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편견 - 서로 다른 세계에서 다양성과 공존의 태도를 배우는 법
한민 지음 / 저녁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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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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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낯선 문화를 접했을 때, 혹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방식을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왜 저렇게 하지?’
‘저건 이상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저렇게 안 하는데.’

어쩌면 생각보다 자주 이런 판단을 내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판단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아보려는 순간보다, 알고 있는 기준에 맞춰 옳고 그름을 결정해버리는 순간이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한민 작가의 《오만한 편견》을 읽으며 오래 생각하게 된 질문은 '편견은 정말 무지에서만 시작되는가?'였다.

책은 조금 알고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 위험을 이야기한다. 완전히 모르면 더 알아보려는 마음이라도 생기지만, 어설프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질문을 멈춘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해해야 할 대상은 판단해야 할 대상으로 바뀐다.
‘무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확신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낯선 행동이라고 해서 곧바로 틀렸다고 판단하는 일은 위험합니다.”

너무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막상 일상을 돌아보면 이 원칙을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지 깨닫게 된다.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라온 가족의 방식, 배워온 예절, 알고 있는 사랑의 방식,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의 모습, 옳다고 배운 결혼과 가족의 형태까지.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책에서 음식 냄새와 색깔, 집 안에서 신는 신발, 가족끼리 연락하는 빈도, 손님을 대접하는 방식까지 문화의 일부라고 설명하는 대목은 사소해 보여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문화는 역사나 종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작은 행동 속에도 스며 있기 때문이다.

문화란 너무 익숙해서 문화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기준을 의심하는 일일 것이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하지?’라고 묻기 전에
‘나는 왜 이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라고 물어보는 것.

그 질문 하나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꽤 많이 바꿔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과거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전족은 잔혹하고, 코르셋은 억압적이며, 과거의 결혼제도나 가족제도는 불평등했다고 말한다. 물론 역사 속 억압과 차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책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의 가치판단 역시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문화가 반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을 읽고 한동안 생각이 멈췄다.
지금 당연하다고 믿는 가치관 역시 언젠가 미래의 사람들에게 낯설게 보일 수 있다면, 현재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지금이 가장 발전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발전했고, 의학은 발전했고, 인권에 대한 인식도 과거보다 넓어졌다. 그러나 발전한 기술과 발전한 인간의 판단이 반드시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기준이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해준다는 사실과, 현재의 기준이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잣대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어 현재의 우월함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시대의 맹점까지 돌아보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2장의 신화와 영화 이야기는 책을 조금 더 재미있게 읽게 만드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문화 이해가 얼마나 섬세한 작업인지 보여준다.

특히 ‘도깨비는 왜 고블린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번역은 단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일만이 아니라, 단어 하나에 그 문화가 오랫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감정, 역사적 기억이 들어 있다.

동양의 용과 서양의 드래곤을 떠올려도 그렇다. 같은 ‘용’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두 문화권에서 그 존재가 지닌 상징과 정서는 상당히 다르다.

이런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콘텐츠를 소비할 때도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이 이야기는 재미있는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을까?’
‘왜 이 사회에서는 이런 영웅이 등장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된다.

좀비, 괴수, 변신 설화, 슈퍼히어로 같은 대중문화가 한 사회의 불안과 욕망을 담는 그릇이라는 관점도 흥미로웠다.

특히
🔖“문화는 개인의 ‘성격’과 닮아서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 역시, 개인 심리의 역동과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사람의 행동을 그 사람의 성격 하나로 설명할 수 없듯, 한 사회의 모습을 그 사회 구성원의 ‘국민성’ 하나로 설명하는 것 역시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인은 원래 그래’라는 말 역시 상당히 위험한 문장이다.
개인의 차이를 지워버리고 수많은 사람을 하나의 성격으로 묶어버리기 때문이다.

책의 ‘문화는 성격을 결정하지 않는다’라는 논의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에 대한 경계는 그래서 의미 있게 다가왔다.

문화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사람을 완전히 결정하지는 않는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교육을 받아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한다.

문화는 사람을 설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배경일 수는 있지만, 그 사람 자체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인은 이렇다’, ‘외국인은 저렇다’라는 식의 단정에서 조금은 멀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접한다.
다른 나라의 영상도 실시간으로 보고, 번역된 뉴스도 쉽게 읽으며, 해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몇 분 만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보를 많이 얻는다고 해서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반복해서 보여주는 환경에서는 ‘많이 봤다’는 경험이 ‘잘 안다’는 착각으로 바뀔 위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 문해력은 외국의 풍습을 많이 아는 능력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문화 문해력이란 낯선 것을 만났을 때 즉시 판단하지 않는 힘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책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문화 이해의 목적은 결국 다른 문화와 공존하는 데 있습니다.”

이 문장이 이 책 전체의 핵심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문화를 공부하는 이유가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사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모든 차이를 좋아할 필요도 없고, 모든 관습을 옳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화적 상대주의가 모든 행동을 무조건 정당화한다는 뜻도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판단하기 전에 맥락을 살피는 태도다.
‘나는 저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와 ‘저것은 틀렸다’는 전혀 다른 말이니까.


