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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사회 - 순 자산 10억이 목표가 된 사회는 어떻게 붕괴되는가
임의진 지음 / 웨일북 / 2023년 6월
평점 :

어느 날부터인가 인스타그램에는 비슷한 컨셉의 계정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프로필엔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배경은 깔끔하게 솔리드 한 원 컬러의 사진. 짧은 슬로건과 함께, 자신을 기획자, 사업가, 멘토라 소개한다. 게시물엔 제목이나 요약된 내용으로 성공법, 자기개발, 재테크, 팔로워 늘어나는 법, 미라클 모닝, 다독, 1일 1피드로 팔로워 수 늘리기, 셀프 브랜딩, 영 앤 리치, 월 1천 수입, 무지출 챌린지 등이 메인 토픽이다.
입을 쩍 벌릴 정도로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자극을 받아 나 또한 하루를 분주히 살게 되면서도, 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도달하려는 지점이 크게 다르지 않고 하나로 수렴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다.
최근 한국 사회의 대다수가 바라는 '경제적 자유'는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경제적 자유와는 다른 의미이다. 우리가 바라는 '경제적 자유'란,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서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 즉, 돈 걱정 없이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빚투, 영끌,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
위 낱말들은 사회경제 전반에 관심이 없더라도 우리가 근 몇 년간 소셜미디어와 포털 메인, 언론매체에서 끊임없이 봐온 키워드들이다. 2020년~2021년 2030세대 사이에선 '지금이 아니면 집을 살 수 없다'라는 불안감과 위기가 고조되었다. 비트코인을 선점한 소수나 기회를 잘 노린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되거나 영혼까지 끌어모은, 소위 '영끌', 빚을 대어 투자하는 '빚투'의 방식이 횡행하였다. 대출을 이용한 고점 매매를 하는 영끌족과 불안한 심리를 악용한 빌라왕 사건이 터져 전세제도의 맹점이 드러났고, 작년부터 2023년인 올해까지 치솟은 금리로 하우스푸어가 되는 이들이 생겨났다. 비트코인, 주식, 부동산으로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사이, 중간계층은 붕괴되고 사람들 사이에는 가만히 있다가는 '벼락 거지'가 된다는 위기감, 불안감, 박탈감이 생겨났다.
저자 임의진은 우리 사회가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고 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것 이상의 돈을 맹목적으로 좇고 있으며, 우리가 돈으로 환산 가능한 가치가 전부인 비교 기반 '숫자 사회'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숫자 사회>에선 우리 사회가 돈 빼면 믿을 게 없는 신뢰 부족, 돈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상관관계가 생겨난 이유, 튈 수도 없지만 뒤처질 수도 없게 된 사회에서 생겨난 '한국형 성공 방정식'을 근현대사를 점검하며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다. 우리가 그토록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단순히 현재의 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 역사 속에서도 비슷한 구조적인 상황을 고증의 내용을 바탕으로 비교할 때, 그때 생겨난 문제나 우리가 찾아낸 해결 방식이 과거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면 흥미로우면서도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숫자 사회> 143쪽에 나온 내용 중 정약용 <여유당전서>에서 현대사회와 근대사의 구조적 문제가 매우 유사함을 볼 수 있다. 1800년대 호남 지방 농가 100호 중 소작농은 대략 70퍼센트였으며, 수확한 농작물의 절반을 점잖게 글이나 읽는 이들에게 바쳐야 했다. 이런 모습이 인건비, 고정 비용을 절감하고 고객 관리를 애써 매출을 올리려고 해도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가 천정부지로 올라 거리로 내몰리는 현대사회의 자영업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근현대부터 현재까지 유사한 문제가 반복적인 패턴을 보인다. 과거 근대 전통 사회에서 '과거 급제-토지 확보- 수확량 증대'로 요약된 일련의 성공 루트를 제외하고 다른 성공 방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듯, 현대 한국 사회의 성공 방정식은 '시험 합격을 통한 간판 획득 - 아파트로 대표되는 자산 소유 - 더 많은 소득 창출'로 요약할 수 있다. 과연 우리가 욕망을 향한 견고한 삼위일체의 해체는 가능한가.
