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 - 사고 습관을 길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리용러 지음, 정우석 옮김 / 하이픈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신나고 재미있게 만드는 법 중의 하나는 수학, 물리, 과학에 눈을 뜨면 된다.

과학적 사고 습관을 길러 지적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법이다.

오랫동안 물리 올림피아드 반 학생들을 지도하며, 일반인을 위한 과학 입문 동영상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한 중국 물리 교사가 43개의 흥미로운 주제들로

일상에서 배우는 수학과 물리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이다.

수학, 물리 이야기에 역사, 인물, 문화 이렇게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가다니

정말 수학, 물리에 관심이 없었구나,

이렇게나 흥미로운 과목인 줄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기존의 지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이론을 정착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수학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젊은 학자 히파소스가 "직각삼각형의 두 직각변이 모두 1이라고 할 때,

빗변의 길이는 어떻게 두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죠?"라며 스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피타고라스는 히파소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자기가 이미 세운 수와 우주에 대한 신앙과 같은 이론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

히파소스를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니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배울 때 이런 역사를 알았더라면

무리수의 세계에 대해 좀 더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다.

원주율 파이 외우는 괴짜 친구들은 어느 학교에나 한 두명 쯤 있기에

그게 뭐 그리 재미있을까 싶었는데 시칠리아섬 시라쿠사를 공격한 로마 병사에게 피살되기 전까지

바닷가 백사장에 원을 그리며 연구에 열중하며

"아직 나를 죽이지 말게. 후손들에게 불완전한 기하 문제를 남길 수는 없네."

라고 했던 열정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실제로 아르키메데스가 죽은 이후

천여 년 동안 원주율의 계산은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고 하니

천재들이 인류사에 공헌한 바에 정말 감사해야겠다.

그 유명한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 문제를 29세에 물어낸 수학천재 오일러는

두 눈을 실명한 상황에서도 암산으로 수많은 수학 문제를 해결했고,

평생 886권의 책과 논문을 썼다니 정말 경이로운 탐구 열정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가 그가 죽은 뒤 그의 저서를 정리하는 데만

무려 47년이나 걸렸을 정도니 얼마나 열심히 수학 연구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오일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수학의 왕이라 불렸던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가

로바쳅스키의 논문을 보고 그가 쓴 책을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할 정도였지만 학계의 불만과 사회의 반대를 불러일으킬까봐

공개적인 장소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 지지하지 않았던 걸 보면

중대한 발견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용기있는 사람이 등장해야 하나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창시자인 로바쳅스키의 이름을 기억해야겠다.

수학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지라 새롭게 알게 된 수학자들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고, 수학이 이렇게나 우리 일상과 관계가 깊었다니 놀라워서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에게 권장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수학으로들어가과학으로나오기

#수학천재 #수학자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독 패스팅 - 4일로 젊음을 되찾는다
오다 다케시 지음, 이은정.이주관 옮김 / 청홍(지상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노화의 원인인 체내의 독을 허브(약초)의 힘을 빌려 패스팅(단식)으로 배출하는

프랑스식 디톡스 단식에 관한 책이다.

한 달에 4일 동안 장기별 독을 뽑아가면서 장, 간장, 신장의 순서대로 재생시키는데

각각의 장기에 대응하는 허브를 구분하여 일반적인 패스팅으로는 배출할 수 없는

노화 물질을 몸에서 빼내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한약재처럼 유럽에서는 디톡스 허브를 약국에서 판매한다고 한다.

장 디톡스 허브 블렌딩을 마시면서 패스팅을 병행하는 허브 디톡스 단식을

프랑스에서는 메스를 사용하지 않는 수술이라고 부른다.

해독 패스팅을 하면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나오지 라고 놀랄 정도로

대변이 나온다고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오물신이 강림한

것처럼 엄청난 마물을 본 순간 몸이 정화되기 시작함을 몸소 느낄 수 있다니

오물신을 만나고 싶어졌다. 마물이 모두 나오면 두 번 다시 요요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완전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니 너무너무 기대가 된다.

