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만찬회
신진오.전건우 지음 / 텍스티(TXTY)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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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만찬회> 신진오, 전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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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만찬회> 신진오, 전건우

<호러 만찬회>는 여덟 편의 단편으로 엮어 만들어진 단편집이다. 첫 네 작품인 <헤이, 마몬스> <얼룩> <딩동 챌린지> <네발 달린 짐승>은 신진오 작가가, <신딸><추락><만성 활력><반딧불의 산>은 전건우 작가가 썼다. 작가의 말까지 총 350여 페이지였는데 근래 본 책 중 가장 단숨에 읽혔다. (밑줄 코멘트 아예 없는 책도 오랜만 ㅎㅎ) 읽으면서도 내 눈 시선 끝이 날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빨리 잘 읽히는 이유는 글이 보통 그만큼 흥미로워서, 잘 읽혀서, 혹은 다음 서술이 어느 정도 예측이 되어서 이기도 한데, 이번 리딩에선 내 눈이 공포감을 감지하고 싶어 안달이 난 느낌이었다.

원작인 웹툰을 각색한 것이라고 하는데, 평소에 웹툰을 전혀 보지 않아서 어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작가의 말에서 신진오 작가는 <헤이, 마몬스>가 이 단편집의 시작 작품으로 처음 각색을 하면서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서술되어있다.

<헤이, 마몬스>는 아버지가 어린 주인공에게 선물했던 악마 모양의 마몬스 인형이 주인공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어릴 적에 들었던 남겨있던 피에로 인형이 어린 딸을 잡아먹어 버리고 마침내 엄마까지 집어삼킨 이야기처럼 인형에 대한 공포감과 어린아이가 가질 수 있는 사이코패스적인 성향, 나름의 작은 반전이 흥미로웠다.

<얼룩>은 신진오 작가가 쓴 작품 중 가장 흥미롭고 작품성이 있었다. 마지막에 작업하고 각색 과정에서 애를 가장 먹으셨다고 했지만, 여러 수정을 거친 탓인지 구성도 꽤 탄탄했고, 작가님의 말씀처럼 아동학대, 고독사의 사회 이슈도 건드릴 수 있어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어릴 적에 본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만큼의(? 혹은… 생략) 반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국 토속신앙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공포 스릴러물을 매우 선호하기도 하고, 한국 전통 소재의 공포물이 세계 영화시장에 하나의 장르를 만들길 바라는 입장에선,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신진오 작가님이 각색을 맡은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

<딩동 챌린지>는 할리우드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친구들 간의 내기 소재로 작은 반전이 있었지만, <네발 달린 짐승>과 신진오 작가가 작업한 다른 소재처럼 인간의 이기심이 키워드인 내용이라 이야기를 각자 보자면 흥미롭지만 단편집으로 연이어 보기엔 아쉬웠다.

전건우 작가는 <밤의 이야기꾼들><소용돌이><고시원 기담><살롱 드 홈스><마귀><뒤틀린 집> 등 여러 작품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소설가다. 그가 작업한 이야기 중 <반딧불의 산>이 가장 여운이 컸다. 신진오 작가 작품에서도 그렇고, 공포물에서 차별성을 만드는 건 공포감과 대비되는 인간성이 나올 때가 아닌가 싶다.

<만성 활력>도 그런 의미에서 소재는 참신했지만 어쩐지 이야기가 다시 건드려져야겠다는 인상이 들었다. 공포스러운 장면을 만드는 건 인간의 이기심이나 저주, 인간이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일 수 있지만 이런 소재가 반복되어 노출되다 보면 공포심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흔한 레퍼토리만 남는다.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처럼 끔찍한 순간에서도 인간의 따뜻한 면모나 심리를 섬세하게 쓰는 글들이 하나의 이야기로서 입체감과 끝을 더 진하게 남긴다.

심리물에 욕심이 있는 편이라, 읽으면서 무엇이 인간에게 공포감을 주는가. 특히, 소설처럼 극적인 씬 반전, 사운드(텍스티 출판사에서 사운드 제공을 해주긴 했는데, 공포감은 별로 들지 않았다.)가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공포 소설을 공포스럽게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전건우 작가의 말처럼 여덟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맛이 각기 다른 츄파춥스를 꺼내 먹는 기분이었고, 두 작가님들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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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여행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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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로방스 여행>


이재형 지음


디이니셔티브 출판


 


 


240여 쪽의 작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책에 메모와 포스트잇, 밑줄이 가득 찼다. 


나중엔 포스트잇을 붙이려다가 포기하고 밑줄과 메모만 남겼다. 붙이는 게 무의미해져서.