편견의 반대말은 지식이 아니라 질문일지도 모른다.

편견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가능할까?
중요한 것은 편견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믿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편견이 전혀 없는 상태보다 중요한 것은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은 문장 역시 그 지점을 정확하게 건드렸다.
🔖“내가 가장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고, 따라서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나보다 미개하고 불쌍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 질문은 과거를 향하지만 현재의 나를 향하기도 한다.

'지금 무엇을 너무 당연하게 믿고 있을까.'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 가운데 사실은 특정한 문화와 시대가 만들어낸 기준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잣대는 정말 나만의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오랫동안 주입해온 기준을 내가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에서 한국인의 한, 정, 신명, 멋을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에는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고 느꼈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과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 아니었다. 다른 문화를 낯설게 바라보듯, 때로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한이 많은 민족’, ‘정이 많은 민족’, ‘흥이 많은 민족’ 같은 표현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굉장히 복잡한 역사와 사회적 경험을 몇 개의 단어로 압축한 것이다.
그래서 문화 문해력은 세상을 복잡한 그대로 바라보려는 연습인지도 모르겠다.

쉽게 분류하지 않고, 빨리 결론 내리지 않고, 한 번 더 묻는 것.

‘왜?’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질문하는 것.


《오만한 편견》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만 읽기에는 질문의 범위가 훨씬 넓었다. 문화, 역사, 종교, 젠더, 가족, 대중문화, 한국인의 정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건너가지만 책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모인 듯 하다.

나는 얼마나 알고 판단하고 있는가.
혹시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기 전에는 편견을 ‘잘못된 생각’ 정도로 생각했다면,
책을 읽은 뒤에는 편견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편견은 혐오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말 한마디, 익숙한 농담 하나, SNS에서 본 짧은 영상 하나, ‘원래 저 사람들은 그래’라는 무심한 문장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낯선 것을 만났을 때 판단하는 사람보다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는 것.
내 기준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이 세상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전에 너무 빨리 알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더 알아보려 하고,
낯선 것을 틀렸다고 말하기보다 왜 그런지 묻고,
옳다고 확신하기 전에 내가 가진 기준부터 돌아보는 것.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은 낯선 사람과 낯선 문화를 마주했을 때 잠시 판단을 늦추고 ‘왜 그럴까?’라고 한 번 더 묻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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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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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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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얼굴로 다른 사람을 기억한다.
눈, 코, 입의 생김새를 떠올리고 그 얼굴에 이름을 붙인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표정 하나만으로도 마음의 상태를 짐작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얼굴을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면 어떨까.

주인공 카미는 안면인식장애를 가지고 있어 사람의 얼굴을 선명하게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게 세상은 결코 흐릿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감각들이 훨씬 날카롭게 작동한다. 옷의 질감, 실밥 하나, 닳아버린 소매, 가구의 흠집, 손끝에 닿는 미세한 촉감 같은 것들이 사람과 시간을 기억하는 단서가 된다.

처음에는 이것이 추리를 위한 독특한 장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생각이 달라진다.

'무엇으로 기억하는가’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반드시 얼굴만 떠올리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입었던 옷의 냄새, 함께 앉았던 의자의 감촉, 자주 들었던 목소리, 집 안에 남아 있는 생활의 흔적만으로도 그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특히 오래된 물건을 우연히 만졌을 때 과거의 장면이 갑자기 떠오르는 경험이 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이 낡은 물건 하나 때문에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순간도 있다. 《기억의 무늬》는 바로 그런 인간의 기억 방식을 추리소설이라는 틀 안에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처럼 느껴졌다.


카미가 부모님의 죽음을 둘러싼 미제 사건을 오랫동안 추적하는 이유는 범인을 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기억 하나가 남아 있다.

세 살 때 부모님 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는 기억.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느꼈던 옷의 촉감.

1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카미는 그 감각을 놓지 않는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인 수사물이라면 사건 현장에 남은 지문이나 DNA, CCTV, 사진, 목격자의 진술 같은 것들이 중요한 단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훨씬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다.

옷감의 질감과 박음질, 가구의 나뭇결, 오래된 상처와 흔적.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이 카미에게는 기억을 복원하는 언어가 된다.

🔖“옷은 어쩌면, 우리의 육체를 가장 정직하게 기억하는 유일한 목격자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얼굴도 변하고, 목소리도 변하고, 기억도 흐려진다. 하지만 사용했던 물건에는 살아온 시간이 묻어난다.

자주 걷어 올린 소매의 주름, 손이 닿았던 부분의 닳음, 오래 앉아 있던 의자의 흔적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물건이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그 사람의 시간을 증언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나니 집 안의 오래된 물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달라질 것 같았다.


책에서 카미가 의상 디자인을 공부한다는 설정과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옷은 기억과 상처를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특히 초반의 이 문장이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처럼 다가왔다.
🔖“우리의 인생 조각들은 서로 이어 붙여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바늘에 찔린 듯 날카로운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된다. 바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살이 돋아나고, 남는 것은 내 몸과 내 살, 나의 일부라는 것을 말이다.”

