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의 내면수업 - 당신은 안타깝게도, 진짜 '나'를 만난 적이 없다
강이안 지음 / 필로틱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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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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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이 강한 사람을 감정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할 줄 알고, 상처받아도 금방 털어내며, 타인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자주 마음이 흔들리는 날이면 스스로를 향해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라는 질문부터 던진다. 그런데 칼 융의 심리학을 들여다보면 '정말 강한 마음이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일까?'라는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칼 융의 내면수업》은 평소 외면하고 있던 내면의 영역을 바라보게 만든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다. 별일 아닌데도 특정 사람만 보면 불편하고, 어떤 태도에는 유난히 화가 난다. 분명 내가 선택한 삶인데 어느 순간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삶이 맞나?’라는 공허가 찾아오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감정들을 불편한 감정 속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일부가 숨어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지점에서 융의 ‘그림자’라는 개념이 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누구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다듬는다. 착한 사람, 성실한 사람, 이해심 많은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은 감추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은 없애버린다고 정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화가 나도 화나지 않은 척하고, 질투가 나도 그런 마음은 가져서는 안 된다고 누르고, 욕심이 생겨도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이유로 모른 척한다. 그렇게 의식에서 밀어낸 마음들은 어느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튀어나온다.

그래서 책에서 만난
🔖“자신을 완벽한 사람으로 만들려 애쓰는 대신 가끔은 자기 안의 어두운 면을 가만히 들여다봐주세요.” 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어쩌면 ‘좋은 나’를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 안에 이기적인 마음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질투하기도 한다는 것,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 때로는 사랑받고 싶어서 가면을 쓰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곧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마음을 인정하지 못할 때 문제가 시작될 수 있다.


책의 ‘그림자’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내가 유독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물론 내가 싫어하는 모든 사람이 사실 나와 닮았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의 실제 행동이 부당하거나 무례하다면 그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특정한 사람이나 행동에 내가 유난히 강한 감정을 보인다면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한 번쯤은 질문해볼 수 있다.

‘왜 나는 이것에 이렇게까지 화가 날까?’


내가 싫어하는 것은 정말 상대의 행동일까. 아니면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어떤 모습일까. 혹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특정한 행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특히 다음 문장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콤플렉스’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했다.
🔖“어떤 말이 유독 아픈 상처로 다가온다면 ... 그 말이 오래 전부터 묻혀 있던 당신의 응어리를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이상하게 어떤 말 하나에만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들었다면 웃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 말이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방의 말이 너무 심했다고만 생각하거나, 내가 너무 예민했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그 말이 아픈 이유가 내 안에 이미 존재하던 상처를 건드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관점은 꽤 오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왜 이렇게 예민하지?’라고 나를 몰아붙이는 일이 아니라, ‘이 말이 내 안의 무엇을 건드렸을까?’라고 묻는 일일지도 모른다.

가면을 벗는다고 해서 모든 관계에서 솔직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책에서 다루는 페르소나 역시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
직장에서는 직장인의 얼굴을 하고, 가족 앞에서는 가족의 얼굴을 하고, 친구를 만날 때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을 모두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회생활을 위해 어느 정도의 역할과 태도를 갖추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역할을 내가 진짜 나라고 착각하기 시작하는 순간일 것이다.

‘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니까 힘들다고 말하면 안 돼.’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싫다는 말을 하면 안 돼.’

이런 문장들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가면을 벗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나의 속마음을 다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에게 낯선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니까.

개인적으로 책에서 가장 묵직하게 다가온 부분은 ‘중년의 위기’와 ‘개성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목표를 하나씩 달성한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경제적인 안정, 결혼과 가족, 사회적인 인정….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비어 있는 공허한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그때 또다시 무언가를 채우려고 한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직장, 새로운 관계, 새로운 취미….
하지만 이 책은 그 공허를 ‘채워야 하는 빈자리’로만 보지 않는다.

