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사회 - 순 자산 10억이 목표가 된 사회는 어떻게 붕괴되는가
임의진 지음 / 웨일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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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인가 인스타그램에는 비슷한 컨셉의 계정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프로필엔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배경은 깔끔하게 솔리드 한 원 컬러의 사진. 짧은 슬로건과 함께, 자신을 기획자, 사업가, 멘토라 소개한다. 게시물엔 제목이나 요약된 내용으로 성공법, 자기개발, 재테크, 팔로워 늘어나는 법, 미라클 모닝, 다독,  1일 1피드로 팔로워 수 늘리기, 셀프 브랜딩, 영 앤 리치, 월 1천 수입, 무지출 챌린지 등이 메인 토픽이다. 



입을 쩍 벌릴 정도로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자극을 받아 나 또한 하루를 분주히 살게 되면서도, 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도달하려는 지점이 크게 다르지 않고 하나로 수렴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다. 


최근 한국 사회의 대다수가 바라는 '경제적 자유'는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경제적 자유와는 다른 의미이다. 우리가 바라는 '경제적 자유'란,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서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 즉, 돈 걱정 없이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빚투, 영끌,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



위 낱말들은 사회경제 전반에 관심이 없더라도 우리가 근 몇 년간 소셜미디어와 포털 메인, 언론매체에서 끊임없이 봐온 키워드들이다. 2020년~2021년 2030세대 사이에선 '지금이 아니면 집을 살 수 없다'라는 불안감과 위기가 고조되었다. 비트코인을 선점한 소수나 기회를 잘 노린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되거나 영혼까지 끌어모은, 소위 '영끌', 빚을 대어 투자하는 '빚투'의 방식이 횡행하였다. 대출을 이용한 고점 매매를 하는 영끌족과 불안한 심리를 악용한 빌라왕 사건이 터져 전세제도의 맹점이 드러났고, 작년부터 2023년인 올해까지 치솟은 금리로 하우스푸어가 되는 이들이 생겨났다. 비트코인, 주식, 부동산으로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사이, 중간계층은 붕괴되고 사람들 사이에는 가만히 있다가는 '벼락 거지'가 된다는 위기감, 불안감, 박탈감이 생겨났다. 



저자 임의진은 우리 사회가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고 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것 이상의 돈을 맹목적으로 좇고 있으며, 우리가 돈으로 환산 가능한 가치가 전부인 비교 기반 '숫자 사회'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숫자 사회>에선 우리 사회가 돈 빼면 믿을 게 없는 신뢰 부족, 돈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상관관계가 생겨난 이유, 튈 수도 없지만 뒤처질 수도 없게 된 사회에서 생겨난 '한국형 성공 방정식'을 근현대사를 점검하며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다. 우리가 그토록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단순히 현재의 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 역사 속에서도 비슷한 구조적인 상황을 고증의 내용을 바탕으로 비교할 때, 그때 생겨난 문제나 우리가 찾아낸 해결 방식이 과거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면 흥미로우면서도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숫자 사회> 143쪽에 나온 내용 중 정약용 <여유당전서>에서 현대사회와 근대사의 구조적 문제가 매우 유사함을 볼 수 있다.  1800년대 호남 지방 농가 100호 중 소작농은 대략 70퍼센트였으며, 수확한 농작물의 절반을 점잖게 글이나 읽는 이들에게 바쳐야 했다. 이런 모습이 인건비, 고정 비용을 절감하고 고객 관리를 애써 매출을 올리려고 해도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가 천정부지로 올라 거리로 내몰리는 현대사회의 자영업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근현대부터 현재까지 유사한 문제가 반복적인 패턴을 보인다. 과거 근대 전통 사회에서 '과거 급제-토지 확보- 수확량 증대'로 요약된 일련의 성공 루트를 제외하고 다른 성공 방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듯, 현대 한국 사회의 성공 방정식은 '시험 합격을 통한 간판 획득 - 아파트로 대표되는 자산 소유 - 더 많은 소득 창출'로 요약할 수 있다. 과연 우리가 욕망을 향한 견고한 삼위일체의 해체는 가능한가.


