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아침에게
윤성용 지음 / 멜라이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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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오늘의책 #위로 #회복 #에세이 #윤성용 




윤성용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다시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쓰인 글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글이라 소개한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게 서툰 편이라, 위로를 받을 거란 생각보다 위로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위로를 하기 위해 썼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대담한 생각이 아닌가.  알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조차 위로하는 게 그리 농록하고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누군가를 글로 위로할 수 있다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며 책을 펼쳤다. 



오십여 개의 소제목에 짧게는 한 문단 길게는 일곱 여덟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치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글을 훑어보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를 시작하는 법, 양치하는 법, 아침에 듣는 보사노바 음악, 이불 정리의 의미, 좋아하는 책, 책 정리하기, 면도하는 법 등 같은 집에서 사는 연인이나 동거인을 관찰하거나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보는 듯 편안한 글이 이어졌다. 



책탑을 쌓아두고 열댓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게으름뱅이지만, 기한이 정해져있는 책은 국수 말아 먹듯 후루룩 읽어버리는 편인데.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도 예감했지만 첫 두세 장을 읽고 급히 국도로 빠져나갔다. 작가가 한두 문단에 독자의 호흡을 결정짓는 것도 능력이다. 개인사와 감상이 주가 된 글을 읽을 땐 이해력과 공감력이 만취 상태처럼 둔해져서 이기도 하고, 글이 명상하듯 고요해서 이기도 했다. 혹여라도 내가 놓치는 행간의 의미나 공감하지 않고 넘어가면 아무것도 읽지 않고 책장을 넘기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글의 이런 분위기와 박자감이 호흡을 느리게 만들어줬고, 아마도 이런 면들이 내용을 떠나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근사한 글의 재료가 아닐까 싶다. 



글이 여러 개의 파편처럼 흩어져 있고, 일상에서 떠오르는 단상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거대한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이 부분이 좋았다고 나열하기엔 책 이곳저곳을 누빌 때마다 거론하기엔 너무 사소하고 담지 않기엔 무엇을 담아야 할지 모르겠는 그 모든 것들이 있었다. 그중 사람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은 구석도 있을 땐 드디어 뭔가 공감 코드를 잡은 것 같아 기뻤다. 이를테면 성공하려면 일어나자마자 반드시 이불을 개라는 영상을 종종 보면서, 일상적으로 이불을 당연히 개는 거지 이게 그렇게나 의미가 있는 일이었나 생각했는데 작가님도 같은 이야기를 했던 대목이나,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 자체가 어떤 초능력처럼 여겨진다는 이야기, 아침은 초기화의 시간이라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읽혔다. 


작가가 글을 쓸 때, 그는 글이 기울어진 바닥에 굴러가는 구슬처럼 우울한 글을 쓰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여러 차례 고백했다. 독자의 입장에선 우울한 글을 읽는 것에 피로를 느낄 수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 걱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글의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노력한다는 대목이나, 좀 더 밝을 글을 쓸 수 있게 격려하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 그의 우울하고 자기혐오를 경험했던 원초적인 원인이라 여겨지는 유년기의 아픈 경험에 대해 밝힌 대목을 보면서. 참 글이 솔직하다고 여겨졌다. 