다음 문장이 특히 그 의미를 잘 보여준다.
🔖“무너짐은 바로 그 빈 껍데기를 알아차린 순간, 영혼이 ‘진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무너짐’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무너진다는 것은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주었던 방식이 더 이상 나를 지탱하지 못한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 이상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익숙했던 관계와 역할에서 갑자기 답답함을 느낀다면 그것을 무조건 극복해야 할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라는 신호로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실제 우울이나 심각한 심리적 어려움을 단순하게 ‘성장의 신호’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책의 심리학적 통찰은 자기 이해를 위한 하나의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마음에 남은 문장은 .
🔖“전반생 동안 우리는 사회가 원하는 인격을 만드느라 진짜 나를 조금씩 뒤로 미뤄둡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 문장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배운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공부를 잘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때 살아 있다고 느끼는가’ 같은 질문은 뒤로 밀려나기 쉽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멈춰 서면 열심히 살아온 것은 분명한데 정작 누구를 위해 그렇게 달려왔는지는 알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융의 개성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개성화는 ‘나다운 사람이 되자’라는 자기계발식 구호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나와 내면의 나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바라보고, 내가 억눌러왔던 부분까지 포함해 나 자신을 통합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이 문장이 책의 전체를 대변하듯이 느껴졌다.
🔖“개성화는...... 그 동안 흩어져 있던 나의 모든 조각인 가면, 그림자, 응어리, 무의식 등을 그 어느 하나 버리지 않고... "

여기서 ‘흩어진 모든 조각’이라는 표현이 참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살다 보면 나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나, 인정받고 싶은 나, 화를 내는 나, 질투하는 나, 혼자 있고 싶은 나, 새로운 것을 꿈꾸는 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나….

그중 사회가 좋아할 만한 모습만 골라 ‘이게 나야’라고 정의해왔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온전한 나란 좋은 모습만 모아 만든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모습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에 더 가까울 것이다.


《칼 융의 내면수업》은 융의 이론을 설명하는 데에서 머물지 않고, 일상에서 경험하는 감정과 연결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고 느꼈다.

페르소나는 내가 세상에서 쓰고 있는 얼굴을 돌아보게 하고, 그림자는 내가 외면했던 모습을 바라보게 한다. 콤플렉스는 왜 어떤 말에 유독 흔들리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무의식은 내가 나 자신을 완전히 알고 있다는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개성화는 그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뒤 ‘멘탈이 강해지는 법’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졌다.
강한 사람은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화가 나지 않는 사람도, 질투하지 않는 사람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나는 왜 이렇게 느끼지?’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약한 부분을 부끄러워하며 숨기는 대신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타인의 기대와 사회가 만든 역할을 모두 내려놓은 뒤에도 ‘그래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책을 덮고도 한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평생 ‘나’를 찾으며 살아가지만, 어쩌면 찾아야 할 새로운 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외면했던 수많은 조각들을 다시 데려오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조금 흔들리고 있다면 반드시 ‘나는 약하다’고 결론 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흔들림은 지금까지의 나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내면의 신호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마음이 흔들리는 날, 또 다시 이 책을 펼치게 될 것 같다.

‘지금 나를 흔들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안에서 나는 어떤 나를 만나고 있는가?’

진짜 멘탈은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 단단한 돌 같은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부서지고 다시 흩어지더라도 자기 자신의 중심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흩어진 나를 다시 하나씩 데려와 마침내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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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어휘력 - 언어의 한계를 넘어 마음의 세계를 넓히는 일주일 단어 수업
조아란.권희.이정윤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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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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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꽤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간다.
아침부터 밤까지 수없이 많은 문장을 주고받고, 필요한 것은 정확하게 설명하며, 모르는 것은 검색해서 알아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내 마음’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단순한 언어를 사용한다.

분명 내 안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움직이고 있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왜 힘든지도 모르겠고,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지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마음의 어휘력》은 마음을 더 많이 느끼라고 말하기보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언어를 갖자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감정은 이름을 잃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잃은 채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서운한 것과 억울한 것은 다르고, 지친 것과 무기력한 것도 다르다.
불안과 두려움도 같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그 미묘한 차이를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하면 ‘힘들다’는 말 하나로 묶어버린다.

그러면 감정의 원인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상했다면 그것이 ‘화가 난 것’인지, 기대했던 사람에게 외면당해서 생긴 서운함인지, 부당하게 평가받았다는 억울함인지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도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표현력을 풍부하게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를 조금 더 정확하게 진단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서 특히 오래 머물렀던 단어는 ‘사티’였다.
저자는 설거지를 하면서 물의 온도를 느끼고, 걸을 때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각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생각을 바라보는 연습을 이야기한다.

“아, 지금 나는 내일을 걱정하고 있구나.”
“지금 나는 어제를 붙잡고 있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순간 생각은 더 이상 나의 전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이 문장이 참 중요하게 느껴졌다.