책을 읽고 이동 중에 핸드폰을 뒤적여 프로방스 배낭여행을 검색했다. 프랑스는 영어가 안 통할 테니 여행할 정도의 회화를 터득하는 데 걸릴 시간, 누구와 함께 갈 것인지, 부모님을 따로 보내드릴 때 들 비용, 최적의 시기, 나야 대처하겠지만 부모님이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않을까…, 그때 대처방안까지 구상했다. 책 한 권에 몇 푼이 드는 건가. 




큰 명분이 없는 한 프랑스로 여행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르다. 직접 보고픈 반 고흐 흉상, 생폴 드 모레 정신병원 안에 전시된 그의 자화상, 촬영이 금지되어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마티스가 만든 로사리오 예배당,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된 이프성, 프랑수아즈 사강의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의 배경이 된 생트로페 항구, 피카소가 그토록 원했던 그리말디 성 내부, 길을 거닐며 마실 파스티스, 시장에서 살 마늘소스, 거닐며 알은척 이야기를 풀고픈 곳, 그렇게 원 없이 달큼한 보랏빛 라벤더 향과 밝은 태양에 피부를 태울 곳…….





아,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마티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꾸베 씨의 사랑 여행> <세상의 용도> <인간 불평등 기원론> <사회계약론>등 무려 150권 넘게 다양한 분야의 프랑스 작품을 번역한 내공답게 그의 이야기는 아주 유려하게 그 장소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를 적당한 깊이와 농담으로 풀어낸다. 작가 이재형은 영화, 예술에 조예가 깊어 어떤 정보는 생략해도 되고 어떤 시시콜콜함을 풀어야 좋을지를 잘 알고 있다. 지리, 세계사, 미술사, 영화, 예술,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 정보들이 담백한 몇 마디의 감상과 함께 실려 있는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크레타섬을 찾아가고 이 걸작을 번역해서 세상에 내놓은 적이 있다는 그의 소소한 고백이 얼마나 그가 이 예술 작품들을 사랑하는지, 각 작품들을 대할 때 그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가 티를 내지 않아도 눈에 보였다.



가장 반한 구석이 있다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겨우 두 문단으로 여행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는 점인데. 그런 그의 소소함이 책 전반에 묻어 있었고, 그것이 참 매력적이라 여겨졌다. 그 성품이 마치 로사오리 예배당을 디자인하던 마티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설계 초안에 들어있던 많은 요소들, 특히 그가 직접 디자인했던 문화적 기물들을 하나씩 버렸다는 대목에서 내가 감탄을 했던 그런 결이 그의 책에도 묻어났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최대한 묻히지 않으려고 자신이 애정 하는 작가의 글을 번역하는 번역가처럼.


프로방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쥐어볼 만한 책. 아, 난 꼭 들고 갈 거라. 




+ 여담을 추가하자면. 



여행 욕구가 목 끝까지 다다랐던 지난 주말 처음 보지만 알고는 있는 어떤 사람과 서유럽 어딘가를 누볐다. 그의 반짝이는 총명한 눈 뒤로는 샤를 가르니에가 건축한 우아한 신 바로크 양식의 고급 건축물이 있었다. 인파가 많은 광장에서 지중해 과일 몇 개를 사들고 그와 한참을 재밌게 이야기했다. 


 

모자도 쓰지 않은 채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얼굴로 그는 지리, 역사, 그 지역 음식과 와인, 식물, 예술, 건축물과 그에 담긴 역사, 예술가 이야기와 그곳을 사랑한 작가, 철학가, 예술가들의 처음 들어보는 여담을 늘어놨다. 말로는 채 설명할 수 없는 감탄도 팔꿈치로 그를 툭 건드리면 요리 레시피 읊듯 모두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이, 우리는 꽤 죽이 척척 잘 맞았다. 

 


주로 그 남자가 설명하고 나는 들었다. 속으론 그 해박함이 부러워 책을 몇 권 더 읽지 못한 게 아쉬웠다. 알은척하지 못한 것보다 그 이야기에 지금보다 더 감탄할 수 없음이 아쉬웠다. 원래 유럽을 계속 여행하다 보면 생전 처음 보는 것보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을 보고 더 감탄하기 마련이니까. 



사람이 너무 많아 땀이 난 두 어깨와 눈을 뜨기 힘들 만큼 빛나는 태양에 피로함을 느끼면서도 그와의 여행이 즐거워 반 흥분 상태였다. 그 흥분의 정점은 그가 손바닥 크기의 흰 종이를 꺼내 들었을 때였다. 방문해야 할 미술관, 박물관, 연주회, 레스토랑, 교회, 수도원, 예술가들의 생가 등을 적은 목록을 내게 건네 주었다. 아, 완벽하다. 