상처는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아문다고 해서 흔적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 흔적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보여주는 일부가 된다.

그래서 옷을 꿰매는 행위가 삶의 상처를 봉합하는 행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미의 삶 역시 그렇다.

부모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온 그는 19년 동안 과거를 놓지 못한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은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상처의 의미를 다시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추리소설이면서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기억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을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굉장히 믿는다.

‘분명 그렇게 기억해.’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완벽한 기록 장치가 아니다.
감정이나 충격,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
작품 속에서 기억과 관련해 나온 다음 문장도 그런 의미에서 생각이 머물게 했다.

🔖“약은 뇌의 스위치를 내리는 거야. 하지만 명심해. 억지로 덮어둔 기억은 언젠가 분출되어 독이 되니까.”

이 문장을 읽으며 기억을 억지로 없애는 것과 기억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잊히는 것은 아니다.
외면했던 기억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치유란 기억을 더 이상 나를 파괴하는 방식으로만 바라보지 않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 부분은 ‘사랑’에 대한 카미의 시선이었다.

카미에게 사랑은 너무 추상적인 감정이다.
🔖“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한눈에 이해되지 않는 추상화 같았다. 서로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로만 이해할 뿐인 낯선 감정.”

사랑을 사전적인 의미로는 알고 있지만 자신의 경험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이 설정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사랑을 너무 쉽게 말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사랑이 정말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막막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카미의 ‘사랑은 추상화 같다’는 표현은 상당히 정확하게 다가왔다. 사랑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보이지 않는 사랑을 물건과 감각의 흔적을 통해 보여준다.

누군가가 남긴 물건, 오래된 가구, 손끝에 남은 촉감, 변하지 않은 흔적.

사랑은 말보다 흔적을 통해 더 오래 남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범인을 찾는다.

누가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기억의 무늬》 역시 그런 긴장감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하지만 끝에 다다를수록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구인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깊고 뜨거웠던 사랑이. 망가진 뇌의 농간으로 인해 가장 잔인한 형벌과 증오로 뒤바뀌어 버렸다는 그 참혹한 고백 앞에서 나는 그를 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

이 대목에서는 사건을 바라보던 감정의 방향이 크게 흔들렸다.
사건의 진실이 선악의 구도로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누군가를 찾아내고, 과거의 잘못에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누가 나쁜 사람인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운명의 무게가 드러난다.

그래서 이 소설의 반전은 앞에서 읽었던 장면과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반전에 가까웠다.


물건에는 시간이 새겨져 있다.

평범한 집 안에 있는 오래된 가구 하나.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은 물건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과거를 연결하는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침대의 작은 균열을 그대로 남겨달라는 대목은 기억의 본질과도 닮아 있었다.

🔖“침대 다리 한쪽을 더듬어 보면 조금 쪼개진 틈이 있습니다. 그 상처 난 틈만큼은 절대 메우거나 고치지 마시고, 부디 그대로 남겨주십시오…….”


어떤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과거를 기억하게 해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깨진 부분을 완벽하게 수리해버리면 편안하고 깨끗해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물건이 지나온 시간의 일부도 사라진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그리움은 기억을 단단히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움은 참 이상하다.
잊으려고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기억이 있고,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사소한 감각 하나 때문에 갑자기 되살아나는 기억도 있다.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오래된 옷을 만졌을 때, 낡은 가구의 표면을 손으로 쓸어보았을 때.

기억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감각 어딘가에도 과거가 저장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기억의 무늬’라는 제목도 시간이 사람과 사물에 남겨놓은 보이지 않는 무늬를 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억의 무늬. 이 소설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힘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사건을 이야기하면서도 일상 가까이에 있는 물건과 감각을 통해 ‘기억’과 ‘사랑’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

특히 카미처럼 얼굴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사람을 기억하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하게 믿어왔던 ‘보는 것’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말보다 작은 흔적 하나가 더 정확하게 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기억의 무늬》는 미제 사건을 따라가는 추리소설의 긴장감 위에 기억의 불완전함과 상처의 의미,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겹쳐놓은 작품이었다.

잊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정말 사라진 것일까?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만지고 있는 이 물건에도 누군가의 시간이 남아 있을까.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내 기억 속에 어떤 ‘무늬’로 남아 있을까.


무늬는 누군가의 삶이 지나간 자리이고,
시간이 남긴 작은 증거이며,
때로는 말하지 못한 사랑을 대신 기억해주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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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2 세트 - 전2권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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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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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부터 떠올리게 된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가 좁혀지고, 단서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긴장감과 서늘함이 따라붙는다. 특히 본격 미스터리라면 복잡한 트릭과 치밀한 논리, 마지막 순간에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쾌감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데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 1, 2권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사건 속으로 끌어들인다. 살인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야기 전체의 공기를 지나치게 어둡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과 행동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고, 그 웃음 사이사이에 미스터리의 단서를 심어 놓는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재미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알아내는 데만 있지 않고,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인물들의 관계와 대화를 지켜보는 것 역시 중요한 즐거움이었다.