‘나는 불안하다’라고 흔히 말한다.
그런데 ‘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바라보면 조금 달라진다.

전자는 내가 곧 불안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후자는 불안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감정과 나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생기는 것이다.
그 틈이 생기면 감정에 끌려가기보다 바라볼 수 있다. 당장 해결하지 못하더라도‘내가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마음을 돌보는 일의 첫 단계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임포스터 신드롬을 다룬 부분에서도 오래 생각하게 되는 문장이 있었다.
🔖“내 마음을 나를 의심하는 데 쓰지 말고, 내가 여기까지 걸어온 시간을 믿는 데 쓰자.”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내는 데 사람들은 지나치게 익숙하다.
잘한 일보다 실수한 일이 오래 기억되고, 열 번의 칭찬보다 한 번의 부정적인 말이 마음에 남는다. 잘해 놓고도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자연스럽게 해내는 일을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자책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으면서 ‘자기 신뢰’라는 것은 대단한 자신감과는 조금 다른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모든 일을 잘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를 함부로 부정하지 않는 것.
실수했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 전체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 것.
그것 역시 마음의 어휘력이 아닐까.


‘렛뎀 이론’도 현실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누군가 나를 오해했을 때 우리는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애쓴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고, 상대가 나를 제대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정확히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 나, 오해받은 나, 모든 관계에서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나를 끝까지 해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관계를 지킨다’는 것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언제나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상대의 생각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관계의 한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마음을 통제하려는 에너지를 조금 내려놓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내 마음과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아요르나맛’이라는 낯선 단어도 기억에 남는다.
살면서 정말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이미 지나간 일을 놓는 것이다.

“그때 내가 그렇게 하지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이 일어나지만 않았더라면.”

과거는 바꿀 수 없는데도 계속 과거와 협상을 한다. 이미 끝난 장면을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하면서 다른 결말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책에서는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이야기하며 이런 문장을 건넨다.
🔖“이미 일어난 일,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일 앞에서는 그것을 붙잡는 힘보다 놓아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놓는 것을 포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때로는 놓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일 수 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계속 붙잡고 있는 동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오늘의 에너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무책임한 체념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에 힘을 쓰는 것.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조정하는 일일 수 있다.


책에서는 킨츠키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킨츠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부서진 이후의 형태를 새로운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방식.”

깨진 도자기를 원래 모습으로 완벽하게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금이 간 흔적을 숨기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완성하는 방식.

이 문장을 읽으며 회복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회복을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떤 경험은 나를 이전과 똑같은 사람으로 돌려놓지 않는다.

상처를 겪기 전과 후의 나는 다를 수 있다.
실패하기 전과 후의 나도 다르고, 관계에서 크게 다친 뒤의 나 역시 이전과 같을 수 없다. 그렇다면 회복이란 달라진 나를 받아들이고 그 모습으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없애야 비로소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금이 간 자리도 나의 삶에 포함될 수 있다.


또한 자기애라고 하면 흔히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부터 떠올린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라는 말조차 어떤 날에는 부담스럽다. 나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고 애써 다짐하는 것보다, 적어도 나에게 부당하게 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책 속 문장처럼,
🔖“타인에게 허락하는 기준을 나에게도 적용해 보는 일”은 아주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친구가 실수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면서 정작 내가 실수하면 “왜 이것도 못했지?”라고 몰아붙인다. 다른 사람에게는 충분히 쉬어도 된다고 말하면서 나는 쉬는 순간 죄책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은 과정이라고 이해하면서 내 부족함은 결함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자기돌봄은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정도의 이해를 나에게도 허락하는 것. 그 정도부터 시작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인지적 재평가’ 부분에서는 감정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과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게 됐다. 힘든 일을 겪었는데 무조건 “좋은 일이었어”라고 말하는 것은 내 감정을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혹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고통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음 행동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돌본다는 것은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잘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후반부는 요즘의 일요일을 떠올려 보게 했다.
주말이 끝난다는 사실 때문에 아직 오지도 않은 월요일을 미리 걱정하면, 정작 일요일이라는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한다.

책에서는 일요일 밤에 한 주를 돌아보며 잘한 일 하나와 버거웠던 순간 하나를 떠올리고, 차를 마시거나 방을 정리하며 한 주에 조용히 마침표를 찍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이 문장이 좋았다.
🔖“월요일을 미리 준비하는 대신, 일요일을 잘 종료하는 방법을 고민하기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만큼 현재를 잘 끝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다음을 준비할 걸이다.
다음 주, 다음 달, 내일, 다음 목표.
그런데 지나간 하루를 제대로 닫아주는 시간은 의외로 부족하다.

