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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사고 - 살아남는 콘셉트를 만드는 생각 시스템
다치카와 에이스케 지음, 신희라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6월
평점 :
창의적인, 혁신적인, 차별화된 이란 말은 어릴 적 사교육 시장에서부터 대학교를 거쳐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까지 이젠 무감할 정도로 자주 들려오는 말이다. 이젠 '창의적'이란 말에 비상한 아이디어를 발휘하려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면서도, 아이폰의 다음 시리즈에 더 이상 혁신도 기발함도 없고 카메라 구멍이 하나 더 늘어날 거란 아쉬움, 아침 드라마가 얼마나 뻔하고 지루한지, 사회문제에 대해 논하는 말들이 얼마나 현실 가능성이 없고 탁상공론인지 말한다. 무상해질 만큼 자주 언급되는 혁신적인 변화와 그에 상응해 요구되는 창의성은 자주 언급되는 만큼이나 무색한 말이면서도, 작은 일상에서조차 찾게 되는 갈급하고 목마른 대상이 아닌가.

건축학도였던 다치카와 에이스케는 미디어에 나오는 화려한 건물들을 직접 관찰할 때 느낄 수 없었던 관계성을 전혀 예기치 못했던 건축물에서 느끼면서, 화려하고 독특한 외형보다 대상과의 관계성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한편 젓가락 하나 제대로 디자인할 수 없는 자신이 어떻게 건물을 건축할 수 있을지에 대해 반문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그레이엄 벨, 토머스 에디슨같이 위대한 창조를 한 이들이 어떻게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창조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가 얻은 답은 창조란 지난 38억 년간 생물이 진화해왔듯,
인간의 생존을 위한 존재의 본능이며, 유희이고.
진화가 창조의 행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창조가 뛰어난 수재들의 전유물이라고 믿지만, 대단한 아이큐를 가진 과학자뿐만 아니라 120 정도의 평범한 사람들(20명 중 1명꼴)도 창조적인 결과물을 내며, 훌륭한 창작을 해내는 미술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천재들은 미친 사람처럼 변이 사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례 없는 발상을 하고, 수재 같은 선택적 사고로 취사선택하는 일을 무한히 반복하여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낸다. 에이스케는 창조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택하는 이 교차하는 두 가지 사고방식에 대해 자연 생물학에 근간하여 인간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기 위한 '진화 사고'에 대해 방법론을 설명한다.
위 천재들의 창조적 사고 법과 같이, 생물학적 진화도 모두 변이와 선택의 반복으로 이뤄지는데, 창조란 변이 때문에 무수한 오류를 우연히 일으키는 사고와 선택적 관점에서 자연선택하는 사고의 왕복으로 진화와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즉,
HOW. 변이의 사고 :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는가?
WHY. 선택의 사고: 왜 지금의 형태로 존재하는가?

이 두 가지의 변이 사고와 선택 사고를 하며, 우연한 에러를 무한히 발산하고, 자연압력에 의해 필연적으로 살아남는 대상이 선택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책의 뒷면이나 4장에 시작에 보이는 진화 사고 나선형은 우연한 변이와 필연적 서낵에서 떠오른 두 가지 콘셉트의 성질이 전혀 다르며, 이 두 가지가 상호 호응해야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만 년간 인간의 발명, 발견, 창조는 38억 년간 이러한 과정을 층층이 반복해온 자연과 비교하면 볼품없을지라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 세상의 모든 진화적 결과물은 진화의 여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수억 년간 지속해서 탄생한 현재의 자연물조차도 완벽할 수 없고. 따라서, 인간이 만들어낸,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아이디어나 창조물의 결과는 미흡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며. 오히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실패의 과정이 진화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연의 관점에서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가 만든 실패조차 창조 그 자체다.

창조란 처음부터 가치가 발생하는 프로세스가 아니기에, 진화의 나선에선 수많은 우발적 변이에서 가지 치듯 생겨난 결과물들이 나선형을 타고 위로 올라갈수록, 적응과 관찰을 바탕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콘셉트만이 살아남으며 진화의 결과는 점점 하나로 수렴해 나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창조이며, 그 결과조차 진화의 여지는 열려있다.

2장에선 적극적으로 변이와 실패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변이의 형태를 관찰해 변량, 의태, 소실, 증식, 이동, 교환, 분리, 역전, 융합으로 내용을 나누어 생물학적, 과학적 선례를 분석하고 우리가 실제로 이런 이론들을 어떻게 진화 사고에 적용하여 결과물을 도치시킬 수 있을지 질문으로 도치하는 과정이 나오고, 3장에선 필수불가결하게 변이로 발산된 결과물들이 자연의 이치에 의해 가지치기 당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 법칙들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날 70억 인구와 기업들은 개체의 진화와 생존에 사고가 매몰된 나머지, 자연과 공생하지 못하고 파괴하여 인류 문명의 6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슬픈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이미 우리가 만들어놓은 결과로 생물의 다양성은 줄고 어떤 특이점이 다가오며, 기후 변화와 AI가 인류를 능가하는 시점이 올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생태계와 지속 가능한 공생을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창조성을 진화시키고 자연과 균형을 되돌리기 위한 창조를 시작해야 한다.
관념적이고, 시각적 감각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괜찮은 디자인, 멋진 건축물, 뛰어난 인공물에 대한 정의나 사고가 뒤흔들리고, 직접적으로 현실에 적용할 만한 진화 워크가 50가지로 나뉘어있다. 다만, 이런 진화 사고를 실생활에 빠르게 적용하기 위해선 그가 설명한 방법들을 연습하고 지속적으로 탐문할 끈기, 집요함, 탐구정신이나 지식에 대한 장악력과 호기심이 필요해 보인다.
현실적으로 창의성이 요구될 거라 기대되는 대부분의 직업이 이런 공격적 탐구를 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만, 다치카와 에이스케가 내놓은 대답이 지난 십 년간 늘 질문해 왔던 질문들에 그만의 확실하고 설득력 있는 분석과 답으로 속이 시원한 것만은 사실이다.
뭣보다 그가 디자인 전략회사 nosigner를 설립하고 이룬 쾌거, 디자인을 디자인의 본래 의미를 찾게 할 여건을 그 스스로 마련하고, 더 이상 오더에 맞춘 이미지 제작, 컬러 맞추기, 무한 디자인 수정의 굴레에서 벗어난 총체적인 전략적 디자인을 수행할 사고적 근간을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그의 투지와 통찰력, <진화 사고>를 집필하게 된 히스토리를 보면 감탄을 멈출 수 없다.
대단하다.
오랜만에 책값이 더 나가도 되겠다며 뒷면을 훑어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