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살아낸, 끝날 수 없는 생존의 기록
김잔디 지음 / 천년의상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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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3주기쯤 그에 관한 다큐가 나온다는 소릴 듣고 기가 막혀 이책을 읽었다.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안달인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격은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이라면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젊은 여성 부하직원에게 갑질하는 상사 이야기 진부하지 않은가. 그 진부함을 몸소 실천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너무나 잘 알아서 스스로 생을 접었다. 피해자에게 미안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파고는 넘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그의 말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끝났음을 인정한 것이다. 정치적 생명이 끝날 만한 가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그가 분명히 안 것이다. 정작 가해자 본인이 죽음으로 시인한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며 피해자를 모함하고 괴롭히는 자들은 뭐냐. 그들이 잃은 것이 무엇이기에.

공소 사실을 유출한 사람들의 잘못과 책임이 막중하다. 비밀보장만 되었어도 어쩌면 그가 죽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피해자와 가족들은 오죽했을까. 상식대로 법대로 할 수 있었던 일을 망쳐버린 장본인들이 여성운동의 선구자들이라니. 황당함과 실망감을 새삼 느낀다. 인권변호사 출신 정치인의 성폭력 가해라는 반전 못지않게 충격적인 반전이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제발.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착취해가며 성취한 것들이라면 수포로 돌아가도 무방하다. 수포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그게 정의라고 생각한다. 업적보다 과오에 초점을 둬야 반성과 변화가 일어난다. 업적은 누구라도 다시 이루면 되지만 과오로 인한 피해는 오래 지속된다. 타인의 고통을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이 더 중요하다. 고통을 치유하는 일보다 우선하는 게 있을까?

「김지은입니다」를 읽었을 때 '사람'이 아니라 '사건'에 집중했던 내 자신이 반성되었다. 박원순 성폭력 사건도 마찬가지였구나 싶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하는 것처럼 피해자의 말을 믿는 내 마음도 입증해야 하는 요상한 분위기... 왜 성범죄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심지어 법적으로 죄가 인정되었음에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마치 감옥에 들어가 있던 박근혜가 무죄라고 주장하듯이. 법치국가의 위엄이 없다.

그에 관한 다큐가 세상에 나온다면 피해자와 가족들의 상처가 또 헤집어지겠지? 내가 다 미안해진다. 아무리 자신이 지지했고 존경했던 인물이라도 그가 저지른 과오까지 없던 셈 치는 건 광기에 다름 아니다. 어떤 다큐일지 나와봐야 알겠지만 너무나도 우려스럽다.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고통을 보태지 말아야 할 텐데. 모쪼록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싶다. 더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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