어릴 때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솔직하게 글을 써서 매력적이라는 말이었는데, 점점 커 갈수록 내가 보는 내 일기장에서조차 왠지 누군가가 내 일기를 볼 거라는 생각이 누군가의 이름이나 사건조차 숨기고 숨겨서 쓰는 경향이 생겨버렸다. 우원재의 향수라는 노래에서도 나왔듯이, 누가 자신의 일기에 침을 뱉겠냐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지나간 과거, 자신의 일기장에서조차 사건을 보기 좋게 각색하기 마련인데. 자신의 이름과 신상이 다 나올 수 있는 작가가 자전적 에세이에 이토록 자신을 투명하게 적어내려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무라키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느꼈듯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가 있음에도 견디기 어려운 직업인지 사무치게 느꼈지만. 그런 고행의 길로 수행자처럼 조용히 산길을 걸어가는 듯한 작가의 글이 더없이 투명하게 여겨졌다. 아마도 이런 그의 투명함이 정말 별것 없는 사소함을 이야기할 때조차 읽는 사람의 마음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일까. 티 없이 맑은 어린아이나 강아지 고양이 코끼리 팬더 거북이 당나귀 같은 동물 영상을 볼 때처럼 이유 없이 마음이 맑아지는 걸까.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우울함에 대해 고백하는 글들이 머리끝까지 쌓이더라도 아무것도 감추지 않은 그의 투명한 글에서 사람들은 똑같이 위로를 받고 함께 투명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꼭 밝고 따뜻한 햇볕이 아니더라도 그가 가진 순수함, 솔직함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계속 그가 고백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노력하지 않아도 타고난 성정이 나오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자기 불신과 자기혐오의 감정을 누구나 겪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또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이런 감정들과 싸워왔다. 아침에 일어날 시간을 강박적으로 정해 일어나서 달리러 나가도 밤새 생각을 떨치지 못해서 잠을 자지 못한 날이 많아 달리기를 시작한 횡단보도, 언덕에서 머리가 핑글핑글 돌 때도 많았다. 그러다 정말 사소한 어떤 순간이 열쇠가 되어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이런 경험이 작가에게도 찾아오길 기도한다. 작가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상흔은 너무 중요한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시의 정서가 현재까지 주된 정서로 자리 잡혔을지도 모른다. "내가 다시 밝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대목에서 아마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대목이 매우 슬프게 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대목으로 애쓰는 대목에서 왠지 희망참보단 오히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서 느껴진 농도 짙은 멀미가 느껴졌다. 그림자조차 사랑받는 것이 문학인데 애써 기울어진 땅을 평평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도 이렇게 빛나는 것을.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둔감한 공감력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살집을 불렸다는 걸 느꼈다. 그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강릉에서 자라 눈이 많이 오면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넉가래를 들고나와 눈을 정리하는 장면이 마을 축제처럼 여겨졌다는 글을 보며 그 틈바구니로 들어가 작지만 야무진 나의 넉가래로 그의 마음속에 쌓여 반짝이는 눈의 무게를 좀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가 느끼는 감정의 크기가 매우 커서 그 무게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그의 마음이 무거운 것이 아닌가. 사실은 그 안에 쌓여 있는 것은 모두 이렇게나 아름다운 백색의 눈인데. 눈이 녹으면 그 모습이 회색빛으로 더러워지지만 본질적으로 눈은 아주 아름다운 흰빛으로 세상의 빛을 온 세상에 내뿜고 고요하게 만들지 않은가. 


글 소재로 쓰였던 '겨울 입김'을 이용해 겨울을 닮은 작가님의 이 책을 더 묘사해 보자면. 겨울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와 하얗게 쌓인 눈앞에서 허- 하고 따뜻한 입김을 한 번 쏟아내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들어설 때.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건 하지 않건 모두가 각자의 입김을 달고 다니는 모습이 말 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것 같았는데. 이 책이 그런 겨울의 입김처럼 별 이야기가 있건 없건 소소하게 어떤 글자 모양을 하고 하나씩 차곡차곡 책장을 채우고 있었다. 그 소소함으로  읽는 내내 이런 것이 위로인 건가, 위로는 어떤 것인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마침내 그의 바람대로 사람들에게 나눠준 위로를 그가 다시 돌려받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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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만찬회
신진오.전건우 지음 / 텍스티(TXTY)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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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만찬회> 신진오, 전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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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만찬회> 신진오, 전건우

<호러 만찬회>는 여덟 편의 단편으로 엮어 만들어진 단편집이다. 첫 네 작품인 <헤이, 마몬스> <얼룩> <딩동 챌린지> <네발 달린 짐승>은 신진오 작가가, <신딸><추락><만성 활력><반딧불의 산>은 전건우 작가가 썼다. 작가의 말까지 총 350여 페이지였는데 근래 본 책 중 가장 단숨에 읽혔다. (밑줄 코멘트 아예 없는 책도 오랜만 ㅎㅎ) 읽으면서도 내 눈 시선 끝이 날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빨리 잘 읽히는 이유는 글이 보통 그만큼 흥미로워서, 잘 읽혀서, 혹은 다음 서술이 어느 정도 예측이 되어서 이기도 한데, 이번 리딩에선 내 눈이 공포감을 감지하고 싶어 안달이 난 느낌이었다.

원작인 웹툰을 각색한 것이라고 하는데, 평소에 웹툰을 전혀 보지 않아서 어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작가의 말에서 신진오 작가는 <헤이, 마몬스>가 이 단편집의 시작 작품으로 처음 각색을 하면서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서술되어있다.