특히 이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호쇼 레이코와 가게야마의 관계다.
재벌가의 외동딸이라는 특별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숨긴 채 형사로 살아가는 레이코는 정의감도 있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욕도 강하다. 하지만 완벽한 천재형 주인공은 아니다. 허술한 부분도 있고 쉽게 흥분하기도 하며, 가게야마의 말 한마디에 발끈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반면 집사 가게야마는 지나치게 냉정하고, 지나치게 똑똑하며, 지나치게 솔직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나침’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재미있게 만든다.

가게야마는 레이코를 도와주는 조력자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자존심을 가장 자주 건드리는 인물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레이코가 나름대로 진지하게 내놓은 추리에 찬물을 끼얹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조롱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두 사람 사이에 오랫동안 쌓여온 익숙함과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문장은 이 관계를 아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아가씨, 부디 부탁드립니다. 잠꼬대는 주무시고 계실 때 해주시겠습니까?”

이 문장만 보면 상당히 무례한 말인데, 이상하게도 이 시리즈에서는 웃음이 난다. 가게야마의 독설은 레이코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이라기보다 두 사람 사이에서 반복되는 하나의 ‘대화 방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레이코가 절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게야마, 혹시 당신, 정중하게 말하기만 하면 무슨 폭언이라도 용서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경어로 해도 반말로 해도 ‘하시지요’를 붙여도 폭언은 폭언이라고!”

이 장면에서는 사건보다 두 사람의 말싸움 자체가 하나의 작은 코미디처럼 작동한다. 추리소설에서 사건 해결을 위한 대화가 이렇게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들보다, 사건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더 궁금해진다
1, 2권에는 각각 다섯 개의 사건이 등장한다. 살인, 교살, 추락사, 밀실, 변사 등 사건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각각의 사건을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관계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움직이고, 누군가는 원한 때문에 움직이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욕심이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래서 사건의 트릭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에 닿게 된다.

🤔사람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거짓말할 수 있을까?

본격 미스터리에서 트릭은 단순한 퍼즐이 아니며, 누군가가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이유나 욕망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품 역시 복잡한 사건을 지나치게 비극적인 정조로 끌고 가지 않으면서도,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이기심과 관계의 균열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가볍게 읽히는 추리소설’이면서도 웃으며 읽었던 장면 뒤에 살인의 이유가 남고,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인물의 행동 뒤에 인간적인 욕망이 숨어 있다.

___

2권에서는 새로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더 재미있다.
2권까지 읽으면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새롭게 합류한 와카미야 아이리다.

레이코와 가게야마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관계에 아이리가 들어오면서 이야기의 리듬이 달라진다. 여기에 가자마쓰리 경부까지 더해지면서 네 사람의 조합은 상당히 독특해진다.

레이코가 버럭하고, 가게야마가 독설을 던지고, 가자마쓰리가 엉뚱한 추리를 하고, 아이리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 조합의 장점은 누구 한 명이 모든 장면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들이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고, 그 차이가 자연스럽게 웃음을 만들어낸다.

특히 가자마쓰리 경부의 허술함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는 방해가 될 때도 있지만, 묘한 긴장 완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가 등장하면 ‘이번에는 또 어떤 엉뚱한 추리를 할까?’라는 기대가 생긴다.
반대로 가게야마가 등장하면 ‘이번에는 레이코에게 어떤 독설을 날릴까?’라는 기대가 생긴다.

이 시리즈에서는 범인이 누구인지뿐 아니라 다음에 누가 어떤 말을 할지도 궁금해진다. 이것이 캐릭터 중심의 미스터리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웃음은 미스터리의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 끌고 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유머와 추리의 공존’이다.
보통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지나친 유머는 긴장감을 깨뜨릴 위험이 있다. 하지만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에서는 유머가 사건과 별개의 요소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의 성격에서 웃음이 나오고, 그 인물들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웃음이 나오며,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사건을 계속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무거운 미스터리를 읽을 때처럼 긴장해서 단서를 하나하나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사건 자체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이 균형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특히 가게야마의 말투는 이 작품의 유머를 대표한다.
🔖“그렇습니다만, 아가씨....... 지나치게 멋진 생각은, 유감스럽게도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상당히 독하다. 하지만 이런 말투가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가게야마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미가 된다.
그리고 그의 독설이 실제로 사건의 핵심을 찌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가 레이코의 추리를 반박할 때마다 ‘이번에도 가게야마가 맞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레이코가 이번에는 제대로 한 방 먹여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라는 제목을 떠올리면 작품의 분위기가 더욱 잘 이해된다. 이 책은 독자를 극도의 공포나 긴장 상태로 몰아붙이는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제목처럼 정말 ‘저녁 식사 후’에 읽고 싶은, 하루의 일을 마치고 편안하게 앉아 한 편씩 읽기 좋은 이야기였다.

한 사건이 끝나면 다음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고, 각 에피소드가 비교적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긴 호흡의 복잡한 서사를 따라가야 하는 부담도 적었다. 그러면서도 사건의 중심에는 분명한 수수께끼가 있다.