난 여행을 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사람과 여행했다. 궁합이 맞는 와인을 곁들이는 게 중요하듯 여행도 지역마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합이 중요하다. 그래서 간혹 여행을 망치면 새로운 사람과 다시 그곳을 찾았는데, 이번 여행은 그저 훌륭했다. 여행지 때문인가, 아니면 그 종이 때문인가? 행복에 겨워 입이 느슨해질 즈음 알람 소리에 단잠에서 깼다. 알람을 끄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그와 마저 가지 못한 리스트가 눈에 아른거렸다. 


얼굴 오른쪽으론 이재형 작가님의 <프로방스 여행>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약에 취해 잠이 든 모양이었는데, 아마 책과 맞물려 꿈을 꾼 거란 생각이 들어 신기했다. 아 다시 읽고 그 꿈을 연이어 꿀 수만 있다면…. <프로방스 여행>은 남 프랑스 이야기니까, 작가님이 쓴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면 되는 건가. 파리까지 가게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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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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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_존윌리엄스

<스토너>를 다 읽고 나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져 몸을 등 뒤로 젖히고 잠시 멍하니 앉았다. 무언가 말을 할 수 없었고, 그저 그렇게 앉아 있다가 분명 오늘은 <스토너>에 대한 감상을 써내릴 수 없다는 걸 확신했다.

운동 가방을 하나씩 챙겼다. 운동복, 속옷, 수건, 모자, 물병, 이어폰 그리고 핸드폰.

가방끈을 오른쪽 어깨에 두르고 이어폰을 끼우고. 잠시 현관에 서서 잠시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였다. 뭔가를 뒤적였는데, 아마도 나는 그 당시의 내가 들어야 할 곡이 바로 지금 들리는 이 곡이란 걸 알았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 전집 중 교향곡 3번 6악장.

정결하고 고결한 슬픔과 사랑. 인간의 숭고함이 온몸을 감싸 안은 듯 마음을 위로했고 그의 생애와 죽음을 추모했다. 음악이 귓속과 뇌세포 구석구석에 퍼졌고. 척추와 모든 혈관의 피에 진동해 내 살가죽까지 촘촘히 나를 전율시켰다.

내가 영화화한다면 이 곡을 대표곡으로 정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글쎄. 난 그저 스토너라는 이 인물이 가공된 인물이라 믿을 수 없다. 허구라 하더라도 만약에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맞이할 때, 나는 그를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군가로서 떠올릴 테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내 곁의 그 누구보다 생각과 말과 행위를 그의 젊은 시절부터 생애가 다할 때까지 알 수 있는 사람인 그가 내겐 더 실존 인물 같지 않은가.

그의 부모, 학교를 가게 된 계기, 만난 인물들과 나눈 대화,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실망하고 실패를 확신하는 순간과. 아이가 태어나며 아이를 기르고, 아내에게서 서서히 멀어지고, 교육자가 되는 일. 새로운 사랑을 알고 일탈하고. 교육자로서 충실하고, 갈등의 상황에 놓인 그 모든 것들이. 그 모든 것을 서술하고 대하는 그의 모든 행동거지와 생각과 태도가. 나는 결코 단 한 번도 답답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저 감탄했다.

그의 생애가 불행하다고, 용기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던가. 난 잘 모르겠다.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평범함을 대하는 스토너의 태도가, 그리고 이 평범함을 어떤 치우침 없이 써 내려간 이 투명하고 공평한 글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심금을 울리는 위대함이 되지 않았나.

평범한 것이 이토록 위대할 수 있다니.

서평 전문은 프로필 링크의 블로그에 올라갑니다.

#스토너#존윌리엄스
#스토너초판본
#rhk코리아
#책후기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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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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Água Viva 아구아 비바.
직역하면 ‘살아있는 물’ 혹은 해파리. 이들은 어떤 형태를 강제하는 뼈대 구조 없이 자유롭게 물 그 자체에 몸을 맡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은 원초적이면서도 전체적이고 모든 구조와 존재의 경계를 넘어선다.

글을 읽으면서도 이것이 텍스트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어떤 원소나 유기체가 되어 함께 흘러가고 해체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기존에 알고 있던 모든 개념과 글에 대한 정의에서 해방되어 마치 태초의 것으로 돌아가 이 세상 만물을 유영해 나가며, 가장 원초적인 원소의 모습과 우주 전체와 그 너머까지 동시에 장악하듯 분해되고 팽창함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클라리 시의 글은 실험적이란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데. 글 속에서 존재가 해체되고 결집되며, 탄생하고 죽으며 죽음 이후에도 존재하는 어떤 신비로운 창조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언어를 이렇게 구성할 수 있구나…하는 찬탄까지.

