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빌어먹을 세상엔 로큰롤 스타가 필요하다
맹비오 지음 / 인디펍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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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2025년이 대한민국 로큰롤 역사에 의미 있는 해란다.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이 20주년을,

국보급 밴드 YB와 크라잉넛이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해이며,

국카스텐이 11년 만에 3집을 낸 해이자,

실력파 아이돌 밴드 데이식스가 10주년을 맞이했다니 참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원 체험 시절, 울분에 가득 찬 대학원 사수를 따라간

노래방에서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적이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지라 펑크록이나 인디밴드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

새벽에 접한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는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그 새벽까지 문을 여는 노래방이 있다는 것도,

이건 도대체 무슨 노래인지, 절규에 가까운 떼창에 이 사람들 도대체 뭐지?

대학원생의 스트레스가 이 정도인가, 이렇게라도 울분을 토해내야만 하는 삶인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지르고 방방 뛰어다니는 광란의 퍼포먼스에 혼란스러웠다.

더욱 놀라웠던 건 그렇게 새벽까지 미친 듯 소리를 내지르고 몇 시간 후,

연구실에서 너무나 얌전하게 조용히 일을 하던 사수들을 보며

과연 동일 인물이 맞나 신기하면서 그들의 반복되는 일상에 스며들었다.

처음엔 시끄럽게만 들리던 <말 달리자>가 어느 순간 유쾌하고 흥겹게 느껴졌고,

충격적으로 다가오던 사수들의 몸부림도 뭐 무대 매너로 보이기도 하며 익숙해졌고,

그 이후 TV에서도 크라잉넛의 무대를 접하며 처음 접했을 때의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주류 음악은 아니지만, 지쳐 있던 사수들을 피 끓게 만드는 그들의 음악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음악 애호가 도 아니고 음악 취향이라는 것도 딱히 없지만,

시끄러운 음악이라면 외면을 받기도 하지만 펑크가 필요한 순간이 분명히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답답한 세상에 주먹질하고 싶을 때, 땀을 흠뻑 흘리며 뛰어놀고 싶을 때,

내게 아직 열정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을 때, 펑크록이 해방구가 되는 현장을

두 눈으로 지켜봤기 때문에 음악의 힘을 믿는다. 그 시절 그 사수들에게 크라잉넛이 없었다면,

그 삶이 정말 피폐했을 것이다. 한껏 무대를 즐기는 로큰롤 스타들의 얼굴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 자체로 청춘과 낭만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밴드로 먹고살기 힘든 세상, 꿋꿋하게 버틴 밴드도 있고, 활짝 꽃피운 밴드도 있고,

소식을 알 수 없는 밴드들도 있지만, 록은 죽지 않았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로큰롤 스타들을 애정하는 저자의 마음이 잘 전해졌다.

록의 불모지에서 새로운 밴드들이 꾸준히 나오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있으니,

록의 시대에 로큰롤 스타들이 다시 무대에 설 날이 오길 함께 응원하게 되는 책이었다.

#이빌어먹을세상엔로큰롤스타가필요하다 #록밴드 #록의시대 #로큰롤 #로큰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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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채우는 마음 필사 - 손끝으로 새기는 옛 시의 아름다운 문장들
나태주 외 지음 / 서울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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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읽기보다 쓰기의 힘을 믿는 한국 시 100선 필사집이다.

오래된 시를 낭송하는 것도 좋지만, 눈으로 읽고 손으로 옮기며

마음으로 되새기는 마음이 좀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다정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음 수양으로 필사를 좋아하는 편인데, 시를 필사하는 건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타인의 언어를 따라 쓰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침묵을 다시 배우며,

한 글자, 한 줄로 나를 단단히 묶고 다시 세상과 이어주는 시간이라는 추천의 글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특히 사랑에 관한 시를 필사하다 보니,

잊고 살았던 사랑의 감정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나는 어떤 사랑을 하는 사람인가 곰곰이 생각에 빠지기도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마야의 진달래꽃이 한때 노래방 18번 곡이어서 그런지

전문을 외우는 몇 안 되는 시 중에 하나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다.