저자는 절대적으론 전쟁과 가난으로 힘들었던 과거보다 현재가 더 살기 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엔 모두가 어려운 시대에서 더 나아질 수 있는 상향 평준화를 경험한 것에 비해, 2030세대는 그들의 기준이 되었던 4인 핵가족의 삶을 그들이 유지하는 것(주거, 가족형성) 조차 어려워져 과거보다  하향평준화된 삶을 경험할 것이란 예견하기에, 그들의 근로소득만으론 살수 있는 집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이미 좌절감과 허탈함을 경험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현실 적시와 문제적시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질문만 있고 답은 없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정치 사회문제를 다루는 여느 책들과 마찬가지로, 질문과 문제 지적에 비해 현실을 타개할 적극적인 대안보단 다소 미진하고 이상적이었다. 



또한 숫자 사회 개념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노동을 괄시하는 풍토에 대해 지적은 합당했지만, 우리 개개인이 생존 문제 이상으로 돈을 좇는다는 지적 또한 납득하기 어려웠다. 안전하고 마땅한 주거가 부족하고, 스태그플레이션, 집값 폭등 등 가만히 있으면 갖고 있는 돈이 휴지 조각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과연 사람들의 '경제적 자유' 추구가 필요 이상의 돈을 좇는다고 해석되는 것이 와닿지 않았다. 


내가 책 본문 아래에 그려 넣은 그림처럼, 현대 사회는 중간계층이 무너지고 소수의 상위층과 절대다수의 하위층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빈부격차는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심리적인 불안과 박탈감 이상으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생존의 문제다. 성공을 위한 길이 삼위일체처럼 하나이고,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성공하려는 세태가 안타까운 것은 동의할 수 있고, 가능하다면 저자의 말처럼 각자가 돈 이상으로 그들이 진실로 원하는 다양한 일에 근로하여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길 바란다. 저자는 유튜버나 연예인이 되려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법조인, 의사와 같은 일은 후순위로 밀려난 것을 안타까워했다. 


난 오히려 과거보다 현대 사회가 간판을 얻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회로부터 조금은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고학력자만이 성공의 길로 걸어갈 수 있는 과거에 비해 IT 기술의 발달과 콘텐츠 제작과 소통이 양방향에서 이뤄지고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오프라인 모임 형성도 다양해지고 있다. 농경사회에 두레, 계는 생산수단이 하나이고 노동집약적인 사회에서나 가능했던 같은 목적을 위해 연대했던 집단이지 현실에 이를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작가가 대안으로 제시한 공동체 형성을 통한 불안감 감소, 연대 형성, 신뢰 회복은 댐이 무너지는데 나무를 심자는 이야기로 들린다. 저자 또한 이것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중간적 디딤돌이라 말하긴 했지만, 이렇다 한 대안이 그 이후로 나온 것이 아니라 또다시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는 수순에 밖에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사회문제를 역사적 패턴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위에 언급한 바대로 매우 흥미로웠지만, 현 한국 사회에서 개개인이 비슷한 방법으로 돈에 집착하는 숫자 사회가 일어난 이유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대안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낮추는 방식에 집중했지 공동체 형성을 통한 불안감 해소가 구조에 초점을 맞춘 대안이라고 볼 순 없다. 공동체는 물론 집단을 형성한다는 면에서 구조적인 접근으로 보일 수 있지만, 구조적 접근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 경제적 법안들, 행정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더 직접적이다. 공무원을 뽑는 방법을 시험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도 와닿지 않았다. 시험이야말로 가장 절대적이고 비리가 일어나기 어려운 방식인데, 시험 이외의 방법이야말로 인사의 개입으로 좌지우지될 가능성을 늘릴 뿐이다. 공무원이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격을 입증해야 한다는 시스템도, 고위 관직자에게 더 많은 테스크를 줘야 한다는 말도 현실성이 부족한 이야기였다. 그 많은 테스크가 생겨난다 해도 너무나 손쉽게 중간관리직에게 일이 넘어간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내 관점에서 이런 관문 바꾸기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 모두가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몰리는 입시 방식이 문제라기 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특권을 주는 이 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국회의원은 무보수라는 온라인에 떠도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해당 국가의 1인당 국민 총소득의 2-3배 정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4배 이상으로 책정되어 있다. 한국 경제규모에 부합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그 외의 특권을 규제하여 한 곳으로 돈과 힘이 쏠리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문을 뜯어고친다고 해도 그 문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가려는 곳이 하나인 이유는 같은데 왜 문을 고치는 이야기를 할까? 