그래서 어쩌면 마음에도 ‘마침표’가 필요한 것 같다.
오늘 잘한 일 하나. 오늘 힘들었던 일 하나. 조금 웃게 한 일 하나.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고 나면 내일을 향해 조금 가벼워질 수 있을 테니까.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감정의 이름’보다 ‘나를 이해하는 방법’에 가까웠다.
《마음의 어휘력》에 등장하는 70개의 단어는 신기하고 예쁜 외국어를 모아놓은 목록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각 단어는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보기 위한 작은 렌즈처럼 느껴진다.

어떤 단어는 불안을 바라보게 하고, 어떤 단어는 관계에서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어떤 단어는 과거에 붙잡힌 나를 놓아주게 하며, 또 어떤 단어는 지친 나에게 잠시 쉬어도 된다고 말해준다.

불안하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고, 질투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며, 지쳤다고 해서 약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왜 생겼는지 들여다보고, 그 감정을 가진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을 몇 개의 단어로만 설명하고 있을까?”

‘힘들다’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을 하나씩 찾아주는 것.
‘짜증 난다’는 말 안에서 서운함인지, 억울함인지, 두려움인지 구별해 보는 것.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정말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

그렇게 마음의 이름을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이전에는 막연하기만 했던 감정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이름을 알게 된 감정은 적어도 이전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만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어휘력이 곧 자기이해의 깊이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멋지게 설명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가 나에게,
“아,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이었구나.” 라고 말해줄 수 있기 위해서다.

마음이 힘든 날에는 해결책보다 먼저 이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왜 힘든지 모르겠을 때,
그저 ‘힘들다’고만 말할 수밖에 없을 때,
내 마음 어딘가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단어가 하나쯤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단어를 찾아가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은 뒤 깨닫게 되었다.
마음을 잘 돌본다는 것은 평온하지 않은 마음조차 정확하게 알아봐 주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 내 마음에도 이름을 하나 붙여준다면, 어떤 단어를 골라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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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 심리학으로 읽는 숨겨진 마음의 작동 원리 84
데이비드 J. 리버만 지음, 정미화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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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맘 (@gbb_mom ) 님 #르온서평단 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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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이러지?”

살면서 한 번쯤은, 아니 어쩌면 꽤 자주 스스로에게 던져봤을 질문이다.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루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고, 다른 사람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면서 정작 내 일은 뒤로 미루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계속 확인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머리로는 분명히 안다.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런데도 또 그렇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자신을 ‘게으른 사람’, ‘예민한 사람’, ‘우유부단한 사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규정해버린다. 그리고 고치려고 애쓴다. 계획표를 만들고, 마음을 다잡고, 좋은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데이비드 J. 리버만의 《나에게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는 다른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 행동을 고치기 전에,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왜 자꾸 미룰까’, ‘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까’, ‘왜 사소한 일에 집착할까’, ‘왜 사랑받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까’처럼 너무나 평범해서 평소에는 그냥 성격이라고 넘겨버렸던 행동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행동 아래에는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욕구, 두려움, 불안, 자기방어, 자아 이미지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닌데?’라는 책에 의해 관찰당하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한다.
미루는 습관이 문제라면 부지런해져야 하고, 걱정이 많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관계에서 불안하다면 상대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같은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책에서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돕는 행동조차 그 동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타인을 돕는 것은 분명 좋은 행동이지만, 그 행동이 자신의 삶을 마주하지 않기 위한 도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런 경우를 두고 🔖“자신의 인생을 외면하기 위해 타인의 삶에 몰두한다”고 표현한다.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모습만 보면 쉽게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같은 행동이라도 그 안에 어떤 마음이 들어 있는지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이 정말 좋아서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행동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 질문 하나가 행동을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상황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생각은 ‘통제’에 관한 부분이었다.
살아가면서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 통제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한 말에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지는 않을지.

생각하면 할수록 불안해지고, 불안할수록 더 통제하려고 한다.
그런데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 자체가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책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이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순간, 불안의 크기가 조금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행동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아무리 반복해서 생각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걱정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일 것이다.