<헤이, 마몬스>는 아버지가 어린 주인공에게 선물했던 악마 모양의 마몬스 인형이 주인공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어릴 적에 들었던 남겨있던 피에로 인형이 어린 딸을 잡아먹어 버리고 마침내 엄마까지 집어삼킨 이야기처럼 인형에 대한 공포감과 어린아이가 가질 수 있는 사이코패스적인 성향, 나름의 작은 반전이 흥미로웠다.

<얼룩>은 신진오 작가가 쓴 작품 중 가장 흥미롭고 작품성이 있었다. 마지막에 작업하고 각색 과정에서 애를 가장 먹으셨다고 했지만, 여러 수정을 거친 탓인지 구성도 꽤 탄탄했고, 작가님의 말씀처럼 아동학대, 고독사의 사회 이슈도 건드릴 수 있어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어릴 적에 본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만큼의(? 혹은… 생략) 반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국 토속신앙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공포 스릴러물을 매우 선호하기도 하고, 한국 전통 소재의 공포물이 세계 영화시장에 하나의 장르를 만들길 바라는 입장에선,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신진오 작가님이 각색을 맡은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

<딩동 챌린지>는 할리우드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친구들 간의 내기 소재로 작은 반전이 있었지만, <네발 달린 짐승>과 신진오 작가가 작업한 다른 소재처럼 인간의 이기심이 키워드인 내용이라 이야기를 각자 보자면 흥미롭지만 단편집으로 연이어 보기엔 아쉬웠다.

전건우 작가는 <밤의 이야기꾼들><소용돌이><고시원 기담><살롱 드 홈스><마귀><뒤틀린 집> 등 여러 작품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소설가다. 그가 작업한 이야기 중 <반딧불의 산>이 가장 여운이 컸다. 신진오 작가 작품에서도 그렇고, 공포물에서 차별성을 만드는 건 공포감과 대비되는 인간성이 나올 때가 아닌가 싶다.

<만성 활력>도 그런 의미에서 소재는 참신했지만 어쩐지 이야기가 다시 건드려져야겠다는 인상이 들었다. 공포스러운 장면을 만드는 건 인간의 이기심이나 저주, 인간이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일 수 있지만 이런 소재가 반복되어 노출되다 보면 공포심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흔한 레퍼토리만 남는다.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처럼 끔찍한 순간에서도 인간의 따뜻한 면모나 심리를 섬세하게 쓰는 글들이 하나의 이야기로서 입체감과 끝을 더 진하게 남긴다.

심리물에 욕심이 있는 편이라, 읽으면서 무엇이 인간에게 공포감을 주는가. 특히, 소설처럼 극적인 씬 반전, 사운드(텍스티 출판사에서 사운드 제공을 해주긴 했는데, 공포감은 별로 들지 않았다.)가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공포 소설을 공포스럽게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전건우 작가의 말처럼 여덟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맛이 각기 다른 츄파춥스를 꺼내 먹는 기분이었고, 두 작가님들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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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여행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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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로방스 여행>


이재형 지음


디이니셔티브 출판


 


 


240여 쪽의 작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책에 메모와 포스트잇, 밑줄이 가득 찼다. 


나중엔 포스트잇을 붙이려다가 포기하고 밑줄과 메모만 남겼다. 붙이는 게 무의미해져서.



책을 읽고 이동 중에 핸드폰을 뒤적여 프로방스 배낭여행을 검색했다. 프랑스는 영어가 안 통할 테니 여행할 정도의 회화를 터득하는 데 걸릴 시간, 누구와 함께 갈 것인지, 부모님을 따로 보내드릴 때 들 비용, 최적의 시기, 나야 대처하겠지만 부모님이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않을까…, 그때 대처방안까지 구상했다. 책 한 권에 몇 푼이 드는 건가. 




큰 명분이 없는 한 프랑스로 여행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르다. 직접 보고픈 반 고흐 흉상, 생폴 드 모레 정신병원 안에 전시된 그의 자화상, 촬영이 금지되어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마티스가 만든 로사리오 예배당,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된 이프성, 프랑수아즈 사강의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의 배경이 된 생트로페 항구, 피카소가 그토록 원했던 그리말디 성 내부, 길을 거닐며 마실 파스티스, 시장에서 살 마늘소스, 거닐며 알은척 이야기를 풀고픈 곳, 그렇게 원 없이 달큼한 보랏빛 라벤더 향과 밝은 태양에 피부를 태울 곳…….