그럼에도 <숫자 사회>는 현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하나의 견해로 읽기에 흥미로운 시각이었으며, 이런 책들로 인해 나와 같이 또 다른 담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 좋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숫자사회 #임의진 #오늘의책 #웨일북 #서평 #책제공받음 #책후기


https://blog.naver.com/jt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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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사고 - 살아남는 콘셉트를 만드는 생각 시스템
다치카와 에이스케 지음, 신희라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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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혁신적인, 차별화된 이란 말은 어릴 적 사교육 시장에서부터 대학교를 거쳐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까지 이젠 무감할 정도로 자주 들려오는 말이다. 이젠 '창의적'이란 말에 비상한 아이디어를 발휘하려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면서도, 아이폰의 다음 시리즈에 더 이상 혁신도 기발함도 없고 카메라 구멍이 하나 더 늘어날 거란 아쉬움, 아침 드라마가 얼마나 뻔하고 지루한지, 사회문제에 대해 논하는 말들이 얼마나 현실 가능성이 없고 탁상공론인지 말한다. 무상해질 만큼 자주 언급되는 혁신적인 변화와 그에 상응해 요구되는 창의성은 자주 언급되는 만큼이나 무색한 말이면서도, 작은 일상에서조차 찾게 되는 갈급하고 목마른 대상이 아닌가.




건축학도였던 다치카와 에이스케는 미디어에 나오는 화려한 건물들을 직접 관찰할 때 느낄 수 없었던 관계성을 전혀 예기치 못했던 건축물에서 느끼면서, 화려하고 독특한 외형보다 대상과의 관계성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한편 젓가락 하나 제대로 디자인할 수 없는 자신이 어떻게 건물을 건축할 수 있을지에 대해 반문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그레이엄 벨, 토머스 에디슨같이 위대한 창조를 한 이들이 어떻게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창조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가 얻은 답은 창조란 지난 38억 년간 생물이 진화해왔듯,

인간의 생존을 위한 존재의 본능이며, 유희이고.

진화가 창조의 행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창조가 뛰어난 수재들의 전유물이라고 믿지만, 대단한 아이큐를 가진 과학자뿐만 아니라 120 정도의 평범한 사람들(20명 중 1명꼴)도 창조적인 결과물을 내며, 훌륭한 창작을 해내는 미술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천재들은 미친 사람처럼 변이 사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례 없는 발상을 하고, 수재 같은 선택적 사고로 취사선택하는 일을 무한히 반복하여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낸다. 에이스케는 창조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택하는 이 교차하는 두 가지 사고방식에 대해 자연 생물학에 근간하여 인간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기 위한 '진화 사고'에 대해 방법론을 설명한다.


위 천재들의 창조적 사고 법과 같이, 생물학적 진화도 모두 변이와 선택의 반복으로 이뤄지는데, 창조란 변이 때문에 무수한 오류를 우연히 일으키는 사고와 선택적 관점에서 자연선택하는 사고의 왕복으로 진화와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즉,


HOW. 변이의 사고 :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는가?

WHY. 선택의 사고: 왜 지금의 형태로 존재하는가?




이 두 가지의 변이 사고와 선택 사고를 하며, 우연한 에러를 무한히 발산하고, 자연압력에 의해 필연적으로 살아남는 대상이 선택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책의 뒷면이나 4장에 시작에 보이는 진화 사고 나선형은 우연한 변이와 필연적 서낵에서 떠오른 두 가지 콘셉트의 성질이 전혀 다르며, 이 두 가지가 상호 호응해야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만 년간 인간의 발명, 발견, 창조는 38억 년간 이러한 과정을 층층이 반복해온 자연과 비교하면 볼품없을지라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 세상의 모든 진화적 결과물은 진화의 여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수억 년간 지속해서 탄생한 현재의 자연물조차도 완벽할 수 없고. 따라서, 인간이 만들어낸,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아이디어나 창조물의 결과는 미흡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며. 오히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실패의 과정이 진화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연의 관점에서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가 만든 실패조차 창조 그 자체다.



