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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이 드는 존재 - 멋진 주름을 만들어 가는 여자들
고금숙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2월
평점 :
작년부터였던가. 부쩍 나이 든다는 것을 실감해서 관련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나이 듦을 느끼는 것은 아직까진 몸에 한정된 부분이었다. 몸이 늙어가는구나라는 확신을 여기저기서 느끼니까. 내게 나이 듦은 육체의 쇠락일 뿐이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덜 속상할까 하는 수준의 고민이었다. 나의 고민에 아홉 편의 글 모두 감탄과 깨달음을 주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세 편 정도가 특히 참고할 만하다.
김하나님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 듦과 그 변화를 비교하며 자신이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말하는데 퍽 공감이 되었다. 나이 듦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육체의 쇠락만이 아니라 정신의 쇠락도 동반하기에 그것에 체념하지 않기 위해 저자가 말한 ‘호기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호기심은 성향의 차원만이 아니라 훈련의 영역이기도 하다니 다행이지. 집순이로 살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으려고 뭐라도 들여다보는 내가 헛짓하는 건 아니구나.
정희진샘의 글은 참고 중에 참고할 내용이었다. 샘은 일단 첫 단락에서 ‘잘 늙는 것’, ‘노후’라는 개념에 대한 문제의식을 말하는데 옮기면 이렇다.
* ‘잘 늙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차피 기준은 ‘젊음’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달리해 보면, 나이에 따른 몸의 현상이 각기 다른데 왜 잘 늙어야 할까. 잘 젊어야 할 이유가 따로 없듯이, 잘 늙어야 할 이유도 없다. 노전(老前)이라는 말이 없듯이, 노후(老後)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나이 든다. 그래서 나는 ‘늙음’ 대신 ‘나이 듦’이라는 표현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그러고 보니 그렇네? 태어나 나이 드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왜 잘 나이 들고 잘 늙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 ‘잘’의 기준은 뭘까? 책에 실린 저자들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좀 특별한 이들이다. 자신의 몸과 삶과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보고 글로 쓸 수 있을 만한 지적 능력과 사유의 내공을 가진 이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신없이 나이 들지 않을까? 나이 든다는 걸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삶이 빠듯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문에 답이 될 만한 정희진샘의 글을 또 옮긴다.
* 생애 주기와 노후 담론은 이데올로기다. 특히 노후 계획은 연령주의와 계급주의의 결합이다. 중산층의 경험에서만 노후는 은퇴를 의미한다. 한국인은 대개 평균 73세까지 일하므로 노후랄 게 거의 없는 셈이다. 중산층 이상이어야 노후라는 시기가 별도로 주어진다. ...... 노년기에 들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아니, 최소한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려면, 혹은 ‘비참’하지 않으려면 건강과 돈이 꼭 필요하다. 모든 불안은 이 두 가지에서 온다. 나이 든다는 것. 노안이 오고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살이 찌고 무릎과 허리가 아프고 눈, 치아, 머리숱 등 몸의 모든 부분이 관심을 요구한다. 이때 짜증이 난다면 아직 나이 들지 않은 것이다. 나이 듦은 그만큼 수용하기 힘든 인식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타자가 되는 것이며 그 이상의 경험이기도 하다. 죽음과 마주하는 문제다. *
나도 육체의 쇠락으로 나이 듦을 의식하면서 받아들이기보다 짜증이 앞섰기에 이 책도 읽게 되었다. 여성으로서 이미 타자인데 나이 듦으로 또 타자가 되는구나. 그렇다면 정말 생각 없이 짜증 내며 나이 들 일은 아니다. 관심을 요구하는 육체를 모른 체하면 안 된다. 죽음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라영님은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어쩌면 나이 듦이 사라지는 과정일 수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앞서 정희진샘의 말처럼 나이 듦은 죽음과 마주하는 일이고 이라영님의 글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잘 사라지는 것은 잘 기억하는 것이라고 한다. 본인이 잘 사라지기를 원하듯 한 사회도 그러기를 바라며, 일상적으로 사라지는 무명씨들의 이야기를 채록한다. 인용한 채록을 통해 어떻게 나이 들 것인지에 관한 내용도 전달하고 있다. 나도 잘 사라지기 위해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써가야 할지 고민할 일이다.
사실 이 책을 사려고 집었을 때 망설였다. ‘멋진 주름을 만들어 가는 여자들’이라는 부제를 보며 다른 여성들은 나이 듦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궁금하고 도움을 얻고 싶은 마음에 펼쳐 들었는데, 저자들의 프로필을 보는 순간 거리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애정하는 정희진샘이 함께 하셨고 또 김하나, 이라영님은 알던 이름이어서 구매했다. 공교롭게도 이 세분의 글이 가장 와닿은 셈이다.
어쨌거나 읽고 보니 기획이 아쉽다. 제목도 아쉽다. ‘우리, 나이 드는 존재’에서 ‘우리’란 누구일까? 어쩌면 애초에 공감대가 마련되어 있는 독자들을 전제로 한 기획일까? 이라영님의 글에 언급된 바를 떠올려, 여성 무명씨들의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오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