책에서 소개한 ‘평온을 비는 기도’ 역시 이 부분과 맞닿아 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킬 용기를 가지며, 둘을 구별할 지혜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읽고 나니 ‘마음의 평온’이란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상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까지 붙잡고 있지 않는 상태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가장 생각이 많아졌던 부분 중 하나는 자아 이미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믿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쉽다.
내가 부족하다고 믿으면 좋은 결과가 나와도 불안해지고,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으면 누군가의 사랑조차 의심하게 된다.

책에서는 골프 경기의 예를 통해 이런 심리를 설명한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내가 이렇게 잘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면 긴장하고 결국 자신이 예상했던 수준의 결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가 때때로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만큼이나 성공을 낯설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익숙한 모습이 ‘부족한 나’라면, 오히려 잘된 일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변화라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지를 다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 후반부의 ‘관계를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욕구’에 대한 내용도 상당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상대방의 말투가 평소와 조금만 달라져도 ‘혹시 마음이 변한 걸까?’ 생각하고, 답장이 늦으면 이유를 상상하고, 사소한 다툼 하나를 관계 전체의 위기로 확대해석하는 마음.

사랑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인데 결과적으로는 관계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책에서는 이런 행동의 밑바닥에 ‘상대가 나에게 과분하다’는 감정이 자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상대가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보다 현재의 작은 부정적인 신호 하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이상하게도 열 번의 다정한 말보다 한 번의 차가운 말을 오래 기억할 때가 있다.

‘왜 그렇게 말했지?’
‘예전과 달라진 건 아닐까?’

그렇게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관계 전체를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한순간의 표정이나 한마디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으며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불확실한 순간에도 모든 것을 최악으로 해석하지 않는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은 처음에는 상당히 직설적이다.
《나에게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문제가 있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이 제목이 오히려 다르게 들린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내가 지금의 모습 그대로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행동에 일정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면 앞으로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도 생긴다.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라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 우리는 평생 자신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목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책을 읽고 남은 것은 특정한 심리 유형이나 해결 방법보다 ‘반응과 선택은 다르다’는 생각이었다. 책에서는 우리가 상황 자체를 모두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이것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처한 환경과 과거의 경험, 심리적 어려움은 실제로 우리의 행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모든 감정과 행동을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축소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메시지가 의미 있는 이유는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는 것’ 자체가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화가 났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도 없고,
불안하다는 감정을 억지로 없앨 필요도 없다.
대신 그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한 발짝 물러나 물어볼 수 있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반응하고 있지?’

감정과 행동 사이에 작은 틈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변화는 바로 그 틈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는 내가 반복하는 행동을 낯선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에 가깝다. 특히 84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지 않고 지금의 나에게 걸리는 질문부터 찾아 읽어도 좋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나를 고치려고 애쓰기 전에 나를 이해해보라는 메시지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쉽게 판결을 내린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르지.’ ,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하지.’
‘나는 왜 남들처럼 못하지.’ , ‘나는 왜 사랑받고 있으면서도 불안하지.’

하지만 그 문장 뒤에 물음표 하나를 붙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
자책이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 나를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진다.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인데,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를 가장 오랫동안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여운은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다면, 이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그 이해의 순간부터, 어쩌면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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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실격 시즌 3 - 꼴랑 영화 하나로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ㅣ 감독실격 3
Zinn 지음 / 9월의햇살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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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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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라고 하면 흔히 작품의 성공과 실패, 흥행 성적이나 작품성 같은 결과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감독실격 시즌 3》가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화려한 모습보다 영화를 만들지 못한 채 오랫동안 주변을 맴도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데 있다.

최 감독은 데뷔작의 실패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그 10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다. 계속 시나리오를 쓰고, 미팅을 하고, 작품을 고치고,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그럼에도 외부에서 보이는 것은 ‘10년 동안 작품이 없는 감독’이라는 한 줄짜리 이력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폭망 감독’이라는 표현이다. 웃기고 우스꽝스러운 말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자존감이 서서히 깎여나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경력 단절 10년이라니..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비어 있다고 아무 일도 한 건 아니다.”

사회에서는 결과가 없는 시간을 쉽게 ‘공백’이라고 부른다. 취업을 준비했지만 취직하지 못한 시간, 책을 썼지만 출간되지 않은 시간, 작품을 만들었지만 세상에 나오지 못한 시간처럼 말이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그 시간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수없이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최 감독의 비참함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자신은 분명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세상은 그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감독실격 시즌 3》가 재미있는 이유는 이 인물을 불쌍한 사람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감독은 찌질하다. 허세도 있고, 질투도 많고, 자기합리화도 심하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은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신을 대단한 감독으로 봐주기를 바라면서도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 모순이야말로 이 인물을 살아 있는 인간처럼 느끼게 만든다.