요즘은 안전 이별하는 법을 검색하는 사람도 많다 보니,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고, 가시는 걸음걸음 사뿐히 즈려밟고 가도록

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며,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이별을 선택하려면

어떤 사랑을 했던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랑과 이별은 여전히 참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언제부턴가 하늘을 자주 보게 되었다.

어릴 때는 달을 그렇게 자주 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변하는 달의 모습을 보며 참 이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필사하며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운 줄도,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고백에

예전에 미처 모르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용운의 '고적한 밤'을 필사하며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눈물인가요 인생이 눈물이면 죽음은 사랑인가요

라는 물음에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오래된 시가 오늘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시를 필사하는 손끝에서

마음이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학창 시절, 시 주제를 외우고 분석하며 어렵게만 느껴졌던 시들을

필사하며 다시 접하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시를 필사하니,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 것과 또 다른

묵직한 고요함이 깊게 자리잡아서 좋았다.

#쓰면서채우는마음필사 #한국시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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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되어 영원히 빛나고
이계영 지음 / 조아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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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미술관에 가서 멍하니 그림을 보면서 위안을 얻게 될 때가 많아

명화로 보는 마음 챙김이라서 관심이 갔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장애인 재활을 수료한 세 아이의 엄마이자,

둘째의 공개 입양을 계기로 호주에 정착한 지 17년째 되는 이민자라는

독특한 이력의 저자는 현재 복합문화공간 "Joyce Art Lounge"를 통해

사람과 예술, 마음이 이어지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해서

저자가 어떤 명화를 엄선했을까 기대가 되었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고, 물 한 방울조차 주어지지 않지만

아스팔트 틈 사이로 묵묵하지만 단단하게 자기 삶을 피워 올리고 있는

작은 풀이 떠오른다는 추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된다.

처음엔 여리고 섬세한 감성, 소녀다운 감상처럼 느껴지지만

읽다 보니 정말 그 안에 숨겨진 강인한 생의 결이,

온몸으로 세상과 마주한 고요한 용기가 전해졌다.

명화의 제목과 함께 써내려진 시를 읽으며 명화가 절로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알고 있는 그 명화가 맞나 긴가민가 하기도 하고,

어떤 명화일까 궁금해하며 나의 예측과 맞아떨어지는지 확인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워낙 유명한 명화들의 경우는 저자의 감상과 시적 언어에

공감의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처음 접한 명화들을 통해서도

저자가 느낀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 긴 감상평보다 절제된 시적 표현이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을 전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양한 명화를 통해서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저자의 철학,

오늘이 삶의 조각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고 오늘에 감사하며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명화를 통해 진하게 전해지고

큰 울림으로 다가와서 좋았다.

요즘 속 시끄러운 일들이 연속으로 발생하면서 쓸데없은 걱정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는데,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놓치지 마세요라는 문장이

큰 도움이 되었다. 빨랫감을 너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햇살에 반짝이는 부분과

빛으로 인해 생긴 그림자 부분을 보며 무엇도 밀어내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여기 있음에 감사하는 저자의 마음에

나 또한 마음 챙김이 저절로 되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점묘법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보니 인생은 반듯한 선이 아니라 수없이 찍혀 가는

작은 점들의 모음이라며, 우리 인생에 찍는 작음 점들이 모여

찬란한 명화가 될 것임을 각인하는 명화로 거듭나게 해주는

저자의 시선이 고맙고 많이 공감되었다.

명화를 고요히 더 깊이 있게 쳐다보며 소란한 마음이 잔잔해지며

평화로워지며 평안한 마음이 생겨서 좋았다.

#나는내가되어영원히빛나고 #명화마음챙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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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을 묻는 과학자의 문장들 - 시대를 초월한 과학의 통찰이 전하는 인문학적 위로
유윤한 지음 / 드림셀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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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위대한 발견은 단 한 번의 관찰이나 실험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똑같은 실험을 수천 번 반복하는 지루함을 견딜 줄 알아야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는 법이다.

과학자는 단순한 끈기로 지루함을 견디는 것을 넘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있음을 믿고 어떤 보상이나 박수가 없어도 오랜 시간

자신의 연구를 묵묵히 이어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과학자의 언어에는 세대를 넘어선 통찰이 깃들어 있다.

