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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평점 :
저자가 문화의 경계에 놓인 리아에 관해 9년에 걸쳐 취재한 로포르타주로
지금도 문학 저널리즘과 문화 간 감수성을 위한 사례집으로서
대학 수업에서 쓰이고 있단다.
라오스 여행을 하며 몽족이 파는 이쁜 수공예품들 때문에
라오스의 소수 민족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쟁의 희생양으로 이용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아직도 멸시를 받는
아픈 역사에 대해 막연하게는 알고 있었지만, 베트남전쟁 이후 난민으로 미국에 와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몽족뿐만 아니라 다른 전쟁 난민들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겪었을
고초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리아를 통해 언어 소통의 문제, 문화적 통역자의 존재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으니, 미국의 많은 의과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만하다.
리아의 부모 나오 카오 리와 푸아 양은 1975년 라오스가 공산 세력에 완전히 넘어가면서
살던 땅을 떠나게 된 15만 몽족으로 태국 난민캠프를 거쳐 미국에 왔다.
리 부부의 13번 째 아이 마이는 태국의 난민캠프에서 태어났고
14번 째 아이 리아는 캘리폰아 센트럴밸리의 머세드 커뮤니티 의료센터(MCMC)인
현대식 공립병원에서 태어났다.
몽족은 유대민족의 업적에 필적할 만큼 오랫동안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평가되는데, 그 어떤 민족보다 용감했다. 문자와 종교라는 구심력도 없이 몽족은
조국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노예까 되어본 적도 없는 위대한 소수민족이다.
힘센 나라들과 대결하며 번번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에서
몽족으로 살 권리를 가진 자유민이기 때문이다. 공손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자부심이 강하지만 오만하지 않으며 상대의 사적인 자유를 존중하며
자신의 자유도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몽족이다.
리아가 3개월 때 언니 여가 현관문을 쾅 닫은 후, 리아는 첫 발작을 했다.
서양의학에 의하면 뇌전증 증상이지만, 혼을 잃은 '코 다 페이' 증상이다.
그리고 그 증상은 몽족에게는 치 넹이라는 샤먼이 되는 영예로운 병이기도 하다.
뇌전증 환자의 발작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 떠나는 여행의 진입을 촉진하는 단계로
간주되고, 자신이 아프고 고통받기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치유자라는 중요한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그렇기에 리아의 발작을 바라보는 리 부부의 태도는 걱정과 자부심이 뒤섞여 있었다.
다행히도 리부부는 병원을 완전 불신하는 몽족은 아니어서 1982년 10월 24일
리아를 응급실로 데려왔지만 불행하게도 그 당시 MCMC에는 몽족을 위한 통역원이
없었고 리 부부와 의사는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때 리아에게 최선의 처치를 했더라면 리아의 삶은 달라졌을텐데
정말 애석한 대목이었다. 다행히 리아의 병을 제대로 알아 본 의사의 등장으로
처방이 시작되지만, 리부부는 지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의사들도 리 부부가 약을 처방대로 먹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고,
그런 시간동안 리아는 점점 나빠졌고 리 부부는 병원에 대한 신뢰가 계속 무너졌다.
의사들은 약도 제대로 먹이지 않는 부부를 이해할 수 없었고,
한밤 중 위태로운 아이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도 감사인사는 커녕
원망만 듣게 되는 허탈한 상황에 화가 났다.
몽족에게 미국이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듯이, 미국인들에게도 몽족은 가장 원시적인
난민 집단일 뿐이었던 것이다.
메이가 부모님이 리아 때문에 겪는 모든 좌절이 의사들 잘못인 줄만 알았지만,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소통의 부재였기에
그 누구 탓도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약간은 서글펐다.
몽족을 미국에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시행한 많은 정책들이 재앙적이었고,
시대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산물인 <리아의 나라>를 통해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