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이별 - 나를 지키면서 상처 준 사람과 안전하게 헤어지는 법 오렌지디 인생학교
인생학교 지음, 배경린 옮김, 알랭 드 보통 기획 / 오렌지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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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Or Leave : 안전이별> 


알랭 드 보통 기획, 인생학교 지음, 배경린 옮김

#책제공받음 



출판사 오렌지디 orangeD 제공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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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Call Me By Your Name 엔딩 신에서 난롯가 앞에 앉아 눈시울을 적시던 티모시 샬라메처럼 겨울 차가운 욕실 바닥에 앉아 뜨거운 물로 몸을 녹이며 숨죽여 울던 때가 기억난다. 당시에 나는 내 아픔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구차한 위로 없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상대가 필요했다.  샤워를 마치고 서점에 가서 책 한 권을 집었는데, 그게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1993년 저자가 그 글을 쓴 나이와 책을 집어 든 내 나이가 같았다. 그가 하는 말을 경험 부족으로 텍스트 이상으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동갑인 주제에 마치 서른다섯은 먹은 사람처럼 사랑을 인문학적 철학적으로 명쾌하게 써 내려간 그의 이야기에 빠졌다. 마치 든든한 친구 한 명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다음 책은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의 이 두 책은 내가 사랑을 입문서 역할을 했다. 




당시엔 내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배움과 이해의 대상이었다. 반박할 충분한 경험도 생각도 부족했고 내겐 다소 어른스러운 책이었고 당시의 감정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 생물학적, 인문학적, 철학적 이해를 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만, 사랑의 산물인 아픔을 머리로 이해하기엔 두 책이 다루는 범위가 꽤 넓어 이별의 슬픔과 상실감을 섬세하기 다루진 못했다. 


사랑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라곤, 처음으로 마셔본 아이스 아메리카노같이 지독하게 쓰고, 입이 얼얼하고 묘한 향. 쓰면서도 상쾌한 맛. '매료'라는 말을 이성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보게 된 것이 그때였다. 몸의 실루엣, 짧은 머리카락, 이마에서 코까지 어지는 선, 느긋하면서도 북쪽을 향해 끌리는 나침판의 추처럼 늘 어딘가 끌려 움직이던 동선, 눈부시게 환한 햇살에 하얗게 부서지던 휘광, 그 이후론 개연성 없는 조각조각의 시각적 이미지와 상징들. 


머리와 몸으론 끝없이 밀어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정신을 차릴 즈음엔 나를 뒤덮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성 끈을 바짝 잡았던 내 손에는 경련이 이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웠고, 아렸고, 괴로웠다. 떨쳐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독설 어린 말로 상처 입히고 오래오래 스스로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상대의 감정이나 반응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오직 나를 멈춘 하는데 급급했다. 


이때의 기억이 가장 강렬한 사랑의 기억이라면,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도 난 이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시절 인연과 상념들 속에 감정의 부산물에 대해 초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면서도. 첫사랑의 아픈 기억만큼은 여전히 가슴 한복판을 여전히 부유하고 있었다. 


알랭드 보통이 기획한 프로젝트 '인생학교'의 <안전이별>은 나처럼 사랑을 지속할지 그만둘지를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별을 고민하며 질문하게 되는 대표적인 스물네 가지로 나누고 이에 답한다. 마지막 챕터의 서두처럼 "이 책의 모든 조언은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고, 후회와 미련을 갖지 않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내가 내 마음을 몰라 바보같이 구는 일이 없도록 생각을 명확히 하는 방법"의 일부가 나온다. 




사실 스물네 개의 질문에 174페이지의 분량이기 때문에 각 질문에 글쓴이가 적극적으로 서술한다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대상이 지협적이고 포괄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아쉽게도 스물네 개의 질문 중 첫 일곱 개의 질문에 대한 서술은 이상하리 만치 서술의 개연성이나 당위성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느껴졌는데. 이 구간이 마의 구간이었는지 겨우 몇 페이지 안되는 분량인데도 사유의 폭이 부족한 글을 꾸역 꾸역 읽고 넘어가야 할 때 오는 피로감을 느껴 책 읽기를 한차례 시도하다 포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일주일 후인 오늘 맨 뒤 챕터부터 목차를 역행하여 글을 읽어야 했다. 


다행히도 마치 서로 다른 필자가 글을 쓴 듯, 맨 뒤 페이지부터 읽은 글은 오히려 앞에서 부족하게 느껴졌던 '낭만적 사랑'에 대해 인문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알랭 드 보통스러운 글의 맛을 느끼며 매우 즐겁고 유쾌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낭만주의 연애관'이 매우 인위적인 창조물이란 매우 흥미롭고 이색적인 주장을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풀어나가는 스물세 번째 질문이 나오는 구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도, 8번, 10번, 11번, 17번, 그리고 19번에서 24번 사이에 훌륭한 문장과 깨달음을 얻게 하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다.


가령, 사랑을 대하는 양상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으며, 미성숙한 성인이 되었을 경우, 이 같은 어린 시절 애착관계에서 경험한 행위를 상대에게 반복하기도 한다는 점. 지나간 나의 후회 없는 행동들이 나의 자존감을 키우고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매우 소중해서, 이 같은 경험은 절대적이고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에 일반화되고 정의 내려지는 것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소중하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이상화를 거둬들일 수 있는 건  내가 사랑하며 경험한 어떤 인식들이 남들도 겪었던 것에 불과하다는 정의가 오히려 환상의 막을 거둬드리게 했다.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봄 물결>에서 파생된 첫사랑의 기억에 대응되는 '이별을 앞두고 상대에게 다시금 반하는 현상을 '늦가을의 열병'이라고 정의한 대목은, 지나간 나의 경험이 굉장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패턴,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이해하며 흘려보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나의 첫사랑이 그토록 아팠던 이유를 나름 짐작은 해왔지만, 이 책에서 그 내용을 다룰 줄이야. 읽으면서 한참을 눈이 휘둥그레져서 읽은 구간을 읽고 또 읽었다. 그 긴긴 첫사랑의 부산물을 마침내 거둬내려고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 책을 내게 보내준 출판사 오렌지디에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역시 기획마저 훌륭한 나의 알랭 드 보통. 역시는 역시.


*최종 버전은 추후 업데이트될 수 있으며, 

프로필 링크 블로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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