‘누가 범인인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
‘왜 이런 방법을 사용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순간에는 사건의 트릭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그 사건을 만들어낸 인간의 욕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사람들의 말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게야마의 독설과 레이코의 발끈하는 반응, 가자마쓰리의 자신만만하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태도, 아이리의 엉뚱한 분위기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특히 다음 문장은 이 작품의 유머를 잘 보여주는 동시에, 가게야마라는 인물의 성격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좀도둑이라고?! 그렇다면 큰일이네, 바로 경찰을 불러줘.”
“아가씨, 자신의 직업을 잊으셨습니까?”

읽으면서 웃음이 나지만, 동시에 레이코라는 인물이 얼마나 자기 주변의 일상과 직업을 자연스럽게 오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이다.
🔖“어쨌든 현재 레이코는 별일 없이 형사과에 계속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경찰로서 좀 생각해볼 문제 아닐까? 너무 눈치가 없는 거 아냐?”

이 문장은 작품의 서술 방식 자체가 얼마나 유쾌한지를 보여준다.
사건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독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한마디를 던진다. 진지한 설명과 장난스러운 시선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2권에서 만난 이 대화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저기, 그거 알아, 가게야마? 현직 형사는 말이지, 소형 크루저 정도라면 선박 면허 없이 운전해도 도로교통법에 안 걸린다는 거.”
“그야 뭐, 도로교통법에는 걸리지 않겠지요.”

이 장면이 재미있는 이유는 말의 논리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 논리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웃음이 난다.

이런 식의 언어적 유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임에도 독자는 지나치게 무거운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가볍게 읽힌다고 해서 가벼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이 시리즈가 가진 장점을 놓치게 된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관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향한 질투, 돈을 둘러싼 갈등, 사회적 위치에 대한 욕망,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는 마음, 오래된 원한과 오해.

사건마다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그 바탕에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웃음 속에 인간의 어두운 면을 슬쩍 보여준다.

바로 그 점이 좋았다.

‘이렇게까지 심각한 사건을 이렇게 웃기게 풀어도 괜찮을까?’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그 가벼움 덕분에 사건의 구조와 인간관계를 더 편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1권과 2권을 함께 읽고 나니 작품의 진짜 매력은 사건 하나하나보다는 네 사람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변화와 호흡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레이코에게 가게야마는 없어서는 안 될 조력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얄미운 존재이고, 가자마쓰리는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할 수 없지만 믿고 따라가기에는 불안한 인물이다. 여기에 아이리가 합류하면서 기존의 관계에 새로운 변수가 생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네 사람은 서로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건 앞에서는 하나의 팀처럼 움직인다.

아마 이 ‘불협화음 속의 조화’가 이 시리즈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모든 미스터리가 반드시 어둡고 진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하루의 긴장을 조금 내려놓고 한 편의 사건과 몇 번의 웃음을 즐기는 것.
그렇게 가볍게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사건의 진실을 궁금해하며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것.

웃음과 수수께끼, 독설과 추리가 절묘하게 한자리에 모인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티격태격하던 네 사람의 목소리가 궁금해진다면,
다음 저녁 식사 후에도 자연스럽게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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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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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부터 떠올리게 된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가 좁혀지고, 단서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긴장감과 서늘함이 따라붙는다. 특히 본격 미스터리라면 복잡한 트릭과 치밀한 논리, 마지막 순간에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쾌감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데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 1, 2권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사건 속으로 끌어들인다. 살인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야기 전체의 공기를 지나치게 어둡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과 행동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고, 그 웃음 사이사이에 미스터리의 단서를 심어 놓는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재미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알아내는 데만 있지 않고,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인물들의 관계와 대화를 지켜보는 것 역시 중요한 즐거움이었다.

특히 이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호쇼 레이코와 가게야마의 관계다.
재벌가의 외동딸이라는 특별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숨긴 채 형사로 살아가는 레이코는 정의감도 있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욕도 강하다. 하지만 완벽한 천재형 주인공은 아니다. 허술한 부분도 있고 쉽게 흥분하기도 하며, 가게야마의 말 한마디에 발끈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반면 집사 가게야마는 지나치게 냉정하고, 지나치게 똑똑하며, 지나치게 솔직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나침’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재미있게 만든다.

가게야마는 레이코를 도와주는 조력자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자존심을 가장 자주 건드리는 인물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레이코가 나름대로 진지하게 내놓은 추리에 찬물을 끼얹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조롱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두 사람 사이에 오랫동안 쌓여온 익숙함과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문장은 이 관계를 아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아가씨, 부디 부탁드립니다. 잠꼬대는 주무시고 계실 때 해주시겠습니까?”

이 문장만 보면 상당히 무례한 말인데, 이상하게도 이 시리즈에서는 웃음이 난다. 가게야마의 독설은 레이코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이라기보다 두 사람 사이에서 반복되는 하나의 ‘대화 방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레이코가 절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게야마, 혹시 당신, 정중하게 말하기만 하면 무슨 폭언이라도 용서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경어로 해도 반말로 해도 ‘하시지요’를 붙여도 폭언은 폭언이라고!”

