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지라 이 시리즈를 좋아한다.
최첨단 문명을 꽃피운 물질의 중심에 있는 화학의 역사는 그 양이 방대할 수 밖에 없겠지만,
너무 짧막하게 시대별로 주욱 나열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면이 있었다.
토막 과학 상식의 집합체 같다고나 할까, 기대가 너무 커서 살짝 아쉬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답게 아주 유익하다.
과학사 관련 책을 좋아한다면, 그랬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술술술 읽어나갈 수 있다.
볼티모어에서 우연히 맥헨리 요새에 나들이를 갔다가 미국 사람들의 성조기와 국가 사랑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볼티모어항 맥헨리 요새 전투가 남북전쟁의 물줄기를 바꾼
미국인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장소였던 것을 이 책을 통해 뒤늦게 정리할 수 있었다.
영국군 함대가 맥헨리 요새에 로켓과 대포를 1500발 이상을 쏟아붓자
미국군들은 요새가 함락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 절망에 빠졌으나
놀랍게도 날이 밝은 후에 여전히 성조기가 높게 걸려 있어 감동해서
시를 썼고 '별이 빛나는 깃발'은 미국 국가의 가사가 되었다.
초강대국 미국이 탄생한 중요한 이유가 영국의 로켓 병기가 실패작이었기 때문이라니,
미국은 정말 운이 좋은 나라인 것 같다. 그 당시 로켓 병기가 연소하는 과정에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탓에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어 공격 지점을 제압하는 용도일 뿐
목표를 정교하게 타격하는 건 무리여서 맥헨리 요새가 함락되지 않은 것이다.
전쟁의 역사가 과학의 발전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뒷받침 덕분에 인류는 달까지 가게 되었다.
화학이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어 왔는지에 관한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지만
여담들이 특히 재미있었다. 한랭화가 지속되면서 말이 굶어죽어 말 부족 사태가 발생해서
달리는 기계인 이륜차가 발명되었고 이것이 자전거의 원조인다.
일본에 고양이가 왜 그렇게 많은지 궁금했었는데 코흐와 관계있을 수도 있다니 신기했다.
페스트균 최초 발견자의 영예를 얻지 못한 불운한 과학자 기타자토의 은사인 코흐가
1908년 일본을 찾아와 페스트 유행을 막기 위해 쥐를 퇴치하는 고양이를 키울 것을 장려해
독일에서 많은 고양이가 일본에 수입되었다니 일본 고양기의 가계도를 조사하면
독일 고양이 조상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유럽 사교계에서 여성들이 등이 크게 파인 이브닝드레스를 입는 것이
'나는 피부에 발진이 없다. 매독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니,
당시 매독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조산사들에 비해 의사들이 담당한 산모들의 산욕열로 인한 사망자 수가 월등히 많다는 걸
관찰한 의사 제멜바이스가 손을 깨끗이 씻고 소독해야 함을 밝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의사의 손이 산욕열을 전염시키는 매개체가 되어온 사실을
밝혔다는 이유로 의사를 살인지 취급했다며 의사회에서 추방당하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하는 모욕을 겪었고, 정신 병원에서 학대받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로 인한
감염증으로 세상을 떠난 것은 처음 알게 되어 충격적이었다.
내부고발자의 잔혹한 운명에 농락당했지만 인류를 구원한 비운의 천재의 이름을 기억해야겠다.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비약적인 과학 기술의 발전을 꼭 다루고 싶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까지만으로도 너무나 방대한 분량이 되어 그 이후의 내용은 다루지 못했다고 하니
그 이후의 화학 이야기편이 기대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