀는데,
업무 미팅 때 만난 어느 담당자가 해외 미술관도 못 가 본 사람이 무슨 해설을 하냐는 말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의 대수롭지 않은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도록 아프게 함을 한 번쯤은 생각하고,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과 제주도 한 번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 유럽 미술관과 파리는 그야말로 달나라 같은 존재였다는
정우철 도슨트가 아끼고 아껴 어렵게 모은 자금을 챙겨 떠난 파리, 공항에 내리자마자 눈을 감고
깊이 들이마신 파리의 공기가 어땠을까 궁금했다.
미술계에 들어와 가난을 원망한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오래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목소리와 부드러운 인상, 그림 앞에서 편안히 해설할 수 있는
여유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정우철 도슨트가 손꼽은 101점의 다양한 파리 풍경이 궁금해졌다.
정우철 도슨트의 화가가 사랑한 시리즈를 재미나게 봤기에 파리 편 또한 믿음을 가지고 봤고,
역시나 만족스러웠다.
파리지앵의 자부심으로 파리는 잘 보존될 것 같아 아껴놓은 여행지라 직접 경험하진 못 했지만,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본 곳이라 명화 속 장면들도 친숙했다.
파리 도시가 너무 이뻐서 파리를 활보하다 보면 뚱뚱해질 일이 없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명화 속 파리를 들여다보니, 파리 곳곳을 천천히 산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마주 보고 센강을 등진 튈르리 정원은 파리의 중심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하니 꼭 산책을 해봐야겠다. 루이지 루아르가 오래도록 바라보고 남긴
신비하면서도 익숙한 따뜻함이 밀려오는 파리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지 말이다.
장 프랑수아 라파엘리가 담아낸 <생미셸 대로>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영웅이나 신화를 그리기보다 파리 변두리의 노동자, 길가의 노인, 시장을 오가는 상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표정과 자세에서 하루의 무게를 읽으며 그 사람의 삶까지 담아내려 했고,
스스로 '성격을 그리는 그림'이라고 불렀다는데, 실제 거리의 바쁜 움직임이 잘 느껴졌다.
라틴 지구의 큰길을 지나는 마차, 서로 다른 속도로 걷는 사람들, 비에 젖은 신발과 바큇자국의
느낌을 지금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르누아르풍이 불편하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상의 온기를 기록한 르누아르의 그림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나란히 앉거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서로에게 내어주는 온기를 기록하려고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장면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비슷한 시기에 모네가 남긴 <퐁네프>의 모습과
르누아르가 남긴 <퐁네프>의 모습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전쟁과 코뮌의 상처가 아직 가지지 않은 때,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오가던 길목을 선택하여, 아픔을 겪었지만 도시의 빛을 나눠 받으며
뒤섞여 걷고 있는 밝고 맑은 기운을 전하고자 하는 화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상처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는 모습을 믿고, 아름다움을 찾아 드러내는 일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겼던 화가의 마음이 잘 전해졌다.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집념의 점으로 완성해낸 교향곡에 가깝다.
작은 색점을 나란히 찍어 멀리서는 하나의 색처럼 보이게 하는 점묘법은
점 하나 찍는 데 하루, 그림 한 점 완성하는 데 수년이 걸려 점묘화가들은 단 한 점의 걸작이라면
몰라도 많은 작품을 내놓지 못한다고 한다. 가로 3m, 세로 2m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색점 수만 개를 찍어 완성한 작품은 너무 기계적이다, 감정이 없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인상주의의 출발점이자 현대 미술의 방향을 바꾼 전환점이라고 평가받게 되었다.
쇠라가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2년 동안 40장의 스케치와 20점의 소묘를 남겼다.
31세에 세상을 떠나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지만, 단 한 점의 걸작으로도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건 점 하나하나를 고요하고 치밀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정직하게 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카미유 피사로의 작품을 너무나 좋아하는지라 그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센강과 루브르, 파리>의 모습은 다소 먹먹하게 다가왔다.
미완성된 나뭇가지를 보고 그가 체력이 다해 더 이상 붓을 들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작가의 마지막 숨결을 닮은 공백처럼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이 삶이 완성할 수 없는 무언가임을, 그래서 늘 다음 장면을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조용히 말해주는 건 아닐까라는 해설이 와닿았다. 정우철 도슨트의 추천대로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나와, 그가 바라본 창밖의 루브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고,
센강도 흐르고, 그 위를 덮은 겨울 안개도 그 시절처럼 파리를 감싸고 있음을 느끼며
그 풍경 속에 언제나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이 숨어 있음을 느끼며 루브르에서 오르세까지 이어지는
센강 산책길을 걸어보고 싶다.
17인의 거장이 남긴 파리의 낭만과 거리의 숨결을 지금 파리에서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명화 속 파리가 더 친숙해지고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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