책 속에서 자신을 롤모델로 삼았다는 시나리오 속 감독이 사실은 “찌질하기 짝이 없는 폭망 감독” 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아주 잔인하고 우스운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최 감독이 그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쉽게 화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감독이라는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체면과 기회를 지키기 위해 불쾌한 감정마저 삼킨다.

영화판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영화를 잘 만드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누구를 필요로 하는지, 누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누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까지 끊임없이 계산해야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영화계의 민낯’이라는 말보다 '사람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방식의 민낯'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최 감독에게 영화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계속 묻는다.
내가 다시 영화를 찍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흥행하면 행복할까.
유명해지면 인정받을까.
젊고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면 내가 덜 초라해질까.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험한 꼴을 견디고 있는 걸까?”라는 문장에 이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처음에는 감독으로서의 재기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최 감독이 붙잡고 있는 것은 영화 한 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명.
그래서 영화 한 편이 이렇게까지 중요해진다.

이 작품에서 욕망은 하나의 얼굴만 가지고 있지 않다.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망, 성공하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돈을 벌고 싶은 욕망,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서로 뒤엉킨다. 그리고 욕망이 커질수록 자기합리화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최 감독은 점점 자신이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지조차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 지점에서 《감독실격 시즌 3》는 영화감독 이야기에서 창작자 전반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글을 쓰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창작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가 어렵다. 열심히 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이 세상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한다.

그래서 최 감독의 질투와 허영은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에서 해봤을 법한 생각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마음,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타인을 은근히 낮춰 보는 마음, 인정받고 싶어서 관계를 계산하는 마음까지도 숨기지 않는다.

특히 🔖“감독님이 본인 영화를 부끄러워하면 배우들은 뭐가 되나요”라는 목차의 문장은 작품 전체의 아이러니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했다.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고 부끄러워할 권리가 있지만, 그 작품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얼굴을 걸었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작품이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소유이면서 동시에 여러 사람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바라보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판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권력의 방향성이다. 창한이라는 인물이 서비스직 종사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라보는 장면은 ‘성격 나쁜 사람’에 대한 묘사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공손하면서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불편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들이 들어가면서 《감독실격 시즌 3》의 블랙유머는 인간의 허영과 위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감독’이라는 단어도 재미있다. 감독이라고 모두 같은 감독이 아니다.

필모그래피가 있는 감독과 없는 감독, 성공한 감독과 실패한 감독, 투자받는 감독과 투자받지 못하는 감독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한다.

‘감독’이라는 직함만으로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폭망 감독에서 긁지 않은 복권 같은 감독으로 업그레이드" 라는 표현은 꽤 날카롭다.

사람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타인의 시선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평가할 때 정말 그 사람 자체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를 계산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 딸 세미가 아빠가 감독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설정은 최 감독에게 꽤 잔인한 장면이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감독’이고 싶지만 집에서는 그저 한 사람의 아버지일 뿐이다.
더구나 그 아버지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간극은 더욱 커진다. 이 부분에서 최 감독의 외부적 욕망과 내부적 외로움이 맞물린다.
그는 영화를 찍고 싶은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다시 인정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정 욕망은 끝이 없다. 한 번 인정받으면 더 큰 인정을 원하고, 한 번 성공하면 다음 성공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문장이 최 감독의 삶을 설명하는 동시에 인간 자체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웃음보다 씁쓸함이다.
최 감독을 보며 웃다가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며 마음속으로 질투한 적은 없었는지, 인정받고 싶어서 필요 이상으로 애쓴 적은 없었는지, 실패한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최 감독은 우리가 감추고 싶은 모습을 조금 더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인물에 가깝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고, 포기하면 편해질 것 같으면서도 막상 포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성공이 부러우면서도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 감독의 어딘가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후반부의 🔖“차라리 잘 됐다. 어차피 극장은 망했고 영화는 끝났다.”라는 대목은 앞선 욕망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토록 원했던 것을 포기하면 편해질 수 있다는 생각. 하지만 정말 포기할 수 있을까.