창조란 처음부터 가치가 발생하는 프로세스가 아니기에, 진화의 나선에선 수많은 우발적 변이에서 가지 치듯 생겨난 결과물들이 나선형을 타고 위로 올라갈수록, 적응과 관찰을 바탕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콘셉트만이 살아남으며 진화의 결과는 점점 하나로 수렴해 나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창조이며, 그 결과조차 진화의 여지는 열려있다.



2장에선 적극적으로 변이와 실패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변이의 형태를 관찰해 변량, 의태, 소실, 증식, 이동, 교환, 분리, 역전, 융합으로 내용을 나누어 생물학적, 과학적 선례를 분석하고 우리가 실제로 이런 이론들을 어떻게 진화 사고에 적용하여 결과물을 도치시킬 수 있을지 질문으로 도치하는 과정이 나오고, 3장에선 필수불가결하게 변이로 발산된 결과물들이 자연의 이치에 의해 가지치기 당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 법칙들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날 70억 인구와 기업들은 개체의 진화와 생존에 사고가 매몰된 나머지, 자연과 공생하지 못하고 파괴하여 인류 문명의 6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슬픈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이미 우리가 만들어놓은 결과로 생물의 다양성은 줄고 어떤 특이점이 다가오며, 기후 변화와 AI가 인류를 능가하는 시점이 올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생태계와 지속 가능한 공생을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창조성을 진화시키고 자연과 균형을 되돌리기 위한 창조를 시작해야 한다.



관념적이고, 시각적 감각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괜찮은 디자인, 멋진 건축물, 뛰어난 인공물에 대한 정의나 사고가 뒤흔들리고, 직접적으로 현실에 적용할 만한 진화 워크가 50가지로 나뉘어있다. 다만, 이런 진화 사고를 실생활에 빠르게 적용하기 위해선 그가 설명한 방법들을 연습하고 지속적으로 탐문할 끈기, 집요함, 탐구정신이나 지식에 대한 장악력과 호기심이 필요해 보인다. 


현실적으로 창의성이 요구될 거라 기대되는 대부분의 직업이 이런 공격적 탐구를 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만, 다치카와 에이스케가 내놓은 대답이 지난 십 년간 늘 질문해 왔던 질문들에 그만의 확실하고 설득력 있는 분석과 답으로 속이 시원한 것만은 사실이다. 


뭣보다 그가 디자인 전략회사 nosigner를 설립하고 이룬 쾌거, 디자인을 디자인의 본래 의미를 찾게 할 여건을 그 스스로 마련하고, 더 이상 오더에 맞춘 이미지 제작, 컬러 맞추기, 무한 디자인 수정의 굴레에서 벗어난 총체적인 전략적 디자인을 수행할 사고적 근간을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그의 투지와 통찰력, <진화 사고>를 집필하게 된 히스토리를 보면 감탄을 멈출 수 없다.


대단하다.

오랜만에 책값이 더 나가도 되겠다며 뒷면을 훑어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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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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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위바위보> 앨리스 피니

이민희 옮김

출판사 밝은세상



어떤 장르를 가장 좋아하세요?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누구예요? 

아, 시나리오도 보세요? 

어떤 작가 좋아하시는데요. 


살면서 가장 많이 받아본 질문들이다. 좋아하는 영화, 소설, 작가는 그 시기에 어떤 작품을 보느냐에 따라 답변이 바뀐다. 많이 볼 수록 가장 좋아하는 것을 뽑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좋아하는 것이 많아지고, 더 가치있게 보이는 것도 변한다. 시절인연처럼 그 시기에는 매해 빠짐없이 오십번은 족히 본 영화를 다시 안찾게 되는 시기가 오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방치한 만인의 명작 <이터널 선샤인>이 마침내 내 인생의 방점을 찍게 하는 시기가 온다. 그러니 영화광을 자처하던 어린시절처럼 베스트를 꼽기 어렵다. 추궁하듯이 상대가 질문을 연거푸 하면 이런 답으로 대신한다. 




“정확히 말하면 장르를 선호한다기 보다,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고. 가장 맛있는 메뉴가 있는게 아니라 맛있는 요리가 좋은 거니까요.” 