장기의 세포노화 덩어리인 숙변이 모두 빠지고 나면 너무나 홀가분할 것 같다.

프랑스식 해독 패스팅의 묘미는 무조건 굶는 패스팅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생과일주스와 허브티를 마시며 요가와 명상을 하는 파리지앵의 모습 너무 멋졌다.

모로코식 타진 수프,

프로방스식 소뼈 수프,

오리엔탈 스파이스 토마토 수프,

일본식 된장국,

그리스식 새우 수프 등 맛과 자유가 가득한 행복한 해독 패스팅이라니

기아감이 아니라 만복감을 느끼게 된다니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잎채소에 함유된 불용성 식이섬유는 장내 세균의 먹이로 적합하지 않고,

과다 섭취하면 오히려 변비가 생기니

오크라, 마, 김 등에 많이 함유된 발효성 수용성 식이섬유를 더 많이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용성 식이섬유도 전혀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섭취해

대변의 양을 늘려서 외부로 밀어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용성 식이섬유와 불용성 식이섬유를 3:1 정도로 섭취하면 가장 좋다.

장내 세균을 기쁘게 하는 허브 셰이크를 공복에 마시면 변비 걱정은 없단다.

[물 500mg+사일륨 2g+ 센나 가루 1g+ 레몬즙 + 소금 약간]

양질의 지질, 식이섬유, 폴리페놀(파이토케미컬) 3가지 영양소를 적극적으로 섭취함으로써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신기한 감각을 느끼고 싶어졌다.

전신 염증을 막는 양질의 오일 MCT 오일에 목초만을 먹고 성장한 소(그래스페드) 버터를

섞어 먹으면 만복감을 느끼게 하는 렙틴이 방출된다.

MCT 오일과 그래스페드버터를 1:1로 섞고 커피, 시나몬, 말차 등을 넣어 잘 섞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라떼를 마시며 당장 디톡스를 행복하게 하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해독패스팅 #프랑스식디톡스 #디톡스단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조이스 캐럴 오츠 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타임> 올해 최고의 책 10에 선정되고,

<뉴요커> 등 유수의 매체들들에 올해의 책으로 꼽히고

많은 독자들과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책답게 몰입도가 높았다.

러시아 극동 지방, 스페인, 에도시대 일본,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

여러 나라와 여러 시대에 흩어진 한국계 디아스포라 이야기라 애잔했다.

막연하게 스치듯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슬픈 운명과 상흔, 희망과 갈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다소 무거워졌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역사의 일부분이지만 그 시대적 상황에 대해,

추방당한 사람들의 역사에 너무 무지해서 그런지,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의 삶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열린 결말인지 은유적 표현인지 결말의 의미를 종잡을 수 없고

너무 모호하게 여겨지는 단편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다소 어려웠다.

다음에 여유가 있을 때 천천히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마로프>에서 북한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 거주 중인 54세 이주연 씨의

아들로 추정되는 소련 출신 30세 미들급 복서 니콜라이 코마로프가

소련 밖에서 치르는 것 경기가 미국인들을 위한 쇼라는 것은

냉전 시대에서 어느 나라에도 속할 수 없이 희생되었던 한국인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권투도 비즈니스 쇼라며

상대방 미국인 선수에게 져야 돈을 받고 부모님에게 돈을 보내줄 수 있다는 장면은

냉전의 역사에서 스포츠 경쟁을 하고, 그 누구의 편에도 속하지 못한

한국인의 운명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니콜라이가 주연 씨의 아들이었더라면

마음이 좀 덜 아팠을까, 니콜라이에게 진짜 엄마의 존재를 알려주고

싶어 하던 자신의 아이를 잃고 방황하고 살았던 주연 씨의 운명도 안쓰럽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는 니콜라이의 모습도 안타깝고, 마음이 찡해졌다.

<역참에서>는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조선 침략 시 붙잡혀 온

조선인 고아 소년 유미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매일 주군의 자제가 벌이는

괴상한 행동들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너무 가여웠다.