그간 읽었던 모든 글들이 그녀의 이 한순에 쥐어지는 작은 책 하나로 거대하고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버렸다. 이 사실이 벅차면서도 슬프다.

천재구나.

#을유문화사 #클라리시리스팩토르 #아구아비바 #aguaviva #오늘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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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사회 - 순 자산 10억이 목표가 된 사회는 어떻게 붕괴되는가
임의진 지음 / 웨일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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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인가 인스타그램에는 비슷한 컨셉의 계정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프로필엔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배경은 깔끔하게 솔리드 한 원 컬러의 사진. 짧은 슬로건과 함께, 자신을 기획자, 사업가, 멘토라 소개한다. 게시물엔 제목이나 요약된 내용으로 성공법, 자기개발, 재테크, 팔로워 늘어나는 법, 미라클 모닝, 다독,  1일 1피드로 팔로워 수 늘리기, 셀프 브랜딩, 영 앤 리치, 월 1천 수입, 무지출 챌린지 등이 메인 토픽이다. 



입을 쩍 벌릴 정도로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자극을 받아 나 또한 하루를 분주히 살게 되면서도, 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도달하려는 지점이 크게 다르지 않고 하나로 수렴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다. 


최근 한국 사회의 대다수가 바라는 '경제적 자유'는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경제적 자유와는 다른 의미이다. 우리가 바라는 '경제적 자유'란,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서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 즉, 돈 걱정 없이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빚투, 영끌,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



위 낱말들은 사회경제 전반에 관심이 없더라도 우리가 근 몇 년간 소셜미디어와 포털 메인, 언론매체에서 끊임없이 봐온 키워드들이다. 2020년~2021년 2030세대 사이에선 '지금이 아니면 집을 살 수 없다'라는 불안감과 위기가 고조되었다. 비트코인을 선점한 소수나 기회를 잘 노린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되거나 영혼까지 끌어모은, 소위 '영끌', 빚을 대어 투자하는 '빚투'의 방식이 횡행하였다. 대출을 이용한 고점 매매를 하는 영끌족과 불안한 심리를 악용한 빌라왕 사건이 터져 전세제도의 맹점이 드러났고, 작년부터 2023년인 올해까지 치솟은 금리로 하우스푸어가 되는 이들이 생겨났다. 비트코인, 주식, 부동산으로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사이, 중간계층은 붕괴되고 사람들 사이에는 가만히 있다가는 '벼락 거지'가 된다는 위기감, 불안감, 박탈감이 생겨났다. 



저자 임의진은 우리 사회가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고 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것 이상의 돈을 맹목적으로 좇고 있으며, 우리가 돈으로 환산 가능한 가치가 전부인 비교 기반 '숫자 사회'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숫자 사회>에선 우리 사회가 돈 빼면 믿을 게 없는 신뢰 부족, 돈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상관관계가 생겨난 이유, 튈 수도 없지만 뒤처질 수도 없게 된 사회에서 생겨난 '한국형 성공 방정식'을 근현대사를 점검하며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다. 우리가 그토록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단순히 현재의 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 역사 속에서도 비슷한 구조적인 상황을 고증의 내용을 바탕으로 비교할 때, 그때 생겨난 문제나 우리가 찾아낸 해결 방식이 과거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면 흥미로우면서도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숫자 사회> 143쪽에 나온 내용 중 정약용 <여유당전서>에서 현대사회와 근대사의 구조적 문제가 매우 유사함을 볼 수 있다.  1800년대 호남 지방 농가 100호 중 소작농은 대략 70퍼센트였으며, 수확한 농작물의 절반을 점잖게 글이나 읽는 이들에게 바쳐야 했다. 이런 모습이 인건비, 고정 비용을 절감하고 고객 관리를 애써 매출을 올리려고 해도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가 천정부지로 올라 거리로 내몰리는 현대사회의 자영업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근현대부터 현재까지 유사한 문제가 반복적인 패턴을 보인다. 과거 근대 전통 사회에서 '과거 급제-토지 확보- 수확량 증대'로 요약된 일련의 성공 루트를 제외하고 다른 성공 방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듯, 현대 한국 사회의 성공 방정식은 '시험 합격을 통한 간판 획득 - 아파트로 대표되는 자산 소유 - 더 많은 소득 창출'로 요약할 수 있다. 과연 우리가 욕망을 향한 견고한 삼위일체의 해체는 가능한가.


