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 더 나은 ‘함께’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 이주민 24명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순심(이나경) 그림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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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느끼며 읽었다.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나는 운이 좋아 편히 살고 있는가.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난 것도, 내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도 우연이다. 나보다 잘나고 잘사는 사람 많아도 나 자신의 모습과 나의 삶을 운명이라 여기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살아가는 일이 때로는 아프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저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살맛 나는 순간들을 버팀목 삼아 살아간다. 양심껏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낀 까닭이 뭘까.

지구의 모든 생명은 태양을 에너지 삼아 우연히 발생하고 진화하고 유지되어 왔다. 지구의 땅덩어리는 자연현상으로 인해 우연히 갈라졌고 기후와 환경의 차이로 저마다 다른 속도의 문명이 이루어졌다. 한쪽 땅의 사람들이 다른 쪽 땅을 침략하고 약탈하기도 했다. 침략과 약탈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과 다른 세계가 될 수도 있었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있을 수는 있지만, 부자 나라 사람과 가난한 나라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위계도 없다. 우리는 모두 이 세계에 우연히 던져진 생명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불평등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세계는 사람이 불평등할 수 있다고 자꾸 보여준다. 피부색이 달라서 성별이 달라서 사는 곳이 달라서 가진 돈이 달라서 불평등해진다. 생명과 생명 사이에는 위계가 없지만, 이들 사이에는 위계가 있다. 우연히 주어진 삶의 조건의 차이로 사람이 불평등해도 된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원시와 야만을 지나 문명을 발달시키고 규범과 법을 만들어 자유와 평등, 박애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며 살아온 인류지만 아직 그 가치들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느낀 부끄러움의 근원이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인류로서 내가 이 세계에 무슨 보탬이 되고 있는지.

불평등한 사회에 나 또한 함묵하고 동조하며 사는 것 같아 부끄러움을 느낀다. 함묵하고 동조하는 것이 현실을 더 공고히 만드는 행동임을 안다. 알면서도 가만히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 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가 당장 이주민인권센터 같은 곳에 후원금이라도 낼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어 또 부끄럽다. 부끄럽지만 그들의 삶을 다시 떠올리고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읽고 쓰는 것이 가만히 살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나 자신을 위안해보며......

책에 등장한 이주민들은 어려운 삶의 조건을 헤쳐나가려고 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다. 자기만의 안일한 삶을 위해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조국 사람들의 삶까지 생각하며 이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자 하는 이주민들은 나를 감동케 했고 또한 부끄럽게 했다.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의 인간사가 다 들어 있어 낯설지 않았다. 차이라고는 태어난 나라가 다르다는 것뿐이었고, 나라가 달라서 생길 수밖에 없는 여러 차이가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도 이주민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이다.

이주민으로 살기에 녹록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그들은 스리랑카 사람 니로샨과 같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우다야 라이와 같이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돕고 목소리를 내며 ‘저항하고 싸우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방글라데시 출신 귀화 한국인 조니와 서아프리카에서 온 음악가이자 치유사 아미두 디아바테처럼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을 유머로 승화시키며 스스로 다독이기도 한다. 한민족이지만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고려인들도 한국의 좋은 시민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조국의 상황으로 난민이 되어 한국에 온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우리 사회에 인종차별이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차별의식이 없어도 낯섦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부적절한 행동을 낳기도 한다. 외국인과 이웃이 되기 어려운 건 언어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나와 다른 사람, 나보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차별의식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조니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신기하게도 두 가지가 다 있다는 말. 무시와 차별이 심하면서도 따뜻한 정이 있다고. 한국인의 정은 타고난 것이고 무시와 차별은 몰라서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제도와 정책을 통해 배우다 보면 정만 남길 수 있다.