곡예단의 짐승처럼 취급당하며, 전쟁에 굶주려 있고 허영심과 탐욕이

가득한 인간 밑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두 눈이 생기 있고 초롱초롱하고

두려움 없이 자라나는 소년이라니 애잔하고도 기특했다.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평화롭게 살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처럼

종전 후에 아주 외진 산골 고향으로 돌아와 은둔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달의 골짜기>도 인상적이었다. 사라진 삼촌을 찾고 있다며 나타난 사내가

동수에게 추방당했지만 안전하니 운이 좋은 거라며, 서로로부터,

하찮은 탐욕과 시시한 드라마들로부터는 안전하지 않을지 몰라도

더 큰 광기로부터는 안전하다면 일평생 기꺼이 추방당해 사는 삶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며 그렇지 못했던 삼촌은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전쟁 이후 살아남지 못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전쟁의 상흔을 안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간 사람도, 대한민국을 떠나간 사람도

각자의 그리움과 애한을 털쳐버리지 못했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읽는 내내 약간 숙연해졌다.

#벌집과꿀 #폴윤 #한국계디아스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 나민애의 인생 시 필사 노트
나민애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서점에 간지 참 오래 되었는데, 서점에 가도 시집 코너는 잘 들여다 보지 않았다.

나태주 시인의 딸이자 서울대 강의 평가 1위 교수로 잘 알려진 나민애 교수는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리잡은 유능한 책보다 이슈도 일으키지 못하고

먼지를 쓰고 천천히 늙어가는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한다.

어려서 아버지가 읽던 책들이 그랬고, 아버지가 쓴 책들이 그랬기 때문에

가까운 친척을 만난 듯 정중해진다고 한다.

책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 사람 중에도, 식물 가운데에도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부류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분명히 세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말이 와닿았다.

외향적인 인싸들이 인간 관계도 넓고, 넓은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데

그러하지 못해 점점 나의 세상이 협소해지고, 내가 쪼그라드는 건 아닌지

내심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나민애 교수님이 엄선한 시를 음미하며

교수님이 해석해주는 시평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끈해졌다.

교수님이 발굴한 소중하고 작은 것은 시였다. 없는 것 같지만 있는 것,

안 중요한 것 같지만 중요한 것, 이것이 시의 영원한 주제라며

흔히다흔한 것을 귀하게 보는 시인의 마음,

작은 존재가 지닌 놀라운 우주를 담아내는 것,

작다고 해서 누구라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하지만 잊고 살기 쉬운

삶의 정수를 넌즈시 알려주는 것, 인생의 모든 순간을 담아내는 시 한 조각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정작 제대로 해내는 일은 없는데 바쁘다며

인생의 중요한 한 순간을 놓치고 살고 있는 나에게

단 한 줄만 마음에 새겨도 흩어졌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며

알려줘서 좋았다. 근현대 시 77편 중에 절반 이상은 처음 접하는 시인 것 보면

시집을 정말 멀리하긴 했구나 싶었다.


오은 시인의 <그곳>은 처음 본 시인데, 가벼우면서도 무거워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위트만 있으면 너무 가벼워 훅 날아가 버리고, 너무 무거우면 마음이 부담스러운데

부담 없이 계속 생각나면서 거울, 형광등, 두루마리 화장지, 수도꼭지, 치약, 변기를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시의 힘이 대단한 것이 늘 일상에서 매일 매일

접하는 별 것 없던 사물이 이 시를 알고 나니 달리 보이니 시를 많이 알수록

세상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한 순간 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작은 위로가 필요할 때, 사랑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쓸쓸하고 외로월 때,

나에게 말을 건네고 싶을 때 나민애 교수가 엄선한 인생시를 필사하고,

필사 노트를 다시 읽어보면 마음이 평안해져서 잠시 멈춤의 시간을 지속할 수 있어 좋았다.

독자들이 왜 시 큐레이션을 요청했는지 납득이 되는 시 필사 노트였다.