이 답변의 끝엔 여름이 오면 추리 스릴러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이열치열 이냉치냉. 한겨울의 추운날 아이스 아메라카노나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고, 무더운 여름날 마라탕같은 추리스릴러가 확 땡긴다. 사람의 심리를 본격적으로 가장 많이 다루고  자극적이고 맛깔나게 다루는건 단연 추리스릴러니까. 



올 여름의 추리스릴러, 앨리스 패니의 <가위바위보>를 다 읽고, 문득 영화 <리미트리스>의 주연 브래들리 쿠퍼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작가였는데 쓰는 글마다 고전하고,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하다가 급기야 생활고를 겪고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다. 우연히 두뇌의 부스트를 최대치로 올리는 알약을 먹고 하루 아침에 밤새도록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는데. 그가 쓴 원고에 깜짝놀라 편집장이 그를 찾아 수십통의 전화를 거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 주인공은 대체 어떤 원고를 썼을까 궁금해했는데, 앨리스 피니의 <가위바위보>가 그런 작품이라면 설득이 되지 않을까.




추리 스릴러만큼 입이 근질거리는 서평이 또 있나. 대체 이 엄청난 반전에 대해 서술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서평을 남길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내용을 밝힐수도 없고. 온라인에 00대나무숲이 많은데도 그 쓸모를 몰랐는데, 만약에 엘리스피니 <가위바위보> 완독자들의 대나무숲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딱 한마디를 하고 싶다. 


“이런 발칙한 여자-!” 


난 정말 당신이 아는 아내, 당신이 모르는 아내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책의 끝지점에 다다를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위스트의 여왕 앨리스 피니라기에, 그간 쌓아온 추리스릴러 짬밥을 더해 끝에 다다르기 전에 답을 다 알아내려는 요량으로 단서의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밑줄을 긋고 생각되는 옵션들을 모두 써내려갔다. 그 중에서 몇가지는 맞출 수 있었지만… 올해들어 와, 하고 입을 벌려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 작품이나 전시를 통해 자주 찾아온다. 이번달만 두번째다. 이정도의 필력과 천재적인 반전을 꾸려갈 수 있을때 비로소 추리소설작가라는 간판을 내밀수 있는 것인가. 게다가 더 아리송한건 20개국이 넘는 나라에 판권이 넘어가고, 영상화가 실현된다는 건 어떻게 예측한걸까. 하기사 이런 작품을 내가 썼다면 이정도의 예측은 할 수 있었겠지. 논쟁을 할 때 상대를 이기는 방법은 애초에 그들이 갖고 있는 개념이나 질문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반전에 대해 서술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수 밖에 없다는게 너무 안타깝다. 383쪽이었는데 스토리에도 올렸듯 기대 이상으로 재밌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동네방네 정답을 모두 알려주고도 독자가 답을 알아낼 수 없을 만큼의 반전이라니.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스릴러를 사랑하는 이유처럼, 엘리스 피니의 글은 매우 매끄럽고 유려하고, 심리 묘사가 탁월했다. 굳이 추리스릴러라고 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여느 연인이나 커플의 이야기를 몰래카메라로 관찰하는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아내가 쓴 편지를 뜯어본 것이지만. 보통 인물이 교차해서 서술하는 글은 누가 무엇을 말하는지 기억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울텐데, 그런 지점이 전혀 없었다. 책이 꽤 두꺼워서 한번에 읽지 않고 나누어 읽을 줄 알았는데 카페에 들어가 앉은 자리에서 완독할 수 있었다. 각 독백을 넘어갈 때마다 아침드라마 급의 여운을 남기며 다음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고, 부부나 연인간에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불신하고 배척해내는데 안타까움을 느끼고. 진실로 서로를 사랑할때 어떤 마음까지 가질 수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종탑위에서의 그 광할한 마을 풍경은 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아름답게 눈에 보이는 듯 했고, 이 모든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과, 각 등장인물이 나와 하는 모든 말들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아, 글을 읽으면서 이정도 필력이면 그냥 작가를 해도 되겠는데? 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 생각이 맞았다는 점도. 넷플릭스 시리즈로 나오는 것도 기대되지만, 넷플릭스를 봤다는 사람마다 이 책을 추천할 거다. 