아,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마티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꾸베 씨의 사랑 여행> <세상의 용도> <인간 불평등 기원론> <사회계약론>등 무려 150권 넘게 다양한 분야의 프랑스 작품을 번역한 내공답게 그의 이야기는 아주 유려하게 그 장소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를 적당한 깊이와 농담으로 풀어낸다. 작가 이재형은 영화, 예술에 조예가 깊어 어떤 정보는 생략해도 되고 어떤 시시콜콜함을 풀어야 좋을지를 잘 알고 있다. 지리, 세계사, 미술사, 영화, 예술,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 정보들이 담백한 몇 마디의 감상과 함께 실려 있는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크레타섬을 찾아가고 이 걸작을 번역해서 세상에 내놓은 적이 있다는 그의 소소한 고백이 얼마나 그가 이 예술 작품들을 사랑하는지, 각 작품들을 대할 때 그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가 티를 내지 않아도 눈에 보였다.



가장 반한 구석이 있다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겨우 두 문단으로 여행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는 점인데. 그런 그의 소소함이 책 전반에 묻어 있었고, 그것이 참 매력적이라 여겨졌다. 그 성품이 마치 로사오리 예배당을 디자인하던 마티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설계 초안에 들어있던 많은 요소들, 특히 그가 직접 디자인했던 문화적 기물들을 하나씩 버렸다는 대목에서 내가 감탄을 했던 그런 결이 그의 책에도 묻어났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최대한 묻히지 않으려고 자신이 애정 하는 작가의 글을 번역하는 번역가처럼.


프로방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쥐어볼 만한 책. 아, 난 꼭 들고 갈 거라. 




+ 여담을 추가하자면. 



여행 욕구가 목 끝까지 다다랐던 지난 주말 처음 보지만 알고는 있는 어떤 사람과 서유럽 어딘가를 누볐다. 그의 반짝이는 총명한 눈 뒤로는 샤를 가르니에가 건축한 우아한 신 바로크 양식의 고급 건축물이 있었다. 인파가 많은 광장에서 지중해 과일 몇 개를 사들고 그와 한참을 재밌게 이야기했다. 


 

모자도 쓰지 않은 채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얼굴로 그는 지리, 역사, 그 지역 음식과 와인, 식물, 예술, 건축물과 그에 담긴 역사, 예술가 이야기와 그곳을 사랑한 작가, 철학가, 예술가들의 처음 들어보는 여담을 늘어놨다. 말로는 채 설명할 수 없는 감탄도 팔꿈치로 그를 툭 건드리면 요리 레시피 읊듯 모두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이, 우리는 꽤 죽이 척척 잘 맞았다. 

 


주로 그 남자가 설명하고 나는 들었다. 속으론 그 해박함이 부러워 책을 몇 권 더 읽지 못한 게 아쉬웠다. 알은척하지 못한 것보다 그 이야기에 지금보다 더 감탄할 수 없음이 아쉬웠다. 원래 유럽을 계속 여행하다 보면 생전 처음 보는 것보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을 보고 더 감탄하기 마련이니까. 



사람이 너무 많아 땀이 난 두 어깨와 눈을 뜨기 힘들 만큼 빛나는 태양에 피로함을 느끼면서도 그와의 여행이 즐거워 반 흥분 상태였다. 그 흥분의 정점은 그가 손바닥 크기의 흰 종이를 꺼내 들었을 때였다. 방문해야 할 미술관, 박물관, 연주회, 레스토랑, 교회, 수도원, 예술가들의 생가 등을 적은 목록을 내게 건네 주었다. 아, 완벽하다. 


난 여행을 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사람과 여행했다. 궁합이 맞는 와인을 곁들이는 게 중요하듯 여행도 지역마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합이 중요하다. 그래서 간혹 여행을 망치면 새로운 사람과 다시 그곳을 찾았는데, 이번 여행은 그저 훌륭했다. 여행지 때문인가, 아니면 그 종이 때문인가? 행복에 겨워 입이 느슨해질 즈음 알람 소리에 단잠에서 깼다. 알람을 끄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그와 마저 가지 못한 리스트가 눈에 아른거렸다. 


