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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미술관 - 생각을 바꾸는 불편하고 위험한 그림들
김선지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3년 5월
평점 :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술의 이면을 들추면 추악하고 불편한 세상이 보인다며,
생각을 바꾸는 불편하고 위험한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BBC 다큐멘터리 <신의 아들>이 공개한 예수의 얼굴은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진 거칠고 투박한 생김새인데
미술 작품 속의 예수는 왜 다른 것일까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2000년 전 중동 지역의 유대인은 보통 어두운 올리브색 피부에 갈색 눈,
검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남자의 긴 머리는 수치로 여겼기 때문에
예수 역시 짧은 헤어스타일이었을 것이다.
귀족같이 기품 있고 부드러운 모습의 흰 피부의 미남으로 재현된 예수의 얼굴은
유럽인 자신들의 이상적인 외모가 투영된 것이다.
서구에서 르네상스 문화예술은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에 르네상스 미술 작품 속
예수의 이미지가 면면히 이어져 왜곡된 것이다.
신의 아들 예수도 외모지상주의를 피해가지 못했다니 외모에 대한 욕망은
인간이 버리기 힘든 우상숭배의 한 유형이라는 저자의 해석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역사는 합의된 거짓말, 승자에 의한 기록이라 승자의 미덕을 강조하고 결점을 외면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욕망과 상상, 가치에 의해 재창조된 허구로 채워진
역사와 예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하였다.
민중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른 고다이바 부인의 이야기 역시 후대인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신화라고 한다. 새빨간 거짓말인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녀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신화를 믿고 싶어 하고 감동을 원하는 것 같다.
황금비도 일종의 사이비 과학이지만 여전히 지속되어 오는 것 또한
인간이 세상에서 어떤 패턴을 보고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불확실성에 질서와 명료함을 부여하고,
무의미한 것을 유의미한 것으로 바꾸고 싶어하기 때문에
수학적인 것을 갖다 붙여 객관적 아름다움의 근거로 내세우며 황금비 찬가를 부르는 걸 보면
견고한 신화의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 같다.
화가들이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표현한 이유가
그 당시 부유층 사이에서 기묘하고 진기한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유행했기 때문이었다.
추한 외형을 가진 이들을 일종의 인간 가고일(괴물석상)으로 여겼고,
신체적 장애나 기형을 가진 사람들의 독특하고 기괴한 골상이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추악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시절이었다.
16~17세기 스페인 궁정은 기형적 외모를 가진 사람, 난쟁이가 인기 있는 수집품이었다.
왕족의 초상화에 함께 등장하는 난쟁이들의 작은 키는 주인을 휠씬 더 커보이게 하고
그들의 완벽함과 우월성을 돋보이도록 하는 상식품일 뿐이었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길에 다니지 못하게 하는 '어글로 로(Ugly Law)'가
1974년까지 공식적으로 존속했다니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추한 외모가 괴상함, 괴물, 장애와 동의어로 쓰이던 시절이
과연 온전히 지났을까라는 질문에는 자신있게 답할 수가 없었다.
어글로 로와 같은 비인간적인 법이 사라지고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안도 제정되었지만
연민과 공감, 배려라는 윤리적 가치가 정말 실현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