《감독실격 시즌 3》의 여운은 ‘그래서 최 감독이 성공했는가?’ 결과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왜 실패하면서도 다시 같은 꿈을 꾸는가라는 질문으로 남는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다. 돈이 많이 벌려서도 아니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그것을 원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꿈을 포기하는 순간 실패를 인정해야 할 것 같고,
지금까지 버틴 시간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꿈을 포기하지 못했던 자신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다시 꿈을 좇기도 한다.

사람은 정말 성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계속하는 걸까.

영화 한 편을 만들고 싶다는 최 감독의 욕망은 한 사람의 존재 증명에 대한 욕망으로 읽힌다.

그래서 《감독실격 시즌 3》가 남기는 묵직한 여운은 실패했음에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상한 끈질김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웃기면서도 가장 슬픈 순간은 바로 그런 때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충분히 지쳤고, 그만두는 편이 편할 것 같은데도
마음 한구석에서 여전히 ‘한 번만 더’를 외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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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실격 시즌 2 - 누가 영화감독 하라고 칼들고 협박했냐 ㅣ 감독실격 2
Zinn 지음 / 9월의햇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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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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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완성된 화면으로만 만난다. 극장에 앉아 두 시간 남짓한 이야기를 보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면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가 관객에게 도착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욕망과 계산, 타협과 좌절이 겹겹이 쌓인다. 특히 감독에게 영화 한 편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과 자존심, 능력과 실패를 모두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독실격 시즌 2》를 읽기 전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소제목이었다.

‘누가 영화감독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웃긴 제목인데, 이상하게 웃고 나면 씁쓸하다. 정말 그렇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선택했고, 힘들면 그만둘 수도 있는데 끝내 놓지 못한다. 그런데 그 꿈을 붙잡고 있는 과정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로는 초라하고, 비겁하고, 질투에 휘둘리고, 자기합리화로 가득하다.

최 감독은 흔히 생각하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멋진 창작자’와는 거리가 멀다. 데뷔작의 실패 이후 10년 동안 차기작을 만들지 못했고,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에 매달리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꽤나 찌질하다. 잘되는 후배가 신경 쓰이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에게 서운하고, 제작사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자존심이 흔들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인간적이다.

실패한 뒤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사실은 상처받았으면서 괜찮은 척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다 환경과 타인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지는 마음. 나보다 잘되는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하기 어려운 마음. 다시 기회가 오면 이번에는 잘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

그것은 영화감독에게만 존재하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최 감독의 이야기를 영화계의 특수한 이야기로만 읽기보다는 ‘실패한 뒤에도 자신이 실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읽게 된다.

특히 책 속 문장 중🔖“나는 잘못 없다.” 라는 최 감독의 태도는 이 인물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처럼 느껴졌다.

사실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내가 믿어온 능력과 자존심까지 함께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제작사가 문제였고, 투자자가 문제였고, 환경이 문제였고,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자기합리화를 거창한 심리 분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최 감독의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더 웃기고, 동시에 더 아프다.

책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라는 꿈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었다. 작품 초반에는 영화가 다른 예술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보이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창작자를 꿈꾸는 일반인들에겐 유난히 영화가 만만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 문장은 영화라는 매체를 둘러싼 묘한 착시를 생각하게 했다.
그동안 영화를 너무 쉽게 소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영화 한 편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와 연출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만나면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다는 잘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관객으로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영화 한 편에는 시나리오, 배우, 촬영, 미술, 편집, 음악, 제작비, 투자, 배급 등 수많은 요소가 얽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사람이 있다.
영화는 기술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이해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감독실격 시즌 2》가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영화를 만드는 과정의 비영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화면에는 나오지 않는 회의실의 눈치, 시나리오 수정, 캐스팅을 둘러싼 계산, 제작사의 사정, 투자와 흥행에 대한 압박, 누가 누구와 친한지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까지.

영화는 예술이지만, 영화 제작 현장은 동시에 철저히 현실적인 비즈니스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서 최 감독은 예술가이고 싶어 하지만 생존해야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작품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제작사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다. 자존심을 지키고 싶지만 기회를 놓칠 수도 없다.
바로 이 모순이 이 소설의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 같다.


특히 마음에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나의 실패는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책의 질문들이 이 한 문장에 상당 부분 압축되어 있는 듯했다.
실패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실패가 자신의 잘못 때문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실패를 외부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어쩌면 실패 이후 가장 어려운 일은 ‘내가 잘못한 것과 내가 어쩔 수 없었던 것을 구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 감독은 그 경계에서 계속 흔들린다.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다시 기회를 얻고 싶어 한다. 자신의 실력을 믿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영화가 좋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감독이라는 직함과 인정받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왜 저래'라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 아주 조금 불편해진다.

