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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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아는 작가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기억이 까마득하다. ‘원미동 사람들’,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을 읽었던가 싶다. 아무튼 그의 작품 ‘모순’이 회자된다 하여 책친구들과 같이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어 검색해보니 2006년 KBS 아침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워낙 생생한 묘사라 머릿속에 영상이 그려질 정도이니 기시감이 들만도 하다. 통속 가운데 통찰이 담긴 이야기가 최고의 드라마가 된다.

진진의 아버지. 전형적인 술꾼이자 한량 같은 가부장인데 낭만이 더해졌다. 그의 전사는 알 수 없으나 뭔가 사연을 간직한 인물처럼 보인다. 딸에게 아버지로서의 장면을 남기기도 했지만 대체로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자 겁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진진의 태도가 납득되지 않으나 유년의 한 장면이 마음 깊이 각인되었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한다. 자식은 부모가 남긴 따뜻했던 기억 하나를 붙잡고 평생을 살게 된다.

진진의 이모부는 어떤가. 그는 술꾼도 한량도 아니지만 가부장의 전형이다. 자신의 방향과 속도로 가족의 삶을 주도하는 남자. 무덤 속의 평화는 무덤인가 평화인가.

남편으로 인해 엄마와 이모의 계급에는 차이가 생겼으나 그들이 여성으로서 겪는 질곡은 공통된다. 질곡의 내용이 다를 뿐. 엄마와 이모의 대비는 계급모순과 젠더모순을 동시에 보여준다. 진진과 주리의 삶 또한 이를 이을 가능성이 있다. 여전히 모순이 존재하므로.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다.)

진진이 사랑에 대한 혼란과 두려움을 거치며 자신만의 사랑의 정의를 얻어놓고도 나영규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진진은 여성으로서 엄마보다 이모를 이상화했기에 아버지와 닮은(낭만) 김장우가 아니라 이모부와 닮은(안정) 나영규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모의 최후를 떠올리면 진진의 선택이 어떤 최후를 맞을지는 모를 일이다. 진진은 그저 절반의 행복보다 절반의 불행을 선택한 것이다.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인생의 진리 맞다. 행복만이 존재하면 권태에 빠지고 불행만이 존재하면 절망에 빠진다. 행복과 불행은 객관이 아니다. 모순적인 사회구조 안에서는 개인도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각자의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모순을 받아들인다면 진진의 엄마처럼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불행의 와중에도 활력을 갖게 되는 그녀의 힘이 무엇일까? 주체성이 아닐까? 주체적으로 생을 살아내는 사람은 행복이든 불행이든 누리고 견딘다.

나는 내 안의 어떤 모순을 안고 사는가? 나는 그 모순을 받아들여 절반의 행복으로 살아간다. -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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