이 장면에서는 사건보다 두 사람의 말싸움 자체가 하나의 작은 코미디처럼 작동한다. 추리소설에서 사건 해결을 위한 대화가 이렇게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들보다, 사건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더 궁금해진다
1, 2권에는 각각 다섯 개의 사건이 등장한다. 살인, 교살, 추락사, 밀실, 변사 등 사건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각각의 사건을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관계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움직이고, 누군가는 원한 때문에 움직이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욕심이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래서 사건의 트릭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에 닿게 된다.

🤔사람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거짓말할 수 있을까?

본격 미스터리에서 트릭은 단순한 퍼즐이 아니며, 누군가가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이유나 욕망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품 역시 복잡한 사건을 지나치게 비극적인 정조로 끌고 가지 않으면서도,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이기심과 관계의 균열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가볍게 읽히는 추리소설’이면서도 웃으며 읽었던 장면 뒤에 살인의 이유가 남고,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인물의 행동 뒤에 인간적인 욕망이 숨어 있다.

___

2권에서는 새로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더 재미있다.
2권까지 읽으면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새롭게 합류한 와카미야 아이리다.

레이코와 가게야마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관계에 아이리가 들어오면서 이야기의 리듬이 달라진다. 여기에 가자마쓰리 경부까지 더해지면서 네 사람의 조합은 상당히 독특해진다.

레이코가 버럭하고, 가게야마가 독설을 던지고, 가자마쓰리가 엉뚱한 추리를 하고, 아이리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 조합의 장점은 누구 한 명이 모든 장면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들이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고, 그 차이가 자연스럽게 웃음을 만들어낸다.

특히 가자마쓰리 경부의 허술함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는 방해가 될 때도 있지만, 묘한 긴장 완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가 등장하면 ‘이번에는 또 어떤 엉뚱한 추리를 할까?’라는 기대가 생긴다.
반대로 가게야마가 등장하면 ‘이번에는 레이코에게 어떤 독설을 날릴까?’라는 기대가 생긴다.

이 시리즈에서는 범인이 누구인지뿐 아니라 다음에 누가 어떤 말을 할지도 궁금해진다. 이것이 캐릭터 중심의 미스터리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웃음은 미스터리의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 끌고 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유머와 추리의 공존’이다.
보통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지나친 유머는 긴장감을 깨뜨릴 위험이 있다. 하지만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에서는 유머가 사건과 별개의 요소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의 성격에서 웃음이 나오고, 그 인물들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웃음이 나오며,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사건을 계속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무거운 미스터리를 읽을 때처럼 긴장해서 단서를 하나하나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사건 자체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이 균형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특히 가게야마의 말투는 이 작품의 유머를 대표한다.
🔖“그렇습니다만, 아가씨....... 지나치게 멋진 생각은, 유감스럽게도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상당히 독하다. 하지만 이런 말투가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가게야마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미가 된다.
그리고 그의 독설이 실제로 사건의 핵심을 찌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가 레이코의 추리를 반박할 때마다 ‘이번에도 가게야마가 맞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레이코가 이번에는 제대로 한 방 먹여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라는 제목을 떠올리면 작품의 분위기가 더욱 잘 이해된다. 이 책은 독자를 극도의 공포나 긴장 상태로 몰아붙이는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제목처럼 정말 ‘저녁 식사 후’에 읽고 싶은, 하루의 일을 마치고 편안하게 앉아 한 편씩 읽기 좋은 이야기였다.

한 사건이 끝나면 다음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고, 각 에피소드가 비교적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긴 호흡의 복잡한 서사를 따라가야 하는 부담도 적었다. 그러면서도 사건의 중심에는 분명한 수수께끼가 있다.

‘누가 범인인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
‘왜 이런 방법을 사용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순간에는 사건의 트릭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그 사건을 만들어낸 인간의 욕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사람들의 말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게야마의 독설과 레이코의 발끈하는 반응, 가자마쓰리의 자신만만하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태도, 아이리의 엉뚱한 분위기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특히 다음 문장은 이 작품의 유머를 잘 보여주는 동시에, 가게야마라는 인물의 성격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좀도둑이라고?! 그렇다면 큰일이네, 바로 경찰을 불러줘.”
“아가씨, 자신의 직업을 잊으셨습니까?”

읽으면서 웃음이 나지만, 동시에 레이코라는 인물이 얼마나 자기 주변의 일상과 직업을 자연스럽게 오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이다.
🔖“어쨌든 현재 레이코는 별일 없이 형사과에 계속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경찰로서 좀 생각해볼 문제 아닐까? 너무 눈치가 없는 거 아냐?”

이 문장은 작품의 서술 방식 자체가 얼마나 유쾌한지를 보여준다.
사건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독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한마디를 던진다. 진지한 설명과 장난스러운 시선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2권에서 만난 이 대화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저기, 그거 알아, 가게야마? 현직 형사는 말이지, 소형 크루저 정도라면 선박 면허 없이 운전해도 도로교통법에 안 걸린다는 거.”
“그야 뭐, 도로교통법에는 걸리지 않겠지요.”

이 장면이 재미있는 이유는 말의 논리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 논리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웃음이 난다.

