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 교양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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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읽었다. 답답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서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한숨 쉬어가며 읽은 책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내가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몰랐었구나 싶은 자책이 들었다. 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떠올리고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되어 저자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과거 뉴스로 접한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가 출입국사무소의 단속을 피하려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었다. 그는 미얀마 국적의 20대 청년이었다. 뇌사 상태에서 한국인 4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영면했다. 책을 통해 그를 떠올릴 수 있었고, '불법체류자'라는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는 '불법인 사람'이 아니라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이전까지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공장이나 공사현장, 배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를 쉽게 떠올렸다. 농촌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많은 줄로만 알았다. 결혼이 아니라 밭일을 하러 오는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또한 외국인고용법의 내용도 몰랐다. 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관리한다고만 생각했지 법과 제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한국인들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불평하는데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고용허가제는 정부에서 사용자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사용자가 구인공고를 낸 뒤 기준일까지 내국인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즉, 이주노동자는 내국인이 가지 않는 일자리를 채워 생산의 일부를 담당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것이다.

책을 보면 법과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가 겪는 부당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사업주의 그릇된 인식과 태도도 원인이지만 더 중요한 원인은 잘못된 법에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사업장 변경 권한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점인데 쉽게 말해 사업주가 동의해야 이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계약 기간 만료나 해고되는 경우, 휴업이나 폐업을 하는 경우 이직할 수 있지만, 임금 체불이나 괴롭힘 등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그만둘 수가 없다. 동의하도록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 참고 버텨야 한다.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체류 기간 관련 법, 기숙사 관련 법, 건강보험 관련 법도 터무니없다. 모두 한국과 사업주에게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 법과 제도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라고 그들의 인권을 무시해도 되는가? 내 나라가 부끄러워 숨고만 싶었다.

여성이주노동자들의 주된 일터인 농업 현장의 열악함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주거 환경과 임금 체불은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게다가 성폭력의 피해와 위협도 있다.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한편으로는 농촌의 어려움을 떠올리게 된다. 노령인구가 많다 보니 아무래도 인권의식이 미비할 것이고 습관과 관행이 작용하기 쉬울 것이다. 악의적인 농장주도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도 있기에 정부의 책임과 개입이 더욱 필요하다.

깻잎은 싸다. 여러 쌈채소 중에 제일 싸다. 깻잎이 싼 이유가 여성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해서일까? 나는 깻잎을 무척 좋아하는데 앞으로 먹을 때마다 밭고랑에 쪼그려 앉아 깻잎을 따는 이국의 젊은 여성을 떠올릴 것 같다. 눈물이 난다. 누군들 편히 일하고 잘 쉬고 싶지 않을까. 가난한 나라의 딸인 이유로 무심한 땅에 와서 고되게 일하고 정당한 대가도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내가 전할 위로가 없다. 그저 하루빨리 그들의 상황이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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