‘나도 비슷한 적이 있지 않았나?’

실패한 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변명했던 순간, 누군가의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속으로는 질투했던 순간, 내 부족함을 인정하기 싫어 다른 이유를 찾았던 순간.
최 감독의 찌질함이 웃긴 이유는 그것이 완전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의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한국의 감독은 둘 중 하나야. 원래부터 돈이 많은 감독과 그렇지 않은 감독.”

이 문장은 영화계의 경제적 현실만을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력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도 제작비가 필요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사람을 모아야 하고, 영화가 완성되어도 개봉과 배급이라는 또 다른 문턱을 넘어야 한다. 창작자의 능력과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 세계다.

특히 책 속에서 소개되는 최 감독의 영화 인생은 그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단편영화로 해외 영화제에서 성과를 거두고, 장편 시나리오로 공모전 대상을 받았지만 상업영화 제작은 계속 무산된다. 결국에는 정부 지원으로 독립 장편영화를 만들고,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일을 하면서 3년이 걸리고, 개봉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나리오 집필부터 개봉까지 10년이 걸린 셈이다.

여기서 가장 씁쓸한 것은 재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씁쓸한 것은 기회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의 마음도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작품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감독’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싶어지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지고, 자신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

꿈이 어느 순간부터 꿈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때부터 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동시에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최 감독의 욕망을 더욱 재미있게 보여주는 장면은 재기를 꿈꾸는 순간이다.
🔖“아무도 거절할 수 없는 시나리오를 들고 혜성처럼 컴백! 모두가 내 시나리오에 열광하며 달려드는 바로 그 순간!”

‘나 아직 안 끝났어.’
‘내가 다시 보여줄 수 있어.’
‘이번에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할 거야.’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한동안 잘되지 않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뒤집어버리는 순간.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이 놀라고, 자신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역시 그 사람은 다르다’는 말을 듣는 순간.

최 감독이 꿈꾸는 컴백은 자신의 인생을 다시 쓰고 싶은 욕망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재기는 자신이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싸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 속 ‘실격’이라는 단어도 오래 생각하게 된다.

누가 누구를 실격시킨 것일까.
영화계가 최 감독을 실격시킨 것일까.
관객이 실격시킨 것일까.
흥행 실패가 그를 실격시킨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망한 감독’이라고 규정하면서 자기 자신을 실격시킨 것일까.

사람은 한 번의 실패로 정말 실격될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 감독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계속 실패하면서도 다시 시도하는 사람을 어디까지 실패자라고 불러야 할까. 그리고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핑계를 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은 과연 비웃어야 할까, 아니면 이해해야 할까.


이 작품의 블랙코미디가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실패를 다룬 이야기는 실패를 극복하는 감동적인 서사로 흘러가기 쉽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실패한 사람이 반드시 성숙해지거나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실패했다고 갑자기 현명해지지 않는다.
상처받았다고 해서 타인을 질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좌절했다고 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곧바로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실패한 뒤에도 여전히 허세를 부리고, 여전히 남을 부러워하고,
여전히 자기합리화를 한다. 그게 사람이다.
그래서 최 감독이 웃기면서도 짠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즌2를 읽고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본다면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포기하면 편할 텐데 포기하지 못하는 것.
이제는 그만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데 계속 붙잡는 것.
그것이 꿈인지 미련인지, 자존심인지 집착인지 스스로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

최 감독은 영화라는 꿈을 붙잡고 있지만, 그 꿈이 정말 영화 자체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감독으로 인정받는 나’를 향한 것인지는 끝까지 모호하다.

그 모호함이 오히려 좋았다.
사람이 무언가를 계속 원하는 이유가 언제나 순수하고 명확한 것은 아니니까.

사람은 계속 앞으로 간다.
왜 가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누가 영화감독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책 제목을 생각하다보면 실제로 붙잡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렇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포기하지 못하는 일.
인정해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계속 애쓰는 일.
성공을 보장해준 것도 아닌데 다시 시작하는 일.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바로 끝난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진짜 ‘실격’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웃기면서도 씁쓸하고, 찌질해서 외면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소설.

과연 몇 번까지 실패해야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도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동안에는, 끝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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