이런 식의 언어적 유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임에도 독자는 지나치게 무거운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가볍게 읽힌다고 해서 가벼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이 시리즈가 가진 장점을 놓치게 된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관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향한 질투, 돈을 둘러싼 갈등, 사회적 위치에 대한 욕망,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는 마음, 오래된 원한과 오해.

사건마다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그 바탕에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웃음 속에 인간의 어두운 면을 슬쩍 보여준다.

바로 그 점이 좋았다.

‘이렇게까지 심각한 사건을 이렇게 웃기게 풀어도 괜찮을까?’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그 가벼움 덕분에 사건의 구조와 인간관계를 더 편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1권과 2권을 함께 읽고 나니 작품의 진짜 매력은 사건 하나하나보다는 네 사람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변화와 호흡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레이코에게 가게야마는 없어서는 안 될 조력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얄미운 존재이고, 가자마쓰리는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할 수 없지만 믿고 따라가기에는 불안한 인물이다. 여기에 아이리가 합류하면서 기존의 관계에 새로운 변수가 생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네 사람은 서로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건 앞에서는 하나의 팀처럼 움직인다.

아마 이 ‘불협화음 속의 조화’가 이 시리즈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모든 미스터리가 반드시 어둡고 진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하루의 긴장을 조금 내려놓고 한 편의 사건과 몇 번의 웃음을 즐기는 것.
그렇게 가볍게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사건의 진실을 궁금해하며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것.

웃음과 수수께끼, 독설과 추리가 절묘하게 한자리에 모인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티격태격하던 네 사람의 목소리가 궁금해진다면,
다음 저녁 식사 후에도 자연스럽게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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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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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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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부터 떠올리게 된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가 좁혀지고, 단서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긴장감과 서늘함이 따라붙는다. 특히 본격 미스터리라면 복잡한 트릭과 치밀한 논리, 마지막 순간에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쾌감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데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 1, 2권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사건 속으로 끌어들인다. 살인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야기 전체의 공기를 지나치게 어둡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과 행동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고, 그 웃음 사이사이에 미스터리의 단서를 심어 놓는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재미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알아내는 데만 있지 않고,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인물들의 관계와 대화를 지켜보는 것 역시 중요한 즐거움이었다.

특히 이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호쇼 레이코와 가게야마의 관계다.
재벌가의 외동딸이라는 특별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숨긴 채 형사로 살아가는 레이코는 정의감도 있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욕도 강하다. 하지만 완벽한 천재형 주인공은 아니다. 허술한 부분도 있고 쉽게 흥분하기도 하며, 가게야마의 말 한마디에 발끈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반면 집사 가게야마는 지나치게 냉정하고, 지나치게 똑똑하며, 지나치게 솔직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나침’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재미있게 만든다.

가게야마는 레이코를 도와주는 조력자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자존심을 가장 자주 건드리는 인물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레이코가 나름대로 진지하게 내놓은 추리에 찬물을 끼얹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조롱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두 사람 사이에 오랫동안 쌓여온 익숙함과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문장은 이 관계를 아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아가씨, 부디 부탁드립니다. 잠꼬대는 주무시고 계실 때 해주시겠습니까?”

이 문장만 보면 상당히 무례한 말인데, 이상하게도 이 시리즈에서는 웃음이 난다. 가게야마의 독설은 레이코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이라기보다 두 사람 사이에서 반복되는 하나의 ‘대화 방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레이코가 절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게야마, 혹시 당신, 정중하게 말하기만 하면 무슨 폭언이라도 용서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경어로 해도 반말로 해도 ‘하시지요’를 붙여도 폭언은 폭언이라고!”

이 장면에서는 사건보다 두 사람의 말싸움 자체가 하나의 작은 코미디처럼 작동한다. 추리소설에서 사건 해결을 위한 대화가 이렇게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들보다, 사건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더 궁금해진다
1, 2권에는 각각 다섯 개의 사건이 등장한다. 살인, 교살, 추락사, 밀실, 변사 등 사건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각각의 사건을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관계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움직이고, 누군가는 원한 때문에 움직이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욕심이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래서 사건의 트릭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에 닿게 된다.

🤔사람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거짓말할 수 있을까?

본격 미스터리에서 트릭은 단순한 퍼즐이 아니며, 누군가가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이유나 욕망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품 역시 복잡한 사건을 지나치게 비극적인 정조로 끌고 가지 않으면서도,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이기심과 관계의 균열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가볍게 읽히는 추리소설’이면서도 웃으며 읽었던 장면 뒤에 살인의 이유가 남고,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인물의 행동 뒤에 인간적인 욕망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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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는 새로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더 재미있다.
2권까지 읽으면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새롭게 합류한 와카미야 아이리다.

레이코와 가게야마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관계에 아이리가 들어오면서 이야기의 리듬이 달라진다. 여기에 가자마쓰리 경부까지 더해지면서 네 사람의 조합은 상당히 독특해진다.

레이코가 버럭하고, 가게야마가 독설을 던지고, 가자마쓰리가 엉뚱한 추리를 하고, 아이리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 조합의 장점은 누구 한 명이 모든 장면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들이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고, 그 차이가 자연스럽게 웃음을 만들어낸다.