#나민애 #시필사노트 #단한줄만내마음에새긴다해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진환 옮김 / 알토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여성 캐릭터 창조에 탁월한 능력으로 여성의 삶과 연대, 사회의 편견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유즈키 아사코가 그려낸

무력감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여자들의 이야기라 역시 유쾌했다.

우리를 위한, 우리에 의한 6편의 작지만 단단한 반격,

참지 않고 웃으며 되갚아 주는 소소하고도 통쾌한 복수였다.

특히 라벤 평론가 사절, BAKESHOP MIREY'S, 상점가 마담 숍은 왜 망하지 않을까가

인상적이었다.

라멘 무사의 여성차별적인 발언과 품평으로 낙인 찍히고

자신들의 삶을 잃고 상처받은 여성들이 의기투합하여 철저한 계획하에

내공을 기르고 라멘 무사에게 그야말로 제대로 한 방 먹이고 확실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는

속이 시원했다. 라멘 평론가로 일인자였던 라멘 무사가 업계에서 완전히 매장되는 것이

그로 인해 상처받은 여성들의 연대에 의해 가능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라멘 무사한테 당한 피해자 6명이 모여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최고의 가게를 만들고

애호가들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의 성공 모델이 되기 위해

만인을 위한 담백한 중화 국수를 만들고, 가게를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맛집 전문 기자로만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영어를 배우고 뉴욕에 유학 가서 라멘 붐을 지켜보는 등

각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 가게를 리뉴얼하다니 역시 최고의 실력이 최고의 무기이다.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중식업계에서 여성 세프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는데, 일본에도 라멘 문화가 남성편향적인 것이 있다니 놀라웠다.

라멘은 일본 사람들의 소울 푸드라고만 생각했는데 유명한 라멘집은 남자만 득실거리고,

사장님도 꼭 남자이고 여자가 라멘을 좋아한다는 걸 용납하지 않는

복잡미묘한 라멘 문화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여자 세프는 장인으로서의 실력으로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그냥 엄마, 애정, 노스탤지어, 치유로만 치부한다는 말에서

나 또한 무의식 중 그런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은지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기만의 베이커리를 여는 것을 꿈꾸는 미레이를 응원하고자 오븐을 선물한 히데미의 순수한 마음을

히데미가 해외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귀족들이 평민에게 선심 쓰듯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다 1년만 일하다 떠날 사람이

이곳의 삶의 방식을 감히 바꾸려했다며, 고생 한 번 안 해본 여자가 잘난 척 설치고 다닌다고

입방아를 찧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웠다. 부유한 여성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빈곤한 여성에게 고가의 물건을 선물한 것에 자존심이 꺽여 버린 사람들이 힘을 모아

그 사실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미레이도 꿈을 잃어가서 안타까웠는데,

잘난 척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미레이를 응원하고 싶었던 히데미가

오븐으로 브래드 앤 버터 푸딩을 구어 달콤하고 고소한 향을 골목에 풍기자

미레이가 그 냄새에 이끌려 자신이 진짜 꿈꾸던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게 되어 참 다행이었다.

일본 전국 각지의 주택지나 상점가에 갑자기 출현하는,

중장년 여성을 겨냥한 고급 잡화점은 어째서인지 결코 망하지 않는 이유가 너무 멋졌다.

손님이 자주 드나드는 것도 아니고, 상품 하나하나가 터무니 없이 비싼데다,

상품이 팔리든 팔리지 않든 상관없다는 듯 우아한 태도를 결코 잃지 않는

마담 숍의 사장님이 20년간 손님도 없이 버티는 수상한 가게.

그런 가게들이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상 평론가에게 허락 없이 사진 찍히고 농락당한 사람들의 통쾌한 복수,

꿈을 이야기했다가 꿈꿀 여유를 잃어버렸지만 꿈을 지지해주는 사람 덕분에

다시 꿈꿀 수 있게 된 우동집 딸, 이웃 남자의 독단으로 아이들의 공간을 잃어버릴 엄마들이

남이 규정해 놓은 나를 던져버리고 차별과 편견,

애정없는 비판과 무례에 맞서 투쟁하고 값진 승리를 거두는 권선징악이 속시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