저자는 절대적으론 전쟁과 가난으로 힘들었던 과거보다 현재가 더 살기 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엔 모두가 어려운 시대에서 더 나아질 수 있는 상향 평준화를 경험한 것에 비해, 2030세대는 그들의 기준이 되었던 4인 핵가족의 삶을 그들이 유지하는 것(주거, 가족형성) 조차 어려워져 과거보다 하향평준화된 삶을 경험할 것이란 예견하기에, 그들의 근로소득만으론 살수 있는 집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이미 좌절감과 허탈함을 경험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현실 적시와 문제적시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질문만 있고 답은 없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정치 사회문제를 다루는 여느 책들과 마찬가지로, 질문과 문제 지적에 비해 현실을 타개할 적극적인 대안보단 다소 미진하고 이상적이었다.
또한 숫자 사회 개념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노동을 괄시하는 풍토에 대해 지적은 합당했지만, 우리 개개인이 생존 문제 이상으로 돈을 좇는다는 지적 또한 납득하기 어려웠다. 안전하고 마땅한 주거가 부족하고, 스태그플레이션, 집값 폭등 등 가만히 있으면 갖고 있는 돈이 휴지 조각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과연 사람들의 '경제적 자유' 추구가 필요 이상의 돈을 좇는다고 해석되는 것이 와닿지 않았다.
내가 책 본문 아래에 그려 넣은 그림처럼, 현대 사회는 중간계층이 무너지고 소수의 상위층과 절대다수의 하위층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빈부격차는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심리적인 불안과 박탈감 이상으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생존의 문제다. 성공을 위한 길이 삼위일체처럼 하나이고,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성공하려는 세태가 안타까운 것은 동의할 수 있고, 가능하다면 저자의 말처럼 각자가 돈 이상으로 그들이 진실로 원하는 다양한 일에 근로하여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길 바란다. 저자는 유튜버나 연예인이 되려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법조인, 의사와 같은 일은 후순위로 밀려난 것을 안타까워했다.
난 오히려 과거보다 현대 사회가 간판을 얻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회로부터 조금은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고학력자만이 성공의 길로 걸어갈 수 있는 과거에 비해 IT 기술의 발달과 콘텐츠 제작과 소통이 양방향에서 이뤄지고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오프라인 모임 형성도 다양해지고 있다. 농경사회에 두레, 계는 생산수단이 하나이고 노동집약적인 사회에서나 가능했던 같은 목적을 위해 연대했던 집단이지 현실에 이를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작가가 대안으로 제시한 공동체 형성을 통한 불안감 감소, 연대 형성, 신뢰 회복은 댐이 무너지는데 나무를 심자는 이야기로 들린다. 저자 또한 이것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중간적 디딤돌이라 말하긴 했지만, 이렇다 한 대안이 그 이후로 나온 것이 아니라 또다시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는 수순에 밖에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사회문제를 역사적 패턴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위에 언급한 바대로 매우 흥미로웠지만, 현 한국 사회에서 개개인이 비슷한 방법으로 돈에 집착하는 숫자 사회가 일어난 이유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대안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낮추는 방식에 집중했지 공동체 형성을 통한 불안감 해소가 구조에 초점을 맞춘 대안이라고 볼 순 없다. 공동체는 물론 집단을 형성한다는 면에서 구조적인 접근으로 보일 수 있지만, 구조적 접근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 경제적 법안들, 행정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더 직접적이다. 공무원을 뽑는 방법을 시험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도 와닿지 않았다. 시험이야말로 가장 절대적이고 비리가 일어나기 어려운 방식인데, 시험 이외의 방법이야말로 인사의 개입으로 좌지우지될 가능성을 늘릴 뿐이다. 공무원이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격을 입증해야 한다는 시스템도, 고위 관직자에게 더 많은 테스크를 줘야 한다는 말도 현실성이 부족한 이야기였다. 그 많은 테스크가 생겨난다 해도 너무나 손쉽게 중간관리직에게 일이 넘어간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내 관점에서 이런 관문 바꾸기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 모두가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몰리는 입시 방식이 문제라기 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특권을 주는 이 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국회의원은 무보수라는 온라인에 떠도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해당 국가의 1인당 국민 총소득의 2-3배 정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4배 이상으로 책정되어 있다. 한국 경제규모에 부합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그 외의 특권을 규제하여 한 곳으로 돈과 힘이 쏠리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문을 뜯어고친다고 해도 그 문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가려는 곳이 하나인 이유는 같은데 왜 문을 고치는 이야기를 할까?
그럼에도 <숫자 사회>는 현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하나의 견해로 읽기에 흥미로운 시각이었으며, 이런 책들로 인해 나와 같이 또 다른 담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 좋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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