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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경성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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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전공하고 전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이었던 저자가 들려주는
한국 근대 시기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무척 풍성하였다.
19세기 말부터 1950년대까지 혼란의 개화기와 암흑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쟁과 분단을 통과한 파란만장한 시대에
예술에 사활을 걸었던 사람들의 생애와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연대와
그들의 후손 이야기까지 곁들여져 있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천재 예술가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이어지는 슬프고도 찬란한 유산이
신기하면서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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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보다는 여행지에서가 더 여유로워서 그런지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미술관을 더 많이 가게 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우리의 교육이 서양미술사 중심이어서 그런지
우리나라 예술가들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처음 알게 된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놀랐다.
처음 본 작품, 처음 알게 된 예술가들이 속상할 정도로 너무 많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서 너무나 영광이고 다행이었다.
격동의 세월을 지나며 납북인지 월북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분들도 많고 우리의 무관심 속에 그냥 그냥 잊힌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근대미술가를 기껏해야 이중섭, 박수근 정도밖에 모르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2021년 3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조선일보 주말판에 연재된 글들을 모아서 펴낸 책이라고 하는데,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어서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고,
주변에 꼭 읽어보라고 강추하여 널리 널리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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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광균이 "천사같이 순수하며 최고의 기량을 가진 화가 두 명이 이중섭과 최재덕인데,
이북 출신 이중섭은 남으로 내려왔고, 이남 출신 최재덕은 북으로 올라갔으니, 결국 같아진 셈이다."
라고 말했다니 최재덕 화가의 작품이 더 궁금해졌다. 당시에는 화가들이 인정한 화가로 통했지만
월북해서 오랫동안 이름조차 삭제되고 한국에 남아 있는 작품도 열 점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림이 시처럼 서정적이어서 참 좋았다.
그리고 화가가 서명으로 즐겨 그렸다는 소 모양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최재덕이라는 한글 글씨를 분해해서 소 모양을 만든 게 재치 있다 생각했는데
소 마크 서명이 그저 재밌는 요소만은 아니었단다. 일제강점기에 소는 조선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본인들이 무지하게 싫어하던 은유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라니 가슴이 멍멍해졌다.
12살 때 화집에서 밀레의 만종을 보고 '나도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소망하고,
그 소망을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잊지 않았던 책임감 강하고 끈질긴 노력형 화가였던 박수근의
보석 같은 작품이 박완서로 하여금 <나목>을 쓰게 만들었다.
박완서의 거의 마지막 수필이 <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이라고 하니
작가 생활의 시작과 끝이 박수근이었다니 생의 무게를 견뎌낸 보통 사람에 대해 헌사한 자신의 작품과 같은
사람이 된 화가의 작품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프러포즈를 같이 죽자는 말로 하던 이상과의 사랑이 죽음을 맞은 후,
김환기에게 같이 살자는 희망을 안겨주며 김향안으로 다시 태어난 여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어 좋았다. 도대체 어떤 여자였기에 두 천재의 사랑을 받았을까 궁금했는데
그 자신감과 대담성이 대단하였다. 6.25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예술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궁금해하는 김환기를 위해 1955년 홀로 김환기의 작품 슬라이드만 달랑 들고 파리로 날아갔단다.
소르본대학과 에콜 드 루브르에 다니면서 프랑스어와 미술사를 먼저 공부하고
파리 화단의 주요 인사와 교제하여 아틀리에를 구하고 개인전 일정을 잡은 후에
김환기를 파리로 불렀다고 하니 그 헌신적인 수고와 비범한 능력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김환기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고
환기미술관을 건립하여 큐레이터이자 미술관 경영자로 일하면서도
수필집 다섯 권을 출간하고, 뉴욕 화실에 들어오는 햇살이 아까워 그림까지 그렸다니
사기캐같다. 직접 사비를 들여 시인 전남편 이상을 기리는 일에도 힘을 보탠 그녀는
세상이 예술가를 알아주지 않던 시대에 그 누구보다 선구적이고 용감한 예술 후원가였다는
저자의 평가 이상으로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장애가 있는 화가 김기창과 부유한 지주 집안에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여행 박래현의
만남은 세간에 대서특필되었는데, 그녀는 서로 인격과 예술을 존중할 것,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예술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릴 여건을 만들기만 한다면 신체장애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깨어 있는 사람이었다.
2년에 한 번씩 부부전을 열고, 결혼 20주년을 기념하여 11회 부부전을 개최할 때까지
함께 작업을 했다니 예술가들도 이렇게 신뢰를 바탕으로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아내가 실컷 공부할 수 있도록 7년간 미국 유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쿨하게 보내주고,
아내가 죽고 나서는 아내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니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 통념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너무나 이쁜 부부의 모습이었다.
그런가 하면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부부의 이야기도 놀라웠다.
이성자가 아들 셋을 경성 최고의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분가해 나와 떨어져 지냈는데
6.25가 터지기 직전 어느 날 그녀가 외출한 사이 남편이 서울 집에 있던 아들들을
인천으로 데려가버렸다. 아내가 인천으로 돌아올 것을 예상했지만, 이성자는 그길로 집을 나서
프랑스 파리가 떠났다고 하니 지금 시대에서도 놀라만 한 일인데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어떻게 불어 단어 하나 모르는 채로 파리행을 결심하고 실천에 옮겼는지 정말 놀라운 결단력이다.
거기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파리 화단에 진입하여 파리 최고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작품이 프랑스 정부에 영구 소장되었다니 정말 대단했다.
74세에 프랑스 남부 투레트에 음양의 모티브를 형상화한 아틀리에 은하수를 지어
낮에는 양의 건물에서 회화 작업을 하고 밤에는 음의 건물에서 판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완전히 합일하지 않은 음양의 건물 사이로 시냇물이 흘러 은하수를 형성한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가보고 싶다. 프랑스는 당장 갈 수 없으니 그녀가 죽기 전 고향 진주시에
367점을 기증해 이성자 미술관을 개관했다니 진주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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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며 "노예처럼 일하고, 서민과 함께 생화하고, 신처럼 창조한다."
는 좌우명을 평생 지키고자 노력했던 문신이 직접 옹벽을 쌓고 연못을 만들고,
무려 14년에 걸쳐 지었다는 문신미술관도 방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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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의 도서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해냄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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