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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편견 - 서로 다른 세계에서 다양성과 공존의 태도를 배우는 법
한민 지음 / 저녁달 / 2026년 9월
평점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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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낯선 문화를 접했을 때, 혹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방식을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왜 저렇게 하지?’
‘저건 이상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저렇게 안 하는데.’
어쩌면 생각보다 자주 이런 판단을 내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판단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아보려는 순간보다, 알고 있는 기준에 맞춰 옳고 그름을 결정해버리는 순간이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한민 작가의 《오만한 편견》을 읽으며 오래 생각하게 된 질문은 '편견은 정말 무지에서만 시작되는가?'였다.
책은 조금 알고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 위험을 이야기한다. 완전히 모르면 더 알아보려는 마음이라도 생기지만, 어설프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질문을 멈춘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해해야 할 대상은 판단해야 할 대상으로 바뀐다.
‘무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확신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낯선 행동이라고 해서 곧바로 틀렸다고 판단하는 일은 위험합니다.”
너무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막상 일상을 돌아보면 이 원칙을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지 깨닫게 된다.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라온 가족의 방식, 배워온 예절, 알고 있는 사랑의 방식,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의 모습, 옳다고 배운 결혼과 가족의 형태까지.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책에서 음식 냄새와 색깔, 집 안에서 신는 신발, 가족끼리 연락하는 빈도, 손님을 대접하는 방식까지 문화의 일부라고 설명하는 대목은 사소해 보여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문화는 역사나 종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작은 행동 속에도 스며 있기 때문이다.
문화란 너무 익숙해서 문화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기준을 의심하는 일일 것이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하지?’라고 묻기 전에
‘나는 왜 이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라고 물어보는 것.
그 질문 하나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꽤 많이 바꿔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과거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전족은 잔혹하고, 코르셋은 억압적이며, 과거의 결혼제도나 가족제도는 불평등했다고 말한다. 물론 역사 속 억압과 차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책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의 가치판단 역시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문화가 반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을 읽고 한동안 생각이 멈췄다.
지금 당연하다고 믿는 가치관 역시 언젠가 미래의 사람들에게 낯설게 보일 수 있다면, 현재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지금이 가장 발전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발전했고, 의학은 발전했고, 인권에 대한 인식도 과거보다 넓어졌다. 그러나 발전한 기술과 발전한 인간의 판단이 반드시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기준이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해준다는 사실과, 현재의 기준이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잣대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어 현재의 우월함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시대의 맹점까지 돌아보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2장의 신화와 영화 이야기는 책을 조금 더 재미있게 읽게 만드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문화 이해가 얼마나 섬세한 작업인지 보여준다.
특히 ‘도깨비는 왜 고블린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번역은 단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일만이 아니라, 단어 하나에 그 문화가 오랫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감정, 역사적 기억이 들어 있다.
동양의 용과 서양의 드래곤을 떠올려도 그렇다. 같은 ‘용’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두 문화권에서 그 존재가 지닌 상징과 정서는 상당히 다르다.
이런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콘텐츠를 소비할 때도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이 이야기는 재미있는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을까?’
‘왜 이 사회에서는 이런 영웅이 등장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된다.
좀비, 괴수, 변신 설화, 슈퍼히어로 같은 대중문화가 한 사회의 불안과 욕망을 담는 그릇이라는 관점도 흥미로웠다.
특히
🔖“문화는 개인의 ‘성격’과 닮아서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 역시, 개인 심리의 역동과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사람의 행동을 그 사람의 성격 하나로 설명할 수 없듯, 한 사회의 모습을 그 사회 구성원의 ‘국민성’ 하나로 설명하는 것 역시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인은 원래 그래’라는 말 역시 상당히 위험한 문장이다.
개인의 차이를 지워버리고 수많은 사람을 하나의 성격으로 묶어버리기 때문이다.
책의 ‘문화는 성격을 결정하지 않는다’라는 논의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에 대한 경계는 그래서 의미 있게 다가왔다.
문화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사람을 완전히 결정하지는 않는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교육을 받아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한다.
문화는 사람을 설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배경일 수는 있지만, 그 사람 자체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인은 이렇다’, ‘외국인은 저렇다’라는 식의 단정에서 조금은 멀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접한다.
다른 나라의 영상도 실시간으로 보고, 번역된 뉴스도 쉽게 읽으며, 해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몇 분 만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보를 많이 얻는다고 해서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반복해서 보여주는 환경에서는 ‘많이 봤다’는 경험이 ‘잘 안다’는 착각으로 바뀔 위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 문해력은 외국의 풍습을 많이 아는 능력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문화 문해력이란 낯선 것을 만났을 때 즉시 판단하지 않는 힘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책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문화 이해의 목적은 결국 다른 문화와 공존하는 데 있습니다.”
이 문장이 이 책 전체의 핵심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문화를 공부하는 이유가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사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모든 차이를 좋아할 필요도 없고, 모든 관습을 옳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화적 상대주의가 모든 행동을 무조건 정당화한다는 뜻도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판단하기 전에 맥락을 살피는 태도다.
‘나는 저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와 ‘저것은 틀렸다’는 전혀 다른 말이니까.
편견의 반대말은 지식이 아니라 질문일지도 모른다.
편견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가능할까?
중요한 것은 편견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믿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편견이 전혀 없는 상태보다 중요한 것은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은 문장 역시 그 지점을 정확하게 건드렸다.
🔖“내가 가장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고, 따라서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나보다 미개하고 불쌍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 질문은 과거를 향하지만 현재의 나를 향하기도 한다.
'지금 무엇을 너무 당연하게 믿고 있을까.'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 가운데 사실은 특정한 문화와 시대가 만들어낸 기준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잣대는 정말 나만의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오랫동안 주입해온 기준을 내가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에서 한국인의 한, 정, 신명, 멋을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에는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고 느꼈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과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 아니었다. 다른 문화를 낯설게 바라보듯, 때로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한이 많은 민족’, ‘정이 많은 민족’, ‘흥이 많은 민족’ 같은 표현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굉장히 복잡한 역사와 사회적 경험을 몇 개의 단어로 압축한 것이다.
그래서 문화 문해력은 세상을 복잡한 그대로 바라보려는 연습인지도 모르겠다.
쉽게 분류하지 않고, 빨리 결론 내리지 않고, 한 번 더 묻는 것.
‘왜?’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질문하는 것.
《오만한 편견》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만 읽기에는 질문의 범위가 훨씬 넓었다. 문화, 역사, 종교, 젠더, 가족, 대중문화, 한국인의 정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건너가지만 책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모인 듯 하다.
나는 얼마나 알고 판단하고 있는가.
혹시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기 전에는 편견을 ‘잘못된 생각’ 정도로 생각했다면,
책을 읽은 뒤에는 편견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편견은 혐오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말 한마디, 익숙한 농담 하나, SNS에서 본 짧은 영상 하나, ‘원래 저 사람들은 그래’라는 무심한 문장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낯선 것을 만났을 때 판단하는 사람보다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는 것.
내 기준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이 세상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전에 너무 빨리 알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더 알아보려 하고,
낯선 것을 틀렸다고 말하기보다 왜 그런지 묻고,
옳다고 확신하기 전에 내가 가진 기준부터 돌아보는 것.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은 낯선 사람과 낯선 문화를 마주했을 때 잠시 판단을 늦추고 ‘왜 그럴까?’라고 한 번 더 묻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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