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불안 - 어느 도시 유랑자의 베를린 일기
에이미 립트롯 지음, 성원 옮김 / 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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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불안_에이미 립트롯


처음 책을 집어들면, 먼저 책의 아무 페이지를 펼쳐들고 한 페이지 정도를 슥 읽는다. 특히 번역된 책일 수록,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가 중요하니까. 그리고 책표지를 다시 보고, 첫장 책날개를 펼치고 글쓴이에 대해 빠짐없이, 옮긴 사람이 번역한 책들까지 꼼꼼히 확인한다. 그 다음 목차, 책 머릿말, 작가의 말, 맨 뒷장으로 넘겨서 옮긴이의 말이나 책에 대한 해설까지 확인한다. 이런 행위는 일종의 책과 나 사이에 주파수를 맞추는 행위다. 간이 맞는지, 에피타이저는 괜찮은지, 어떤 코스로 음식이 나올지,…

기록 계정을 만들면서 책, 서평과 관련된 글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에이미 립트롯의 ‘온전한 불안’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시얼샤 로넌은 내가 주목하는 배우 중 하나이기도 하고, 에이미 립트롯이 쓴 글에 대한 호평들, 어느 도시 유랑자의 베를린 일기라는데, 놀랍도록 감각적이고 매끄럽고 빛난다니 너무 대치되는 것 아닌가..하는 호기심과, 내가 알게된 독일인들, 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들이 섞여 호기심에 이끌려 서평단을 신청했다.

그러니까 서두부터 말하자면, 책을 고르기 전에 있는 이런 의식들이 생략된 채 온전히 추천사와 간단한 책 소개, 유명 배우의 이름으로 고른 이 책과 교감하기 위해, 책날개를 펼치고 그전과 같은 의식을 펼쳤다. 음, 아직 잘 모르겠다. 얼마나 감각적인 문장들이 있을까. 세상엔 생각보다 재능있는 문장들을 갖고 있는 작가들이 많다. 시시껄렁하고 익숙한 소재들도 그들의 손끝으로 만들어낸 문장들은 지하철에서도 웃음에 새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서두를 위한 서두가 길었던 이유는, 립트롯의 책과 내가 주파수를 맞추기를 실패해서다. 책의 첫 챕터를 읽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거지? 두번째 챕터를 읽었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은 건지 모르겠다. 마지막 챕터를 읽고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건지 모르겠다. 난, 서평을 써야 하는데.

책을 읽다말고, 짐을 싸들고 카페에 갔다. 백지를 꺼내들고 주섬주섬 읽으면서 떠오르는 불만들을 적어나갔다. 문득 떠오르는 감상들이 있으면 또 적었다.

“ 주파수를 맞추기 어려움,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다. 목적을 알수 없는 일상의 파편들과 부유하는 비유적 감상들이 나열되어 있다.”

“철새, 철마다 가야할 곳이 있는듯 떠나는 사람 같다. 공허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미련없이 떠나는 사람. 미련은 있지만, 미련을 끌어 안으면 그 무게가 짐이 될 것임을 아는 사람이다.”

“직감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 현실에 있지만 현실에 직감적으로 삶의 읽어내고 비유적 의미망을 만들어간다.”

“변화, 변수에 씨름하지 않고 적응하려는 사람…”

그렇게 주섬주섬 몇장의 감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스타그램의 서평이란, 사실 다 읽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내 긴 감상이 사람들의 선택에 어떤 의미를 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처음에 주파수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 이유를 찾았다.

첫번째 이유는 뒷페이지에 커다랗게 적힌 책에 대한 설명인데. 과연 에이미 립트롯이 불안한 사랑들에 대한 고요하고 처절한 기록을 하려고 한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녀가 불안한 사랑을 했다는 것 까지는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지만, 이 긴 글의 방향은 사랑에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녀가 인터넷과 앱에서 낯선 사람들을 찾아내 데이트를 하고 섹스를 하는 것은 마치 그녀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일만큼 자유로운 일이고, 먹고 자고 배설하고 잠을 자는 일만큼이나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공허함.

가족도 아이도 필요없다고 하지만, 단발적이고 일시적인 관계에서 결핍을 채우려고 한다. 이런 감정에서 자유로운 타인의 눈에 보면 지극히 ’관계 결핍‘, 도파민 중독, 낯선사람에게서 순간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성도착증 정도. 변화를 위해서 베를린으로 넘어갔지만, 떠나온 곳을 되려 그리워하고, 인터넷을 탐닉하고, 또다시 인터넷, 인터넷, 인터넷. 단발적인 섹스, 자아도취, 실망, 외로움, 공허.

이 글은 특정한 목적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 끝없이 헤맬 수 있지만, 유랑하는 사람의 공허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세상을 어떻게 관찰하고 살아내는지를 관찰하려고 한다면 적당한 책이다. 괴이해 보이는 중독, 결핍에 대해 실한오라기의 가림도 포장도 없는 비린내 가득한 생생한 글이다. 그래서 처음엔 흐리멍텅한 눈으로 글을 훑다가, 중간중간 보이는 시니시즘, 자조적 블랙코미디에 웃음이 터진다.

이 글의 대상을 굳이 설정하자면, 10년간 20개의 거처와 직장을 인터넷에 기록해야할 만큼 자유로운 그녀가 관찰하는 베를린과, 그곳에서 유랑하는 그녀의 삶 그 자체다. 때로는 베를린에서도 구글어스를 켜고 전혀 외딴 곳으로 도피하고, 뿔까마귀, 참매, 라쿤을 관차랗고 새로운 공간의 결속력과 접점을 다진다. 유랑하는 삶에 통달했다고 하기엔 미흡하고 관조하기엔 적당한 상태로 써내려간. 어떤 꾸밈도 보탬도 없이 글조차 유랑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그 반대편 이 도시 서울에서 사람들이 고르는 책과 유튜브, 인스타그램 포스팅이 보인다. 생산성, 목표, 원씽, 초집중, 몰자아, 성공, 돈, 꿈과 성공을 보장해주는 누구나 해낼 수 있는 방법들. 이 또한 중독이 아닌가. 목표 중독, 생산성 중독, 자아 중독, 성공 중독, 그녀가 서울을 유랑하게 될 때를 떠올린다. 어떤 글을 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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