생명 현상을 연구해서 인류의 생존과 복지를 위해 일하고 싶다던 중국동포 청소년 주영이 말한 사회를 함께 꿈꾸고 싶다. ‘자기 출신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사회, 피부색 때문에 눈총받지 않는 사회, 자기 미래가 희망이 없다고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는 우연한 삶의 조건이 불평등의 근거가 되지 않는 사회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때때로 행복을 느끼며 서로에게 해 되지 않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세상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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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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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파견, 특수노동 등 '비전형노동자'라는 노동형태와 착취구조를 알게 해준 고마운 책. 이 나라의 입법 및 행정 권력들은 노동자의 권리에 전혀 관심이 없음을 새삼 깨달음. 노동자의 권리야말로 선진국의 바로미터 아닌가? 사용자 및 고용주의 탐욕과 그들 편의 국가권력이 후진국을 만들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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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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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력 만랩 기자님 덕에 재밌고 따신 글 잘읽었다. 에필로그에서 눈물 펑! 이런 글을 쓰는 기자라면 기사도 윤리적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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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생활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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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견고함과 관계의 연약함이 너와 나를 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라는 생활을 단념할 수 없다. 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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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 교양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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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읽었다. 답답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서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한숨 쉬어가며 읽은 책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내가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몰랐었구나 싶은 자책이 들었다. 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떠올리고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되어 저자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과거 뉴스로 접한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가 출입국사무소의 단속을 피하려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었다. 그는 미얀마 국적의 20대 청년이었다. 뇌사 상태에서 한국인 4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영면했다. 책을 통해 그를 떠올릴 수 있었고, '불법체류자'라는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는 '불법인 사람'이 아니라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이전까지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공장이나 공사현장, 배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를 쉽게 떠올렸다. 농촌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많은 줄로만 알았다. 결혼이 아니라 밭일을 하러 오는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또한 외국인고용법의 내용도 몰랐다. 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관리한다고만 생각했지 법과 제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한국인들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불평하는데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고용허가제는 정부에서 사용자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사용자가 구인공고를 낸 뒤 기준일까지 내국인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즉, 이주노동자는 내국인이 가지 않는 일자리를 채워 생산의 일부를 담당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것이다.

책을 보면 법과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가 겪는 부당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사업주의 그릇된 인식과 태도도 원인이지만 더 중요한 원인은 잘못된 법에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사업장 변경 권한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점인데 쉽게 말해 사업주가 동의해야 이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계약 기간 만료나 해고되는 경우, 휴업이나 폐업을 하는 경우 이직할 수 있지만, 임금 체불이나 괴롭힘 등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그만둘 수가 없다. 동의하도록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 참고 버텨야 한다.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체류 기간 관련 법, 기숙사 관련 법, 건강보험 관련 법도 터무니없다. 모두 한국과 사업주에게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 법과 제도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라고 그들의 인권을 무시해도 되는가? 내 나라가 부끄러워 숨고만 싶었다.

여성이주노동자들의 주된 일터인 농업 현장의 열악함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주거 환경과 임금 체불은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게다가 성폭력의 피해와 위협도 있다.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한편으로는 농촌의 어려움을 떠올리게 된다. 노령인구가 많다 보니 아무래도 인권의식이 미비할 것이고 습관과 관행이 작용하기 쉬울 것이다. 악의적인 농장주도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도 있기에 정부의 책임과 개입이 더욱 필요하다.

깻잎은 싸다. 여러 쌈채소 중에 제일 싸다. 깻잎이 싼 이유가 여성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해서일까? 나는 깻잎을 무척 좋아하는데 앞으로 먹을 때마다 밭고랑에 쪼그려 앉아 깻잎을 따는 이국의 젊은 여성을 떠올릴 것 같다. 눈물이 난다. 누군들 편히 일하고 잘 쉬고 싶지 않을까. 가난한 나라의 딸인 이유로 무심한 땅에 와서 고되게 일하고 정당한 대가도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내가 전할 위로가 없다. 그저 하루빨리 그들의 상황이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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