저자는 절대적으론 전쟁과 가난으로 힘들었던 과거보다 현재가 더 살기 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엔 모두가 어려운 시대에서 더 나아질 수 있는 상향 평준화를 경험한 것에 비해, 2030세대는 그들의 기준이 되었던 4인 핵가족의 삶을 그들이 유지하는 것(주거, 가족형성) 조차 어려워져 과거보다  하향평준화된 삶을 경험할 것이란 예견하기에, 그들의 근로소득만으론 살수 있는 집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이미 좌절감과 허탈함을 경험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현실 적시와 문제적시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질문만 있고 답은 없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정치 사회문제를 다루는 여느 책들과 마찬가지로, 질문과 문제 지적에 비해 현실을 타개할 적극적인 대안보단 다소 미진하고 이상적이었다. 



또한 숫자 사회 개념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노동을 괄시하는 풍토에 대해 지적은 합당했지만, 우리 개개인이 생존 문제 이상으로 돈을 좇는다는 지적 또한 납득하기 어려웠다. 안전하고 마땅한 주거가 부족하고, 스태그플레이션, 집값 폭등 등 가만히 있으면 갖고 있는 돈이 휴지 조각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과연 사람들의 '경제적 자유' 추구가 필요 이상의 돈을 좇는다고 해석되는 것이 와닿지 않았다. 


내가 책 본문 아래에 그려 넣은 그림처럼, 현대 사회는 중간계층이 무너지고 소수의 상위층과 절대다수의 하위층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빈부격차는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심리적인 불안과 박탈감 이상으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생존의 문제다. 성공을 위한 길이 삼위일체처럼 하나이고,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성공하려는 세태가 안타까운 것은 동의할 수 있고, 가능하다면 저자의 말처럼 각자가 돈 이상으로 그들이 진실로 원하는 다양한 일에 근로하여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길 바란다. 저자는 유튜버나 연예인이 되려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법조인, 의사와 같은 일은 후순위로 밀려난 것을 안타까워했다. 


난 오히려 과거보다 현대 사회가 간판을 얻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회로부터 조금은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고학력자만이 성공의 길로 걸어갈 수 있는 과거에 비해 IT 기술의 발달과 콘텐츠 제작과 소통이 양방향에서 이뤄지고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오프라인 모임 형성도 다양해지고 있다. 농경사회에 두레, 계는 생산수단이 하나이고 노동집약적인 사회에서나 가능했던 같은 목적을 위해 연대했던 집단이지 현실에 이를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작가가 대안으로 제시한 공동체 형성을 통한 불안감 감소, 연대 형성, 신뢰 회복은 댐이 무너지는데 나무를 심자는 이야기로 들린다. 저자 또한 이것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중간적 디딤돌이라 말하긴 했지만, 이렇다 한 대안이 그 이후로 나온 것이 아니라 또다시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는 수순에 밖에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사회문제를 역사적 패턴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위에 언급한 바대로 매우 흥미로웠지만, 현 한국 사회에서 개개인이 비슷한 방법으로 돈에 집착하는 숫자 사회가 일어난 이유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대안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낮추는 방식에 집중했지 공동체 형성을 통한 불안감 해소가 구조에 초점을 맞춘 대안이라고 볼 순 없다. 공동체는 물론 집단을 형성한다는 면에서 구조적인 접근으로 보일 수 있지만, 구조적 접근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 경제적 법안들, 행정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더 직접적이다. 공무원을 뽑는 방법을 시험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도 와닿지 않았다. 시험이야말로 가장 절대적이고 비리가 일어나기 어려운 방식인데, 시험 이외의 방법이야말로 인사의 개입으로 좌지우지될 가능성을 늘릴 뿐이다. 공무원이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격을 입증해야 한다는 시스템도, 고위 관직자에게 더 많은 테스크를 줘야 한다는 말도 현실성이 부족한 이야기였다. 그 많은 테스크가 생겨난다 해도 너무나 손쉽게 중간관리직에게 일이 넘어간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내 관점에서 이런 관문 바꾸기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 모두가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몰리는 입시 방식이 문제라기 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특권을 주는 이 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국회의원은 무보수라는 온라인에 떠도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해당 국가의 1인당 국민 총소득의 2-3배 정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4배 이상으로 책정되어 있다. 한국 경제규모에 부합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그 외의 특권을 규제하여 한 곳으로 돈과 힘이 쏠리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문을 뜯어고친다고 해도 그 문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가려는 곳이 하나인 이유는 같은데 왜 문을 고치는 이야기를 할까? 



그럼에도 <숫자 사회>는 현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하나의 견해로 읽기에 흥미로운 시각이었으며, 이런 책들로 인해 나와 같이 또 다른 담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 좋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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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jt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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