얼굴 오른쪽으론 이재형 작가님의 <프로방스 여행>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약에 취해 잠이 든 모양이었는데, 아마 책과 맞물려 꿈을 꾼 거란 생각이 들어 신기했다. 아 다시 읽고 그 꿈을 연이어 꿀 수만 있다면…. <프로방스 여행>은 남 프랑스 이야기니까, 작가님이 쓴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면 되는 건가. 파리까지 가게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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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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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_존윌리엄스

<스토너>를 다 읽고 나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져 몸을 등 뒤로 젖히고 잠시 멍하니 앉았다. 무언가 말을 할 수 없었고, 그저 그렇게 앉아 있다가 분명 오늘은 <스토너>에 대한 감상을 써내릴 수 없다는 걸 확신했다.

운동 가방을 하나씩 챙겼다. 운동복, 속옷, 수건, 모자, 물병, 이어폰 그리고 핸드폰.

가방끈을 오른쪽 어깨에 두르고 이어폰을 끼우고. 잠시 현관에 서서 잠시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였다. 뭔가를 뒤적였는데, 아마도 나는 그 당시의 내가 들어야 할 곡이 바로 지금 들리는 이 곡이란 걸 알았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 전집 중 교향곡 3번 6악장.

정결하고 고결한 슬픔과 사랑. 인간의 숭고함이 온몸을 감싸 안은 듯 마음을 위로했고 그의 생애와 죽음을 추모했다. 음악이 귓속과 뇌세포 구석구석에 퍼졌고. 척추와 모든 혈관의 피에 진동해 내 살가죽까지 촘촘히 나를 전율시켰다.

내가 영화화한다면 이 곡을 대표곡으로 정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글쎄. 난 그저 스토너라는 이 인물이 가공된 인물이라 믿을 수 없다. 허구라 하더라도 만약에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맞이할 때, 나는 그를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군가로서 떠올릴 테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내 곁의 그 누구보다 생각과 말과 행위를 그의 젊은 시절부터 생애가 다할 때까지 알 수 있는 사람인 그가 내겐 더 실존 인물 같지 않은가.

그의 부모, 학교를 가게 된 계기, 만난 인물들과 나눈 대화,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실망하고 실패를 확신하는 순간과. 아이가 태어나며 아이를 기르고, 아내에게서 서서히 멀어지고, 교육자가 되는 일. 새로운 사랑을 알고 일탈하고. 교육자로서 충실하고, 갈등의 상황에 놓인 그 모든 것들이. 그 모든 것을 서술하고 대하는 그의 모든 행동거지와 생각과 태도가. 나는 결코 단 한 번도 답답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저 감탄했다.

그의 생애가 불행하다고, 용기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던가. 난 잘 모르겠다.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평범함을 대하는 스토너의 태도가, 그리고 이 평범함을 어떤 치우침 없이 써 내려간 이 투명하고 공평한 글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심금을 울리는 위대함이 되지 않았나.

평범한 것이 이토록 위대할 수 있다니.

서평 전문은 프로필 링크의 블로그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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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후기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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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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Água Viva 아구아 비바.
직역하면 ‘살아있는 물’ 혹은 해파리. 이들은 어떤 형태를 강제하는 뼈대 구조 없이 자유롭게 물 그 자체에 몸을 맡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은 원초적이면서도 전체적이고 모든 구조와 존재의 경계를 넘어선다.

글을 읽으면서도 이것이 텍스트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어떤 원소나 유기체가 되어 함께 흘러가고 해체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기존에 알고 있던 모든 개념과 글에 대한 정의에서 해방되어 마치 태초의 것으로 돌아가 이 세상 만물을 유영해 나가며, 가장 원초적인 원소의 모습과 우주 전체와 그 너머까지 동시에 장악하듯 분해되고 팽창함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클라리 시의 글은 실험적이란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데. 글 속에서 존재가 해체되고 결집되며, 탄생하고 죽으며 죽음 이후에도 존재하는 어떤 신비로운 창조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언어를 이렇게 구성할 수 있구나…하는 찬탄까지.

그간 읽었던 모든 글들이 그녀의 이 한순에 쥐어지는 작은 책 하나로 거대하고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버렸다. 이 사실이 벅차면서도 슬프다.

천재구나.

#을유문화사 #클라리시리스팩토르 #아구아비바 #aguaviva #오늘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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