앨리스 피니의 다른 소설들이 몇 권 더 있음에 감사하며, 

올 여름은 앨리스 피니의 <가위바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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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이별 - 나를 지키면서 상처 준 사람과 안전하게 헤어지는 법 오렌지디 인생학교
인생학교 지음, 배경린 옮김, 알랭 드 보통 기획 / 오렌지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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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Or Leave : 안전이별> 


알랭 드 보통 기획, 인생학교 지음, 배경린 옮김

#책제공받음 



출판사 오렌지디 orangeD 제공 해시태그

#안전이별#알랭드보통#인생학교 #이별#힘들때#쓸쓸함#위로#자존감#공감


*서평 전문은 댓글과 프로필 링크 블로그 확인!🌞💗


영화 Call Me By Your Name 엔딩 신에서 난롯가 앞에 앉아 눈시울을 적시던 티모시 샬라메처럼 겨울 차가운 욕실 바닥에 앉아 뜨거운 물로 몸을 녹이며 숨죽여 울던 때가 기억난다. 당시에 나는 내 아픔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구차한 위로 없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상대가 필요했다.  샤워를 마치고 서점에 가서 책 한 권을 집었는데, 그게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1993년 저자가 그 글을 쓴 나이와 책을 집어 든 내 나이가 같았다. 그가 하는 말을 경험 부족으로 텍스트 이상으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동갑인 주제에 마치 서른다섯은 먹은 사람처럼 사랑을 인문학적 철학적으로 명쾌하게 써 내려간 그의 이야기에 빠졌다. 마치 든든한 친구 한 명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다음 책은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의 이 두 책은 내가 사랑을 입문서 역할을 했다. 




당시엔 내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배움과 이해의 대상이었다. 반박할 충분한 경험도 생각도 부족했고 내겐 다소 어른스러운 책이었고 당시의 감정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 생물학적, 인문학적, 철학적 이해를 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만, 사랑의 산물인 아픔을 머리로 이해하기엔 두 책이 다루는 범위가 꽤 넓어 이별의 슬픔과 상실감을 섬세하기 다루진 못했다. 


사랑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라곤, 처음으로 마셔본 아이스 아메리카노같이 지독하게 쓰고, 입이 얼얼하고 묘한 향. 쓰면서도 상쾌한 맛. '매료'라는 말을 이성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보게 된 것이 그때였다. 몸의 실루엣, 짧은 머리카락, 이마에서 코까지 어지는 선, 느긋하면서도 북쪽을 향해 끌리는 나침판의 추처럼 늘 어딘가 끌려 움직이던 동선, 눈부시게 환한 햇살에 하얗게 부서지던 휘광, 그 이후론 개연성 없는 조각조각의 시각적 이미지와 상징들. 


머리와 몸으론 끝없이 밀어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정신을 차릴 즈음엔 나를 뒤덮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성 끈을 바짝 잡았던 내 손에는 경련이 이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웠고, 아렸고, 괴로웠다. 떨쳐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독설 어린 말로 상처 입히고 오래오래 스스로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상대의 감정이나 반응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오직 나를 멈춘 하는데 급급했다. 


이때의 기억이 가장 강렬한 사랑의 기억이라면,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도 난 이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시절 인연과 상념들 속에 감정의 부산물에 대해 초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면서도. 첫사랑의 아픈 기억만큼은 여전히 가슴 한복판을 여전히 부유하고 있었다. 


알랭드 보통이 기획한 프로젝트 '인생학교'의 <안전이별>은 나처럼 사랑을 지속할지 그만둘지를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별을 고민하며 질문하게 되는 대표적인 스물네 가지로 나누고 이에 답한다. 마지막 챕터의 서두처럼 "이 책의 모든 조언은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고, 후회와 미련을 갖지 않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내가 내 마음을 몰라 바보같이 구는 일이 없도록 생각을 명확히 하는 방법"의 일부가 나온다. 




사실 스물네 개의 질문에 174페이지의 분량이기 때문에 각 질문에 글쓴이가 적극적으로 서술한다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대상이 지협적이고 포괄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아쉽게도 스물네 개의 질문 중 첫 일곱 개의 질문에 대한 서술은 이상하리 만치 서술의 개연성이나 당위성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느껴졌는데. 이 구간이 마의 구간이었는지 겨우 몇 페이지 안되는 분량인데도 사유의 폭이 부족한 글을 꾸역 꾸역 읽고 넘어가야 할 때 오는 피로감을 느껴 책 읽기를 한차례 시도하다 포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일주일 후인 오늘 맨 뒤 챕터부터 목차를 역행하여 글을 읽어야 했다. 