85명의 과학자가 던지는 삶의 태도에 대한 성찰이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며,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했던 여성 과학자들이 누구보다 이 세상을 깊이 사랑했고

진리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던 용기와 결단의 역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잘 느껴지는 책이었다.

호기심이 멈추는 순간, 삶은 안쪽부터 서서히 굳어간다.

알지 못하는 세계 앞에 우리를 세우고 질질문이 생각을 낳고, 생각이 다시 새로운 질문을 부르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채우며 새로운 답을 찾도록 용기를 주고 길을 열어주기 위해

최대한 넓은 지식 세계를 탐험해야 한다.

종교적 광기와 분노가 지배하는 광란의 도시에서 히파티아는 제자들에게

단순한 수의 이치나 별의 움직임이 아니라 "왜?"라고 묻는 방법을 가르쳤다.

"생각하라. 그리고 분별하라." 단지 미신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거짓에 안주하지 않고

왜를 지키고자 이성과 학문을 중시했던 그녀의 죽음은 인간 정신의 자유와 과학을 위한 투쟁으로

평가받으며, 생각할 권리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관찰하는 우리 눈과 머리는 완벽하지 않아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본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세상도 불확실하고,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도 불완전하다는 깨달음이다.

모순과 갈등이 가져오는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그 불편함 속에서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질문이 싹튼다.

불확실함을 견디는 힘이야말로 진정한 사유의 시작이다.

핵분열의 개념을 정립하고 원자력의 원리를 설명한 리제 마이트너는

노벨상 발표 날, 동료 오토 한의 이름만 불렀어도 평생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여성, 유대인, 망명자인 자신에게 실험실 뒷문을 열어주며 곁은 내주며 협업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을 기억하며, 오롯이 일을 향한 집중력으로 평생을 견디며 자신을 지켜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내면의 만족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유전자가 고정된 위치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자리를 옮긴다는 혁신적인 개념은

당시 과학계의 통념을 뒤흔들며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아, 바버라 매클린톡은

침묵 속에서 연구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유전자 조절의 복잡성을 밝힌 공로로

단독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는데 그녀는

"살면서 내키지 않는 일들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중요한 일일수록 반복이 많고 지루하며, 그것을 견대는 과정이 몹시 쓸쓸할 때도 있지만,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며 확신과 불안 사이에서 버티다 보면 감정보다 태도가 중요함을 알게 된다.

선택하기보다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더 많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리를 지켜야 할 때가 많은 게 인생임을,

그걸 버텨내면 값진 결실을 얻을 수 있음을 알려주니, 끈기를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방향을묻는과학자의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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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파리 - 명화에 담긴 101가지 파리 풍경 화가가 사랑한 시리즈
정우철 지음 / 오후의서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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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랑의 도시, 예술의 도시, 파리.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빛과 예술의 도시 파리는

명화 속의 모습을 지금에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세계인의 로망이 된 것 같다.

너무 빨리빨리 변해서 불과 10년 전의 모습도 전혀 간직하지 못한 우리 동네의 모습이

떠오르며 변화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대에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에 120만 원 남짓의 급여를 받으며 주 6일 전시 스태프와 도슨트 일을

병행하며 열심히 살면서도 한 번도 유럽 미술관에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늘 가슴 한 켠을 짓눌렀는데,

업무 미팅 때 만난 어느 담당자가 해외 미술관도 못 가 본 사람이 무슨 해설을 하냐는 말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의 대수롭지 않은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도록 아프게 함을 한 번쯤은 생각하고,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과 제주도 한 번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 유럽 미술관과 파리는 그야말로 달나라 같은 존재였다는

정우철 도슨트가 아끼고 아껴 어렵게 모은 자금을 챙겨 떠난 파리, 공항에 내리자마자 눈을 감고

깊이 들이마신 파리의 공기가 어땠을까 궁금했다.

미술계에 들어와 가난을 원망한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오래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목소리와 부드러운 인상, 그림 앞에서 편안히 해설할 수 있는

여유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정우철 도슨트가 손꼽은 101점의 다양한 파리 풍경이 궁금해졌다.