특히 가자마쓰리 경부의 허술함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는 방해가 될 때도 있지만, 묘한 긴장 완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가 등장하면 ‘이번에는 또 어떤 엉뚱한 추리를 할까?’라는 기대가 생긴다.
반대로 가게야마가 등장하면 ‘이번에는 레이코에게 어떤 독설을 날릴까?’라는 기대가 생긴다.

이 시리즈에서는 범인이 누구인지뿐 아니라 다음에 누가 어떤 말을 할지도 궁금해진다. 이것이 캐릭터 중심의 미스터리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웃음은 미스터리의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 끌고 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유머와 추리의 공존’이다.
보통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지나친 유머는 긴장감을 깨뜨릴 위험이 있다. 하지만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에서는 유머가 사건과 별개의 요소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의 성격에서 웃음이 나오고, 그 인물들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웃음이 나오며,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사건을 계속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무거운 미스터리를 읽을 때처럼 긴장해서 단서를 하나하나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사건 자체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이 균형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특히 가게야마의 말투는 이 작품의 유머를 대표한다.
🔖“그렇습니다만, 아가씨....... 지나치게 멋진 생각은, 유감스럽게도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상당히 독하다. 하지만 이런 말투가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가게야마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미가 된다.
그리고 그의 독설이 실제로 사건의 핵심을 찌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가 레이코의 추리를 반박할 때마다 ‘이번에도 가게야마가 맞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레이코가 이번에는 제대로 한 방 먹여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라는 제목을 떠올리면 작품의 분위기가 더욱 잘 이해된다. 이 책은 독자를 극도의 공포나 긴장 상태로 몰아붙이는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제목처럼 정말 ‘저녁 식사 후’에 읽고 싶은, 하루의 일을 마치고 편안하게 앉아 한 편씩 읽기 좋은 이야기였다.

한 사건이 끝나면 다음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고, 각 에피소드가 비교적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긴 호흡의 복잡한 서사를 따라가야 하는 부담도 적었다. 그러면서도 사건의 중심에는 분명한 수수께끼가 있다.

‘누가 범인인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
‘왜 이런 방법을 사용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순간에는 사건의 트릭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그 사건을 만들어낸 인간의 욕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사람들의 말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게야마의 독설과 레이코의 발끈하는 반응, 가자마쓰리의 자신만만하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태도, 아이리의 엉뚱한 분위기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특히 다음 문장은 이 작품의 유머를 잘 보여주는 동시에, 가게야마라는 인물의 성격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좀도둑이라고?! 그렇다면 큰일이네, 바로 경찰을 불러줘.”
“아가씨, 자신의 직업을 잊으셨습니까?”

읽으면서 웃음이 나지만, 동시에 레이코라는 인물이 얼마나 자기 주변의 일상과 직업을 자연스럽게 오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이다.
🔖“어쨌든 현재 레이코는 별일 없이 형사과에 계속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경찰로서 좀 생각해볼 문제 아닐까? 너무 눈치가 없는 거 아냐?”

이 문장은 작품의 서술 방식 자체가 얼마나 유쾌한지를 보여준다.
사건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독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한마디를 던진다. 진지한 설명과 장난스러운 시선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2권에서 만난 이 대화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저기, 그거 알아, 가게야마? 현직 형사는 말이지, 소형 크루저 정도라면 선박 면허 없이 운전해도 도로교통법에 안 걸린다는 거.”
“그야 뭐, 도로교통법에는 걸리지 않겠지요.”

이 장면이 재미있는 이유는 말의 논리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 논리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웃음이 난다.

이런 식의 언어적 유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임에도 독자는 지나치게 무거운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가볍게 읽힌다고 해서 가벼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이 시리즈가 가진 장점을 놓치게 된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관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향한 질투, 돈을 둘러싼 갈등, 사회적 위치에 대한 욕망,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는 마음, 오래된 원한과 오해.

사건마다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그 바탕에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웃음 속에 인간의 어두운 면을 슬쩍 보여준다.

바로 그 점이 좋았다.

‘이렇게까지 심각한 사건을 이렇게 웃기게 풀어도 괜찮을까?’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그 가벼움 덕분에 사건의 구조와 인간관계를 더 편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1권과 2권을 함께 읽고 나니 작품의 진짜 매력은 사건 하나하나보다는 네 사람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변화와 호흡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레이코에게 가게야마는 없어서는 안 될 조력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얄미운 존재이고, 가자마쓰리는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할 수 없지만 믿고 따라가기에는 불안한 인물이다. 여기에 아이리가 합류하면서 기존의 관계에 새로운 변수가 생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네 사람은 서로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건 앞에서는 하나의 팀처럼 움직인다.

아마 이 ‘불협화음 속의 조화’가 이 시리즈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모든 미스터리가 반드시 어둡고 진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하루의 긴장을 조금 내려놓고 한 편의 사건과 몇 번의 웃음을 즐기는 것.
그렇게 가볍게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사건의 진실을 궁금해하며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것.

웃음과 수수께끼, 독설과 추리가 절묘하게 한자리에 모인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티격태격하던 네 사람의 목소리가 궁금해진다면,
다음 저녁 식사 후에도 자연스럽게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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