다행히도 마치 서로 다른 필자가 글을 쓴 듯, 맨 뒤 페이지부터 읽은 글은 오히려 앞에서 부족하게 느껴졌던 '낭만적 사랑'에 대해 인문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알랭 드 보통스러운 글의 맛을 느끼며 매우 즐겁고 유쾌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낭만주의 연애관'이 매우 인위적인 창조물이란 매우 흥미롭고 이색적인 주장을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풀어나가는 스물세 번째 질문이 나오는 구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도, 8번, 10번, 11번, 17번, 그리고 19번에서 24번 사이에 훌륭한 문장과 깨달음을 얻게 하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다.


가령, 사랑을 대하는 양상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으며, 미성숙한 성인이 되었을 경우, 이 같은 어린 시절 애착관계에서 경험한 행위를 상대에게 반복하기도 한다는 점. 지나간 나의 후회 없는 행동들이 나의 자존감을 키우고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매우 소중해서, 이 같은 경험은 절대적이고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에 일반화되고 정의 내려지는 것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소중하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이상화를 거둬들일 수 있는 건  내가 사랑하며 경험한 어떤 인식들이 남들도 겪었던 것에 불과하다는 정의가 오히려 환상의 막을 거둬드리게 했다.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봄 물결>에서 파생된 첫사랑의 기억에 대응되는 '이별을 앞두고 상대에게 다시금 반하는 현상을 '늦가을의 열병'이라고 정의한 대목은, 지나간 나의 경험이 굉장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패턴,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이해하며 흘려보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나의 첫사랑이 그토록 아팠던 이유를 나름 짐작은 해왔지만, 이 책에서 그 내용을 다룰 줄이야. 읽으면서 한참을 눈이 휘둥그레져서 읽은 구간을 읽고 또 읽었다. 그 긴긴 첫사랑의 부산물을 마침내 거둬내려고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 책을 내게 보내준 출판사 오렌지디에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역시 기획마저 훌륭한 나의 알랭 드 보통. 역시는 역시.


*최종 버전은 추후 업데이트될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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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불안 - 어느 도시 유랑자의 베를린 일기
에이미 립트롯 지음, 성원 옮김 / 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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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불안_에이미 립트롯


처음 책을 집어들면, 먼저 책의 아무 페이지를 펼쳐들고 한 페이지 정도를 슥 읽는다. 특히 번역된 책일 수록,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가 중요하니까. 그리고 책표지를 다시 보고, 첫장 책날개를 펼치고 글쓴이에 대해 빠짐없이, 옮긴 사람이 번역한 책들까지 꼼꼼히 확인한다. 그 다음 목차, 책 머릿말, 작가의 말, 맨 뒷장으로 넘겨서 옮긴이의 말이나 책에 대한 해설까지 확인한다. 이런 행위는 일종의 책과 나 사이에 주파수를 맞추는 행위다. 간이 맞는지, 에피타이저는 괜찮은지, 어떤 코스로 음식이 나올지,…

기록 계정을 만들면서 책, 서평과 관련된 글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에이미 립트롯의 ‘온전한 불안’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시얼샤 로넌은 내가 주목하는 배우 중 하나이기도 하고, 에이미 립트롯이 쓴 글에 대한 호평들, 어느 도시 유랑자의 베를린 일기라는데, 놀랍도록 감각적이고 매끄럽고 빛난다니 너무 대치되는 것 아닌가..하는 호기심과, 내가 알게된 독일인들, 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들이 섞여 호기심에 이끌려 서평단을 신청했다.

그러니까 서두부터 말하자면, 책을 고르기 전에 있는 이런 의식들이 생략된 채 온전히 추천사와 간단한 책 소개, 유명 배우의 이름으로 고른 이 책과 교감하기 위해, 책날개를 펼치고 그전과 같은 의식을 펼쳤다. 음, 아직 잘 모르겠다. 얼마나 감각적인 문장들이 있을까. 세상엔 생각보다 재능있는 문장들을 갖고 있는 작가들이 많다. 시시껄렁하고 익숙한 소재들도 그들의 손끝으로 만들어낸 문장들은 지하철에서도 웃음에 새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서두를 위한 서두가 길었던 이유는, 립트롯의 책과 내가 주파수를 맞추기를 실패해서다. 책의 첫 챕터를 읽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거지? 두번째 챕터를 읽었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은 건지 모르겠다. 마지막 챕터를 읽고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건지 모르겠다. 난, 서평을 써야 하는데.

