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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ㅣ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호모에로스가 좋아서 이책도 읽었다. 역시 내 맘에 드는 책이었다. 이책을 보고 나면 정말 공부가 막 하고 싶어진다. 근데 바로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또 다짐한다. 공부 좀 하고 살자.
아, 오해하기 전에 먼저 밝혀둘 것은, 이책에서 말하는 '공부'란 입시나 자격증을 위한 공부도 아니고 학교 공부도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 혹시 1등이 하고 싶고 어디에 합격하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보지 마시라.
우선 공부의 달인이 왜 '호모 쿵푸스'인가? 책머리에 나온다. 공부는 '쿵푸', 즉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몸을 단련하고 인생을 바꾸는 공부를 해야한다는 뜻.
먼저 책의 프롤로그를 보자.
프롤로그에서는 '세 개의 절망과 하나의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 개의 절망'이란 공교육, 대안교육, 대학을 칭하는 것이고, '하나의 희망'이란 '대중지성'을 칭하는 것이다. 입시를 위한 공교육과 취업을 위한 대학이 절망스럽다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었고. 대안교육은 왜? 저자의 말로는, 대안 없는 대안교육이며 대안교육이 전혀 대안적 삶을 창안하지 못하고 있단다. 생태, 공동체, 다양성 등을 모토로 내세우지만, 정작 그것이 삶으로 구현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맞는거 같다. 그럼 희망이라 칭한 '대중지성'은 뭔가? 대중보다 더 대중적이고, 지식인들보다 더 지성으로 충만한 집단. 생명과 존재, 삶과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들만이 지배하는 이들. 이들은 언제나 무리로 움직이고, 오직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단다. 이 말은 즉, 앎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지성인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이리하여 저자는 낡고 병든 지식의 사슬을 끊고 '좋은 앎과 좋은 삶이 일치하는 멋진 신세계'를 향햐여 출발해보잔다. 그리고 그 신세계에 들어서기 위한 세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세가지 방법은?
호모 쿵푸스의 제1초식 - 장막 너머로 도주하기
학교식 공부가 짜놓은 거짓말의 장막 너머로 도주하라는 것. 즉, 공부는 적당한 연령대에 오직 학교에서 하는 것, 독서는 공부와 별개의 것, 시설과 서비스로 길들이는 것을 창의성 개발인양 떠들어대는 것이 거짓인지 알라는 것이다.
제2초식 - 천 개의 고원을 향하여 거침없이 하이킥!
고전에서 배우라는 것. 고전이란 뭐냐? 사전적 의미로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작품'을 뜻한다. 별 것 아니게 들린다. 그러나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바로 이 고전에 '원대한 비전, 심오한 지혜, 우주적 농담'이 가득차 있으며, 동서고금의 고수들이 인생과 우주를 놓고 진검승부를 겨루는 '천 개의 고원, 천 개이 길'이란다. 근사하다. 당장 공부하고 싶어진다. 그럼 공부는 어떻게 할까? 우선, '앎의 코뮌(공부하는 모임, 공동체, 네트워크)'에 접속하란다. 그리고 눈으로만 읽지말고 암송하고 구술하고 읽고 또 읽고 게다가 글도 쓰란다. 그렇게 하면 자의식을 넘어서는 공부, 일상이 혁명이 되고 혁명이 곧 구도가 되는 공부까지도 열려 있단다. 빡시다. 한꺼번에 다는 못하겠고, 되는 것부터 하면 되겠지?
마지막 초식 - 인디언 되기 혹은 인디언과 함께 춤을!
책과 몸 사이, 공부와 삶 사이의 경계가 문득 사라져버리는, 책도 없고, 책 아닌 것도 없는 그런 질주를 꿈꾸라는 것. 즉, 존재 자체가 특별한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으로서의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그 경지란, 언어와 문자의 경계를 넘어 세상 모든 것이 '책'이 되는 경이의 체험이며, 그야말로 문자와 몸과 세계가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지행합일(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의 경지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한 공부법은 책을 통해 존재와 세계의 심연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존재와 세계의 모든 것을 책으로 변환하는 것. 즉, 책을 읽으면 삶이 보이고, 일상을 잘 관찰하노라면 책의 지혜가 확연해지는 식의 공부법이다.
헥헥, 디다.. 이거 뭐 경지에 이르기 전에 세상 뜰 수도 있겠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공부하란 소린가? 하긴, 스콧 펙인가 하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우리는 죽는 날까지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더니, 그 소리가 그 소린가 보다.
다시 돌아가서, 그럼 대체 '공부'란 무엇인가? 어떤 것인가? 이 책속에 나오는 공부에 대한 정의(또는 정의 비슷한 거)를 쭈욱 한번 옮겨보자.
공부란 - 세상을 향해 질문의 그물망을 던지는 것 /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 자유에의 도정 /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 / 존재의 기쁨이자 능동적 표현 / 인생과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하는 것 / 스승과 벗을 찾아가는 네트워킹을 멈추지 않는 것 / 평생의 일대사 / 존재 자체가 특별한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 / 잘 배우는 능력 / 나라는 주체가 배움과 가르침의 흐름 속을 유영하는 것 / 존재의 다른 이름 /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
저 중에서 마지막 정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의 마지막 챕터에 나온다. 마지막 챕터이니 만큼 좀 옮겨보자.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의 변이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배치를 바꾸는 것, 거기가 바로 공부가 혁명과 조우하는 지점이다." ..중략... "억압에 저항하고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 그것이 곧 혁명이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시작하는가? 공부로부터 시작한다." ...중략...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 소외와의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책을 읽고, 삶을 조직하고, 천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중략... "이 억압과 소외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을 배움터의 배치로 바꾸고, 지식의 향연을 구가하는 학습망을 조직할 것. 즉, 청춘의 패기와 열정을 모아 지식의 노예가 아니라 지식을 통해 자유를 누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요컨대, 스스로가 '호모 쿵푸스'임을 자각해야 하리라."
멋지다. 그래 공부하자. 공부만이 살 길이다. 이거 봐, 확실하다.
"한번 생각해보라. 우리네 삶에서 매일 하고, 평생을 해도 변함없이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공부 말고 달리 무엇이 있는지를. 연애가 좋다지만, 무상하기 이를 데 없다. 섹스가 아무리 짜릿하다 해도 그 쾌락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지만, 공부는 그렇지 않다. 날마다 해도, 평생 해도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그러므로 학교 안에 있건 없건 누구나 평생 공부해야 한다.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 고로, 공부에 외부는 없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하나 더, 오죽하면 연암 박지원이 이렇게 써놓았겠나!
"천하 사람들이 편안히 앉아 글을 읽는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다." - [[연암집]], [원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