정우철 도슨트의 화가가 사랑한 시리즈를 재미나게 봤기에 파리 편 또한 믿음을 가지고 봤고,

역시나 만족스러웠다.

파리지앵의 자부심으로 파리는 잘 보존될 것 같아 아껴놓은 여행지라 직접 경험하진 못 했지만,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본 곳이라 명화 속 장면들도 친숙했다.

파리 도시가 너무 이뻐서 파리를 활보하다 보면 뚱뚱해질 일이 없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명화 속 파리를 들여다보니, 파리 곳곳을 천천히 산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마주 보고 센강을 등진 튈르리 정원은 파리의 중심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하니 꼭 산책을 해봐야겠다. 루이지 루아르가 오래도록 바라보고 남긴

신비하면서도 익숙한 따뜻함이 밀려오는 파리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지 말이다.

장 프랑수아 라파엘리가 담아낸 <생미셸 대로>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영웅이나 신화를 그리기보다 파리 변두리의 노동자, 길가의 노인, 시장을 오가는 상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표정과 자세에서 하루의 무게를 읽으며 그 사람의 삶까지 담아내려 했고,

스스로 '성격을 그리는 그림'이라고 불렀다는데, 실제 거리의 바쁜 움직임이 잘 느껴졌다.

라틴 지구의 큰길을 지나는 마차, 서로 다른 속도로 걷는 사람들, 비에 젖은 신발과 바큇자국의

느낌을 지금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르누아르풍이 불편하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상의 온기를 기록한 르누아르의 그림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나란히 앉거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서로에게 내어주는 온기를 기록하려고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장면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비슷한 시기에 모네가 남긴 <퐁네프>의 모습과

르누아르가 남긴 <퐁네프>의 모습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전쟁과 코뮌의 상처가 아직 가지지 않은 때,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오가던 길목을 선택하여, 아픔을 겪었지만 도시의 빛을 나눠 받으며

뒤섞여 걷고 있는 밝고 맑은 기운을 전하고자 하는 화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상처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는 모습을 믿고, 아름다움을 찾아 드러내는 일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겼던 화가의 마음이 잘 전해졌다.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집념의 점으로 완성해낸 교향곡에 가깝다.

작은 색점을 나란히 찍어 멀리서는 하나의 색처럼 보이게 하는 점묘법은

점 하나 찍는 데 하루, 그림 한 점 완성하는 데 수년이 걸려 점묘화가들은 단 한 점의 걸작이라면

몰라도 많은 작품을 내놓지 못한다고 한다. 가로 3m, 세로 2m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색점 수만 개를 찍어 완성한 작품은 너무 기계적이다, 감정이 없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인상주의의 출발점이자 현대 미술의 방향을 바꾼 전환점이라고 평가받게 되었다.

쇠라가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2년 동안 40장의 스케치와 20점의 소묘를 남겼다.

31세에 세상을 떠나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지만, 단 한 점의 걸작으로도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건 점 하나하나를 고요하고 치밀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정직하게 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카미유 피사로의 작품을 너무나 좋아하는지라 그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센강과 루브르, 파리>의 모습은 다소 먹먹하게 다가왔다.

미완성된 나뭇가지를 보고 그가 체력이 다해 더 이상 붓을 들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작가의 마지막 숨결을 닮은 공백처럼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이 삶이 완성할 수 없는 무언가임을, 그래서 늘 다음 장면을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조용히 말해주는 건 아닐까라는 해설이 와닿았다. 정우철 도슨트의 추천대로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나와, 그가 바라본 창밖의 루브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고,

센강도 흐르고, 그 위를 덮은 겨울 안개도 그 시절처럼 파리를 감싸고 있음을 느끼며

그 풍경 속에 언제나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이 숨어 있음을 느끼며 루브르에서 오르세까지 이어지는

센강 산책길을 걸어보고 싶다.

17인의 거장이 남긴 파리의 낭만과 거리의 숨결을 지금 파리에서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명화 속 파리가 더 친숙해지고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화가가사랑한파리 #명화속파리풍경 #정우철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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