책을 읽다말고, 짐을 싸들고 카페에 갔다. 백지를 꺼내들고 주섬주섬 읽으면서 떠오르는 불만들을 적어나갔다. 문득 떠오르는 감상들이 있으면 또 적었다.

“ 주파수를 맞추기 어려움,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다. 목적을 알수 없는 일상의 파편들과 부유하는 비유적 감상들이 나열되어 있다.”

“철새, 철마다 가야할 곳이 있는듯 떠나는 사람 같다. 공허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미련없이 떠나는 사람. 미련은 있지만, 미련을 끌어 안으면 그 무게가 짐이 될 것임을 아는 사람이다.”

“직감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 현실에 있지만 현실에 직감적으로 삶의 읽어내고 비유적 의미망을 만들어간다.”

“변화, 변수에 씨름하지 않고 적응하려는 사람…”

그렇게 주섬주섬 몇장의 감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스타그램의 서평이란, 사실 다 읽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내 긴 감상이 사람들의 선택에 어떤 의미를 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처음에 주파수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 이유를 찾았다.

첫번째 이유는 뒷페이지에 커다랗게 적힌 책에 대한 설명인데. 과연 에이미 립트롯이 불안한 사랑들에 대한 고요하고 처절한 기록을 하려고 한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녀가 불안한 사랑을 했다는 것 까지는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지만, 이 긴 글의 방향은 사랑에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녀가 인터넷과 앱에서 낯선 사람들을 찾아내 데이트를 하고 섹스를 하는 것은 마치 그녀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일만큼 자유로운 일이고, 먹고 자고 배설하고 잠을 자는 일만큼이나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공허함.

가족도 아이도 필요없다고 하지만, 단발적이고 일시적인 관계에서 결핍을 채우려고 한다. 이런 감정에서 자유로운 타인의 눈에 보면 지극히 ’관계 결핍‘, 도파민 중독, 낯선사람에게서 순간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성도착증 정도. 변화를 위해서 베를린으로 넘어갔지만, 떠나온 곳을 되려 그리워하고, 인터넷을 탐닉하고, 또다시 인터넷, 인터넷, 인터넷. 단발적인 섹스, 자아도취, 실망, 외로움, 공허.

이 글은 특정한 목적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 끝없이 헤맬 수 있지만, 유랑하는 사람의 공허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세상을 어떻게 관찰하고 살아내는지를 관찰하려고 한다면 적당한 책이다. 괴이해 보이는 중독, 결핍에 대해 실한오라기의 가림도 포장도 없는 비린내 가득한 생생한 글이다. 그래서 처음엔 흐리멍텅한 눈으로 글을 훑다가, 중간중간 보이는 시니시즘, 자조적 블랙코미디에 웃음이 터진다.

이 글의 대상을 굳이 설정하자면, 10년간 20개의 거처와 직장을 인터넷에 기록해야할 만큼 자유로운 그녀가 관찰하는 베를린과, 그곳에서 유랑하는 그녀의 삶 그 자체다. 때로는 베를린에서도 구글어스를 켜고 전혀 외딴 곳으로 도피하고, 뿔까마귀, 참매, 라쿤을 관차랗고 새로운 공간의 결속력과 접점을 다진다. 유랑하는 삶에 통달했다고 하기엔 미흡하고 관조하기엔 적당한 상태로 써내려간. 어떤 꾸밈도 보탬도 없이 글조차 유랑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그 반대편 이 도시 서울에서 사람들이 고르는 책과 유튜브, 인스타그램 포스팅이 보인다. 생산성, 목표, 원씽, 초집중, 몰자아, 성공, 돈, 꿈과 성공을 보장해주는 누구나 해낼 수 있는 방법들. 이 또한 중독이 아닌가. 목표 중독, 생산성 중독, 자아 중독, 성공 중독, 그녀가 서울을 유랑하게 될 때를 떠올린다. 어떤 글을 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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